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프랑스 동맹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대프랑스 동맹은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전쟁 시기에 프랑스의 팽창을 막고 유럽의 세력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여러 국가들이 결성한 군사 동맹을 통칭한다. 1792년부터 1815년까지 총 7차례의 동맹이 결성되었으며, 제1차(1792-1797)부터 제7차(1815)까지 각 동맹은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의 집권 시기에 프랑스에 대항하여 전쟁을 수행했다. 대프랑스 동맹이라는 용어는 프랑스 혁명 전쟁 및 나폴레옹 전쟁과 구분되며, 프랑스와 동맹국 간의 전쟁만을 의미한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프랑스의 군사사 - 프롱드의 난
프롱드의 난은 1648년부터 1653년까지 프랑스에서 일어난 반란으로, 왕권 강화에 대한 반발과 과도한 세금 부과에 대한 불만으로 시작되어 쥘 마자랭 추기경과 귀족 세력 간의 권력 다툼으로 변질되었고, 결국 실패했으나 루이 14세의 절대주의 왕정 체제 확립에 영향을 미쳤다. - 프랑스의 군사사 - 루르 점령
프랑스와 벨기에가 제1차 세계 대전 후 독일의 배상금 미이행을 이유로 루르 공업 지역을 점령했으나, 독일의 저항과 국제적 비난으로 미국의 중재 후 철수하며 바이마르 공화국 불안정에 영향을 미친 사건이다. - 프랑스 혁명 전쟁 - 장바티스트 베시에르
장바티스트 베시에는 프랑스 혁명 전쟁과 나폴레옹 전쟁에서 활약하고 나폴레옹 1세에 의해 프랑스 원수로 임명된 군인으로, 나폴레옹의 신임을 얻어 여러 전투에서 공을 세웠으나 독립적인 지휘 능력은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뤼첸 전투 직전 전사했다. - 프랑스 혁명 전쟁 - 무장 중립 동맹
무장 중립 동맹은 18세기 후반 영국 해군의 해상 봉쇄에 대응하여 중립국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결성된 동맹으로, 북유럽 국가들이 참여하여 미국의 독립 전쟁에 영향을 미쳤으나, 나폴레옹 전쟁 이후 와해되었고, 해상 중립 권리에 대한 인식을 확산시키고 국제법 발전에 기여했다. - 나폴레옹 전쟁 - 반도 전쟁
반도 전쟁은 나폴레옹 전쟁의 일부로, 프랑스 제국과 스페인, 포르투갈, 영국 연합군이 이베리아 반도에서 벌인 전투로, 대륙 봉쇄령과 스페인 왕위 계승 문제로 인해 스페인과 포르투갈 국민들의 저항, 게릴라전, 영국군의 개입으로 장기화되었으며 연합군의 승리로 끝났고 유럽 역사와 스페인령 아메리카 독립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 나폴레옹 전쟁 - 퐁텐블로 조약 (1814년)
1814년 4월 11일 퐁텐블로에서 체결된 퐁텐블로 조약은 나폴레옹 1세의 황제 권한 박탈 및 엘바섬 유배, 마리 루이즈에게 파르마 공국 양도 등을 규정했으나 영국 반대와 나폴레옹의 귀환으로 파기되었다.
2. 용어
"대프랑스 동맹 전쟁"이라는 용어는 프랑스 혁명 전쟁 및 나폴레옹 전쟁과 구별된다.
- 프랑스 혁명 전쟁: 1792년부터 1799년 브뤼메르 18일 쿠데타로 나폴레옹이 권력을 잡기 전까지 혁명 프랑스가 관련된 모든 전쟁을 포함한다.
- 나폴레옹 전쟁: 1799년부터 1815년까지 나폴레옹이 통치하던 프랑스가 관련된 전쟁(제2차 대프랑스 동맹 전쟁 포함)을 의미하거나, 제3차 대프랑스 동맹 전쟁부터 시작하는 것으로 정의되기도 한다.[3]
제2차 대프랑스 동맹 전쟁(1798-1802)은 나폴레옹 집권 시기에도 발발했기 때문에, 프랑스 혁명 전쟁에 포함되기도 하고 나폴레옹 전쟁에 포함되기도 한다.[3] 어떤 경우에는 나폴레옹이 직접 일으킨 전쟁이 아니라 프랑스 총재정부로부터 물려받은 전쟁으로 간주되어 나폴레옹 전쟁으로 불리지 않기도 한다.
'대프랑스 동맹 전쟁'은 대프랑스 동맹 당사국이 관련된 전쟁만을 의미하므로, 프랑스 혁명 전쟁과 나폴레옹 전쟁에 포함된 모든 전쟁을 포함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스위스 침공(1798), 슈테클리크리크(1802), 반도 전쟁(1807-1814), 러시아 침공(1812) 등은 대프랑스 동맹 전쟁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대 프랑스 전쟁"이라는 용어는 1792년부터 1815년까지의 거의 지속적인 전쟁 기간을 지칭하기 위해 영국 역사학에서 사용되기도 한다.[7] 역사학자 마이크 래포트는 1792년부터 1815년까지의 전체 기간을 명확하게 설명하기 위해 "프랑스 전쟁"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것을 제안했다.
2. 1. 어원
"대프랑스 동맹"이라는 용어는 1803년 프랑스 호민원 보고서에서 처음 사용된 사례를 찾을 수 있다. 이 보고서의 제목은 ''Résultats des guerres, des négociations et des traités qui ont préced́é et suivi la coalition contre la France'' ("프랑스에 대한 동맹의 전후 전쟁, 협상 및 조약의 결과")였다.[4] 1793년 4월, 뒤무리에 장군이 네르빈덴 전투에서 패배하고 오스트리아로 망명하면서 프랑스에 큰 절망감을 안겨주었다. 당시 상황에 대해 "Les événements de cette époque sont les plus pénibles à décrire de tous ceux qui ont signalé ''les guerres de la coalition''." ("그 시대의 사건들은 '동맹 전쟁'을 특징짓는 모든 사건들 중 묘사하기 가장 고통스럽다." [강조 추가])라고 언급되었다.[4]1805년 1월, ''잘츠부르크 인텔리겐츠블라트''는 "Das Staatsinteresse von Baiern bei dem dritten Koalitions-Kriege" ("바이에른의 제3차 동맹 전쟁에서의 국익")를 논하며 동맹 전쟁에 번호를 매긴 최초의 사례 중 하나였다.[5] 비록 제3차 동맹이 그 당시에 결성되었지만, 전쟁은 아직 발발하지 않았다. 오스트리아 신문은 이웃 바이에른 선제후국이 오스트리아가 이끄는 동맹보다는 프랑스 제국 편에 설 가능성이 높은 이유에 대해 논의했다. 1805년 9월 30일, 울름 전역이 시작된 지 며칠 후, 나폴레옹 황제는 스트라스부르에서 군인들에게 연설을 시작하면서 "Soldats, la guerre de la troisième coalition est commencée." ("병사들이여, 제3차 동맹 전쟁이 시작되었다.")라고 말했다.[6]
2. 2. 다른 용어와의 비교
"대프랑스 동맹 전쟁"이라는 용어는 프랑스 혁명 전쟁 및 나폴레옹 전쟁과 구별된다. 프랑스 혁명 전쟁은 1792년부터 1799년 브뤼메르 18일 쿠데타로 나폴레옹이 권력을 잡기 전까지 혁명 프랑스가 관련된 모든 전쟁을 포함한다. 반면, 나폴레옹 전쟁은 1799년부터 1815년까지 나폴레옹이 통치하던 프랑스가 관련된 전쟁(제2차 대프랑스 동맹 전쟁 포함)을 의미하거나, 제3차 대프랑스 동맹 전쟁부터 시작하는 것으로 정의되기도 한다.[3]제2차 대프랑스 동맹 전쟁(1798-1802)은 나폴레옹 집권 시기에도 발발했기 때문에, 프랑스 혁명 전쟁에 포함되기도 하고 나폴레옹 전쟁에 포함되기도 한다.[3] 어떤 경우에는 나폴레옹이 직접 일으킨 전쟁이 아니라 프랑스 총재정부로부터 물려받은 전쟁으로 간주되어 나폴레옹 전쟁으로 불리지 않기도 한다.
'대프랑스 동맹 전쟁'은 대프랑스 동맹 당사국이 관련된 전쟁만을 의미하므로, 프랑스 혁명 전쟁과 나폴레옹 전쟁에 포함된 모든 전쟁을 포함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스위스 침공(1798), 슈테클리크리크(1802), 반도 전쟁(1807-1814), 러시아 침공(1812) 등은 대프랑스 동맹 전쟁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대 프랑스 전쟁"이라는 용어는 1792년부터 1815년까지의 거의 지속적인 전쟁 기간을 지칭하기 위해 영국 역사학에서 사용되기도 한다.[7] 역사학자 마이크 래포트는 1792년부터 1815년까지의 전체 기간을 명확하게 설명하기 위해 "프랑스 전쟁"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것을 제안했다.
3. 동맹국
(1792–1797)
(1798–1802)
(1803–1806)
(1806–1807)
(1809)
(1813–1814)
(18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