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종
1. 개요
김성종은 1941년 중국 산둥성 지난시에서 태어나 대한민국 소설가이다. 196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경찰관'이 당선되어 데뷔했으며, 1974년 장편소설 '최후의 증인'으로 한국일보 장편소설 공모에 당선되었다. 그는 추리 소설 전문지 '계간 추리 문학'을 간행하고, 김성종 추리문학관을 건설하는 등 한국 추리 소설 발전에 기여했다. 주요 작품으로 '여명의 눈동자', '최후의 증인' 등이 있으며, '최후의 증인'은 영화화되기도 했다. 봉생문화상, 한국추리문학 대상, 부산시 문화상 등을 수상했다.
| 이름 | 김성종 |
|---|---|
| 원어명 | 금성종 |
| 로마자 표기 | Gim Seong-jong |
| 출생일 | 1941년 12월 31일 |
| 출생지 | 전라남도 구례 |
| 국적 | 대한민국 |
| 직업 | 소설가, 작가 |
| 활동 기간 | 1969년 ~ 현재 |
| 배우자 | 알려지지 않음 |
| 종교 | 알려지지 않음 |
| 수상 | 추리문학대상, 봉생문화상 |
| 웹사이트 | 알려지지 않음 |
| 데뷔 작품 | 경찰관 |
|---|---|
| 장르 | 소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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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추리 소설가 -
김내성
김내성은 한국 최초의 추리소설 작가로,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이후까지 대중소설 분야에서 큰 영향을 미쳤으며, 추리소설과 대중소설 작품 활동 외에도 정치 활동을 하였고, 사후에는 김내성추리문학상이 제정되었다. -
대한민국의 추리 소설가 -
이건영 (1945년)
이건영은 대한민국의 공학자이자 소설가, 교육자로, 국토 개발 관련 국책 사업에 참여하고 건설부 차관, 국토연구원장 등을 역임하며 국토 및 도시 개발 정책 연구에 기여했으며, 대학교수와 총장을 지내는 한편 소설가로 등단하여 장편소설을 발표하는 등 문학 활동을 펼쳤다. -
20세기 대한민국 사람 -
김웅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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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대한민국 사람 -
정진석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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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대한민국 사람 -
김웅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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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대한민국 사람 -
정진석 (정치인)
2. 생애
김성종은 1941년 12월 31일 중국 산둥성 지난시에서 태어나 1945년 광복 후 귀국하여 서울특별시 중구 필동에 자리 잡았다. 서울일신국민학교 3학년 재학 중이던 1950년 6.25 전쟁이 일어나면서 피난살이를 떠났다. 이후 아버지의 고향인 전라남도 구례에 정착했고 고입 검정고시를 거쳐 구례농업고등학교에 입학했다. 1963년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졸업 후, 학생잡지 ‘진학’ 영어담당 기자, ‘여원’, ‘여성중앙’, ‘독서신문’ 기자, 김수환 추기경이 발간한 월간 ‘창조’에서 근무했다. 196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ko)에 단편 소설 「경찰관」이 당선되며 데뷔했다. 1974년 한국일보 창간 20주년 기념 장편소설 공모에 추리소설 ‘최후의 증인’이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이 작품은 후에 두 번 영화화되는 등 높은 평가를 받았다. 창작 활동 외에도 추리 소설 전문지 《계간 추리 문학》(10호까지)을 간행했으며, 1992년 부산광역시 해운대구에 김성종 추리문학관을 건립하는 등 한국 추리 소설 보급에 힘썼다.
2.1. 유년 시절과 성장 과정
1941년 12월 31일 중국 산둥성 지난시에서 태어나 1945년 광복 후에 귀국하여 서울특별시 중구 필동에 자리 잡았으나, 서울일신국민학교 3학년 재학 중이던 1950년 6.25 전쟁이 일어나면서 피난살이를 떠나게 된다.
1977년 작품 ‘어느 창녀의 죽음’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작가의 말을 전하고 있다.
“(중략) 그때 우리 가족은 피난살이에 지쳐 있었다. 여수 항구가 멀리 내려다보이는 산비탈 난민촌에 살고 있었는데, 나까지 포함해서 아이가 다섯이나 되었다. 매일 죽으로 연명하고 있는 터에 어머니가 또 여섯째 아이를 낳으셨다. 그러나 어머니는 영양실조인 데다 지병까지 있어서 열이틀 뒤에 여섯 마리의 돼지 새끼들을 남겨 두고 그만 돌아가시고 말았다. 그때 그녀의 나이는 36세였다. 의주가 고향인 그녀는 맨 북쪽에서 태어나 맨 남쪽에서 돌아가신 것이다.
어머니의 장례식 날 나는 구석에 앉아서 <톰 소여의 모험>을 읽었는데, 그것을 본 이웃 사람들이 나를 손가락질하면서 독종이라고 쑤군거렸다. 그러나 사실 나는 속으로 울고 있었다. 얼마 뒤 여섯 번째 아기도 어머니를 따라갔다. 진눈깨비가 몹시 내리던 그날 밤 나는 아버지와 함께 아기를 사과 궤짝에 담아 가지고 뒷산으로 올라가 파묻었다.
진눈깨비를 맞으며 산길을 내려올 때 비로소 나는 내가 철학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머니도 아기도 없는 휑한 방에 앉아서 나는 이제부터 내 밥을 내가 차려 먹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의 고독과 비애를 어루만져 줄 사람이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20년이 지나서야 나는 내 어릴 적의 고통 때문에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다. 20년 후 결혼하여 신혼여행 길에 옛집을 찾아 나섰는데, 너무 많이 변해 한참 만에야 찾을 수 있었다. 옛집은 폐가가 되어 있었다. 귀신이라도 나올 것 같은 그 초가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데, 머리가 허연 할머니 한 분이 옆집에서 넘어와서 누구냐고 물었다. 나는 20년 전에 그곳에 살았다는 것, 그리고 어머니와 동생이 죽었다는 것 등을 이야기했다. 그러자 할머니가 눈물을 주루룩 흘렸다. 20년 넘게 그 마을에 살고 있는 할머니는 나를 알아보신 것이다. 나도 눈물이 괴어 차마 할머니를 마주 바라볼 수가 없었다.
내가 이런 과거를 들춰내는 것은 그것이 나의 문학적 바탕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확연히 구분해 낼 수는 없지만 열세 살 그때부터 나의 시선은 고독과 허무, 그리고 비극이라는 것에 뿌리를 박기 시작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 후 아버지의 고향인 전라남도 구례에 정착했고 고입 검정고시를 거쳐 구례농업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졸업 후 1963년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하게 된다.
2.2. 작가로서의 삶
196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경찰관’이 당선되고, 1971년 현대문학 추천을 받았으며, 1974년 한국일보 창간 20주년 기념 장편소설 공모에 추리소설 ‘최후의 증인’이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작가의 길로 들어선다. 이 작품은 후에 두 번 영화화되는 등 높은 평가를 받았다.
1977년 작품 ‘어느 창녀의 죽음’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작가의 말을 전하고 있다.
> “(중략) 그때 우리 가족은 피난살이에 지쳐 있었다. 여수 항구가 멀리 내려다보이는 산비탈 난민촌에 살고 있었는데, 나까지 포함해서 아이가 다섯이나 되었다. 매일 죽으로 연명하고 있는 터에 어머니가 또 여섯째 아이를 낳으셨다. 그러나 어머니는 영양실조인 데다 지병까지 있어서 열이틀 뒤에 여섯 마리의 돼지 새끼들을 남겨 두고 그만 돌아가시고 말았다. 그때 그녀의 나이는 36세였다. 의주가 고향인 그녀는 맨 북쪽에서 태어나 맨 남쪽에서 돌아가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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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의 장례식 날 나는 구석에 앉아서 톰 소여의 모험을 읽었는데, 그것을 본 이웃 사람들이 나를 손가락질하면서 독종이라고 쑤군거렸다. 그러나 사실 나는 속으로 울고 있었다. 얼마 뒤 여섯 번째 아기도 어머니를 따라갔다. 진눈깨비가 몹시 내리던 그날 밤 나는 아버지와 함께 아기를 사과 궤짝에 담아 가지고 뒷산으로 올라가 파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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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눈깨비를 맞으며 산길을 내려올 때 비로소 나는 내가 철학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머니도 아기도 없는 휑한 방에 앉아서 나는 이제부터 내 밥을 내가 차려 먹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의 고독과 비애를 어루만져 줄 사람이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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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년이 지나서야 나는 내 어릴 적의 고통 때문에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다. 20년 후 결혼하여 신혼여행 길에 옛집을 찾아 나섰는데, 너무 많이 변해 한참 만에야 찾을 수 있었다. 옛집은 폐가가 되어 있었다. 귀신이라도 나올 것 같은 그 초가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데, 머리가 허연 할머니 한 분이 옆집에서 넘어와서 누구냐고 물었다. 나는 20년 전에 그곳에 살았다는 것, 그리고 어머니와 동생이 죽었다는 것 등을 이야기했다. 그러자 할머니가 눈물을 주루룩 흘렸다. 20년 넘게 그 마을에 살고 있는 할머니는 나를 알아보신 것이다. 나도 눈물이 괴어 차마 할머니를 마주 바라볼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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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이런 과거를 들춰내는 것은 그것이 나의 문학적 바탕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확연히 구분해 낼 수는 없지만 열세 살 그때부터 나의 시선은 고독과 허무, 그리고 비극이라는 것에 뿌리를 박기 시작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창작 활동 외에도 추리 소설 전문지 《계간 추리 문학》(10호까지)을 간행했으며, 1992년에는 부산광역시 해운대구에 추리 소설 1만 권 이상을 소장한 김성종 추리문학관을 건설하는 등 한국에서의 추리 소설 보급에 힘썼다.
2.3. 한국 추리문학에 대한 기여
196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소설 「경찰관」으로 등단했다. 1974년 장편 《마지막 증인》으로 한국일보 현상 공모에 입선했고, 이 작품은 이후 두 차례 영화화되는 등 높은 평가를 받았다.
김성종은 창작 활동 외에도 추리 소설 전문지 《계간 추리 문학》(10호까지)을 간행했으며, 1992년 부산광역시 해운대구에 추리 소설 1만 권 이상을 소장한 김성종 추리문학관을 건립하는 등 한국 추리 소설 보급에 힘썼다.
3. 작품 활동
김성종은 장편 소설, 단편 소설집, 어린이 소설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다. 1977년 발표한 여명의 눈동자는 문화방송에서 드라마로 제작되어 큰 인기를 얻었다.
주로 추리 소설을 집필했으며, 대표작으로는 여명의 눈동자, 최후의 증인, 제5열 등이 있다. 단편 소설집으로는 어느 창녀의 죽음, 《고독과 굴욕》, 《회색의 벼랑》 등이 있으며, 어린이 소설 《늑대소년 다루한국어》도 발표했다.
최후의 증인은 最後の証人일본어 (論創社일본어, 2009년)으로 번역되어 일본에서 출간되었고, 흑수선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어 일본에서도 개봉되었다. ソウル逃亡の果てに일본어 (新風舎文庫일본어, 2005년)도 일본어로 번역 출간되었다.
3.1. 장편 소설
| 발간 연도 | 제목 | 출판사 |
|---|---|---|
| 1977년 | 여명의 눈동자 (전10권) | 남도 |
| 1978년 | 최후의 증인 (상하권) | 남도 |
| 1978년 | 제5열 (상중하권) | 남도 |
| 1979년 | 부랑의 강 | 남도 |
| 1979년 | Z의 비극 | 명지사 |
| 1980년 | 일곱개의 장미송이 | 남도 |
| 1980년 | 서울의 황혼 | 인문당 |
| 1981년 | 죽음을 부르는 소녀 | 여학생사 |
| 1982년 | 백색인간 (상하권) | 남도 |
| 1983년 | 제5의 사나이 (상중하권) | 남도 |
| 1983년 | 미로의 저쪽 (상하권) | 명지사 |
| 1984년 | 반역의 벽 (상하권) | 남도 |
| 1984년 | 아름다운 밀회 (상하권) | 남도 |
| 1984년 | 얼어붙은 시간 | 소설문학사 |
| 1984년 | 제3의 정사 | 소설문학사 |
| 1985년 | 피아노 살인 | 명지사 |
| 1985년 | 경부선특급 살인사건 | 남도 |
| 1986년 | 라인X (상중하) | 남도 |
| 1986년 | 국제열차 살인사건 | 추리문학사 |
| 1987년 | 형사 오병호 | 추리문학사 |
| 1987년 | 서울의 만가 | 여원 |
| 1988년 | 안개속에 지다 (상하권) | 명지사 |
| 1988년 | 나는 살고싶다 | 여원 |
| 1988년 | 비련의 화인 | 여원 |
| 1989년 | 최후의 밀서 | 명지사 |
| 1989년 | 제3의 사나이 (상하권) | 추리문학사 |
| 1990년 | 불타는 여인 (상하권) | 추리문학사 |
| 1990년 | 슬픈 살인 (전4권) | 추리문학사 |
| 1990년 | 홍콩에서 온 여인 (상하권) | 추리문학사 |
| 1992년 | 버림받은 여자 | 추리문학사 |
| 1993년 | 세 얼굴을 가진 사나이 (상하) | 해난터 |
| 1994년 | 끝없는 복수 (상하) | 추리문학사 |
| 1995년 | 여자는 죽어야 한다 (상하권) | 남도 |
| 1996년 | 가을의 유서 (전5권) | 해난터 |
| 1997년 | 붉은 대지 (전5권) | 해냄 |
| 1997년 | 코리언 X파일 (상하권) | 추리문학사 |
| 1998년 | 한국 국민에게 고함 (상중하권) | 남도 |
| 2006년 | 봄은 오지 않을 것이다 (전3권) | 남도 |
| 2008년 | 안개의 사나이 | 문학에디션뿔 |
| 2011년 | 안개 속에 지다 (전2권) | 남도 |
| 2013년 | 후쿠오카 살인 | 문학에디션뿔 |
| 2017년 | 계엄령의 밤 | 새움 |
* 여명의 눈동자는 문화방송에서 드라마로 제작되었다.
3.2. 단편 소설집
* 《어느 창녀의 죽음》 (1977년, 문학예술사)
* 《고독과 굴욕》 (1979년, 명지사)
* 《회색의 벼랑》 (1980년, 주부생활사)
* 《죽음의 도시》 (1981년, 남도)
* 《돌아온 사자》 (1996년, 신원문화사)
* 《달맞이 언덕의 안개》 (2015년, 새움)
* 《해운대 그 태양과 모래》(2015년, 새움)
* 실종 (《코리안 미스터리: 한국 추리 소설 걸작선》, 2002년 5월, 바벨・프레스) - 저자명은 "김성종"으로 표기되어 있다.
3.3. 어린이 소설
《늑대소년 다루한국어》(2013년, 청어람주니어)
3.4. 일본어 번역 작품
* 最後の証人일본어 (상/하) (論創社일본어, 2009년 2월, 번역: 曽田龍生일본어)
: 『마지막 증인』(1980년), 흑수선(2001년)』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었으며, 후자는 일본에서도 개봉되었다.
* ソウル逃亡の果てに일본어 (新風舎文庫일본어, 2005년 4월, 번역: 曽田龍生일본어)
4. 수상
| 연도 | 상 이름 | 분야 |
|---|---|---|
| 1992년 | 봉생문화상 | 해당사항 없음 |
| 1986년 | 제2회 한국추리문학 대상 | 해당사항 없음 |
| 2004년 | 제47회 부산시 문화상 | 문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