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발 (1668년)
1. 개요
김흥발은 1668년 노비의 아들로 태어나, 쌀과 곡물을 납부하여 평민 신분을 얻은 아버지 수봉의 영향으로 신분 상승을 시도했다. 그는 평민으로서 병역 의무를 수행하고, 통수직을 맡았으며, 1750년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의 직책을 얻었다. 그의 부인 변소사 역시 노비 출신이었으나, 김흥발은 가족의 신분 세탁을 시도했다. 그의 후손들은 관직에 오르거나 본관을 바꾸려는 시도를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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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 -
민란
민란은 사회 부조리와 경제적 불평등, 억압에 저항하여 민중이 일으키는 봉기로, 다양한 요인이 발생 배경이 되며, 한국사의 임술 농민 봉기는 동학농민운동의 기점이 되었다. -
농민 -
벵그트 포우투
벵그트 포우투는 몽둥이 전쟁의 정치적 지도자였으며 칼 공작에게 항의하기 위해 스톡홀름으로 갔으나 체포되어 사망했다. -
해방 노예 -
헤일로타이
헤일로타이는 고대 스파르타의 라코니아와 메세니아 지역에 거주하며 스파르타 시민에게 예속되어 농업 노동에 종사했던 원주민 집단으로, 생산물 일부를 바치고 억압 속에서 생활하며 반란을 시도하기도 했다. -
해방 노예 -
호라티우스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는 노예 출신 아버지 밑에서 교육받고 전투 경험을 쌓은 후 마이케나스의 후원을 받아 사비나 농장에서 시 창작에 전념하며 풍자시, 서정시, 서간시, 시론 등 다양한 장르에서 뛰어난 작품들을 남겼고, 그의 작품은 고대 로마 문학의 고전으로 자리매김하여 후대 시인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
1668년 출생 -
각혜황귀비
각혜황귀비는 강희제의 후궁으로, 효의인황후의 여동생이자 효강장황후의 조카이며, 귀비에 책봉된 후 황귀비, 황조수기황귀태비로 추존되었고, 숙혜라는 시호를 받았다. -
1668년 출생 -
심호
심호는 조선 숙종 시대 인물로, 딸이 경종의 비인 단의왕후가 되면서 벼슬길에 올라 사옹원 첨정으로 재직 중 사망 후 우의정에 증직되었고, 경종 즉위 후에는 국구로서 청은부원군에 추봉되고 영의정에 가증된 명문가 출신이다.
2. 생애
1668년 노비 출신 수봉과 노비 출신 자목의 아들로, 단성현(현 산청군 단성면)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수봉은 원래 성씨가 없었고, 조부 갓복 또는 어련, 증조부 이동 이상의 선조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어머니 자목은 사노비였지만 이씨 성이 있었는데, 외조부 금금이가 이씨 성을 가진 남성과 여성 노비에게서 태어난 아들이었다. 그러나 이씨 남성은 노비에게서 얻은 아들 금금이를 속량시키지 않고 노비로 방치하였다. 단성현 단성면의 관직없는 몰락 양반 심정량 가문의 노비였던 금금이는 어느 시점에 성주군에 사는 군관 도시담에게 팔려갔다.
아버지 수봉의 신분 세탁은 1717년과 1720년 단성현의 김흥발 호적, 1678년 단성현 노비 수봉 호적에서 수봉 본인과 장인 금금이, 금금이는 이씨 성을 가진 양반 혹은 평민의 아들로 등재된 점, 그리고 형 김학과 노비 수봉의 아들 금학이 일치하는 점을 통해 2000년대 고려대학교 사학과 교수 권내현의 조사 결과 확인되었다.
어영청 소속 병역 의무를 부담했고, 아들 김이달은 병역 대신 벽계역에 사는 병사 김귀봉의 보인 신분으로 호포를 부담했다. 1717년 전후 오가작통법 체제 하에서 단성면 외곽 고읍대촌(古邑大村)의 1통 1호 통장 격인 제1호 통수(第一統 統首)직에 있었다.
2.1. 신분 상승
김흥발은 1668년 노비 출신 수봉과 노비 출신 자목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 수봉은 1675~1678년 대기근 때 쌀과 곡식을 납부하고 노비에서 해방되어 평민이 되었다. 그 후 1695~1696년 사이 대기근 때 곡식을 납부하고 통정대부 관직을 얻었다. 아버지 수봉이 노비 신분에서 해방되면서 김흥발은 평민에게 부과되는 병역(兵役) 의무를 지게 되었다. 그는 어영청에 소속되어 병역 의무를 부담했다.
김흥발은 어영청 보인 신분이었지만, 아버지 수봉, 동생 김갓동이처럼 쌀과 곡식을 납부하고 관직과 양반 신분을 획득했다. 1750년(영조 26) 김흥발 호적에는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라는 관직명이 등장한다.
2.2. 거주지 이동
그는 고향인 단성현 단성면 읍내에서 고읍대촌으로 이주했다가, 나중에 다시 읍내에서 거리가 멀고 주인 일가가 없으며, 양반 가문 주민이 없는 단성면 외곽 용흥촌으로 이주했다가 다시 용흥에서 분리된 등광으로 이주했다. 그가 이주한 정확한 시점은 알려지지 않았다.
2.3. 가족 및 후손
| 관계 | 이름 및 기타 정보 |
|---|---|
| 아버지 | 수봉(守奉) |
| 어머니 | 이소사 자목(李召史 者目, 1651년~ ?) |
| 형 | 금학(金鶴, 1668년/1674년 - 1737년?) |
| 동생 | 갓동이(㖙同伊) |
| 동생 | 김흥창(1677년 - 1750년?) |
| 여동생 | 김소사(金召史, 1684년 - ) |
| 매제 | 박끝용(朴末龍 1684년 - ), 노비 출신으로 1729년 평민 신분 획득, 본관은 밀양. |
| 부인 | 변소사(卞召史, 1674년 - ?), 본관은 초계, 통정대부 변해금의 딸, 친정어머니와 외조부는 노비 |
| 아들 | 김이달(金伊達, 1700년 - ?) |
| 며느리 | 주소사(周召史, 1700년 - ?) |
| 아들 | 김금철(1712년 - ?) |
| 아들 | 김소명 |
| 손자 | 김명재 |
| 증손자 | 김성종, 1825년(순조 25년) 산청군 신등면으로 이사, 안동김씨로 본관 세탁을 시도했다가 실패, 1831년 김해 김씨로 환원. |
| 아들 | 이름 미상 |
| 손자 | 이름 미상 |
| 증손자 | 김종원, 1849년(헌종 15) 안동김씨로 본관 세탁에 성공. |
| 장인 | 변해금(卞海今), 통정대부 |
| 장모 | 사노비 이름 미상, 사노비 정립(正立)의 딸 |
| 처조부 | 변해룡(卞海龍) |
| 처증조부 | 변덕수(卞德守) |
| 외조부 | 이금금(李今金. ? - ?) 또는 금금이(金金伊), 사노비, 이생의 아들 |
| 외조모 | 김애춘(金愛春, ? - ?), 본관 미상, 김복(金卜)의 딸 |
김흥발의 처 변소사는 단성현 법물야면 출신으로, 본관은 초계 변씨(草溪卞氏)이다. 변소사의 친정아버지는 통정대부 변해금이고, 할아버지는 변해룡, 증조부는 변덕수였다. 그러나 변소사의 외할아버지는 사노, 노비 정립이었다. 수봉의 며느리 변소사는 서얼 출신으로, 변소사의 친정아버지 쪽으로는 평민이었지만 변소사의 친정어머니가 노비 여성이었고, 변소사 역시 노비였다가 시아버지 수봉이 신분세탁을 하는 어느 시점에 평민으로 격상되었다. 김흥발의 호적에 부인 변소사의 인적사항에 친정아버지 통정대부 변해금, 할아버지 변해룡, 증조는 변덕수와 외할아버지 노비 정립이 나타나는데, 신분을 세탁한 뒤에도 변소사의 노비 출신 친정 외할아버지 인적사항은 변동하지 못했다. 변소사의 외할아버지와 친정어머니는 노비였고, 변소사 역시 노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에서는 대개 부모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노비이면 자식들은 모두 노비가 되었기 때문에 외조부가 사노비라면 변소사의 어머니도 노비였다는 말이 된다. 권내현에 의하면 '변소사의 어머니가 속량贖良되지 않았다면 변소사 역시 원래 노비 출신이었을 확률이 높다'고 보고 있다.
김흥발은 신분 세탁을 시도했지만 부인의 외가까지 세탁하지는 못했다.
아들 김소명과 손자 김명재는 1780년(정조 5)을 전후해서 서사낭청의 벼슬에 올랐다.
증손자 김성종, 김종원은 도산면으로 이주, 본관을 바꾸려 시도했다.
3. 가족 관계
| 관계 | 이름 | 비고 |
|---|---|---|
| 할아버지 | 어련(於連) 또는 갓동(㖙同) | |
| 할머니 | 숙향(淑香) | 사노 단문(丹文)의 딸 |
| 아버지 | 수봉(守奉) | |
| 어머니 | 이소사 자목(李召史 者目, 1651년~ ?) | |
| 형 | 금학(金鶴, 1668년/1674년 - 1737년?) | |
| 동생 | 갓동이(㖙同伊) | |
| 동생 | 김흥창(1677년 - 1750년?) | |
| 여동생 | 김소사(金召史, 1684년 - ) | |
| 매제 | 박끝용(朴末龍, 1684년 - ) | 노비 출신, 1729년 평민 신분 획득, 본관은 밀양. |
| 부인 | 변소사(卞召史, 1674년 - ?) | 본관은 초계, 통정대부 변해금의 딸, 친정어머니와 외조부는 노비 |
| 아들 | 김이달(金伊達, 1700년 - ?) | |
| 며느리 | 주소사(周召史, 1700년 - ?) | |
| 아들 | 김금철(1712년 - ?) | |
| 아들 | 김소명 | |
| 손자 | 김명재 | |
| 증손자 | 김성종 | 1825년(순조 25년) 산청군 신등면으로 이사, 안동김씨로 본관 세탁을 시도했다가 실패, 1831년 김해 김씨로 환원. |
| 아들 | 이름 미상 | |
| 손자 | 이름 미상 | |
| 증손자 | 김종원 | 1849년(헌종 15) 안동김씨로 본관 세탁에 성공. |
| 장인 | 변해금(卞海今) | 통정대부 |
| 장모 | 이름 미상 | 사노비, 사노비 정립(正立)의 딸 |
| 처조부 | 변해룡(卞海龍) | |
| 처증조부 | 변덕수(卞德守) | |
| 외조부 | 이금금(李今金, ? - ?) 또는 금금이(金金伊) | 사노비, 이생의 아들 |
| 외조모 | 김애춘(金愛春, ? - ?) | 본관 미상, 김복(金卜)의 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