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운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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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다운타운은 일반적으로 마천루가 밀집된 도심 또는 중심 업무 지구를 의미하며, 특히 북미 지역에서 널리 사용되는 용어이다. 미국 도시의 독특한 발전 과정에서 유래되었으며, 유럽의 전통적인 도시 구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18세기부터 사용된 이 용어는 원래 보스턴과 뉴욕의 특정 지역을 지칭했으나, 19세기 후반부터는 미국의 상업 중심지를 포괄하는 의미로 확장되었다. 20세기 초에는 기업의 성장과 고층 건물 건설 기술 발전으로 인해 마천루 중심의 중심 업무 지구 개념이 등장하면서, 다운타운은 도심 및 중심 업무 지구를 대표하는 용어로 자리 잡았다. 1950년대 이후 교외화 현상으로 인해 쇠퇴기를 겪기도 했지만, 2000년대 이후 젠트리피케이션과 재활성화 과정을 거치며 변화를 겪고 있다.
'다운타운'이라는 단어는 18세기부터 사용되었지만,[35] 20세기 초 미국에서 마천루가 밀집한 중심업무지구를 지칭하면서 현재와 같은 의미로 굳어졌다.[36] 특히 맨해튼 남쪽의 로어 맨해튼 지역이 이러한 변화를 이끌었다.
다운타운의 변화와 쇠퇴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전화 같은 기술 발전은 기업 간 원거리 교류를 쉽게 만들어, 기업들이 한 곳에 모여 있을 필요성을 줄였다.[24] 자가용 증가는 사람들이 다운타운뿐 아니라 주변 상업 지구로도 쉽게 이동할 수 있게 했다. 노면 전차 요금의 급격한 인상과 다운타운 좁은 거리의 만성적인 교통 체증도 사람들이 다운타운을 떠나는 원인이었다.[24]
2. 역사와 배경
영국을 비롯한 다른 지역에서는 '다운타운'이라는 표현이 흔하지 않은데, 이는 미국의 독특한 도시 발전 과정 때문이다. 유럽과 동양의 전통 도시는 성곽 안의 궁정, 교회당, 광장 등이 중심이었고, 특권층만이 중심부에 거주했다. 반면 미국은 상인과 이민자들이 짧은 기간 동안 개척하면서 바닷가의 '아랫마을'(downtown영어)부터 시작해 고지대로 도시가 확장되었다. 이 과정에서 전통적인 권위체가 없었고, 관청가()는 나중에 형성되었다.
20세기 초, 기업 성장, 고층건물 건축 기술, 철도 발달로 미국 도시들은 기능별 집적화가 이루어졌다. 거대 기업 본사가 마천루에 입주하면서 현대적인 도심 경관이 탄생했고, 이는 도시의 기능적 중심부이자 중심업무지구였다. 이러한 미국식 도심은 유럽의 전통적인 도시 중심부와는 달랐기에, '다운타운'은 미국식 도심을 가리키는 새로운 의미를 얻게 되었다.[37]
2. 1. 어원과 의미 변화
'''다운타운'''(downtown)은 직역하면 '아랫마을'이라는 뜻이다. 이 단어 자체는 늦어도 18세기부터 나타났지만,[35] 도심 및 중심업무지구를 의미하게 된 것은 대략 20세기 초의 일이다. 이러한 변화는 미국 맨해튼 아랫부분에 있는 로어 맨해튼(Lower Manhattan)이 마천루로 가득한 중심업무지구로 번성하는 모습을 묘사하면서 유래했다.[36]
영국 등 북미 외 지역이나 유럽, 동양에서는 '아랫마을'이라는 단어가 마천루가 많은 도심을 뜻하는 경우가 드물다. '아랫마을'이 북미에서 도심을 가리키게 된 것은 미국의 독특한 도시화 역사 때문이다.
유럽과 동양의 전통 도시는 성곽 안쪽에 궁정, 교회당, 광장 등 공적 권위가 다스리는 공간이 중심이었다. 그래서 도시 중심부(, centre-ville프랑스어)에는 귀족이나 사제 등 특수 계급만 살 수 있었다. 반면, 미국은 상인과 이민자들이 짧은 시간 동안 개척한 곳으로, 바다에 닿는 아랫마을(downtown영어)부터 개발되어 가운뎃마을(midtown영어), 윗마을(uptown영어) 순으로 도시가 커졌다. 그래서 성곽이나 교회당 같은 전통적인 권위체가 없었고, 관청가()는 도시 발달 후 한참 뒤에야 생겼다.
20세기 초, 기업이 성장하고 고층건물 건축 기술과 철도가 보급되면서, 미국에서는 거대 기업 본사가 있는 마천루가 많은 현대적 도시 경관, 즉 도시의 기능적 중심부(도심)이자 중심업무지구가 처음으로 탄생했다. 이는 궁정, 교회당, 광장 중심의 유럽과는 매우 달랐기에, 'downtown'은 미국식 도심을 뜻하는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되었다.[37]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따르면, "다운타운"이라는 용어는 1770년 보스턴 중심지를 가리키는 데 처음 사용되었다.[6] 뉴욕에서 처음 생겨났다는 주장도 있는데, 1830년대부터 맨해튼 섬 남쪽 끝의 최초 정착지나 타운을 지칭했다는 것이다.[7] 뉴욕 타운이 도시로 성장하면서, 섬에서 북쪽(북쪽)으로만 성장할 수 있었다. "위"와 "아래"는 위쪽이 북쪽, 아래쪽이 남쪽인 지도 디자인에서 유래했다.[7] 그래서 최초 타운 북쪽은 "업타운"(주거 지역), 최초 타운(뉴욕의 주요 상업 중심지)은 "다운타운"(로어 맨해튼)으로 불렸다.[7]
19세기 후반, 이 용어는 미국 전역 도시에서 도시의 역사적 중심지, 즉 상업 중심지를 지칭하는 데 쓰였다. "업타운"도 확산되었지만 덜했다. 두 단어의 방향성은 사라져서, 보스턴 사람들은 북쪽에 있더라도 "다운타운"으로 간다고 말했다.[8] 1880년대까지 "다운타운"은 사전에 없었다.[9] 1900년대 초, "다운타운"은 도시 중앙 상업 지구를 뜻하는 미국 영어 용어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 그러나 영국과 서유럽에서는 "city centre"(영국 영어) 등의 표현이 사용되어 이 단어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20세기 초에도 영국의 여행 작가들은 독자들에게 "다운타운"의 의미를 설명해야 했다.[9]
미국의 다운타운은 법적 경계가 없었고, 대부분 여러 구역의 일부였다. 하지만 모든 노면 전차와 고가 철도가 모이고, 기차 터미널이 있어서 찾기 어렵지 않았다. 대형 백화점, 호텔, 극장, 클럽, 카바레, 댄스홀이 있었고, 마천루가 건설되었다. 처음에는 도시에서 유일하게 전기가 공급되는 곳이었다. 교통 체증이 심했지만 해결책은 없었다.[10]
무엇보다 다운타운은 도시의 사업 중심지였다. 좁은 구역 안에서 대부분의 소매, 도매 거래가 이루어졌다. 도시와 주변에 사업 중심지가 있었지만, 다운타운이 주요 중심지이자 진정한 중앙 상업 지구였다. 다운타운에서 사업이 많아지면서, 살던 사람들은 쫓겨나 재산을 팔고 조용한 주거 지역인 업타운으로 이주했다.[11]
2. 2. 미국의 도시 발전
영국 등 북미 지역 외의 영어권이나 유럽 지역의 비영어권, 동양권에서는 '아랫마을'이라는 단어가 마천루가 즐비한 도심이자 중심업무지구를 뜻하는 표현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드물다. 이러한 현상은 미국의 독특한 도시화 역사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유럽과 동양의 전통적인 도시는 성곽으로 둘러싸인 도시 가운데에 궁정, 교회당이나 광장 등 공적 권위가 다스리는 공간이 위치하는 형태로 발전했다. 따라서 도시의 역사적 중심부에는 귀족이나 사제 등 특수 계급만이 살 수 있었다. 반면, 미국은 상인과 이민자들에 의해 비교적 짧은 시간 동안 개척되었으며, 바다에 닿는 아랫마을(downtown영어)부터 개발이 시작되어 가운뎃마을(midtown영어)과 윗마을(uptown영어) 등 저지대에서 고지대로 도시가 확장되는 경로를 19세기에 밟았다. 이 과정에서 성곽이나 교회당 등 도시 확장을 통제하는 전통적인 권위체가 없었고, 공공건물 등이 모인 관청가()는 도시 발달 후 상당한 시간이 지나서야 형성되었다.
20세기 초, 기업들이 성장하고 고층건물 건축 기술과 철도가 보급되면서 도시 내 기능별 집적화가 촉진되었다. 이에 따라 미국에서는 거대 기업들의 본사가 입주한 마천루가 들어서는 현대적인 도시 경관이 탄생했다. 이는 도시의 기능적 중심부(도심)이자 중심업무지구에 해당하는 공간이었다. 이러한 마천루 중심의 미국적인 중심업무지구는 궁정, 교회당과 광장을 중심으로 하는 유럽의 역사적, 전통적인 도시 중심부와는 매우 달랐다. 따라서 'downtown'이라는 단어는 유럽과는 다른 미국적 도심부를 일컫는 단어로서의 의미를 새롭게 지니게 되었다.[37]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따르면 "다운타운"이라는 용어는 1770년에 보스턴의 중심지를 지칭하는 데 처음 사용되었다.[6] 일부에서는 "다운타운"이라는 용어가 뉴욕에서 처음 생겨났다고 주장하며, 1830년대부터 맨해튼 섬의 남쪽 끝에 위치한 최초의 정착지를 지칭하는 데 사용되었다고 한다.[7] 뉴욕 타운이 도시로 성장하면서, 섬에서 도시가 성장할 수 있는 유일한 방향은 북쪽이었고, "위"와 "아래"라는 용어는 위쪽이 북쪽이고 아래쪽이 남쪽인 일반적인 지도 디자인에서 유래했다.[7] 따라서, 최초의 타운 북쪽 지역은 "업타운"으로, 주거 지역이었으며, 당시 뉴욕의 주요 상업 중심지였던 최초의 타운은 "다운타운"(downtown영어)으로 불리게 되었다(로어 맨해튼).[7]
19세기 후반, 이 용어는 미국 전역 도시의 역사적 중심지를 지칭하는 데 점차 사용되었으며, 이는 대부분 도시의 상업 중심지와 일치했다. "업타운"도 확산되었지만, 그 정도는 덜했다. 두 경우 모두, 두 단어의 방향성은 사라져서, 보스턴 사람들은 북쪽에 위치해 있더라도 "다운타운"으로 간다고 말했다.[8]
1880년대까지 "다운타운"은 사전에 포함되지 않았다.[9] 그러나 1900년대 초, "다운타운"은 도시의 중앙 상업 지구를 지칭하는 미국 영어의 용어로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반면 영국과 서유럽에서는 "city centre"(영국 영어) 등의 표현이 사용되어 이 단어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20세기 초에도 영국의 여행 작가들은 독자들에게 "다운타운"의 의미를 설명해야 한다고 느꼈다.[9]
미국의 다운타운은 법적으로 정의된 경계가 없었고, 대부분의 도시에서 기본적인 기능 지구로 사용되는 여러 구역의 일부였다. 하지만 다운타운 지역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는데, 모든 노면 전차와 고가 철도가 수렴하고, 적어도 대부분의 장소에서 기차 터미널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곳은 대형 백화점과 호텔, 극장, 클럽, 카바레, 댄스홀이 위치해 있었고, 기술이 완성되자 마천루가 건설되었다. 또한 처음에는 도시에서 전기가 공급되는 유일한 지역이었다. 교통 체증이 가장 심한 곳이었으며, 이에 대한 해결책은 찾을 수 없었다.[10]
무엇보다도, 다운타운은 도시가 사업을 하는 곳이었다. 때로는 수백 에이커에 불과한 좁은 구역 안에서, 전체 지역의 소매 및 도매 거래, 판매 및 구매의 대부분이 이루어졌다. 도시와 그 주변에는 사업 중심지가 있었지만, 다운타운 지역이 주요 중심지였으며, 진정한 중앙 상업 지구였다. 다운타운에서 더 많은 사업이 이루어지면서, 그곳에 살던 사람들은 점차 쫓겨나 재산을 팔고 더 조용한 주거 지역인 업타운으로 이주했다.[11]
2. 3. 마천루와 중심업무지구의 탄생
영국 등 북미 지역 외의 영어권이나 유럽 지역의 비영어권, 동양권에서는 '아랫마을'이라는 단어가 마천루가 즐비한 도심이자 중심업무지구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사용되는 경우를 찾아보기 매우 어렵다. '중간마을'이 아니라 '아랫마을'이라는 표현이 북미 지역에서 도심 및 중심업무지구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사용되는 모습은 미국의 독특한 도시화 역사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37]
유럽 및 동양에서의 전통적인 도시구조는 성곽에 둘러싸인 도시의 가운데에 궁정, 교회당이나 광장 등 전통적인 공적 권위에 의해 다스려지는 공간이 위치하는 형태로 발전해왔다. 이에 따라 그 도시들의 역사적 중심부에는 귀족이나 사제 등 특수계급만이 살 수 있는 거주지역이 들어섰다. 반면 미국은 상인과 이민자들에 의해 비교적 짧은 시간 동안 개척된 지역으로서 대체로 바다에 닿는 아랫마을(downtown영어)부터 개발이 시작되어 저지대에서 고지대로 도시가 확장되는 경로를 19세기에 밟아왔다. 따라서, 성곽이나 교회당 등 도시의 확장방향을 통제하는 전통적인 권위체가 존재하지 않았고, 공공건물 등이 모여 있는 관청가는 도시가 발달한 뒤 상당한 시간이 지나서야 형성되었다. 이러한 환경에서 20세기 초에 기업들이 고도로 성장하고 고층건물 건축기술과 철도가 보급되며 도시 내 기능별 집적화가 촉진되자, 미국에서는 거대기업들의 본사가 입주한 마천루가 즐비하게 들어서는 형태의 현대적인 도시경관으로서, 도시의 기능적 중심부(도심)인 동시에 중심업무지구에 해당하는 공간이 처음으로 탄생하였다. 이러한 마천루 중심의 미국적인 중심업무지구 공간은 'downtown'이라는 단어가 유럽과는 다른 미국적 도심부를 일컫는 단어로서의 의미를 새롭게 지니게 된 것이다.[37]
마천루는 도심 지역의 특징이 되었다. 엘리베이터와 고속 엘리베이터가 발명되기 전에는 건물의 높이가 약 6층으로 제한되었는데, 이는 사람들이 올라갈 것으로 예상되는 계단의 양에 의해 설정된 ''사실상의'' 제한이었다. 그러나 엘리베이터가 발명되면서 그 제한이 깨졌고, 건물은 약 16층까지 건설되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건물이 높아질수록 건물의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 기초에 필요한 벽돌의 두께가 제한 요소였다. 건물이 높아짐에 따라 벽돌의 두께와 엘리베이터에 필요한 공간이 충분한 임대 공간을 확보하지 못해 건물 수익성이 떨어졌다. 이러한 제약을 깨뜨린 것은 먼저 철제, 다음으로 강철 프레임 건물의 발명이었다. 이 건물에서는 건물의 하중이 내부 금속 프레임 골격에 의해 지탱되었고, 이 골격에 벽돌, 이후에는 유리가 단순히 매달려 하중을 지탱하지 않았다.[12]
강철 프레임 마천루는 처음에는 시카고에서 사용되었지만 1880년대에 뉴욕에서 가장 빠르게 확산되었으며, 1890년대와 1900년대에는 대부분의 다른 미국 도시로 퍼져나갔다. 이러한 유형의 건물에 높이 제한이 없는 것처럼 보이자 법으로 높이를 제한해야 하는지에 대한 열띤 논쟁이 벌어졌고, 높이 제한 찬반론자들은 자신들의 입장을 지지하는 수많은 주장을 내놓았다. 높이 제한 문제는 또한 도심 자체의 본질에 심오한 영향을 미쳤다. 도심이 집중된 핵심으로 계속 남을 것인가, 아니면 성장함에 따라 높이 제한으로 인해 더 넓은 지역으로 확산될 것인가?[12] 단기적으로는 높이 제한 찬성론자들이 성공했다. 1910년대까지 대부분의 대도시와 중소도시에서 높이 제한이 시행되었지만, 뉴욕, 필라델피아, 디트로이트, 피츠버그, 미니애폴리스는 주목할 만한 예외였다.[13]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 도심 지역은 미국 도시의 ''주요'' 상업 지구였지만, 1920년대와 1930년대 즈음 도시가 크기와 인구가 계속 증가하면서 도심 외곽 지역에도 경쟁 상업 지구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때 "중앙 상업 지구"라는 용어가 도심 지역과 거의 동의어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 용어는 도시 내 다른 상업 지구의 존재를 인정하면서도, 도심 지역에 지리적으로 뿐만 아니라 많은 도시에서 중요성 면에서도 "중앙"이라는 우선 순위를 부여했다. 그리고 많은 경우에, 도심 지역 또는 중앙 상업 지구 자체가 성장하기 시작했는데, 예를 들어 맨해튼에서는 상업 지구인 로어 맨해튼과 미드타운의 새로운 지역이 서로를 향해 확장되기 시작했고,[16] 시카고에서는 도심이 루프에서 시카고 강을 건너 미시간 애비뉴까지 확장되었다. 사실 도심의 불안정성은 상업 및 부동산 이해 관계자들에게 우려를 낳았는데, 상업 지구가 원래 위치에 머물지 않고 수많은 요인에 따라 위치를 변경했기 때문이다. 비록 대체로 상당히 좁은 구역을 유지했지만 – 1930년대 초에도 가장 큰 도심 지역이 도시 공간의 2% 미만을 차지했고, 대부분은 훨씬 작았다 – 도시의 주요 상업 지구로 남아 있었다.[17]
부동산 이해 관계자들은 도심 지역이 이동하는 경향에 특히 우려했는데, 이는 도심 지역이 각 도시에서 토지 가치가 가장 높았기 때문이다. 한 평론가는 시카고의 토지 가치를 지형도에서 높이로 표시하면 루프는 도시의 나머지 지역에 비해 히말라야 산맥의 봉우리와 같을 것이라고 말했다. 1926년, 시카고의 중앙 상업 지구는 도시의 1% 미만을 차지했지만 도시 토지 가치의 20%를 차지했다. 같은 관계가 20년대 중반의 세인트루이스(20%)와 1930년대 초의 로스앤젤레스(17%)에서도 나타났다. 따라서 도심 지역이 위치를 변경하기 시작하면 일부 부동산 소유주는 많은 돈을 잃게 될 것이고, 다른 소유주는 이익을 얻게 될 것이다.[18]
2. 4. 용도지역제와 도시 계획
엘리베이터와 고속 엘리베이터의 발명으로 건물 높이는 6층에서 16층까지 높아졌고, 이후 철제와 강철 프레임 건물의 발명으로 더 높은 건물 건설이 가능해졌다.[12] 강철 프레임 마천루는 1880년대 뉴욕에서 빠르게 확산되었고, 1890년대와 1900년대에는 다른 미국 도시로 퍼져나갔다.[12] 건물 높이 제한에 대한 논쟁이 벌어졌고, 이는 도심의 본질에 영향을 미쳤다. 1910년대까지 대부분의 도시에서 높이 제한이 시행되었지만, 뉴욕, 필라델피아, 디트로이트, 피츠버그, 미니애폴리스는 예외였다.[13]
단순한 높이 제한이 아닌, 도시의 각 부분에 대해 별도의 요구 사항을 설정하는 포괄적인 용도 지역 지구가 고층 건물을 제한했다. 용도 지구 규칙은 높이, 건물의 부피, 부지 비율, 건물이 차단하는 빛의 양을 규제했다.[14] 셋백을 통해 건물 부피를 줄이고 거리 수준에서 햇빛과 하늘을 확보했다. 뉴욕시는 1916년 용도 지구 결의안을 통해 이를 처음 시행했는데, 이는 이퀴터블 빌딩 건설에 영향을 받았다.[14] 이퀴터블 빌딩은 40층 건물로 셋백이 없어, 도심 지역이 어두워질 것이라는 우려를 낳았다.
뉴욕의 법 통과 이후 다른 도시들도 따랐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용도 지구 조치에 대한 반대가 있었다.[15] 1922년 표준 주 용도 지구 권한 부여 법이라는 모델 법이 마련되어 현재 거의 모든 미국 도시의 일부가 되었다.
3. 다운타운의 변화와 쇠퇴
분산화가 중심 상업 지구(다운타운)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었다. 다운타운이 결국 사무실과 대기업 본사만 남는 쇠퇴한 지역이 될 것이라는 예측과, 분산화가 다운타운을 불필요하게 만들고 교통 체증으로 완전히 멸망시킬 것이라는 극단적인 예상이 공존했다. 반면 다운타운의 영향력은 감소하겠지만 주변 상업 지구를 이끄는 "태양" 같은 중심지로서의 지위는 유지할 것이라는 시각도 있었다.[25]
분산화는 다운타운과 새롭게 떠오르는 상업 지구 간의 경쟁을 심화시켰다. 로스앤젤레스에서는 다운타운과 윌셔 대로가, 신시내티에서는 분수 광장을 중심으로 한 구 다운타운과 캐널 스트리트의 다운타운이 치열하게 경쟁했다.[26]
3. 1. 분산화의 진행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산업 관련 기업들이 도시 외곽으로 이동하면서 다운타운은 변화를 겪었다. 이는 다운타운 사업이 주로 서비스업 중심으로 재편되었음을 의미한다. 신생 기업들은 다운타운 대신 도시 외곽에 자리 잡았는데, 이곳은 토지 가격과 재산세가 저렴하고, 원자재 및 완제품 운송이 용이하며, 전화 시스템 발달로 다른 지역과의 연락도 수월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제조업은 더 이상 다운타운의 주요 사업이 아니게 되었다.[19]
주요 문화 기관들 역시 다운타운을 떠나기 시작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뉴욕 역사 협회, 미국 자연사 박물관, 뉴욕 시립 박물관, 보스턴 미술관, 보스턴 공립 도서관 등이 그 예시이다. 이들은 넓은 부지를 원했고, 건물 자체가 예술 작품으로 인식되기를 바랐다.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일부는 다운타운의 물질주의에 대한 균형추 상실을 우려했지만, 부동산 관계자들은 토지 가용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20]
대형 소매점들도 고객 접근성을 위해 주거 지역 근처로 이동하는 경향이 있었고, 1920년 이후 도시 외곽의 부차적인 상업 지구에 모이기 시작했다. J. C. 페니, F. W. 울워스와 같은 체인점의 성장은 외곽 쇼핑 지구의 중요성을 높였고, 이들은 중앙 상업 지구보다 더 많은 판매량을 올리며 소매 쇼핑의 중심지 역할을 하게 되었다.[21]
극장, 보드빌 극장, 댄스홀, 나이트 클럽과 같은 오락 시설도 분산화에 영향을 받았다. 영화가 주된 매체가 되면서, 영화관들이 다운타운에 처음 지어졌지만, 로우스 사와 같은 체인 상영업자들은 더 많은 관객을 확보하기 위해 도시 외곽에 영화관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1920년대 후반에는 다운타운 외곽의 영화관 수가 중앙 지구의 영화관 수를 압도했다. 이로 인해 다운타운은 더 이상 도시의 오락 중심지가 아니게 되었다.[22]
제조업, 주요 문화 기관, 소매 쇼핑, 오락 시설의 상실로 다운타운의 본질은 크게 변했다. 여전히 은행, 증권 거래소, 법률 회사, 주요 기업 본사 등이 위치했지만, 분산화로 인해 입지가 약화되었다. 낮 시간 인구 증가율은 둔화되었고, 부동산 가치는 상승했지만 부차적인 상업 지구만큼 빠르지는 않았다. 다운타운은 여전히 중요한 지역이었지만, 과거만큼 지배적이지는 않았다.[23]
분산화의 원인으로는 전화와 같은 기술 발전, 자가용 증가, 대중교통 요금 인상, 다운타운 교통 체증 등이 꼽힌다. 분산화가 다운타운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존재했다. 다운타운이 쇠퇴할 것이라는 비관론부터, 주변 상업 지구를 통제하는 "태양"의 지위를 유지할 것이라는 낙관론까지 다양했다.[24][25]
분산화는 다운타운과 새롭게 부상하는 상업 지구 간의 경쟁을 심화시켰다. 로스앤젤레스에서는 다운타운과 윌셔 대로가, 신시내티에서는 분수 광장을 중심으로 한 구 다운타운과 캐널 스트리트의 다운타운이 경쟁했다. 분산화로 인한 다운타운의 쇠퇴는 이러한 경쟁을 더욱 치열하게 만들었다.[26]
3. 2. 대공황의 영향
대공황은 미국의 다운타운 지역에 큰 영향을 미쳤다. 대공황 이전, 다운타운은 대규모 건설 붐으로 상업 및 사무 공간, 호텔, 백화점이 대거 건설되었다. 1931년까지 맨해튼에는 30층 이상 건물 89채가 있었고, 1925년에서 1931년 사이에 사무 공간은 거의 두 배로 증가했다. 시카고에서는 거의 75%, 필라델피아에서는 거의 2/3, 뉴올리언스와 덴버에서는 50% 이상 증가했다. 1920년대에 뉴욕에는 50만 개의 호텔 객실이 추가로 건설되었으며, 1927년부터 1931년까지 84개의 대형 호텔이 건설되어 호텔 공간이 2/3 증가했다.[27]
하지만 붐이 끝나고 대공황이 시작되자, 이 새로운 공간의 대부분은 불필요하게 되었다. 충분한 임차인을 유지할 수 없었던 소규모 건물 소유주들은 건물을 철거했고, 그 자리에는 1~2층짜리 주차장이나 지상 주차장이 들어섰다. 이것들은 주차장 소유주가 세금을 납부할 수 있을 만큼의 수익을 창출했기 때문에 "납세자"로 널리 알려졌다. 임대료는 때로는 30%까지 하락했으며, 임대료 미납도 증가했다. 공실률은 급격히 상승했고, 다운타운 부동산은 상당한 가치를 잃었다. 시카고 루프에서는 25~30% 감소했지만, 변두리 상업 지구를 포함한 도시의 다른 지역에서는 상황이 훨씬 더 나빠졌다.[27]
백화점은 큰 타격을 입었다. 대부분 문을 닫지 않았지만, 수익을 내는 곳은 거의 없었다. 호텔 또한 객실 점유율이 1929년 70%에서 1933년경 50%로 떨어지는 등 큰 영향을 받았다. 객실 요금이 대폭 삭감되고, 수익이 감소했으며, 많은 호텔이 문을 닫거나 채무 불이행 상태가 되었다. 1934년까지 맨해튼의 호텔 80%가 채권자 소유였다.[27]
1930년대 중반부터 대공황의 영향으로부터 완만한 회복이 시작되었고, 1930년대 말에 둔화되었다가 제2차 세계 대전의 시작과 함께 속도를 내기 시작하여, 1940년대 초에는 대부분의 국가가 대공황에서 벗어났다. 과도한 상업 공간이 사용되기 시작했고, 공실률이 감소했으며, 백화점 매출이 증가했고, 호텔 객실 점유율이 상승했으며, 수입이 증가했다.[28]
이러한 회복에도 불구하고, 도시 다운타운의 주간 인구는 회복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시카고의 경우 1929년에서 1949년 사이에 도시 인구는 7% 증가했고, 전체 대도시 지역은 약 14% 증가했지만, 더 루프(The Loop)의 주간 인구는 0.3%만 증가했다. 뉴욕시와 같은 몇몇 예외를 제외하고, 이러한 패턴은 미국의 도시 전반에서 전형적이었으며, 도시 자체의 성장률 둔화와 관련이 있었다. 미국의 도시들은 국가 역사상 다른 어떤 기간보다 훨씬 느리게 성장했고, 일부는 심지어 인구가 감소했다. 대도시 지역은 그 안에 있는 도시보다 빠르게 성장하여 교외화의 수십 년의 시작을 나타냈지만, 이들 역시 평소보다 느린 속도로 성장했다. 다운타운은 또한 사람들이 자동차로 집에서 더 가까운 외곽 비즈니스 지구로 쇼핑, 오락, 사업을 하거나 일하러 갔기 때문에 주간 인구가 줄어들었다. 대중교통보다 자동차 사용이 증가한 것도 다운타운에 피해를 입혔다.[28]
다운타운이 한때 도시 생활의 중심지였던 것만큼 중요하지 않다는 또 다른 징후는 주변 비즈니스 지역에 비해 소매 무역이 감소했다는 점이다. 대형 다운타운 백화점은 손실을 보았고 체인점이 성장하였다. 또한, 경제가 개선되면 사라질 것으로 예상했던 "세금 납부자"는 그대로 유지되었고, 심지어 그 수가 증가했다. 시카고의 더 루프에서는 1940년대 초에 토지의 18%가 비어 있거나 주차장으로 사용되었고, 같은 시기에 로스앤젤레스에서는 그 수치가 25%였다. 상업 공간에 대한 수요가 너무 적어서 비싼 새 건물을 짓는 것이 재정적으로 타당하지 않았고, 은행은 해당 목적으로 대출을 거부하기 시작하여, 중심 업무 지구 전체의 레드라인을 그었다.[28]
3. 3. 회복과 교외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산업 관련 기업들이 도시 외곽으로 이동하면서 다운타운은 서비스업 중심으로 변화했다.[19] 신생 기업들은 다운타운 대신 토지 가격과 재산세가 저렴하고, 원자재 및 완제품 운송이 용이하며, 전화 시스템 발달로 다른 지역과의 연락도 쉬운 도시 외곽 지역에 자리 잡았다. 이로 인해 제조업은 더 이상 다운타운의 주요 사업이 아니게 되었다.[19]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미국 자연사 박물관 등 뉴욕의 여러 박물관과 보스턴 미술관, 보스턴 공립 도서관 등 보스턴의 여러 기관, 그리고 클리블랜드 미술관, 디트로이트 미술관 등 여러 도시의 주요 문화 기관들도 다운타운을 떠났다. 이들은 넓은 부지를 원했고, 건물 자체가 예술 작품으로 인식되길 바랐다. 이러한 변화에 대해 일부는 다운타운의 물질주의에 대한 균형추 상실을 우려했고, 부동산 종사자들은 남겨진 토지의 가용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20]
J. C. 페니, F. W. 울워스와 같은 체인점들은 외곽 쇼핑 지구의 중요성을 키웠고, 이 지역은 다운타운 소매점보다 더 많은 판매량을 기록하며 성장하면서 소매 쇼핑 부문도 다운타운을 떠나 도시 외곽의 상업 지구로 이동했다.[21]
극장, 보드빌 극장, 나이트 클럽 등 오락 시설의 분산화도 다운타운의 중요성에 영향을 미쳤다. 영화관이 등장하면서, 처음에는 다운타운에 지어졌지만, 로우스 사와 같은 체인 상영업자들은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외곽 지역에 영화관을 건설했다. 1920년대 후반에는 다운타운 외곽의 영화관 수가 더 많아졌고, 다운타운은 더 이상 도시의 오락 중심지가 아니게 되었다.[22]
제조업, 문화 기관, 소매 쇼핑, 오락 시설의 상실로 다운타운은 변화했다. 여전히 은행, 증권 거래소, 기업 본사 등이 위치했지만, 분산화로 인해 입지가 약화되었다. 낮 시간 인구는 주변 도시만큼 빠르게 증가하지 않았고, 부동산 가치는 부차적인 상업 지구만큼 빠르게 상승하지 않았다. 다운타운은 여전히 중요한 지역이었지만, 과거만큼 지배적이지는 않았다.[23]
제2차 세계 대전의 시작과 함께 경제가 회복되면서 상업 공간 공실률이 감소하고 백화점 매출이 증가하는 등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다.[28] 그러나 도시 다운타운의 주간 인구는 회복되지 않았다. 시카고의 경우, 1929년에서 1949년 사이 도시 인구는 7% 증가했지만, 다운타운(더 루프)의 주간 인구는 0.3%만 증가했다. 이는 미국 도시 전반의 현상이었으며, 도시 자체의 성장 둔화와 관련 있었다.
사람들은 자동차를 이용해 외곽 비즈니스 지구로 쇼핑, 오락, 사업을 하러 갔기 때문에 다운타운의 주간 인구는 줄었다. 대중교통보다 자동차 사용이 증가한 것도 다운타운에 피해를 줬다.[28] 다운타운 백화점의 손실, "세금 납부자" 건물의 증가는 다운타운의 중요성이 감소했음을 보여준다. 1940년대 초 시카고 다운타운의 18%, 로스앤젤레스 다운타운의 25%가 비어 있거나 주차장으로 사용되었다. 상업 공간 수요가 적어 새 건물 건설이 어려웠고, 은행은 대출을 거부하며 레드라인 현상이 나타났다.[28]
4. 현대의 다운타운
은 맨해튼 섬 남쪽 끝에 위치하며 낮은 지형 고도를 가지고 있다. 이곳은 뉴욕시의 최초의 다운타운이었으며, 미국에서 4번째로 인구가 많은 다운타운이다. "다운타운"은 종종 구어적 의미로 사용된다.
"다운타운"과 "업타운"이라는 용어는 방위를 나타낼 수 있다. 맨해튼에서는 "다운타운"이 상대적인 지리적 용어로 사용되기도 한다. 대부분 화자가 현재 서 있는 곳의 남쪽은 "다운타운", 북쪽은 "업타운"이라고 불린다. 예를 들어, "우리는 지하철을 타고 다운타운으로 갈 거예요"라는 문구에서 "다운타운"은 남쪽 방향으로 이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121번가에 서 있는 사람이 남쪽으로 10블록을 걸어간다면, 10블록 다운타운으로 걸어갔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개념은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으며 폭이 약 3.22km를 넘지 않는 맨해튼의 지형에서 유래했다. 따라서 섬에서의 교통은 주로 업타운/다운타운 방향으로 이동한다. 다른 자치구는 더 넓기 때문에, "다운타운"은 로어 맨해튼, 다운타운 브루클린 또는 더 지역적인 상업 지구를 의미한다. 사우스 브롱스를 "다운타운 브롱스"로 홍보하려는 상업적 노력은 거의 성공하지 못했다.[34]
일부 북미 도시에서 "다운타운"은 도시의 중심 업무 지구가 위치한 지역의 공식적인 이름이다. 대부분의 주요 북미 도시는 바다, 호수, 강과 같은 주요 수역에 위치해 있으며, 도시가 확장됨에 따라 사람들은 물에서 멀어지고 역사적인 중심지에서 벗어나 언덕으로 올라가는 경향이 있었다. 따라서 북미 도시의 중심 업무 지구, 즉 도시의 역사적인 중심지는 종종 도시의 나머지 부분에 비해 고도가 "낮은" 곳에 위치한다. 많은 도시가 맨해튼 모델을 사용하여 "다운타운", "미드타운", "업타운"을 비공식적인 상대적 지리 용어와 별개의 지역의 공식적인 이름으로 모두 사용한다. 그러나 필라델피아는 비즈니스 지구의 중심 위치와 필라델피아의 역사와 상황으로 인해 다운타운이 아닌 센터 시티라는 지정을 사용한다. "센터 시티"는 1854년 필라델피아 카운티와 합병되기 전의 필라델피아 시에 해당하며, 주변의 이전 자치구와 달리 고유한 이름을 갖지 않았다. 도시의 중심은 필라델피아 시청이 위치한 도시의 원래 지적도에 해당한다. 뉴올리언스는 프렌치 쿼터 및 CBD에서 강 아래에 있는 다른 역사적인 지역이 "다운타운"으로 불리기 때문에 다운타운에 중심 업무 지구 (CBD)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4. 1. 젠트리피케이션과 재활성화

1950년대 전후 경제 호황 동안, 대부분의 다운타운 주거 인구는 급감했다. 이는 미국의 슬럼 정비, 고속도로 시스템 건설, 도시 중심부에서 급속도로 팽창하는 교외로의 백인 도주와 같은 이유 때문이다.[29] 선의에서 시작되었지만 부적절하게 실행된 도시 재개발 프로젝트로 인해, 다운타운은 교외에서 온 통근자들이 화이트칼라 직업을 채우는 고층 사무실 건물에 의해 지배되었고, 나머지 주거 인구는 실업, 빈곤, 노숙으로 더 깊이 빠져들었다.[30] 1990년대에 이르러 많은 사무실 중심의 기업들이 낡은 다운타운을 버리고 교외로 떠나기 시작했고, 이는 현재 "엣지 시티"로 알려진 현상을 초래했다.
그 이후, 2000년과 2010년 사이에 다운타운 지역의 인구가 빠르게 증가했다. 최소 500만 명의 인구를 가진 미국의 대도시 지역에서 시청으로부터 약 3.22km 이내의 인구는 대도시 지역 전체 인구보다 두 배나 빠르게 증가했다.[32][33]
4. 2. 엣지 시티와의 경쟁
1950년대 전후 경제 호황 동안, 대부분의 다운타운의 주거 인구는 급감했다. 이는 미국의 슬럼 정비, 고속도로 시스템 건설, 도시 중심부에서 급속도로 팽창하는 교외로의 백인 도주와 같은 이유로 기인한다.[29] 선의에서 시작되었지만 부적절하게 실행된 도시 재개발 프로젝트로 인해, 다운타운은 결국 교외에서 온 통근자들이 화이트칼라 직업을 채우는 고층 사무실 건물에 의해 지배되게 되었고, 나머지 주거 인구는 실업, 빈곤, 노숙으로 더 깊이 빠져들었다.[30] 1990년대에 이르러 많은 사무실 중심의 기업들이 낡은 다운타운을 버리고 교외로 떠나기 시작했고, 이는 현재 "엣지 시티"로 알려진 현상을 초래했다. 한 교과서는 엣지 시티가 왜 그렇게 인기가 있는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대도시는 먼지, 범죄, 지하철, 스트레스, 혼잡, 높은 세금, 열악한 공립 학교와 함께 제공됩니다. 엣지 시티는 이러한 모든 문제(특히 혼잡)로부터 자유롭지 않지만, 당분간 대부분의 문제를 피하고 있습니다.[31]
5. 주요 다운타운 목록
은 맨해튼 섬 남쪽 끝에 위치하며 낮은 지형 고도를 가지고 있다. 이곳은 뉴욕시의 최초의 다운타운이었으며, 미국에서 4번째로 인구가 많은 다운타운이며, 종종 "다운타운"이라는 용어의 구어적 의미로 사용된다.
미국 | 캐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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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1. 미국
은 맨해튼 섬 남쪽 끝에 위치하며 낮은 지형 고도를 가지고 있다. 이곳은 뉴욕시의 최초의 다운타운이었으며, 미국에서 4번째로 인구가 많은 다운타운이며, 종종 "다운타운"이라는 용어의 구어적 의미로 사용된다.
5. 2. 캐나다
- 다운타운 캘거리
- 다운타운 에드먼턴
- 다운타운 핼리팩스
- 다운타운 몬트리올
- 다운타운 오타와
- 다운타운 세인트존스
- 다운타운 토론토
- 다운타운 밴쿠버
- 다운타운 빅토리아
- 다운타운 위니펙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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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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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hattan의 두 중심업무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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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인을 위한 101] 서울도심기본계획을 재수립한다는데, 도심(downtown)이 뭐지?
https://www.etoday.c[...]
2024-03-01
[37]
저널
Downtown: A Short History of American Urban Exception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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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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