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관식
1. 개요
민관식은 경성제일공립고등보통학교, 수원농림전문학교, 교토 제국대학을 졸업하고 약사 면허와 법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제3, 4, 5, 6, 10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대한체육회 회장, 대한약사회 회장, 대한 올림픽 위원회 위원장, 문교부 장관 등을 역임하며 "한국 스포츠 근대화의 아버지"로 불렸다. 또한, 민주공화당 소속으로 국회 부의장과 국회의장 직무대리를 역임했고, 1988년 서울 올림픽 조직위원회 위원,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최고부의장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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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농림전문학교 동문 -
윤치왕
윤치왕은 일제강점기부터 대한민국에서 활동한 의사이자 군인, 사회기관단체인으로,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서 교수를 역임하고 한국 전쟁에 군의관으로 참전했으며, 대한산부인과학회 회장을 지내며 한국 의학 발전에 기여했다. -
수원농림전문학교 동문 -
유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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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영웅 명예의 전당 헌액자 -
손기정
손기정은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의 육상 선수이자 체육인으로,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획득했으나 일본 대표로 출전해야 했으며, 광복 후에는 육상 지도자로 활동하며 대한민국 체육 발전에 기여했다. -
스포츠영웅 명예의 전당 헌액자 -
김운용
김운용은 육군 장교 출신으로 대한태권도협회 회장, 세계 태권도 연맹 총재, IOC 위원 등을 역임하고 제16대 국회의원을 지낸 대한민국의 스포츠 행정가이자 정치인이다. -
대한민국의 문교부 장관 -
박일경
박일경은 일제강점기에 학위를 받고 함평군수, 서울대학교 조교수를 거쳐 법제처장, 문교부 장관 등을 역임했으며,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여받았다. -
대한민국의 문교부 장관 -
김상협
김상협은 삼양그룹 창업주의 아들이자 독립운동가의 조카로, 도쿄대 졸업 후 고려대 교수와 총장, 문교부 장관, 국무총리, 대한적십자사 총재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자 교육자이며, 친일 행적 논란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요구된다.
2. 생애
민관식은 경기도 개성 출신으로, 경성제일공립고등보통학교 (경기고등학교)와 수원농림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교토 제국대학에서 농학을 전공했다. 약사 면허와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사회단체 활동과 정치 활동을 병행했다. 대한체육회 회장, 대한약사회 회장, 대한 올림픽 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하며 한국 스포츠 발전에 기여했고, "한국 스포츠 근대화의 아버지"로 불리기도 한다. 문교부 장관, 국회의원, 국회부의장 등을 역임하며 정치 분야에서도 활동했다. 2006년 1월 16일 88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평생 축구(1964년 대한축구협회 회장을 1기 역임), 육상, 테니스, 탁구, 소프트테니스 5개 종목의 국내 협회 단체장을 역임했다. 스스로도 인정하는 테니스광으로, 1973년 자신의 호를 따서 "소강배 전국 남녀 중고등학교 테니스 대회"를 창설하여 약 40년간 개최했다. 아들 민병환은 이명박 정부에서 국가정보원 제2차장을 역임했다.
2.1. 초기 생애
경기도 개성 출신으로 경성부로 상경하여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와 수원농림전문학교 농학과를 거쳐, 일본으로 유학, 교토 제국대학 농학부 농예화학과를 졸업하였다. 약사시험에 합격, 약사면허를 취득하였고 일본 교토대학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2.2. 정치, 사회 활동
경기도 개성군 출신으로 경성부로 상경, 경성제일공립고등보통학교와 수원농림전문학교 농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교토 제국대학 농학부 농예화학과를 졸업하였다. 약사시험에 합격하여 약사면허를 취득했고, 일본 교토대학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1964년부터 1971년까지 다섯번에 걸쳐 대한체육회 회장을 역임하고 명예회장도 지냈으며 1966년에 대한약사회 회장(7선) 및 명예회장을 지냈다.
1968년부터 1971년까지 대한 올림픽 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무교동 체육회관과 태릉선수촌을 건립하였다. "한국 스포츠 근대화의 아버지"라고도 불린다. 1970년 아세아 약사회 부회장을 지냈고, 1971년부터 1974년까지 문교부 장관을 맡았다. 1974년에는 아세아 정책연구원장을 지냈고 1974년부터 1984년까지 과학기술단체 총연합회 회장 및 명예회장을 지냈다. 1978년 원광대학교에서 명예약학박사학위를, 중앙대학교에서 명예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1979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 중구·종로구에서 공화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으며 제10대 국회부의장, 국회의장 직무대리를 지냈다. 1986년 서울 올림픽 조직위원회 위원, 1989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을, 1989년부터 한국 올림픽 위원회 상임고문, 헌정회(憲政會) 고문 등의 직책을 맡았다.
그 밖에도 남북조절위원회 부위원장 겸 공동위원장, 상허문화재단이사장을 지냈다. 국민훈장, 무궁화장, 청조근정훈장, 체육훈장 청룡장, 1979년 12월 21일 연암문화재단 감사패 등을 수상했다.
2.3. 박정희 정부 시절
1968년부터 1971년까지 대한 올림픽 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무교동 체육회관과 태릉선수촌을 건립하였다. 1970년 아세아 약사회 부회장을 지냈고, 1971년부터 1974년까지 문교부 장관을 맡았다. 1974년에는 아세아 정책연구원장을 지냈고, 같은 해부터 1984년까지 과학기술단체 총연합회 회장 및 명예회장을 지냈다.
1973년 4월 12일, 문교부 장관으로 일본을 방문 중 도쿄의 한국학원을 방문하였는데, 연설에서 "한국 여성들은 경제 건설에 필요한 외화를 획득하기 위해 헌신하고 있다. 특히 한국의 기생, 호스테스들이 대거 일본으로 진출하여 헌신적으로 밤낮으로 분투하는 애국 충정은 훌륭하다"라며 매춘을 여성의 애국적 행위로 격려하는 발언을 했다. 당시 박정희 정권이 "키센 관광"을 국가 사업으로 추진했던 시기였기 때문에 이 발언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2.4. 유신 이후 정치 활동과 만년
1979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 중구·종로구에서 공화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었으며, 제10대 국회부의장, 국회의장 직무대리를 지냈다. 1986년 1988년 서울 올림픽 조직위원회 위원, 1989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을 역임했고, 1989년부터 한국 올림픽 위원회 상임고문, 헌정회(憲政會) 고문 등의 직책을 맡았다.
그 밖에도 남북조절위원회 부위원장 겸 공동위원장, 상허문화재단 이사장을 지냈다. 국민훈장 무궁화장, 청조근정훈장, 체육훈장 청룡장, 1979년 12월 21일 연암문화재단 감사패 등을 수상했다.
3. 평가 및 논란
민관식은 1968년 10월 24일 대한체육회 회장으로서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에 참가한 후 숙소로 돌아가던 중 탑승 차량이 맞은편 차량과 충돌하여 가벼운 타박상을 입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그의 아들 민병환은 이명박 정부에서 국가정보원 제2차장을 역임했다.
3.1. 긍정적 평가
민관식은 축구(1964년 대한축구협회 회장을 1기 역임), 육상, 테니스, 탁구, 소프트테니스 등 5개 종목의 국내 협회 단체장을 역임했다. 그는 스스로 테니스광임을 자처했으며, 1973년 자신의 호를 딴 "소강배 전국 남녀 중고등학교 테니스 대회"를 창설하여 약 40년간 개최했다.
3.2. 부정적 평가
박정희의 경호실장으로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던 박종규에게 별명(짱구)으로 불리며 노래를 강요당하는 모욕에도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1973년 4월 12일, 문교부 장관으로 일본을 방문 중 도쿄의 한국학원을 방문하였는데, 연설에서 "한국 여성들은 경제 건설에 필요한 외화를 획득하기 위해 헌신하고 있다. 특히 한국의 기생, 호스테스들이 대거 일본으로 진출하여 헌신적으로 밤낮으로 분투하는 애국 충정은 훌륭하다"라며 매춘을 여성의 애국적 행위로 격려하는 발언을 했다. 당시 박정희 정권이 "키센 관광"을 국가 사업으로 추진했던 시기였기 때문에 이 발언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4. 가족 관계
5. 상훈 경력
| 종류 | 내용 |
|---|---|
| 훈장 | 국민훈장 무궁화장 |
| 훈장 | 청조근정훈장(1등급) |
| 훈장 | 체육훈장 청룡장(1등급) |
| 훈장 | 국제올림픽위원회 100주년 기념훈장 |
| 감사패 | 1979년 12월 21일 연암문화재단 감사패 |
6. 저서
* 《미국의 입법과정》
* 《왜 그들은 잘사나?》
* 《낙제생 끝없는 언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