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라노 도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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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다이라노 도키코는 일본 헤이안 시대 말기의 인물로, 다이라노 기요모리의 측실이자 다이라노 무네모리의 어머니이다. 헤이지의 난 이후 니조 천황의 유모가 되었으며, 고시라카와 천황과 니조 천황의 대립 속에서 정치적 역할을 수행했다. 겐페이 전쟁에서 다이라 씨가 패배하자 안토쿠 천황과 함께 자결했다. 그녀는 다이라 씨의 정신적 지주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묘소는 아카마 신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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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안 시대 후기 무장이자 정치가인 다이라노 기요모리는 호겐의 난과 헤이지의 난 승리로 권력을 획득하고 무사 최초로 다이조다이진에 올랐으나, 권력 남용과 독재로 겐페이 전쟁을 초래하여 몰락, 그의 생애는 무사 사회 발전 기여와 폭력 및 독재라는 상반된 평가를 받는다. - 일본의 인물신 (헤이시) - 다이라노 마사카도
다이라노 마사카도는 10세기 중반 간토 지방에서 반란을 일으켜 한때 간토 전역을 장악하고 '신황'을 자칭하며 새로운 국가 건설을 시도했으나, 조정의 토벌군에 의해 진압된 인물로, 민간에서는 영웅 또는 원령으로 숭배받으며 다양한 전설이 전해진다.
다이라노 도키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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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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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다이라노 도키코 |
이명 | 니이노아마 (二位尼, 이위니) |
출생 | 1126년 |
사망 | 1185년 3월 24일 (단노우라 전투) |
신분 | 헤이케 일족, 일본의 귀족 |
배우자 | 다이라노 기요모리 |
자녀 | 다이라노 무네모리 다이라노 도모모리 다이라노 시게히라 겐슌몬인 (딸) |
아버지 | 다이라노 도키노부 (平時信) |
어머니 | 후지와라노 나리코 (藤原成子) |
2. 생애
다이라노 기요모리의 후처이자 다이라노 무네모리 등의 어머니이다. 첫째 아들 무네모리의 출생 연도를 기준으로 1145년경 기요모리의 측실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 헤이지의 난 이후 니조 천황의 유모가 되었고[5], 이후 딸 다이라노 도쿠코를 다카쿠라 천황에게 시집보내는 등 헤이케와 황실의 관계 강화에 기여하며 정치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1168년 기요모리와 함께 출가하였으며, 기요모리 사후에는 아들 무네모리, 딸 도쿠코와 함께 헤이케 일족의 중심 인물이자 정신적 지주가 되었다. 그러나 겐페이 전쟁 말기인 1185년 단노우라 전투에서 헤이케가 겐지에게 최종적으로 패배하자, 어린 안토쿠 천황에게 "파도 아래에도 도읍이 있소"[12]라고 말하며 그를 안고 바다에 몸을 던져 자결했다. 향년 60세였다. 그녀의 죽음과 함께 삼종신기 중 일부의 행방에 대해서는 여러 기록이 전해진다.
2. 1. 정치적 역할
다이라노 도키코는 첫째 아들 다이라노 무네모리의 탄생 연도인 큐안 원년(1145년)경에 다이라노 기요모리의 후처가 된 것으로 추정된다. 헤이지의 난 이후, 니조 천황의 유모가 되었고, 에이랴쿠 원년(1160년) 12월 24일 종삼위에 서임되었다. 도키코가 니조 천황의 유모가 되고, 기요모리가 유부(乳父, 유모의 남편)가 된 것은 신제이의 지위를 계승하려는 의도[7]와 함께, 고시라카와 원과 니조 천황의 대립 속에서 니조 천황에 대한 충성과 정치적 봉사를 보여주려는 목적[8]으로 해석된다.니조 천황이 사망한 후, 도키코는 고시라카와 원의 총애를 받는 후비가 된 이복 여동생 다이라노 시게코와 함께 기요모리와 고시라카와 원 사이의 정치적 제휴를 강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닌안 원년(1166년) 10월 10일, 시게코가 낳은 노리히토 친왕(훗날의 다카쿠라 천황)이 황태자로 책봉되자, 같은 해 10월 21일 도키코는 종이위에 서임되었다[9][10].
닌안 3년(1168년), 기요모리와 함께 출가하였다. 기요모리가 후쿠하라로 거처를 옮기자 니시하치조의 저택을 물려받아 하치조 구시게테이(八条櫛笥邸, 하치조 니품정)로 이름을 바꾸었다. 조안 원년(1171년), 딸 도쿠코가 다카쿠라 천황의 중궁으로 입궁하자, 도키코는 중궁의 어머니로서 도쿠코의 출산뿐만 아니라 다카쿠라 천황의 여러 황자녀들의 출생과 성장 의식에도 깊이 관여하며 헤이케 일족과 황실 간의 관계를 공고히 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기요모리가 일으킨 지쇼 3년의 정변 이후, 지쇼 4년(1180년) 4월에 도쿠코가 낳은 외손자 안토쿠 천황이 즉위하자, 기요모리와 함께 준삼궁의 선지를 받았다[11]. 기요모리는 말년에 장남 다이라노 시게모리 사후 그의 아들들(고마쓰 가) 대신 도키코의 아들인 다이라노 무네모리를 후계자로 삼으려는 의지를 강하게 보이면서, 도키코의 혈통이 헤이케의 새로운 주류(적류)가 되었다.
기요모리 사후, 도키코는 아들 무네모리, 딸 겐레이몬인 도쿠코와 함께 헤이케의 실질적인 중심 인물이 되어 일족의 정신적 지주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단노우라 전투에서 헤이케가 겐지 군에게 최종적으로 패배하자, 어린 안토쿠 천황에게 "파도 아래에도 도읍은 있습니다(波の下にも都がございます)"[12]라고 말하며 그를 안고 바다에 몸을 던져 자결했다. 향년 60세였다.
이때의 상황에 대해 『아즈마카가미』는 도키코가 삼종신기 중 하나인 보검을 가지고 입수했고, 안토쿠 천황은 아사쓰카사라는 여관이 안고 뛰어들었다가 구조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반면 『구칸쇼』는 도키코가 안토쿠 천황을 안고 보검과 신새(神璽, 구슬)를 모두 지닌 채 입수했다고 전한다.
2. 2. 출가와 후견
닌안 3년(1168년), 남편 기요모리와 함께 출가하였다. 기요모리가 수도를 후쿠하라로 옮기려 하자 니시하치조에 있던 저택을 물려받았고, 이 저택은 '하치조 구시게테이'(八条櫛笥邸) 또는 '하치조 니품정'(八条二品邸)으로 불리게 되었다.조안 원년(1171년), 딸 도쿠코가 다카쿠라 천황의 중궁으로 입궁하자, 도키코는 중궁의 어머니로서 딸의 출산 과정에 깊이 관여하였다. 또한 다카쿠라 천황의 여러 황자녀들의 탄생과 성장 관련 의식에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며, 헤이케 일문과 황실 간의 관계를 공고히 하는 데 기여했다.
지쇼 3년의 정변 이후인 지쇼 4년(1180년) 4월, 외손자인 안토쿠 천황이 즉위하자 기요모리와 함께 준삼궁의 선지를 받았다[11]。 기요모리는 말년에 장남 시게모리 사후 그의 아들들(고마쓰 가) 대신, 도키코 소생의 아들인 무네모리를 후계자로 삼으려는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다. 이로 인해 도키코의 혈통이 헤이케 가문의 새로운 중심 세력(적류)으로 부상하게 되었다.
기요모리 사후, 도키코는 아들 무네모리와 딸 도쿠코(겐레이몬인)의 어머니로서 헤이케 가문의 실질적인 가장과 같은 존재가 되었으며, 일족의 정신적 지주로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단노우라 전투에서 헤이케 일족이 겐지 군에게 최종적으로 패배하자, 어린 안토쿠 천황에게 "파도 아래에도 도읍은 있습니다(浪の下にも都がございます)"[12]라고 말하며 천황을 안고 바다에 몸을 던져 자결했다. 향년 60세였다.
도키코의 최후와 관련하여 삼종신기의 행방에 대한 기록은 문헌마다 차이가 있다.
- 『아즈마카가미』에 따르면, 도키코는 삼종신기 중 보검(剣)을 가지고 입수했고, 안토쿠 천황은 다른 이(아사쓰카사)가 안고 뛰어들었다가 구조되었다고 한다.
- 『구칸쇼』에 따르면, 도키코가 안토쿠 천황을 안고 보검과 신새(璽, 구슬)를 모두 지닌 채 입수했다고 한다.
2. 3. 겐페이 전쟁과 죽음
다이라노 기요모리 사후, 도키코는 아들 다이라노 무네모리와 딸 다이라노 도쿠코(겐레이몬인)의 어머니로서 헤이케의 가주와 같은 존재가 되어, 일문의 정신적 지주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단노우라 전투에서 헤이케 일문이 겐지 군에게 최종적으로 패배하자, 어린 안토쿠 천황에게 "파도 아래에도 도읍이 있소"[12]라고 말하며, 천황을 안고 바다에 몸을 던져 자결했다. 향년 60세였다.
도키코의 죽음과 삼종신기의 행방에 대해서는 기록마다 차이가 있다.
- 『아즈마카가미』에 따르면, 도키코는 삼종신기 중 하나인 아메노무라쿠모노 쓰루기를 가지고 바다에 뛰어들었고, 안토쿠 천황은 아사쓰카사 이세가 안고 입수했으나 아사쓰카사는 구조되었다고 한다.
- 『구칸쇼』에는 도키코가 안토쿠 천황을 안고, 아메노무라쿠모노 쓰루기와 야사카니노마가타마를 모두 지닌 채 입수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3. 묘소 및 전승
묘소는 아카마 신궁에 있다. 매년 5월 2일에는 헤이케 후손들로 조직된 전국 헤이케회가 참례하여 일문 추도제를 거행한다. 또한 야마구치현 나가토시 히키에는 그녀의 시신이 떠밀려 왔다는 전승에서 유래한 '니이노하마'라는 해변이 있다. 이곳은 해수욕장으로도 인기가 있다.
4. 평가 및 유산
다이라노 도키코의 묘는 아카마 신궁에 있으며, 매년 5월 2일에는 전국 평씨 협회로 조직된 평씨 후손들이 추도식을 거행한다. 또한 야마구치현 나가토시 히키지에는 그녀의 시신이 그곳에 떠밀려 왔다는 전설에서 유래한 "니이노하마"라는 해변이 있다. 이곳은 인기 있는 해변 관광지이다.
4. 1. 관련 작품
; 영화- 신·헤이케 이야기(1955년) - 배역: 쿠가 미치코
; 텔레비전 드라마
- 여인 헤이케(1971년) - 배역: 아리마 이네코
- 신·헤이케 이야기(1972년) - 배역: 나카무라 타마오
- 무사시보 벤케이(1986년) - 배역: 아즈마 에미코
- 타이라노 키요모리(1992년) - 배역: 카타세 리노
- 요시츠네(2005년) - 배역: 마츠자카 케이코
- 타이라노 키요모리(2012년) - 배역: 후카다 쿄코
; 애니메이션
- 헤이케 이야기 - 배역: 이노우에 키쿠코
; 게임
- 영걸대전 - 배역: 타카하시 리에
; 인형극
- 인형 역사 스펙터클 헤이케 이야기 - 배역: 콘노 미사코
참조
[1]
서적
[2]
서적
Martyrdom, Self-Sacrifice, and Self-Immolation: Religious Perspectives on Suicide
https://books.google[...]
Oxford University Press
2018-05-01
[3]
문서
『[[吉記]]』[[治承]]5年(1181年)5月28日条
[4]
서적
『日本人名大辞典』
講談社
[5]
문서
『山槐記』同年12月15日条
[6]
문서
『[[山槐記]]』同日条
[7]
서적
平清盛
吉川弘文館
1999
[8]
서적
平清盛の闘いー幻の中世国家
角川叢書
2001
[9]
문서
『[[兵範記]]』同日条
[10]
문서
同日滋子も従三位に叙せられている。清盛は東宮大夫だった。
[11]
문서
『[[百錬抄]]』治承4年6月10日条
[12]
문서
『[[平家物語]]』
[13]
웹사이트
(4959) Niinoama = 1958 TZ = 1966 CB = 1968 MC = 1972 EB = 1979 OU13 = 1980 TG1 = 1980 TS8 = 1984 OO = 1985 OD = 1986 VS1 = 1989 FE1 = 1991 PA1
https://www.minorpla[...]
2022-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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