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이베르크 조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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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노이베르크 조약은 1379년 9월 9일 슈타이어마르크의 노이베르크 수도원에서 체결된 조약이다. 이 조약은 알브레히트 3세와 레오폴트 3세가 루돌프 4세 사후 오스트리아 공국을 분할하기 위해 체결되었다. 조약에 따라 알브레히트 3세는 오스트리아 대공국을, 레오폴트 3세는 슈타이어마르크, 케른텐, 카르니올라, 티롤, 외오스트리아 등을 각각 통치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합스부르크 가문은 알브레히트계와 레오폴트계로 분열되었으나, 1490년 막시밀리안 1세에 의해 모든 영토가 통일되었다.

노이베르크 조약
조약 정보
조약 이름노이베르크 조약
다른 이름노이버거 타일ุง(Neuburger Teilung)
위치노이베르크 안 데어 뮈르츠
날짜1379년 9월 25일
서명 당사자
합스부르크 가문알브레히트 3세
레오폴트 3세
조약 내용
합스부르크 영토 분할알브레히트 가문과 레오폴트 가문 사이의 영토 분할
알브레히트 3세의 통치오스트리아 공국
레오폴트 3세의 통치슈타이어마르크
케른텐
크라인
티롤
오스트리아 전방 영토
배경
가문 내 분쟁형제 간의 권력 다툼으로 인한 영토 분할 필요성 증대
결과
합스부르크 가문의 분열알브레히트 계통과 레오폴트 계통으로 나뉘어 경쟁 심화
정치적 불안정가문 간의 갈등으로 오스트리아 지역의 정치적 불안정 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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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배경

합스부르크 가문의 루돌프 4세는 1358년 아버지 알브레히트 2세가 사망하자 오스트리아 공국뿐만 아니라 1186년 게오르겐베르크 조약에 의해 동군 연합이 된 슈타이어마르크 공국, 1335년에 합스부르크 가문에 주어진 케른텐 공국, 크라인 백작령도 계승했다.

루돌프 4세는 비텔스바흐 가문이나 룩셈부르크 가문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신성 로마 제국의 유력한 대귀족으로, 위조 문서를 황제 카를 4세에게 인정받아 오스트리아 대공이 되었다. 1363년에는 티롤 여백작 마르가레테를 몰아내고 티롤을 차지했으며, 이듬해인 1364년에는 크라인 백작 칭호를 크라인 공으로 격상시켰다.

3. 조약의 내용

1364년 루돌프 4세는 가법(루돌프 가문 법)에 따라 동생들의 공동 통치를 명령했다. 그러나 루돌프 4세 사후 얼마 지나지 않아 형제들은 서로 다투었다. 1379년 9월 9일, 슈타이어마르크의 노이베르크 수도원에서 분할 조약이 체결되었다.

* 알브레히트 3세와 그의 후손들 (알브레히티나 가문, 1457년에 단절됨)은 트라운가우와 잘츠카머구트를 포함한 오스트리아 대공국, 즉 후일의 상 오스트리아 및 하 오스트리아를 유지했다.
* 레오폴트 3세와 그의 후손들 (레오폴트 가문)은 슈타이어마르크(당시 피텐과 비너 노이슈타트를 포함), 케른텐, 카르니올라(1374년부터 빈디셰 변경주와 이스트라 변경주의 영토 확장), 티롤, 외오스트리아, 트리에스테, 그리고 프리울리의 영토를 독점 통치하게 되었다(후자는 카르니올라에 합병됨).

영토와 상관없이 모든 합스부르크 가문의 통치자들은 오스트리아 대공 칭호를 유지했다.

4. 조약의 결과 및 영향

레오폴트의 아들들의 통치 아래, 레오폴트 가문의 영지는 내오스트리아(슈타이어마르크, 케른텐, 크라인, 리토랄)와 Oberösterreich (Habsburg)독일어(오늘날 오스트리아 연방주와 혼동하지 말 것)로 다시 나뉘었고, 1406년부터 레오폴트의 막내 아들 프리드리히 4세가 티롤과 외오스트리아 영지를 통치했다.

합스부르크 가문의 알베르티누스 가계와 레오폴디니아 가계, 그리고 오스트리아 영토 사이의 분열은 왕조의 지위를 약화시켰다. 알브레히트 5세는 1438년 로마왕으로 선출되었으나, 1년 후 사망했고 1457년 그의 아들 라디슬라우스 포스투무스가 사망하면서 혈통이 단절되었다. 영토는 레오폴디니아 대공 프리드리히에게 상속되었는데, 그는 내오스트리아의 프리드리히 5세이자 로마의 왕이었으며 1452년부터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였다. 마침내 1490년, 지기스문트가 티롤과 외오스트리아('상오스트리아')의 통치권을 프리드리히 황제의 아들 막시밀리안 1세에게 넘기면서 모든 합스부르크 영토가 통일되었다.

1477년 합스부르크 영토(주황색)
1477년 합스부르크 영토(주황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