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수 (1990년)
1. 개요
김상수(1990년)는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로, 유격수 포지션에서 활약했다. 1995년 경상북도 구미로 이주하여 야구를 시작했으며, 2009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하며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삼성 라이온즈에서 2018년까지 활약한 후, 2022년 KT 위즈로 이적했다. 2014년에는 53도루를 기록하며 도루왕을 차지했고, 국가대표로도 활동하며 2014년 인천 아시안 게임 금메달, 2015년 WBSC 프리미어 12 우승에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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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팀 | KT 위즈 |
|---|---|
| 등번호 | 7 |
| 포지션 | 유격수 |
| 출생일 | 1990년 3월 23일 |
| 출생지 | 서울특별시 |
| 타석 | 우 |
| 투구 | 우 |
| 데뷔 리그 | KBO |
| 데뷔일 | 2009년 4월 4일 |
| 데뷔 팀 | 삼성 라이온즈 |
| 타율 | .270 |
|---|---|
| 홈런 | 60 |
| 타점 | 624 |
| 선수 경력 | 삼성 라이온즈 (2009–2022) KT 위즈 (2023–현재) |
|---|
| 주요 수상 |
|---|
| 본명 | 김상수 (Kim Sang-Su) |
|---|---|
| 신장 | 175cm |
| 체중 | 68kg |
| 출신 학교 | 경북고등학교 사이버대학교 (재학 중) |
| 계약금 | 2억 8,000만원 |
| 연봉 (2023년) | 5억원 |
| 국가대표 | 대한민국 |
|---|---|
| WBC | 2013년 |
| 프리미어 12 | 2015년, 2019년 |
| 아시안 게임 | 2014 인천 단체전 금메달 |
|---|---|
| WBSC 프리미어12 | 2015 도쿄 단체전 금메달 2019 도쿄 단체전 은메달 |
2. 아마추어 시절
서울에서 태어났으나 1995년에 경상북도 구미로 이주해 경북 도산초등학교 2학년 때 야구를 시작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그의 부친과 경북 도산초등학교 야구부장이었던 강찬영의 권유로 대구옥산초등학교로 전학을 갔다. 허경민과 함께 2008년 제23회 세계 청소년 야구 선수권 대회에 참가했다. 2009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삼성 라이온즈의 1차 지명을 받아 280의 조건으로 입단했다.
3. 프로 선수 시절
2009년 시범 경기에서 타율 0.348(2위), 44안타(1위), 8도루(1위)로 맹활약하며 주목받았고, 시즌에서도 빠른 발과 타격으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시즌 중반 투수 지승민과 함께 A형 간염에 걸려 잠시 전력에서 이탈했다. 빠른 발이 장점이었으나, 체력 문제를 드러냈다.
2009년에 당한 부상 후유증, 잦은 실책과 부진으로 박진만이 2군에 내려가는 일이 늘어나자 유격수로 자리잡았다. 2할대 타율에도 불구하고 30도루를 기록하며 조동찬, 이영욱과 함께 기동력에 기여했다. 플레이오프에서 좋은 타격을 보였으나, 한국시리즈 때는 부진했다. 시즌 후 박진만이 SK 와이번스로 이적했고, 그는 유격수에 완전히 안착해 경북고등학교 시절 등번호 '7'번을 되찾았다.
2011년 팀의 주전 유격수로 완전히 정착했고, 김선빈과 유격수 경쟁을 했다. 5월 8일 LG전에서 데뷔 첫 홈런을 기록했으며, 이 홈런은 팀 통산 3500번째 홈런이었다. 이 시즌에 기록한 2홈런은 모두 박현준을 상대로 기록했다. 주로 9번 타순에 배치됐으나 배영섭이 부상으로 출전하지 못했을 때는 1번 타순에도 배치됐다.
2012년 시즌 초반 부진에 빠진 팀 타선에서 쏠쏠한 활약을 보였다. 4월 20일 한화전에서 안승민을 상대로 시즌 첫 홈런을 쳐 냈고, 5월 8일 롯데전에서 셰인 유먼을 상대로 시즌 2호 홈런을 쳐 냈다. 그러나 후반기 들어 페이스가 떨어지며 2011년 시즌과 거의 동일한 모습을 보였다. 한국시리즈에서 몇 차례 실책으로 실점 위기를 자초했다.
2013년 시즌 초반에 안 좋은 타격감으로 부진했지만 5월 이후 타격감을 끌어올렸으며, 6월 28일 KIA전에서 양현종을 상대로 데뷔 첫 한 경기 2홈런을 기록했다. 이날 정병곤의 끝내기 안타 때 끝내기 득점을 기록했다. 이후 1주일 동안 14홈런을 추가해 19홈런을 기록하며 데뷔 4년 동안 기록한 4홈런을 넘어섰다. 홈런 타자가 아니지만 홈런을 몰아쳐서 '김거포'라고 불렸다. 8월 27일 NC전에서 손민한을 상대로 데뷔 첫 끝내기 안타를 기록했다. 3할 언저리의 타율을 기록했으나, 9월 30일 한화전에서 경기 도중 손목 통증으로 교체되며 시즌 아웃됐고 2할대 타율로 시즌을 마감했다. 그 후 한국시리즈에 출전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엔트리에 오르지 못했다. 이적한 정병곤과 정현이 한국시리즈에서 유격수를 맡았다. 데뷔 이후 최고 타율, 최다 홈런을 기록한 해였으나 정작 다리 문제로 14도루를 기록하는데 그쳤다.
2014년 시즌 초반 하위 타순에서 맹활약했고, 4월 22일 LG전에서 시즌 첫 홈런을 치는 등 3안타, 3타점, 1도루로 사이클링 히트급 활약을 펼쳤다. 작년 시즌 14도루를 기록한 아쉬움을 푸는 듯 시즌 초반부터 도루를 많이 했으며, 서건창, 박민우와 함께 도루왕을 다퉜다. 6월 14일 두산전에서 이용찬을 상대로 끝내기 안타를 기록했다. 6월 28일 한화전에서 시즌 31번째 도루를 기록하며 자신의 한 시즌 최다 도루 기록을 갱신했다. 8월 14일 SK전에서 시즌 41도루를 기록하며 팀 내 한국인 최다 도루 신기록을 세웠다. 8월 23일 SK전에서 시즌 51도루를 기록하며 팀내 최다 도루 기록을 경신했다. 9월 4일 한화전에선 시즌 53도루를 기록하며 팀 내 최초 50도루 고지를 돌파했다. 하지만 들쑥날쑥하는 타격으로 3할 타율을 기록했다가도 다시 2할대 타율로 떨어졌고, 시즌 중반 연속 경기 무안타를 기록하며 아쉬운 모습을 보여줬다. 2014년 아시안 게임 야구 대표팀에 뽑혀 후반부에 대주자 및 대수비를 맡아 한국의 금메달 획득에 기여했다.
2015년 132경기에 출전해 2할 중후반대 타율, 8홈런, 20도루를 기록해 골든글러브 유격수 부문 후보에 이름을 올렸으나 김재호에게 밀리며 수상에 실패했다.
2016년 2할대 타율, 6도루를 기록했다. 12월 20일 박한이에 이어 팀의 새로운 주장으로 선출됐다.
2018년 오프 시즌에 FA가 되어, 2019년부터 삼성과 3년 계약을 체결했다.
2022년 11월 24일, 두 번째 FA 자격을 행사하여 KT 위즈와 4년 총액 29에 계약하며 이적했다. 그의 보상 선수로는 김태훈이 지명되었다.
3.1. 삼성 라이온즈 시절
2009년 시범 경기에서 타율 0.348(2위), 44안타(1위), 8도루(1위)로 맹활약하며 주목받았고, 시즌에서도 빠른 발과 타격으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시즌 중반 투수 지승민과 함께 A형 간염에 걸려 잠시 전력에서 이탈했다. 빠른 발이 장점인 교타자였으나, 체력 문제를 드러내며 신명철의 기량이 늘었다.
2009년에 당한 부상 후유증, 잦은 실책과 부진으로 박진만이 2군에 내려가는 일이 늘어나자 유격수로 자리잡았다. 2할대 타율에도 불구하고 30도루를 기록하며 조동찬, 이영욱과 함께 기동력에 기여했다. 플레이오프에서 좋은 타격을 보였으나, 한국시리즈 때는 부진했다. 시즌 후 박진만이 SK 와이번스로 이적했고, 그는 유격수에 완전히 안착해 경북고등학교 시절 등번호 '7'번을 되찾았다.
2011년 팀의 주전 유격수로 완전히 정착했고, 김선빈과 유격수 경쟁을 했다. 5월 8일 LG전에서 데뷔 첫 홈런을 기록했으며, 이 홈런은 팀 통산 3500번째 홈런이었다. 이 시즌에 기록한 2홈런은 모두 박현준을 상대로 기록했다. 주로 9번 타순에 배치됐으나 배영섭이 부상으로 출전하지 못했을 때는 1번 타순에도 배치됐다.
2012년 시즌 초반 부진에 빠진 팀 타선에서 쏠쏠한 활약을 보였다. 4월 20일 한화전에서 안승민을 상대로 시즌 첫 홈런을 쳐 냈고, 5월 8일 롯데전에서 셰인 유먼을 상대로 시즌 2호 홈런을 쳐 냈다. 그러나 후반기 들어 페이스가 떨어지며 2011년 시즌과 거의 동일한 모습을 보였다. 한국시리즈에서 몇 차례 실책으로 실점 위기를 자초했다.
2013년 시즌 초반에 안 좋은 타격감으로 부진했지만 5월 이후 타격감을 끌어올렸으며, 6월 28일 KIA전에서 양현종을 상대로 데뷔 첫 한 경기 2홈런을 기록했다. 이날 정병곤의 끝내기 안타 때 끝내기 득점을 기록했다. 이후 1주일 동안 14홈런을 추가해 19홈런을 기록하며 데뷔 4년 동안 기록한 4홈런을 넘어섰다. 홈런 타자가 아니지만 홈런을 몰아쳐서 '김거포'라고 불렸다. 8월 27일 NC전에서 손민한을 상대로 데뷔 첫 끝내기 안타를 기록했다. 3할 언저리의 타율을 기록했으나, 9월 30일 한화전에서 경기 도중 손목 통증으로 교체되며 시즌 아웃됐고 2할대 타율로 시즌을 마감했다. 그 후 한국시리즈에 출전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엔트리에 오르지 못했다. 이적한 정병곤과 정현이 한국시리즈에서 유격수를 맡았다. 데뷔 이후 최고 타율, 최다 홈런을 기록한 해였으나 정작 다리 문제로 14도루를 기록하는데 그쳤다.
2014년 시즌 초반 하위 타순에서 맹활약했고, 4월 22일 LG전에서 시즌 첫 홈런을 치는 등 3안타, 3타점, 1도루로 사이클링 히트급 활약을 펼쳤다. 작년 시즌 14도루를 기록한 아쉬움을 푸는 듯 시즌 초반부터 도루를 많이 했으며, 서건창, 박민우와 함께 도루왕을 다퉜다. 6월 14일 두산전에서 이용찬을 상대로 끝내기 안타를 기록했다. 6월 28일 한화전에서 시즌 31번째 도루를 기록하며 자신의 한 시즌 최다 도루 기록을 갱신했다. 8월 14일 SK전에서 시즌 41도루를 기록하며 팀 내 한국인 최다 도루 신기록을 세웠다. 8월 23일 SK전에서 시즌 51도루를 기록하며 팀내 최다 도루 기록을 경신했다. 9월 4일 한화전에선 시즌 53도루를 기록하며 팀 내 최초 50도루 고지를 돌파했다. 하지만 들쑥날쑥하는 타격으로 3할 타율을 기록했다가도 다시 2할대 타율로 떨어졌고, 시즌 중반 연속 경기 무안타를 기록하며 아쉬운 모습을 보여줬다. 2014년 아시안 게임 야구 대표팀에 뽑혀 후반부에 대주자 및 대수비를 맡아 한국의 금메달 획득에 기여했다.
2015년 132경기에 출전해 2할 중후반대 타율, 8홈런, 20도루를 기록해 골든글러브 유격수 부문 후보에 이름을 올렸으나 김재호에게 밀리며 수상에 실패했다.
2016년 2할대 타율, 6도루를 기록했다.
2016년 12월 20일 박한이에 이어 팀의 새로운 주장으로 선출됐다.
2018년 오프 시즌에 FA가 되어, 2019년부터 삼성과 3년 계약을 체결했다.
3.2. KT 위즈 시절
2022년 11월 24일, 두 번째 FA 자격을 행사하여 KT 위즈와 4년 총액 29에 계약하며 이적했다. 그의 보상 선수로는 김태훈이 지명되었다.
4. 국가대표 경력
* 제3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대한민국 대표팀에 선출되었다.
*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야구 대한민국 대표팀에 선출되었다. 이 대회에서 대한민국이 우승하며 병역 면제 혜택을 받았다.
* 2015년 WBSC 프리미어 12 대한민국 대표팀 선수로 선출되었다. 이 대회에서 한국은 대회 첫 우승을 달성했다.
* 제2회 WBSC 프리미어 12 대한민국 대표팀에 선출되었다.
5. 플레이 스타일
빠른 발과 정교한 타격을 갖춘 교타자이다. 넓은 수비 범위를 자랑하며, 안정적인 수비 능력을 갖추고 있다. 뛰어난 주루 센스를 바탕으로 많은 도루를 기록한다. 2014년 시즌에는 서건창, 박민우와 함께 도루왕 경쟁을 펼쳤다. 8월 14일 SK전에서 시즌 41도루를 기록하며 팀 내 한국인 최다 도루 신기록을 세웠고, 8월 23일 SK전에서 시즌 51도루를 기록하며 팀 내 최다 도루 기록을 경신했으며, 9월 4일 한화전에서는 시즌 53도루를 기록하며 팀 내 최초 50도루 고지를 돌파했다. 공격과 수비, 주루에서 모두 팀에 기여하는 다재다능한 선수이다. 2014년 아시안 게임에서 야구 대표팀의 백업으로 대주자 및 대수비를 맡아 금메달 획득에 기여했다.
6. 기타
그는 2011년부터 현재까지 등번호 '7'번을 사용하고 있다. 2009년부터 2010년까지는 '2'번을 사용했다.
7. 통산 기록
| 연도 | 팀명 | 타율 | 경기 | 타수 | 득점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루타 | 타점 | 도루 | 도실 | 볼넷 | 사구 | 삼진 | 병살 | 실책 |
|---|---|---|---|---|---|---|---|---|---|---|---|---|---|---|---|---|---|---|
| 2009 | 삼성 | 0.244 | 97 | 242 | 43 | 59 | 19 | 0 | 0 | 78 | 17 | 18 | 6 | 21 | 2 | 51 | 7 | 9 |
| 2010 | 0.245 | 101 | 282 | 37 | 69 | 7 | 3 | 0 | 82 | 22 | 30 | 6 | 31 | 12 | 45 | 10 | 8 | |
| 2011 | 0.278 | 128 | 406 | 53 | 113 | 16 | 4 | 2 | 143 | 47 | 29 | 7 | 47 | 7 | 61 | 7 | 22 | |
| 2012 | 0.274 | 129 | 419 | 64 | 115 | 18 | 4 | 2 | 147 | 36 | 25 | 11 | 41 | 7 | 56 | 8 | 14 | |
| 2013 | 0.298 | 128 | 372 | 57 | 111 | 17 | 3 | 7 | 155 | 44 | 14 | 5 | 30 | 5 | 44 | 7 | 16 | |
| 2014 | 0.288 | 128 | 427 | 74 | 123 | 20 | 8 | 5 | 174 | 63 | 53 | 6 | 41 | 7 | 77 | 7 | 14 | |
| 2015 | 0.278 | 132 | 449 | 67 | 125 | 30 | 4 | 8 | 187 | 63 | 26 | 5 | 43 | 6 | 56 | 9 | 18 | |
| 2016 | 0.311 | 105 | 358 | 56 | 117 | 13 | 0 | 9 | 119 | 38 | 6 | 4 | 23 | 8 | 39 | 9 | 15 | |
| 2017 | 0.264 | 42 | 144 | 17 | 38 | 7 | 0 | 3 | 54 | 13 | 1 | 1 | 5 | 1 | 26 | 4 | 7 | |
| 2018 | 0.263 | 122 | 453 | 63 | 119 | 13 | 1 | 10 | 164 | 50 | 12 | 9 | 27 | 8 | 91 | 11 | 16 | |
| 2019 | 0.271 | 129 | 468 | 76 | 127 | 20 | 2 | 5 | 166 | 38 | 21 | 3 | 50 | 15 | 67 | 14 | 10 | |
| 2020 | 0.304 | 120 | 404 | 71 | 123 | 18 | 3 | 5 | 162 | 47 | 10 | 3 | 55 | 8 | 55 | 16 | 7 | |
| 2021 | 0.235 | 132 | 429 | 46 | 101 | 17 | 1 | 3 | 129 | 42 | 4 | 2 | 52 | 3 | 51 | 14 | 12 | |
| 2022 | 0.251 | 72 | 235 | 30 | 59 | 11 | 0 | 2 | 76 | 29 | 2 | 1 | 18 | 1 | 44 | 6 | 9 | |
| 2023 | kt | 0.271 | 129 | 443 | 58 | 120 | 19 | 1 | 3 | 150 | 56 | 5 | 6 | 55 | 3 | 68 | 9 | 6 |
| 2024 | 0.276 | 113 | 369 | 60 | 102 | 18 | 4 | 4 | 140 | 45 | 3 | 2 | 37 | 6 | 59 | 12 | 14 | |
| 통산>|16시즌||0.271 ||1794 ||5900 ||872 ||1601 ||263 ||38 ||62 ||2126 ||650 ||259 ||77 ||576 ||99 ||890 ||150 ||197 |
* 굵은 글씨는 해당 시즌 최고 기록
김상수는 2014년에 53도루로 도루왕을 차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