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화한인청년연맹
1. 개요
남화한인청년연맹은 1930년 상하이에 결성된 무정부주의 계열의 독립운동 단체이다. 일본 제국주의에 저항하며 무력 투쟁과 선전 활동을 전개했으며, 기관지 《남화통신》을 발간했다. 1931년에는 항일구국연맹에 참여하여 흑색공포단 활동을 벌였고, 1933년 육삼정 의거를 시도했다. 이후 친일파 처단 활동을 펼쳤으며, 중일 전쟁 발발 후에는 전지공작대를 조직하여 활동하다가 한국 광복군에 편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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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칭 | 남청 |
|---|---|
| 창립일 | 1931년 |
| 해체일 | 1945년 |
| 주요 활동 지역 | 중국 |
| 관련 단체 | 한국독립당, 조선혁명당 |
| 주요 인물 | 김학무, 박건웅, 이청천, 황학수, 최동오 |
|---|
| 결성 배경 | 만주 사변 이후 한국 독립운동 진영의 통합 필요성 대두 |
|---|---|
| 주요 활동 | 항일 무장 투쟁, 독립운동 자금 모금, 선전 활동 |
| 해체 이유 | 일본 패망 및 한국 독립으로 인한 조직 목표 달성 |
| 주요 이념 | 민족주의, 독립, 민주주의 |
|---|---|
| 주요 목표 | 한국의 완전한 독립 쟁취, 민족 통일, 민주 국가 건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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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색공포단 -
백정기
백정기는 아나키즘 사상을 바탕으로 3·1 운동 참여, 일본 시설 공격, 독립운동 자금 모금, 일본 고위 인사 암살 시도 등 다양한 독립운동을 전개했으며, 육삼정 의거로 체포되어 옥사한 독립운동가이다. -
흑색공포단 -
왕징웨이
왕징웨이는 청나라 말기 혁명 운동에 참여했던 중국의 정치가이자 사상가였으나, 중일 전쟁 시기 일본과 협력하여 친일 정부를 수립, 매국노라는 비판을 받으며 논쟁적인 인물로 평가받는다. -
남화한인청년연맹 -
안공근
안공근은 안중근, 안정근의 동생으로, 러시아 망명 후 독립운동에 헌신하며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한인애국단을 조직하고 이봉창, 윤봉길 의거를 지원했으나, 김구와의 갈등 후 1939년 암살된 것으로 추정되는 독립운동가이다. -
남화한인청년연맹 -
유자명
유자명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이자 원예학자로서 3·1 운동 참여 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활동하며 의열단, 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 등에서 아나키스트 노선을 걸었고, 중국에서 농학자로 활동하다 사망하여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여받았다. -
재만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 -
안공근
안공근은 안중근, 안정근의 동생으로, 러시아 망명 후 독립운동에 헌신하며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한인애국단을 조직하고 이봉창, 윤봉길 의거를 지원했으나, 김구와의 갈등 후 1939년 암살된 것으로 추정되는 독립운동가이다. -
재만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 -
유자명
유자명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이자 원예학자로서 3·1 운동 참여 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활동하며 의열단, 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 등에서 아나키스트 노선을 걸었고, 중국에서 농학자로 활동하다 사망하여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여받았다.
2. 역사 및 활동
1930년 4월 20일 상하이에서 결성된 남화한인청년연맹은 재만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의 후신으로, 무정부주의 이념에 기반하여 일본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급진적인 독립운동을 전개한 단체이다. 연맹은 의열단과 같이 직접적인 무력 투쟁을 주요 활동 방식으로 삼았으며, 이를 위해 중국 및 일본의 무정부주의자들과 연대하여 항일구국연맹과 그 행동 조직인 흑색공포단黑色恐怖團중국어을 결성하기도 했다.
주요 활동으로는 친일 성향의 중국 외교부장 왕정휘汪精衛중국어 암살 시도, 푸젠성 아모이廈門중국어 일본 영사관 폭파, 주중 일본 공사 아리요시 아키라有吉明일본어 암살을 목표로 한 육삼정 의거 (1933) 등이 있다. 또한 김구의 한인애국단과 협력하여 옥관빈, 이용노 등 친일 부역자들을 처단하는 활동도 적극적으로 벌였다. 이러한 투쟁 활동은 많은 청년들의 참여를 이끌어냈다. 기관지로 《남화통신》을 발간하여 활동 자금 조달 및 사상 선전에도 힘썼다.
그러나 1930년대 중반 이후 정화암과 김구 사이의 노선 갈등, 백정기 등 핵심 인물들의 체포, 젊은 층의 황푸군관학교 입교 등으로 인해 활동이 점차 침체되었다. 1937년 중일 전쟁 발발 이후에는 전지공작대를 조직하여 항일 활동을 이어갔으며, 일부 대원들은 이후 한국 광복군 제2지대로 편입되었다.
2.1. 결성 (1930)
1929년 만주 북부 지역에서 이회영의 영향을 받아 결성된 재만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은 주요 인물인 김좌진이 1930년 1월 피살된 후 상하이로 이동하여 개편하면서 남화한인청년연맹으로 새롭게 출범했다.
1930년 4월 20일 상하이에서 결성된 남화한인청년연맹에는 유자명, 유기석(柳基石, 일명 柳絮), 장도선(張道善), 정해리(鄭海理), 정화암, 안공근, 오면직(吳冕稙), 이현근(李炫謹) 등이 참여했다.
연맹은 선언문을 통해 "일본제국주의의 철쇄를 탈출하는 우리는 민중 자신의 손으로 진실한 자유와 평등과 우애에 기초한 신사회를 건설해야 한다"고 밝히며, 무정부주의 이념을 바탕으로 일본 제국주의의 폭력과 독재에 맞서는 급진적인 독립운동을 추구했다. 이에 따라 의열단과 유사하게 직접적인 무력 투쟁을 주요 활동 방식으로 삼았으며, 활동 자금 조달과 독립운동 사상을 널리 알리기 위한 선전 활동도 벌였다. 기관지로 《남화통신》을 발간하기도 했다.
2.2. 주요 활동
남화한인청년연맹은 1931년 11월 중국 및 일본의 무정부주의자들과 연대하여 항일구국연맹을 결성하고, 그 행동 조직인 흑색공포단黑色恐怖團중국어을 통해 의열 투쟁을 적극적으로 전개했다. 이들은 친일 성향의 중국 외교부장 왕정휘汪精衛중국어 암살을 시도하고 푸젠성 아모이廈門중국어의 일본 영사관을 폭파하는 등의 활동을 벌였다.
1933년 3월 17일에는 백정기, 이강훈 등이 상하이 프랑스 조계의 요리점 육삼정(六三亭)에서 주중 일본 공사 아리요시 아키라有吉明일본어와 일본군 간부들을 폭살하려 했으나, 사전에 계획이 발각되어 실패로 돌아갔다.
또한, 김구의 한인애국단과 협력하여 친일 부역자 처단에도 힘썼다. 1933년 상하이에서 일본군과 내통한 옥관빈을 처단했으며, 연맹 소속의 엄형순(嚴亨淳)과 이규호(李圭虎)는 친일 분자 이용노(李容魯)를 처단하는 등 여러 친일 인물들을 숙청했다. 이러한 적극적인 투쟁 활동은 많은 청년들이 연맹에 가담하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정화암과 김구 사이의 노선 갈등으로 일부 맹원이 이탈하고, 백정기를 비롯한 핵심 인물들이 일제에 체포되었으며, 젊은 층 다수가 군사 훈련을 위해 황푸군관학교 등에 입학하면서 1930년대 중반 이후 연맹의 활동은 점차 침체되었다.
2.2.1. 항일구국연맹 참여 (1931)
1931년 11월, 남화한인청년연맹은 중국인과 일본인 무정부주의자들과 연대하여 항일구국연맹이라는 연합 조직을 결성하였다.
항일구국연맹은 행동 조직으로 흑색공포단黑色恐怖團중국어을 두었다. 흑색공포단은 친일 행보를 보인 중국 외교부장 왕정휘汪精衛중국어 암살을 시도하고 푸젠성 아모이廈門중국어의 일본 영사관을 폭파하는 등 의열 투쟁을 전개하였다. 흑색공포단은 백정기의 거주지에서 결성되었으며, 중국인과 일본인도 참여했지만 핵심 구성원은 남화한인청년연맹의 맹원들이었다.
그러나 이후 정화암과 김구의 노선 차이로 인해 일부 맹원이 연맹을 떠났고, 흑색공포단의 백정기를 비롯한 핵심 인물들이 체포되었다. 또한, 젊은 층이 군사 훈련을 받기 위해 황푸군관학교 등에 입학하면서 1930년대 중반 이후 남화한인청년연맹의 활동은 점차 침체되었다.
2.2.2. 육삼정 의거 (1933)
1933년 3월 17일, 남화한인청년연맹 소속의 백정기와 이강훈은 상하이 프랑스 조계에 위치한 요리점 육삼정(六三亭)에서 중요한 거사를 계획했다. 당시 주중 일본공사 아리요시 아키라 有吉明일본어는 중국 정부 요인들을 매수하기 위해 육삼정에서 연회를 열고 있었는데, 백정기와 이강훈은 이 연회에 참석한 아리요시 공사와 일본군 사령부 간부들을 한꺼번에 폭살하려 하였다.
두 의사는 수류탄과 권총으로 무장하고 유자명의 안내를 받아 육삼정으로 향했다. 그러나 거사 계획은 사전에 발각되었고, 육삼정으로 접근하던 중 이들을 포위하고 있던 일본 경찰(일경)에 의해 체포되어 의거는 실패로 돌아갔다.
체포된 후 두 의사는 일본으로 압송되었다. 백정기 의사는 1935년 5월 22일 나가사키 감옥에서 옥사하였고, 이강훈 의사는 광복이 될 때까지 일본 각지의 감옥에서 옥살이를 하다가 풀려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