김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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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격식은 일제강점기 함경남도 정평군 출신으로, 강건군관학교와 김일성군사종합대학을 졸업했다. 시리아 주재 북한 대사관 무관보, 차석비서관을 역임했으며, 시리아 체류 경험을 바탕으로 북한과 시리아 간 군사 협력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조선인민군 장교로 복무하며 총참모장, 4군단장, 인민무력부장 등을 역임했으나, 여러 차례 보직 해임과 재임명을 반복했다. 2010년 연평도 포격 사건과 천안함 폭침 사건을 지휘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강경파로 평가받았다. 2015년 5월 10일 암으로 사망했다.

김격식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김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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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격식
출생일1938년 10월 5일
출생지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함경남도 정평군
사망일2015년 5월 10일
사망 장소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양
사망 원인급성 호흡 부전
국적북한
로마자 표기Kim Gyeoksik
한자 표기金格埴/金格植
본명김격식
소속 정당조선로동당
군사 경력
복무조선인민군
군 복무 시작1962년 3월 2일
군 복무 종료2013년 3월 11일
최종 계급조선인민군 육군 대장
주요 지휘조선인민군 총참모장
직책
직책인민무력부 부장
임기 시작2012년 11월 26일
임기 종료2013년 5월 26일
차관변인선 (인민무력성 인민무력부 차장)
주석김정은
학력
학력강건군관학교
기타
웹사이트대한민국 통일부 데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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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경력

1938년 일제강점기 함경남도 정평군에서 태어났다. 강건군관학교와 김일성군사종합대학을 졸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71년부터 시리아 주재 북한 대사관 무관보로 활동했으며, 1980년대에는 중국 주재 북한 대사관 차석비서관을 지낸 뒤 귀국하여 군단장을 역임하기 시작했다.

1990년 5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에 선출되었고, 같은 해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이 되었다. 이듬해인 1991년에는 당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승격했다. 군에서는 1992년 조선인민군 상장, 1997년 대장으로 진급했다. 1994년 10월 인민군 제2군단장에 임명되어 10년 이상 재직했다.

2007년 4월 김영춘의 후임으로 인민군 총참모장에 임명되었으나, 2009년 2월 해임되고 리영호에게 자리를 넘겨주었다. 이후 황해남도NLL 담당 부대인 제4군단장으로 부임했다. 제4군단장 재직 시절인 2010년 천안함 폭침 사건과 연평도 포격 사건을 지휘한 핵심 인물로 지목된다. 이 시기인 2010년 9월 당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으로 강등되기도 했다.

김정일 사후 김정은 체제가 들어선 후, 2012년 10월(또는 11월) 인민무력부장(현 국방상)으로 임명되며 다시 부상했고, 2013년 3월에는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후보위원, 4월에는 국방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2013년 5월 인민무력부장에서 해임되고 장정남에게 자리를 넘겼으며, 잠시 총참모장으로 복귀했으나 같은 해 8월 다시 해임되었다.

2014년 3월 최고인민회의 제13기 대의원에는 선출되었으나, 같은 해 4월 국방위원회 위원에서는 물러났다. 이후 2015년 5월 10일, 암으로 인한 급성 호흡부전으로 사망했다.

2.1. 군 경력

함경남도 정평군 출신으로, 1938년 일제강점기에 태어났다. 강건군관학교와 김일성군사종합대학에서 수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70년대에는 시리아 주재 북한대사관 주재무관 등으로 활동하며 에리트리아 해방전선과 터키 노동당 등에 대한 군사 지원 임무를 수행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1980년대에 북한으로 돌아와 조선인민군 군단장을 역임했으며, 1982년 4월부터 1984년 10월까지는 중화인민공화국 주재 북한 대사관에서 차석비서관으로 근무했다.

1990년 5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으로 선출되었고, 같은 해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이 되었다. 이듬해인 1991년에는 당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92년 4월 인민군 상장으로 진급했으며, 1994년 7월 김일성 사망 당시 국가장의위원회 위원 명단(84번째)에 포함되었다. 같은 해 10월 서부전선을 담당하는 인민군 제2군단장에 임명되어 10년 이상 재직했다. 1997년 2월 인민군 대장으로 승진했다.

2007년 4월, 김영춘의 후임으로 인민군 총참모장에 임명되었다. 2008년 11월에는 미얀마 군정 대표단과의 회담 및 군사 협력 양해각서 체결에 참여했다. 그러나 2009년 2월 총참모장직에서 해임되고 리영호에게 자리를 넘겨주었으며, 이후 황해도의 NLL 담당 부대인 제4군단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통일일보 등 일부에서는 이를 좌천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같은 해 3월 최고인민회의 제12기 대의원 선거에서는 낙선했다.

제4군단장 재임 시절, 김격식은 2010년 3월 천안함 폭침 사건과 같은 해 11월 연평도 포격 사건을 지휘한 핵심 인물로 지목된다. 이러한 강경 노선에도 불구하고, 2010년 9월 당 대회에서는 당 중앙위원회 정식 위원에서 후보위원으로 강등되었다.

김정일 사후인 2011년 12월 국가장의위원회 명단에는 포함되지 못했으나, 2012년 10월(또는 11월) 인민무력부장(현 국방상)으로 임명되며 다시 부상했다. 2013년 3월에는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후보위원에 올랐고, 같은 해 4월 최고인민회의에서 국방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인민무력부장 재임 기간 동안 대한민국과의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등 강경파로서의 면모를 보였다.

그러나 2013년 5월, 임명된 지 약 6개월 만에 인민무력부장직에서 갑작스럽게 해임되고 후임으로 장정남이 임명되었다. 해임 직후 다시 인민군 총참모장으로 복귀했으나, 이 역시 3개월 만인 2013년 8월에 다시 해임되었다. 그의 갑작스러운 해임 배경에는 파나마에서 북한 무기 운반선이 압류된 사건이 연관되어 있다는 분석도 있다.

2014년 3월 제13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는 선출되었으나, 같은 해 4월 국방위원회 위원에는 재선출되지 못하며 군 핵심에서 완전히 밀려난 것으로 평가된다.

2015년 5월 10일, 암으로 인한 급성 호흡부전으로 사망했다고 조선로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보도했다.

2.2. 정치 경력

1938년 일제강점기 함경남도 정평군에서 태어났다. 강건군관학교를 졸업하였고, 김일성군사종합대학에서도 수학한 것으로 알려졌다.

1971년 6월부터 1972년 11월까지 시리아 주재 북한 대사관 무관보로 활동했으며, 이 기간 시리아에서 에리트리아 해방전선과 터키 노동당을 지원하는 군사 활동에 관여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후 1982년 4월부터 1984년 10월까지는 중국 주재 북한 대사관 차석비서관을 지냈고, 1980년대에 귀국하여 조선인민군 군단장을 역임했다.

1990년 최고인민회의 제9기 대의원으로 선출되었고, 같은 해 5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에 올랐으며, 이듬해인 1991년 중앙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92년 4월 조선인민군 상장으로 진급했으며, 1994년 7월 김일성 사망 당시 국가장의위원회 위원 명단(84번째)에 포함되었다. 같은 해 10월, 서부전선을 담당하는 인민군 제2군단장에 임명되어 10년 이상 근무했고, 1997년 2월에는 인민군 대장으로 승진했다.

2007년 4월, 김영춘의 후임으로 군부 서열 1위인 총참모장에 임명되었다. 총참모장 재직 중이던 2008년 11월에는 미얀마 군정 대표단과의 회담 및 군사 협력 양해각서 체결에 참여했다. 그러나 2009년 2월, 총참모장직에서 해임되고 리영호에게 자리를 넘겨주었으며, 황해남도 NLL 인근 수역을 담당하는 제4군단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는 좌천성 인사로 해석되었고, 실제로 같은 해 3월 최고인민회의 제12기 대의원 선거에서도 낙선했다. 제4군단장으로 재직하며 2010년 3월 천안함 폭침 사건과 같은 해 11월 연평도 포격 사건을 지휘한 핵심 인물로 지목된다. 이 여파인지 2010년 9월 당 대회에서는 당 중앙위원회 정식 위원에서 후보위원으로 강등되었으며, 2011년 12월 김정일 사망 당시에는 국가장의위원회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김정은 체제가 출범한 이후 2011년 8월 인민무력부 차관에 임명되었고, 2012년 10월경 인민무력부장(현 국방상)으로 승진한 것이 확인되었다. 2013년 3월에는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선출되었고, 같은 해 3월 11일에는 인민군 상장 계급으로 예편하였다. 4월 1일에는 최고인민회의에서 국방위원회 위원으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인민무력부장 임명 약 6개월 만인 2013년 5월, 강경파로 분류되던 김격식은 예상치 못하게 장정남에게 자리를 내주고 해임되었으며, 다시 총참모장으로 복귀했다. 총참모장 복귀도 잠시, 불과 3개월 만인 2013년 8월에 또다시 해임되었는데, 당시 파나마에서 북한 무기 운반선 청천강호가 억류된 사건이 배경이라는 분석이 있다.

2014년 3월 최고인민회의 제13기 대의원에는 선출되었으나, 같은 해 4월 국방위원회 위원에서는 해임되었다. 이후 별다른 공식 활동이 없다가, 2015년 5월 10일 암으로 인한 급성 호흡부전으로 사망했다고 조선로동당 기관지 노동신문 등이 보도했다.

3.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2003년 9월 최고인민회의 제11기 대의원을 지냈다.

4. 기타

대한민국에서는 강경파로 여겨지고 있다.

전직 대한민국 대통령인 전두환에 따르면, 1983년 랑운사건의 총책임자는 김격식이라고 한다. 또한 전직 대한민국 해군 참모총장인 안병태(安炳泰, 안병태한국어)에 따르면, 2009년 11월 10일 황해(서해)에서 발생한 대청해전에 당시 제4군단장이던 김격식이 관여했다고 한다.

2007년 4월 25일, 조선인민군 창건 75주년 기념 행사 열병식에서 당시 총참모장이던 김격식은 다음과 같이 연설했다.

“만약 미 제국주의자들이 우리의 자주권과 생존권을 조금이라도 침해한다면, 그들을 일격에 격멸, 소탕하고, 민족의 최대의 염원인 조국통일의 역사적 위업을 반드시 성취할 것이다.”


시리아에 10년간 체류한 경험으로 아랍어에 능통하며, 시리아와의 관계가 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핵 개발 및 화학무기 개발을 포함한 북한과 시리아 간의 군사 협력에서 중심 인물로 여겨진다.

전직 조선인민군 정찰국장인 김대식(金大植, 김대식한국어)은 그의 사촌이다.

아래는 김격식이 위원으로 참여한 국가 장의위원회 명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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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장의위원회 위원 경력
연도대상 인물
1994년 7월김일성
1995년 2월오진우
1997년 2월최광
2008년 10월박성철
2010년조명록

5. 사망

김격식은 2015년 급성 호흡부전으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