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양대군
1. 개요
단양대군은 고려 충렬왕의 손자이자 강양공 자의 아들로, 1310년 단양부원대군에 봉해졌으며 삼중대광에 이르렀다. 원나라에 등극사로 파견되어 외교 활동을 했으며, 충숙왕 복위 후 권서행성사를 역임했다. 양인을 억압하여 천인으로 만들고 원나라에 이를 호소하려다 실패하기도 했다. 공민왕을 보호하고 왕릉 제사에 참여했으나, 홍건적의 침입 당시 항복하여 요충지를 넘겨준 죄로 탄핵받아 재산을 몰수당하고 자손의 등용이 금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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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왕후 (王珛) |
|---|---|
| 작위 | 단양대군 (丹陽大君) |
| 봉호 | 단양부원대군 (丹陽府院大君) |
| 생몰년 | 미상 |
| 출생지 | 고려 |
| 묘지 | 미상 |
| 아버지 | 강양공 왕자 |
|---|---|
| 자녀 | 양원군 |
| 삼중대광 | 삼중대광 (三重 大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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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왕족 -
왕우 (고려 왕족)
왕우는 고려 신종의 7대손이자 공양왕의 친형으로, 공양왕 즉위 후 정양부원군에 봉해졌으며 조선 건국 후에는 딸이 태조의 며느리가 되어 고려 왕실의 제사를 맡게 되었다. -
고려의 왕족 -
왕면
왕면은 고려 의종의 사위로, 수사공 등의 관작을 받았으며, 순후하고 침착한 성품으로 의술에 정통하여 종기를 치료하는 등 헌신적인 면모를 보였다. -
고려의 문신 -
윤곤
윤곤은 고려 말 문과에 급제하여 조선 건국 후 완산부윤, 대장군 등을 지냈고, 제2차 왕자의 난에 이방원을 도와 공신이 되었으며, 명나라 사신, 의정부 참찬, 이조판서를 역임한 문신, 무신, 정치인, 외교관이다. -
고려의 문신 -
태조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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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 왕씨 -
왕영은
왕영은은 1981년 방송 데뷔 후 다양한 TV,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 CF 모델 활동을 한 대한민국의 방송인이며, 현재 SBS 《좋은 아침》, 현대홈쇼핑 《왕영은의 톡 투게더》 등을 진행하고 있다. -
개성 왕씨 -
우왕
우왕은 고려 제33대 국왕으로 공민왕의 아들이며, 이인임의 추대로 10세에 즉위하여 명덕태후의 섭정을 받았으나, 술과 여색에 빠져 국정을 소홀히 하고 왜구 침입, 명나라와의 관계 설정 문제, 요동 정벌 명령, 위화도 회군 등의 사건을 겪으며 폐위되어 처형되었다.
2. 생애
충렬왕의 손자이자 강양공 자의 아들이다. 1310년(충선왕 2) 단양부원대군(丹陽府院大君)에 봉해졌고, 이후 삼중대광(三重大匡)까지 지냈다.
1320년(충숙왕 7) 원나라에 등극사(登極使)로 임명되어 대도에 갔으며, 이듬해에는 원나라의 개원(改元)과 태후 책봉을 축하하기 위해 다시 원나라를 방문했다.
1333년(충숙왕 복위 2) 충숙왕이 원나라에 머무는 동안 권서행성사(權署行省事)가 되었다. 충혜왕이 실정으로 왕위에서 물러나자, 같은 해 원나라에서 귀국한 충숙왕을 평양 어용전(御容殿)에서 맞이하고 조적, 정기 등과 함께 국인(國印)을 충숙왕에게 바쳤다.
이후 양인을 천인으로 만들어 부리다가 정치도감(整治都監)에 의해 양인으로 복귀되자, 이들을 다시 노비로 만들기 위해 원나라에 호소하려다 압록강에서 붙잡혀 개경으로 송환되었다.
1352년(공민왕 1) 조일신의 난 때 공민왕을 잠시 집에 모셨다. 1353년 왕이 침원(寢園)에서 춘향(春享)을 지낼 때 아헌관으로 참석했다.
1361년 홍건적의 침입으로 개성이 함락되자 이안, 김서광 등과 함께 항복, 군사 요충지 등을 알려주었다. 1362년 홍건적이 물러간 뒤 감찰사의 탄핵을 받아 토지와 노비를 몰수당하고 자손들은 금고형을 받았다.
2.1. 초기 생애 및 외교 활동
충렬왕의 손자이자 강양공 자의 아들이다. 1310년(충선왕 2) 단양부원대군(丹陽府院大君)에 봉해졌고, 이후 품계는 삼중대광(三重大匡)에 이르렀다. 그의 동생 왕훈의 딸인 국대비 왕씨는 신종의 6대손 정원부원군 왕균에게 시집갔는데, 이들 사이에서 태어난 왕요는 훗날 공양왕이 된다.
1320년(충숙왕 7) 원나라 영종의 즉위를 축하하는 등극사(登極使)로 임명되어 대도에 파견되었으며, 이듬해에는 원나라의 연호 선포와 황태후 책봉을 축하하기 위해 다시 원나라에 파견되었다.
1333년(충숙왕 복위 2) 충숙왕이 원나라에 머무르고 있을 때 권서행성사(權署行省事)가 되었다. 같은 해 충숙왕이 평양 어용전(御容殿)으로 가자 찬성사(贊成事) 조적, 밀직사(密直使) 정기 등과 함께 국인(國印)을 충숙왕에게 바쳤다.
2.2. 권서행성사 임명과 친원 행보
1333년(충숙왕 복위 2) 충숙왕이 원나라에 머무르고 있을 때 권서행성사(權署行省事)가 되었다. 그 뒤 충혜왕이 실정으로 왕위에서 물러나게 되자, 같은 해 원나라로부터 귀국한 충숙왕을 평양 어용전(御容殿)에서 배알하고 찬성사(贊成事) 조적, 밀직사(密直使) 정기 등과 함께 국인(國印)을 다시 충숙왕에게 바쳤다.
이후 단양대군은 양인(良人)을 억압하여 천인으로 만들어 사역하다가 이들이 정치도감(整治都監)에 의하여 다시 양인으로 복귀되자, 이들을 다시 노비로 만들기 위해 이 사실을 원나라에 호소하고자 압록강을 건너가려다가 고려의 재상들이 보낸 홀치(忽赤)에 의하여 붙잡혀 개경으로 송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