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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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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문준은 제주도 출신의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이다. 농업학교 졸업 후 교원 및 청년 운동에 참여했으며, 1926년 일본으로 건너가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 중앙위원과 신간회 오사카 지회 검사위원장 등을 역임하며 조선인 노동운동을 이끌었다. 1929년에는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 편입에 반대하여 독자적인 노동조합을 조직했고, 1931년 일본공산당 가입 혐의로 체포되어 투옥되었다. 출옥 후에는 재일 조선인의 생활 개선을 위해 민중시보를 창간했으나, 1936년 구류 중 고문으로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독립운동 공헌을 인정하여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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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준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김문준
원어 이름김문준
본명김문준
한글김문준
한자金 文準
가타카나김 문준
별칭호: 목우(木牛)
출생일1894년
출생지조선 제주도
사망일1936년
성별남성
본관김해 김씨
직업 및 활동
직업독립운동가, 사회운동가
관련 활동노동운동, 독립운동, 청년운동
활동 이념사회주의
경력독립운동, 사회운동, 청년운동 관련 경력
가족 정보
배우자정보 없음
자녀정보 없음
동거인정보 없음
가족정보 없음
친척정보 없음
부모정보 없음
형제정보 없음
기타 정보
학력정보 없음
병역정보 없음
상훈건국훈장 애족장

2. 생애

제주도 출신 김문준은 농업학교를 졸업하고 권업모범장에서 일했다. 이후 고향에서 보통학교 교원으로 근무하며 청년 운동에 참여했다. 1926년 일본 오사카로 건너가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 중앙위원, 신간회 오사카 지회 검사위원장 등을 역임하며 조선인 노동운동을 이끌었다. 1929년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에 일본화학노동조합 오사카 지부를 가맹시켰다.

1931년 일본공산당 가입 혐의 및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체포되어 징역 2년을 선고받고, 1934년 출옥했다. 이후 재일 조선인의 생활과 노동 환경 개선을 위해 민중시보를 창간, 동아일보일제강점기 조선 신문의 오사카 지국장들이 참여했다. 1936년 고문으로 사망했고, 유해는 제주도로 운구되어 매장되었다.

2. 1. 제주도에서의 활동 ( ~ 1926년)

제주도 출신으로, 농업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권업모범장에서 일하다 고향에서 보통학교 교원으로 근무하며 청년 운동에 참여했다. 1926년 일본으로 건너갔다.

2. 2. 오사카에서의 노동운동 및 독립운동 (1926년 ~ 1931년)

김문준은 1926년 일본으로 건너가 오사카에서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노총) 중앙위원 등을 역임하며 조선인 노동운동에서 지도적인 역할을 수행했고, 신간회 오사카 지회 검사위원장도 역임했다. 1929년 말부터 노총이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전협)의 산업별 조합에 편입되는 방침이 모색되자 이에 반대하고, 독자적으로 고무공업 노동자를 중심으로 하는 일본화학노동조합 오사카 지부를 조직하여 전협에 가맹했다.

2. 3. 체포 및 투옥 (1931년 ~ 1934년)

1931년 일본공산당 가입 혐의 및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체포되어 징역 2년 형을 선고받았다. 1934년 출옥하였다.

2. 4. 출옥 후 활동과 사망 (1934년 ~ 1936년)

1934년 출옥한 김문준은 재일 조선인의 생활과 노동 환경 개선을 위해 1934년 오사카에서 民衆時報|민중시보|일본어를 창간했다. 민중시보의 강령에는 "조선 민중의 생활 개선과 문화적 향상의 촉진"이 내걸렸으며, 동아일보일제강점기 조선에서 발행된 신문의 오사카 지국장들이 참여했다. 1936년, 김문준은 구류 중에 받은 고문이 원인이 되어 사망했고, 그의 유해는 제주도로 운구되어 매장되었다.

3. 평가

김문준은 제주도 출신으로 농업학교를 졸업한 후 일제강점기에 청년 운동과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노총) 등에서 활동하며 조선인 노동운동에 참여했다. 신간회 오사카 지회 검사위원장을 역임했으며, 1931년 일본공산당 가입 혐의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체포되어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출옥 후에는 재일 조선인의 생활과 노동 환경 개선을 위해 민중시보를 창간하여 "조선 민중의 생활 개선과 문화적 향상의 촉진"을 강령으로 내걸었다. 1936년 구류 중 고문으로 사망했고, 유해는 제주도로 운구되어 매장되었다.

3. 1. 대한민국 정부의 독립유공자 서훈

1991년 대한민국 정부는 김문준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이는 그의 독립운동 공헌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이러한 서훈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역사적 정당성을 재확인하고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3. 2. 역사적 평가와 의의

김문준은 제주도 출신의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으로,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 (노총) 중앙위원, 신간회 오사카 지회 검사위원장 등을 역임하며 재일 조선인 노동운동과 민족 해방 운동에 헌신했다. 1931년 일본공산당 가입 혐의로 체포되어 징역 2년을 선고받았고, 1934년 출옥 후에는 재일 조선인의 생활과 노동 환경 개선을 위해 『민중시보』를 창간했다. 『민중시보』는 "조선 민중의 생활 개선과 문화적 향상의 촉진"을 강령으로 내걸고 민족의식을 고취하며 사회 개혁을 추구했다.

김문준은 언론을 통해 민족의식을 일깨우고 사회 개혁을 추구한 선구자였다. 그의 삶과 죽음은 오늘날 우리에게 차별과 억압에 맞서 싸우는 용기와 희생정신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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