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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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인욱은 일제강점기에 일본 육군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일본군 장교로 복무한 인물이다. 1909년 일본 유학을 시작하여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중위, 대위로 진급했으며, 만주 및 산둥 출병에 참전했다. 영친왕 이은의 부관을 지냈으며, 일제의 항일 무장 부대 공격에 가담했다. 1944년 함흥 육군병사부 소속으로 조선인 병력 동원을 담당했으며, 광복 전에 예편 후 소련군에게 피랍된 것으로 알려졌다.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과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포함되었다.

김인욱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씨명/휘김인욱(金仁旭)
다른 이름김인욱(金仁郁)
출생1892년 5월 1일
출생지평안남도용강군 양곡면
사망불명
소속일본 제국 육군
군 복무1915년 ~ 1945년
최종 계급중좌
기타 이력간도 특설대
만주군관학교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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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김인욱은 1909년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가 폐지되자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1915년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일본군 장교로 복무했다. 1928년에는 산둥 출병에 참전하고, 1932년에는 평안북도 강계 수비대 중대장으로 항일 무장 부대를 공격하는 등 일제의 침략 전쟁에 적극 가담했다. 1933년부터는 영친왕 이은의 부관으로 복무했고, 1944년에는 함흥 육군병사부에서 조선인 병력 동원을 담당했다.

1945년 광복 이후에는 평양에서 거주하다가 소련군에 피랍되었으며, 이후의 행적은 알려져 있지 않다. 그는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명단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포함되었다.

2.1. 일본 유학 및 일본군 복무

1909년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가 폐지되자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1911년 일본 중앙유년학교 예과를 졸업하고 본과에 입학했다. 1915년 일본 육군사관학교 제27기생으로 졸업하고 일본군 보병 소위로 임관했다. 같은 해 11월 일본 정부로부터 다이쇼 대례 기념장을 받았다.

1919년 일본 제국 육군 보병 중위로 진급했고, 1925년 육군 보병 대위로 진급하면서 만주로 파견되었다.

2.2. 만주 및 중국에서의 활동

1925년 육군 보병 대위로 진급하면서 만주로 파견되었다. 1928년 5월 일본의 제2차 산둥 출병(중국 국민당의 북벌이 진행 중이던 당시 일본이 중국에 거주하던 자국 거류민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산둥반도만주 일대를 침략하여 영토 확장과 자국의 이익 확대를 도모한 전투) 당시 조선군 제20사단 보병 제77연대 3대대 9중대장으로 참전하여 랴오둥반도 일대에서 군사 활동을 전개했고, 1928년 11월 일본 정부로부터 훈6등 서보장을 받았다.

1932년 9월 평안북도 강계 수비대 제1중대장으로 복무하는 동안 일제의 항일 무장 부대 공격에 가담했다.

2.3. 영친왕 이은 부관 및 조선인 병력 동원

1933년 3월 일본 도쿄에서 영친왕 이은 중좌의 왕족부 부관으로 복무했다. 1934년 2월 일본 정부로부터 훈5등 서보장을 받았고, 같은 해 3월 육군 보병 소좌로 진급했다. 1934년 3월 1일 만주국 정부로부터 만주국 건국공로장을 받았다.

1935년 8월 왕공족부 무관 이왕 은(垠) 부속 제19사단 보병 제74연대 소속으로 복무했으며, 1937년 7월 만주 일대의 항일 무장 부대 공격에 가담했다. 1940년 8월 1일 육군 보병 중좌로 진급했고, 1941년 11월 1일 육군 보병 제216연대 소속으로 복무했다. 1944년 11월 3일 함흥 육군병사부 소속으로 복무하는 동안 일제의 조선인 병력 동원을 담당했는데, 이는 조국 독립을 열망하던 우리 민족을 억압하고 일제의 침략 전쟁에 강제로 동원한 행위로 비판받아 마땅하다.

2.4. 해방 이후

1945년 광복 이전에 예편한 뒤 한동안 평안남도 평양에서 거주하다가 소련군에게 피랍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후의 행적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3. 친일 행적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명단 군 부문과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포함되었다. 1928년 11월 일본 정부로부터 훈6등 서보장을 받았고, 1934년 2월에는 훈5등 서보장을, 1934년 3월 1일에는 만주국 정부로부터 만주국 건국공로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