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완 (1546년)
1. 개요
김완(1546년)은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1546년 영천에서 태어나 무과에 급제했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휘하에서 옥포 해전, 당포 해전, 한산도 대첩, 부산포 해전 등 주요 해전에 참여하여 공을 세웠으며, 칠천량 해전에서 포로로 잡혔으나 탈출하여 귀국했다. 선조로부터 해동소무라는 어필을 받고 함안군수를 역임했으며, 사후 원종훈1등에 책록되었다. 그의 고향인 영천에는 이순신과 김완을 추모하는 동인각이 세워졌다.
| 이름 | 김완 |
|---|---|
| 한글 표기 | 김완 |
| 한자 표기 | 金浣 |
| 가나 표기 | きん かん |
| 로마자 표기 | Gim Wan |
| 생애 | 1546년 ~ 1607년 (62세) |
|---|---|
| 별명 | 호 사성당(思誠堂), 사호(賜號) 해동소무(海東蘇武) |
| 자 | 언수(彦粹) |
| 출생지 | 조선 경상도 영천군 |
| 사망지 | 조선 경상도 영천군 |
| 본관 | 경주(慶州) |
| 사당 | 경북 영천시 동인각(東麟閣) |
| 소속 | 조선군 |
|---|---|
| 복무 기간 | 1577년 ~ 1607년 |
| 최종 계급 | 조선 경상도 함안군수 |
| 주요 보직 | 사도첨사, 척후장, 대병장, 조방장, 함안군수 |
| 지휘 | 조선 수군 |
| 주요 참전 전투/전쟁 | 임진왜란 옥포해전 당포해전 한산도대첩 부산포 해전 칠천량 해전 |
| 서훈 내역 | 선무원종공신 1등 |
| 기타 이력 | 1577년(선조 10년) 별시무과 병과 급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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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7년 사망 -
유키 히데야스
유키 히데야스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차남으로 태어나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양자로 보내졌으며, 유키 가문의 가독을 잇고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 에치젠의 영주가 되었다. -
1607년 사망 -
루스 마사카게
루스 마사카게는 다테 하루무네의 아들로 태어나 루스 씨를 계승한 무장으로, 다테 씨를 도와 세력 확장에 기여했으며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다테 군 총대장으로 활약했고, 이후 다테 씨 일문으로 합류하여 이치노세키 2만 석을 받았다. -
과거 급제자 -
방우정
방우정은 조선 후기 무신으로 홍경래의 난 진압에 참여하여 서정군의 좌초관으로 활약했으며, 난에 대한 경험을 바탕으로 《서정일기》를 저술하여 홍경래의 난 연구에 중요한 사료를 남겼다. -
과거 급제자 -
정여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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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무신 -
방우정
방우정은 조선 후기 무신으로 홍경래의 난 진압에 참여하여 서정군의 좌초관으로 활약했으며, 난에 대한 경험을 바탕으로 《서정일기》를 저술하여 홍경래의 난 연구에 중요한 사료를 남겼다. -
조선의 무신 -
김응우
김응우는 김일성의 고조부로 평안도 대동 출신이며, 북한에서는 제너럴 셔먼호 격침에 기여했다고 주장하나 역사적 사실과 다르다는 비판이 있고, 김일성 가문으로 이어진 전주 김씨이다.
2. 생애
김완은 1546년 영천에서 태어나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이 되었다. 1591년 전라좌수영 소속 사도 첨절제사(蛇渡僉事)로 임명되었다. 임진왜란 때 옥포 해전, 당포 해전, 한산도 대첩, 부산포 해전 등 이순신이 참전한 주요 해전에 참가하여 공을 세워 절충장군(折衝將軍)에 올랐다. 칠천량 해전에서 조방장으로 참전했다가 일본 수군에게 포로로 잡혔으나 탈출하여 귀국하였다. 선조에게서 해동소무(海東蘇武)라는 어필을 하사받고 함안군수가 되었으며, 1607년 고향에서 사망하였다.
사후 원종훈1등(原從勳一等)에 책록되었고, 경북 영천군 임고면 삼매리에는 이순신과 김완을 추모하는 동인각(東麟閣)이 세워졌다.
2.1. 초기 생애 및 관직
1546년 영천에서 태어나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이 되었다. 1591년, 전라좌수영 소속 사도 첨절제사(蛇渡僉事)로 임명되었다. 이순신이 전라좌수영 수군절도사로 부임한 후, 근무 태만으로 인해 가장 먼저 곤장을 맞았으며, 이후에도 빈번하게 벌을 받았다는 기록이 난중일기에 남아 있다.
2.2. 임진왜란 참전
임진왜란 당시 옥포 해전과 당포 해전에서는 우척후장(右斥候將)으로, 한산도 대첩과 부산포 해전에서는 척후장으로 활약하였다. 이후 대병장(代兵將)으로 이순신이 참전한 주요 해전에 참가하여 공을 세워 절충장군(折衝將軍)까지 진급했다. 이순신이 원균의 모함으로 파직되자, 권준 등 다른 장수들은 사직했으나, 김완은 원균을 보좌하였다.
칠천량 해전에 조방장으로 참전했다가 일본 수군에게 포로로 잡혀 일본으로 압송되었으나, 탈출하여 귀국하였다.
2.3. 칠천량 해전과 포로 생활
칠천량 해전에서 조방장이 되어 전투 중 일본 수군에게 포로로 사로잡혀 일본으로 압송되었지만 탈출해 귀국하였다. 선조로부터 해동소무(海東蘇武)라는 어필을 하사받고 함안군수에 임명되었으며, 1607년 고향으로 돌아와 그곳에서 사망하였다.
2.4. 귀국 후 활동 및 사망
칠천량 해전에서 조방장으로 참전했다가 일본 수군에게 포로로 잡혀 일본으로 압송되었으나, 탈출하여 귀국하였다. 선조로부터 해동소무(海東蘇武)라는 어필을 하사받고 함안군수로 임명되었으며, 1607년 고향으로 돌아와 그곳에서 사망하였다. 저서 《해소실기》는 임진왜란 당시 최전선에서 싸운 중급 장교의 행적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어, 임진왜란 전쟁사의 중요한 사료가 되고 있다.
훗날 원종훈1등(原從勳一等)에 책록되었으며, 그의 고향인 경북 영천군 임고면 삼매리에는 충무공과 김완을 추모하기 위해 동인각(東麟閣)이 세워져 있다. 동인각은 정조 9년(1785년) 5월 소실되어 정조 11년(1787년) 재건되었으며, 1960년 자양면 성곡동으로 이전·복원하였으나 영천댐 수몰지구가 되어 1976년 7월 현 위치로 이전·복원되었다.
2.5. 사후
훗날 원종훈 1등(原從勳一等)에 책록되었으며, 그의 고향인 경북 영천군 임고면 삼매리에는 이순신과 김완을 추모하기 위해 동인각(東麟閣)이 세워졌다. 동인각은 정조 9년(1785년) 5월 소실되어 정조 11년(1787년) 재건되었으며, 1960년 자양면 성곡동으로 이전·복원하였으나 영천댐 수몰지구가 되어 1976년 7월 현 위치로 이전·복원되었다.
3. 저서
《해소실기》는 임진왜란 당시 최전선에서 싸운 중급 장교의 행적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어, 임진왜란 전쟁사의 중요한 사료가 되고 있다.
4. 관련 작품
2004년 KBS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서 박철민이 김완을 연기하였는데, 유창한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하면서 코믹 전담 캐릭터로 묘사되어 경주 김씨 문중으로부터 항의를 받았다. 2022년 영화 한산: 용의 출현에서는 배우 김구택이 김완을 연기했다. 한편, 드라마에서는 일본군으로부터 도망쳐 노량 해전까지 참가하지만, 실제로는 조선왕조실록 등 많은 기록에 따르면 육지에서 활동했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