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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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답돈은 후한 말 오환의 족장으로, 오환족의 통합을 이끌고 원소와 연합하여 공손찬을 격파하는 데 기여했다. 원소가 죽은 후 원소의 아들 원상을 도왔으나, 207년 백랑산 전투에서 조조에게 패배하여 참수되었다. 이후 오환은 조조에게 복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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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돈 | |
---|---|
인물 정보 | |
이름 | 답돈 |
한자 표기 | 蹋頓 |
로마자 표기 | Tapdon |
출생 | 생년 미상 |
출신지 | 요서군 오환족 |
사망 | 건안 12년 (207년) |
주요 활동 | 오환족의 지도자 |
소속 세력 | 원소 |
2. 생애
타둔은 오환 추장 추리거의 친척으로, 오환족 사이에서 지혜, 지휘 능력, 강인함, 용맹함으로 널리 알려졌다.[2] 190년대 초 추리거가 사망한 후, 그의 아들 누반이 어렸기 때문에 타둔이 새로운 오환 족장이 되었다. 타둔은 요서군(현재의 허베이성 루룽현 일대), 유북평군(현재의 탕산시 일대), 어양군(현재의 베이징시 미윈구 일대), 상곡군(현재의 베이징시 옌칭구 일대)의 오환 부족을 통치했다.
190년대 북중국에서 패권을 다투는 과정에서 군벌 원소를 공손찬에 대항하여 지원했다. 타둔의 지원에 대한 보답으로 원소는 헌제의 이름으로 타둔과 오환 추장들에게 황제의 인장과 명예를 수여했다. 헌제는 동한 왕조의 명목상 황제였다. 누반이 성장한 후, 타둔은 그에게 권력을 넘겨주었지만, 요서군에서 오환 부족을 계속 관리했다. 난루, 수복연, 오연과 같은 다른 오환 추장들은 누반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202년 원소 사후, 그의 아들 원상은 오환과의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원상이 조조에게 패하여 북쪽으로 도망치자 타둔과 오환 부족에게 의탁했다. 타둔은 원상이 북중국 영토를 되찾도록 도왔지만 소용없었다. 207년 조조는 원상과 오환 부족에 대한 원정을 시작했다. 오환은 조조의 공격을 늦게 깨달았지만, 수천 기병을 모아 백랑산 전투(현재의 랴오닝성 차오양시 남서쪽)에서 맞섰다. 타둔은 조조의 사촌 조순이 이끄는 "호표기" 부대에 사로잡혀 장료에게 처형되었다.[2]
누반, 속부환, 오연, 소복연은 원상 등과 요동으로 도망쳤지만, 태수 공손강에게 원희, 원상 형제와 함께 살해되었다. 삼군의 오환은 패배했고, 대군(代郡)의 오환도 항복했다. 이후 오환은 조조에게 복속하여 기병을 제공했다.
2. 1. 오환의 통합과 원소와의 제휴
답돈은 요서오환의 수령 구력거(丘力居)의 조카로 꾀가 많고 지략이 빼어나며 용맹하여 여러 부족의 장로들은 그를 흉노제국의 전설적인 선우 모돈에 비견했다고 한다. 구력거가 죽자 그의 아들 누반(婁班)이 어렸으므로 답돈이 대신 즉위하여 세력을 이어받았다. 답돈은 망명객들을 받아들이고 수백 년간 분열을 거듭하며 3부로 갈라져 있던 요서·요동속국·우북평 오환의 통합을 이루어 이들을 모두 다스렸다.원소가 한복을 협박하여 기주를 빼앗는 데 공손찬을 이용하였기 때문에 원소와 공손찬은 대립하게 되었다. 원소와 공손찬이 여러 차례 싸웠으나 결판이 나지 않았는데, 이때 답돈은 원소에게 사자를 보내 화친을 청하며 원소를 도와 공손찬을 격파하는데 크게 공헌했다. 196년, 원소는 조서(詔書)를 꾸며 답돈을 오환선우(單于)로 삼고 한로왕 오연과 초왕 소복연 등 다른 3군 오환의 지도자들을 제각기 좌,우 선우로 삼아 답돈의 명령을 받들도록 했으며, 일족의 여식을 양녀로 삼아 답돈에게 시집보냈다.[2]
누반이 장성하자 초왕 등은 누반에게 선우를 이어받게 하고 답돈은 왕으로 강등되었지만, 여전히 실권을 장악하여 대외적으로는 오환의 선우로 여겨질 만큼 강력한 위세를 떨치고 있었다.
2. 2. 원상의 조력과 조조와의 대립
답돈은 요서오환의 수령 구력거(丘力居)의 조카로 꾀가 많고 지략이 빼어나며 사납고 용맹했다. 여러 부족의 장로들은 모두 그를 흉노제국의 전설적인 선우 모돈에 비견했다고 한다.구력거가 죽었을 때, 그의 아들 누반(婁班)의 나이가 어렸으므로 조카인 답돈이 대신 즉위하여 세력을 이어받았다. 답돈은 망명객들을 받아들이고 수백 년 간 분열을 거듭하며 3부로 갈라져 있던 요서·요동속국·우북평 오환의 통합을 이루어 이들을 모두 다스렸고, 당시 오환은 중국 북부의 기마민족들 중 가장 두각을 나타냈다.
한편, 원소가 한복을 협박하여 기주를 빼앗는 데 공손찬을 이용하였기 때문에 원소와 공손찬은 대립하게 되었다. 원소와 공손찬이 여러 차례 싸웠으나 결판이 나지 않았는데, 이때 답돈은 원소에게 사자를 보내 화친을 청하며 원소를 도와 공손찬을 격파하는데 크게 공헌했다. 196년, 원소는 조서(詔書)를 꾸며 답돈을 오환선우(單于)로 삼고 한로왕 오연과 초왕 소복연 등 다른 3군 오환의 지도자들을 제각기 좌, 우 선우로 삼아 답돈의 명령을 받들도록 했으며, 일족의 여식을 양녀로 삼아 답돈에게 시집보냈다.
이후 누반이 장성하자 초왕 등은 누반에게 선우를 이어받게 하고 답돈은 왕으로 강등되었지만, 여전히 실권을 장악하여 대외적으로는 오환의 선우로 여겨질 만큼 강력한 위세를 떨치고 있었다. 한편, 후한에서는 원소가 죽고(202년) 후계자인 원상은 조조에게 패하여 답돈에게 망명해 왔다.(205년 음력 1월) 답돈은 원상을 보호하며 원상이 재기하도록 도왔다. 그 결과 모든 기반을 잃은 일개 망명객에 불과했던 원상은 상곡군에 주둔하며 오환의 군사를 이끌고 거듭 변경을 침입하고 원소의 구신들을 사주해 조조에 대한 반란을 일으켜, 조조가 임명한 자사와 태수들을 살해하며 수십만의 유주(幽州) 백성들을 오환으로 끌고 가는 등 조조의 커다란 골칫거리가 되었다. 원소 사후 사실상 조조의 유일한 적수로 여겨지던 유표 이상의 위험인물로 평가되었고, 심지어는 원상을 방치할 경우 조조의 새 거점인 기주(冀州)의 유지 가능성조차 논의되기에 이르렀다.
2. 3. 죽음
답돈은 백랑산 전투에서 조조군과 싸우다 전사했다. 207년, 조조가 원상과 오환족을 공격하기 위해 직접 군대를 이끌고 북쪽으로 진군했을 때, 답돈은 유성(柳城)에서 불과 2백 리 떨어진 백랑산에서 조조군과 마주쳤다.[2]당시 조조군은 본대에서 이탈해 병력이 적었지만, 고지대에 위치해 있었다. 반면, 답돈의 군대는 제대로 대오를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 조조는 장료에게 답돈을 공격하게 했고, 답돈은 난전 중에 조순이 이끄는 정예 기병대인 "호표기"(虎豹騎)에게 생포되어 참수되었다.[2]
원상은 답돈의 무리를 수습하여 범성에서 조조군에 맞섰으나, 갑작스러운 습격과 지도자의 죽음으로 오환족은 크게 붕괴되었다. 원상은 누반 등 다른 오환 지도자들과 함께 망명을 거듭하게 되었다.
답돈의 죽음 이후, 누반, 속부환, 오연, 소복연 등은 원상과 함께 요동으로 도망쳤지만, 태수 공손강에게 살해되었다. 삼군의 오환은 패배했고, 남은 대군(代郡)의 오환도 항복했다. 이후 오환은 조조에게 복속하여 기병을 제공하는 등 강력한 병력 공급원이 되었다.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답돈이 장료에게 패배하여 참살되는 것으로 묘사된다.
3. 삼국지연의에서의 묘사
삼국지연의에서 답돈은 원소와 우호 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원희, 원상 등이 조조에게 패배하여 의지해 오자, 원상을 도와 조조와 싸운다.[1] 최후에는 장료에게 패배하여 참살되는 것으로 묘사된다.[1]
참조
[1]
서적
Sanguozhi
[2]
서적
Sanguoz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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