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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다-마우리아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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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난다-마우리아 전쟁은 다나 난다가 이끄는 난다 제국과 찬드라굽타 마우리아가 이끄는 세력 간에 벌어진 고대 인도 전쟁이다. 이 전쟁은 찬드라굽타가 스승 차나키야의 지도를 받아 난다 제국을 멸망시키고 마우리아 제국을 건국하는 과정으로, 펀자브 지역을 먼저 장악한 후 마가다를 공략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전쟁의 경과는 플루타르코스, 무드라락샤사, 비슈누 푸라나, 밀린다왕문경 등 다양한 문헌을 통해 전해지며, 찬드라굽타는 라지푸타나, 칼링가 등과 동맹을 맺고 게릴라 전술을 활용하여 승리했다. 이 전쟁의 결과로 마우리아 제국이 건설되었으며, 찬드라굽타는 제국을 남인도까지 확장하고 셀레우코스 제국과의 전쟁을 통해 인도 북서부까지 세력을 넓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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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원전 4세기 인도 - 마우리아 제국
    마우리아 제국은 찬드라굽타 마우리아가 건국하여 아소카 대제 때 최전성기를 누렸으나 쇠퇴하여 숭가 제국에 의해 멸망한 고대 인도 제국으로, 중앙집권적 통치, 불교 전파, 헬레니즘 교류 등의 특징을 가지며 인도 문화와 역사에 큰 영향을 남겼다.
난다-마우리아 전쟁 - [전쟁]에 관한 문서
전쟁 개요
분쟁난다-마우리아 전쟁
기원전 325년경 난다 제국의 영토
전쟁 직전 난다 제국의 영토
장소마가다
기간기원전 323년 ~ 기원전 321년
결과마우리아 왕조의 승리
교전 세력
교전국 1난다 왕조
교전국 2마우리아 왕조
지휘관 및 지도자
난다 왕조다나 난다
마우리아 왕조찬드라굽타 마우리아
차나키야

2. 배경

난다-마우리아 전쟁의 배경에 대한 주요 인물과 정복 이야기는 모호하다.[1] 찬드라굽타차나키야(카우틸리야)라는 스승에게서 국가 통치와 전쟁에 대한 지식을 배웠다.[2]

2. 1. 난다 제국과 마가다

다나 난다가 이끄는 난다 제국마가다를 기반으로 갠지스강 유역의 많은 왕국들을 포함하고 있었다.[1]

2. 2. 찬드라굽타와 차나키야

찬드라굽타의 출신은 명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1] 그는 차나키야(카우틸리야)라는 스승에게서 국가 통치와 전쟁에 대한 지식을 배웠다. 차나키야의 아르타샤스트라는 현명한 왕에게 통치하는 방법을 가르치기 위한 정치학 서적이었다.[2] 차나키야는 젊은 왕에게 전쟁과 외교에 대한 광범위한 가르침을 제공했다. 차나키야는 현실적인 정치 전략가로서, 어떤 왕국들이 자연적인 동맹국이고 피할 수 없는 적인지를 분석하고, 조약을 맺고 파기하며, 비밀 요원을 활용하여 적 지도자들을 제거하고 불화를 일으켰다. 또한 전쟁 무기로서 남성과 여성을 활용하고, 종교와 미신을 이용해 군대를 강화하고 적의 사기를 떨어뜨렸으며, 허위 정보를 퍼뜨리고 정복된 병사들과 신하들을 인간적으로 대우했다.[3]

3. 전쟁의 경과

난다-마우리아 전쟁에 대해 알려진 많은 것들은 전쟁이 끝난 후에 쓰여진 기록들에서 비롯된다. 고대 역사가 플루타르코스(AD 46–AD 120)는 정복의 일부를 설명했고, 이 전쟁은 서기 300년에서 700년 사이에 작곡된 비샤카다타의 산스크리트어 정치 드라마인 무드라락샤사에서 허구화되었다.[4] 비슈누 푸라나(날짜 미상)에서도 역사가 간략하게 서술되어 있는데, 난다 제국의 멸망에서 차나키야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5] 또 다른 작품인 밀린다왕문경(기원전 100년)에서는 바다살라라는 정복기의 난다 장군이 등장한다.[4]

관련된 군인들의 수에 대한 추정은 부분적으로 고대 로마의 자료에 기반을 두고 있다. 플루타르코스는 찬드라굽타의 군대가 인도 전역을 정복할 때까지 후에 600,000명이 될 것이라고 추정하는데,[6] 이 추정치는 플리니우스(서기 23–79)가 또한 제시한 것이다. 플리니우스와 플루타르코스는 또한 동쪽의 난다 군대를 보병 200,000명, 기병 80,000명, 전차 8,000대, 그리고 전쟁 코끼리 6,000마리로 추정했다. 이 추정치는 마우리아 제국에 머물렀던 셀레우코스 대사 메가스테네스의 초기 연구의 일부에 기반을 두고 있다.[7] 21세기의 한 작가인 수하스 채터지는 "찬드라굽타는 난다 왕 정복에 펀자브 출신의 그리스 용병들까지 포함하여, 그의 모든 군사력을 동원해야만 했다"라고 주장하고, 밀린다왕문경의 언급에 따르면 "1락의 병사, 10,000마리의 코끼리, 10,000마리의 말, 5,000마리의 전차가 그 조우에서 죽었다."[8]

이 전쟁에서 찬드라굽타는 라지푸타나의 심하푸라 왕, 칼링가가자파티 왕과 동맹을 맺었을 수도 있다.[12] 펀자브 출신의 그의 용병들의 사전 경험이 그의 군사적 성공에 중요했을 것이다.[13] 찬드라굽타의 원정은 대중적인 게릴라 전술을 사용함으로써 성공할수 있었는데, 이는 난다 제국이 규모가 크고 신생국이 대항하기에 압도적인 대규모 군대를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14] 전쟁은 난다 왕조에 종지부를 찍었고 찬드라굽타 마우리아를 지도자로 하는 마우리아 제국을 세웠다.

3. 1. 초기 군사 활동

찬드라굽타는 먼저 펀자브 지역을 장악한 후, 차나키야와 연합하여 난다 제국을 공격했다.[9] 그는 인도 북서부에 있던 알렉산드로스 대왕사트라피들을 무너뜨렸다.[9] P. K. 바타차리야는 마가다의 초기 통합 이후에 전쟁이 점진적인 지방 정복으로 이루어졌을 것이라고 결론짓는다.[10] 찬드라굽타는 이미 정복된 지역에서 온 북서 변경 부족 용병들의 도움을 받아 마가다의 수도인 쿠스마푸라(파탈리푸트라)를 포위했는데,[4] 이 포위 공격은 기원전 320년에 시작되었을 수 있다.[11] 기원전 312년까지 그는 인도 북부와 북서부 전역을 정복했다.[4]

3. 2. 마가다 정복

난다-마우리아 전쟁의 마가다 정복에 대한 내용은 주로 전쟁 이후 쓰여진 기록들을 통해 전해진다. 고대 역사가 플루타르코스(AD 46–AD 120)는 정복의 일부를 설명했고, 이 전쟁은 300년에서 700년 사이에 비샤카다타가 쓴 산스크리트어 정치 드라마 무드라락샤사에서 극화되었다.[4] 비슈누 푸라나(날짜 미상)에도 간략하게 역사가 서술되어 있는데, 난다 제국 멸망에 있어 차나키야의 중요성을 강조한다.[5] 밀린다왕문경(기원전 100년)에는 정복기의 난다 장군 바다살라가 등장한다.[4]

무드라락샤사에 따르면 찬드라굽타는 펀자브를 먼저 차지한 후 차나키야와 연합하여 난다 제국으로 진격했다.[9] P. K. 바타차리야는 마가다의 초기 통합 이후 전쟁이 점진적인 지방 정복으로 이루어졌을 것이라고 결론짓는다.[10] 찬드라굽타는 이미 정복한 지역의 북서 변경 부족 용병들을 동원하여 마가다의 수도 쿠스마푸라(파탈리푸트라)를 포위했다.[4] 이 포위 공격은 기원전 320년에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11]

찬드라굽타는 라지푸타나의 심하푸라 왕, 칼링가가자파티 왕과 동맹을 맺었을 가능성도 있다.[12] 펀자브 출신 용병들의 경험이 그의 군사적 성공에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13] 난다 제국이 대규모 군대를 보유하고 있어 신생국이 대항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찬드라굽타의 원정은 대중적인 게릴라 전술을 활용했을 것이라는 의견도 제시되고 있다.[14]

3. 3. 전쟁의 결과

기원전 312년까지 찬드라굽타는 인도 북부와 북서부 전역을 정복했다.[4] 이 전쟁으로 난다 왕조는 멸망하고 찬드라굽타 마우리아가 이끄는 마우리아 제국이 건국되었다.[14]

이 전쟁에 대해 알려진 많은 내용은 전쟁이 끝난 후 쓰인 기록에서 비롯된다. 고대 역사가 플루타르코스(AD 46–AD 120)는 정복의 일부를 설명하며, 이 전쟁은 서기 300년에서 700년 사이에 쓰인 비샤카다타의 산스크리트어 정치 드라마인 무드라락샤사에서 허구화되었다.[4] 비슈누 푸라나(날짜 미상)에서도 역사가 간략하게 서술되어 있는데, 난다 제국의 멸망에서 차나키야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5] 또 다른 작품인 밀린다왕문경(기원전 100년)에서는 바다살라라는 정복기의 난다 장군이 등장한다.[4]

무드라락샤사에 따르면 찬드라굽타는 펀자브를 먼저 차지한 후 차나키야와 연합하여 난다 제국으로 진격했다.[9] 플루타르코스 역시 그가 처음에 인도의 북서쪽에 있는 알렉산드로스의 사트라피들을 무너뜨렸다고 기록하고 있다. P. K. 바타차리야는 마가다의 초기 통합 이후에 전쟁이 점진적인 지방 정복으로 이루어졌을 것이라고 결론짓는다.[10] 무드라락샤사에서 그는 이미 정복된 지역에서 온 북서 변경 부족 용병들의 도움을 받아 마가다의 수도인 쿠스마푸라(또는 파탈리푸트라)를 포위했으며,[4] 이 포위 공격은 기원전 320년에 시작되었을 수 있다.[11]

이 전쟁에서 찬드라굽타는 라지푸타나의 심하푸라 왕, 칼링가가자파티 왕과 동맹을 맺었을 수도 있다.[12] 펀자브 출신 용병들의 경험이 그의 군사적 성공에 중요했을 것이다.[13] 찬드라굽타의 원정은 게릴라 전술을 사용함으로써 성공할 수 있었다는 의견도 제시되고 있는데, 이는 난다 제국이 규모가 크고 신생국이 대항하기에 압도적인 대규모 군대를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14]

4. 전쟁의 의의 및 영향

찬드라굽타는 인도 북서부 전체와 페르시아 일부에 대한 통제권을 놓고 셀레우코스 제국전쟁을 벌여, 그의 제국을 남인도까지 확장했다. 마우리아 제국은 찬드라굽타 퇴위 당시 인도에서 가장 광범위한 제국이 되었다.[17]

4. 1. 마우리아 제국의 확장

마우리아 제국은 찬드라굽타의 정복 이후 아반티라슈트라(수도: 우자이니), 닥시나파타(수도: 불확실, 아마도 수완나기리), 웃타라파타(수도: 탁샤실라), 프라키야(수도: 파탈리푸트라)의 최소 4개 속주로 구성되었다.[15] 차나키야는 이후 찬드라굽타의 총리가 되었다.[16]

찬드라굽타는 남인도까지 제국을 확장했으며, 인도 북서부와 페르시아 일부 지역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하기 위해 셀레우코스 제국전쟁을 벌였다. 마우리아 제국은 인도 역사상 가장 광범위한 제국 중 하나가 되었다.[17]

4. 2. 역사적 평가

찬드라굽타의 정복은 고대 역사가 플루타르코스의 기록과 무드라락샤사, 비슈누 푸라나, 밀린다왕문경 등의 문헌을 통해 전해진다.[4][5] 플루타르코스는 찬드라굽타의 군대가 60만 명에 달했다고 추정했으며,[6] 이는 플리니우스의 기록과도 일치한다.[7] 플리니우스와 플루타르코스는 또한 동쪽의 난다 군대를 보병 20만 명, 기병 8만 명, 전차 8천 대, 전쟁 코끼리 6천 마리로 추정했는데, 이는 셀레우코스 대사 메가스테네스의 초기 연구에 기반을 둔 것이다.[7]

21세기 작가 수하스 채터지는 "찬드라굽타는 난다 왕 정복에 펀자브 출신의 그리스 용병들까지 포함하여, 그의 모든 군사력을 동원해야만 했다"라고 주장하며, 밀린다왕문경에 따르면 "1락의 병사, 10,000마리의 코끼리, 10,000마리의 말, 5,000마리의 전차가 그 조우에서 죽었다"고 한다.[8]

무드라락샤사에서는 찬드라굽타가 펀자브를 먼저 차지한 후 차나키야와 연합하여 난다 제국으로 진격했다고 전해진다.[9] 플루타르코스 또한 그가 처음에 인도의 북서쪽에 있는 알렉산드로스의 사트라피들을 무너뜨렸다고 기록하고 있다. P. K. 바타차리야는 마가다의 초기 통합 이후에 전쟁이 점진적인 지방 정복으로 이루어졌을 것이라고 결론짓는다.[10] 찬드라굽타는 이미 정복된 지역에서 온 북서 변경 부족 용병들의 도움을 받아 마가다의 수도인 쿠스마푸라(파탈리푸트라)를 포위했다.[4] 이 포위 공격은 기원전 320년에 시작되었을 수 있으며,[11] 기원전 312년까지 그는 인도 북부와 북서부 전역을 정복했다.[4]

이 전쟁에서 찬드라굽타는 라지푸타나의 심하푸라 왕, 칼링가가자파티 왕과 동맹을 맺었을 수도 있다.[12] 펀자브 출신 용병들의 경험이 그의 군사적 성공에 중요했을 것이다.[13] 찬드라굽타의 원정은 대규모 군대를 보유한 난다 제국에 맞서 게릴라 전술을 사용함으로써 성공할 수 있었다는 의견도 제시되고 있다.[14] 이 전쟁은 난다 왕조에 종지부를 찍었고 찬드라굽타 마우리아를 지도자로 하는 마우리아 제국을 세웠다.

참조

[1] 서적 Historical Geography of Madhyapradesh from Early Records Motilal Banarsidass Publishe 1977
[2] 논문 Kautilya's Arthasastra on War and Diplomacy in Ancient India Project MUSE 2003
[3] 논문 Kautilya's Arthasastra on War and Diplomacy in Ancient India Project MUSE 2003
[4] 서적 Hinduism and the Ethics of Warfare in South Asia: From Antiquity to the Present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2
[5] 서적 Indian Political Thought Atlantic Publishers & Dist 2001
[6] 서적 Historical Geography of Madhyapradesh from Early Records Motilal Banarsidass Publishe 1977
[7] 서적 Chandragupta Maurya and his times Motilal Banarsidass Publ. 1966
[8] 서적 Indian civilization and culture M.D. Publications 1998
[9] 서적 Hinduism and the Ethics of Warfare in South Asia: From Antiquity to the Present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2
[10] 서적 Historical Geography of Madhyapradesh from Early Records Motilal Banarsidass Publishe 1977
[11] 서적 Commanders Penguin 2010
[12] 서적 Warfare in Pre-British India–1500BCE to 1740CE Routledge 2015
[13] 서적 Military Manpower, Armies and Warfare in South Asia Routledge 2015
[14] 서적 Commanders Penguin 2010
[15] 서적 Historical Geography of Madhyapradesh from Early Records Motilal Banarsidass Publishe 1977
[16] 서적 Military Manpower, Armies and Warfare in South Asia Routledge 2015
[17] 서적 Commanders Penguin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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