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현
1. 개요
김충현은 1943년 중동학교를 졸업하고 서예가로 활동한 인물이다. 안진경체를 시작으로 조전비서풍의 예서를 썼으며 궁체 한글 분야에서 독보적인 존재로 알려졌다. 문교부 예술위원, 서울특별시 문화위원, 국전 심사위원 등을 역임했고, 한국 서예가협회 상임위원 및 회장을 지냈다. 동방연서회를 창립하여 이사장으로 활동했으며, 백악미술관을 건립하여 대표를 맡았다. 주요 작품으로 4·19의거 희생자 묘비, 이충무공 한산도제승당비 등이 있으며, 저서로는 우리글씨 쓰는 법, 근역서보 등이 있다. 대한민국문화예술상, 예술원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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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김충현 |
|---|---|
| 한자 표기 | 金忠顯 |
| 호 | 일중(一中) |
| 출생일 | 1921년 4월 2일 |
| 출생지 | 일제강점기 경성부 |
| 사망일 | 2006년 11월 19일 |
| 사망지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
| 직업 | 서예가 |
| 분야 | 서예 |
| 학교 | 서울 중동고등보통학교 졸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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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전 소속 | 前 서울백악예원 명예이사장 前 동국대학교 전임교수 前 단국대학교 전임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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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김충현은 7세 때 안진경체를 쓰기 시작했고 만년에는 후한 조전비서풍(曹全碑書風)의 예서를 썼다. 궁체 한글은 국내에서 독보적인 존재로 알려져 있다. 김응현과 형제간으로, 그들의 사백(舍伯) 김문현(金文顯) 등 3인은 모두 삼절(三絶)로 불릴 만큼 일가(一家)의 서풍(書風)을 이루었다. 대한민국문화예술상, 예술원상, 보관문화훈장, 추사서예대상원로작가상, 은관문화훈장 등을 수상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4·19의거 희생자 묘비〉, 〈권도원수 행주대첩비명〉, 〈이충무공 한산도제승당비〉, 〈병천 유관순 기념비〉, 〈예산 윤봉길의사 기념비〉, 〈백범 김구선생 묘비〉, 〈사육신묘비〉, 〈의암손병희선생 묘비〉, 〈월남 이상재선생 묘비〉, 독립기념관 현판 등이 있다.
저서로는 『우리글씨 쓰는 법』, 『근역서보』, 『서예집성』, 『한글서예』등이 있고, 대표 작품으로는 『경복궁의 건축문 현판 글씨』, 『서울 남산의 안중근 동상 및 충무공 기념비 글씨』, 『탑골공원 3ㆍ1정신찬양비문』, 『대통령 이승만과 박정희 묘비 글씨』 등이 있다.
2.1. 초기 활동
1943년 중동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해 서예가로 입문하였다. 1949년 문교부 예술위원, 서울특별시 문화위원을 역임했고, 1953년 국전 심사위원이 되었다. 1965년 한국 서예가협회 상임위원이 되었고, 동방연서회를 창립하여 이사장으로서 1,500여 명의 회원들에게 서예를 지도했다. 1968년부터 1974년까지 서예가협회 회장을 맡았고, 1975년 학교법인 오산학원 이사장이 되었다.
2.2. 서예가협회 활동 및 동방연서회 창립
1965년 한국 서예가협회 상임위원이 되었고 동방연서회를 창립, 이사장으로서 1천 5백여 명의 회원들에게 서예를 지도하기도 했다. 1968년부터 1974년까지 한국 서예가협회 회장을 맡았다.
2.3. 오산학원 이사장 및 백악미술관 건립
1975년 학교법인 오산학원 이사장이 되었다. 1983년 백악미술관을 건립하여 대표로 활동하였고, 1998년 3월부터 4월까지 서예 개인전을 3차례 열었다.
3. 서예 업적 및 평가
김충현은 1943년 서예가로 입문하여 문교부 예술위원, 서울특별시 문화위원, 국전 심사위원 등을 역임하며 한국 서예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1965년 한국 서예가협회 상임위원이 되었고, 동방연서회(東方硏書會)를 창립하여 이사장으로서 1,500여 명의 회원들에게 서예를 지도했다. 1968년부터 1974년까지 서예가협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1983년 백악미술관을 건립하여 대표로 활동했다. 1998년에는 3차례 서예 개인전을 열었다.
3.1. 서풍과 특징
7세 때 안진경체(顔眞卿體)를 쓰기 시작했고 만년에는 후한(後漢) 조전비 서풍(曹全碑書風)의 예서(隸書)를 썼다. 궁체(宮體) 한글은 국내에서 독보적인 존재로 알려져 있다. 김응현과 중계(仲季) 형제, 그리고 그들의 사백(舍伯) 김문현(金文顯) 3인은 모두 삼절(三絶)로 불릴 만큼 일가의 서풍(書風)을 이루었다.
3.2. 주요 작품
주요 작품으로 4·19의거 희생자 묘비, 권도원수 행주대첩비명, 이충무공 한산도제승당비, 병천 유관순 기념비, 예산 윤봉길의사 기념비, 백범 김구선생 묘비, 사육신묘비, 의암 손병희 선생 묘비, 월남 이상재 선생 묘비, 독립기념관 현판 등이 있다.
저서로는 《우리글씨 쓰는 법》, 《근역서보》, 《서예집성》, 《한글서예》 등이 있고, 대표 작품으로 《경복궁의 건축문 현판 글씨》, 《서울 남산의 안중근 동상 및 충무공 기념비 글씨》, 《탑골공원 3ㆍ1정신찬양비문》, 《이승만과 박정희 대통령 묘비 글씨》 등이 있다.
3.4. 저서
김충현은 안진경체(顔眞卿體)를 쓰기 시작했고 만년에는 후한(後漢) 조전비 서풍(曹全碑書風)의 예서(隸書)를 썼다. 궁체(宮體) 한글은 국내 독보적인 존재로 알려지고 있다. 저서로는 『우리글씨 쓰는 법』, 『근역서보』, 『서예집성』, 『한글서예』 등이 있다.
4. 가족 관계
형제로는 김문현(金文顯), 김중현(金仲賢)이 있으며, 이들은 '삼절(三絶)'로 불릴 만큼 서예 가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