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충
1. 개요
등충은 중국 삼국 시대 위나라의 무장으로, 등애의 아들이다. 256년 아버지의 공적으로 정후에 봉해졌으며, 263년 등애를 따라 촉나라 정벌에 참여했다. 사찬과 함께 제갈첨을 공격하여 승리했으나, 종회의 모함으로 등애와 함께 체포되었다. 종회가 죽은 후 위관의 사주를 받은 전속에게 암살당했다. 서진 시대에 등애의 명예가 회복되었지만, 등충의 존재는 명확히 드러나지 않았다.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미남으로 묘사되며, 아버지 등애를 도와 촉한과의 싸움에서 활약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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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 등씨 -
등지
등지는 삼국 시대 촉한의 외교 및 군사 인물로, 유비의 신임을 받아 요직을 두루 거치며 오나라와의 동맹을 재건하여 촉한의 외교적 입지를 강화했으며, 검소하고 청렴한 삶을 살다가 251년에 사망했다. -
남양 등씨 -
등애
등애는 위나라의 장군이자 정치가로, 농업 관리에서 뛰어난 군사적 재능과 전략적 식견으로 중용되어 강유의 북벌을 막고 촉한 정벌에 공헌했으나 종회의 모함으로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후 명예가 회복되었다. -
조위의 정후 -
등애
등애는 위나라의 장군이자 정치가로, 농업 관리에서 뛰어난 군사적 재능과 전략적 식견으로 중용되어 강유의 북벌을 막고 촉한 정벌에 공헌했으나 종회의 모함으로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후 명예가 회복되었다. -
조위의 정후 -
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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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해된 군인 -
2017년 예루살렘 트럭 테러
2017년 예루살렘 동탈피오트에서 아랍계 이스라엘인이 트럭으로 이스라엘 방위군 군인들을 덮쳐 4명이 사망하고 15명이 부상당한 이 사건은 테러 행위로 규탄받아 이스라엘 내각이 ISIL 지지자에 대한 행정 구금 및 가해자 가족의 가옥 철거를 결정했으며 국제사회가 희생자들에게 위로를 전했다. -
살해된 군인 -
방훈
방훈은 당나라 말기 서주에서 일어난 군인 반란의 지도자였으며, 독립을 선언했으나 내부 배신과 토벌군의 공격으로 사망하면서 반란이 진압되었다.
2. 생애
감로 원년(256년), 단곡의 싸움에서 공을 세운 아버지 등애 덕분에 영읍 500호를 받아 정후에 봉해졌다. 263년에는 촉한 정벌에 아버지와 함께 참전하여, 사찬과 함께 면죽관(綿竹關)을 지키던 제갈첨을 공격했다. 처음에는 촉군의 저항에 밀려 후퇴했으나, 등애의 질책을 받고 다시 공격하여 면죽관을 점령하는 데 성공했다.
촉나라 멸망 후, 종회는 사마소에게 등애가 반란을 일으키려 한다고 모함했다. 사마소의 명으로 종회는 부하 위관을 시켜 등애 부자를 체포했다. 종회가 모반을 꾀하다 죽자, 진상이 밝혀질 것을 우려한 위관은 등애에게 원한을 품었던 전속을 보내 등애와 등충을 암살했다.
서진 시대에 등애의 명예가 회복되면서, 그의 적손인 등랑이 등용되었으나, 등랑의 아버지가 등충이라고 명확하게 밝혀지지는 않았다.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흰 얼굴의 미남이자 등애 못지않은 무략을 가진 인물로 묘사된다. 젊어서부터 등애를 따라 촉한과의 전투에서 큰 활약을 펼치는 모습이 그려진다.
2.1. 촉한 정벌
263년 촉한 정벌에 아버지 등애를 따라 참전했다. 사찬과 함께 면죽관(綿竹關)을 지키는 제갈첨을 공격했으나, 촉군의 저항에 밀려 후퇴했다. 그러나 등애의 질책을 받고 다시 공격하여 면죽관을 점령하였다. 같은 해 11월, 촉한의 황제 유선이 항복하여 등애 군은 촉을 제압하는 큰 공을 세웠다.
2.2. 모함과 죽음
263년 촉한을 정벌할 때 아버지를 따라 참전했다. 사찬과 함께 면죽관(綿竹關)을 지키는 제갈첨을 공격할 때 촉군의 저항에 밀려 후퇴했으나, 등애의 질책을 받고 다시 공격하여 면죽관을 점령하였다.
촉나라가 멸망한 후 종회가 사마소에게 등애가 반란을 일으키려 한다고 모함했다. 사마소가 등애를 잡아들이라 하자 종회는 부하 위관을 보내 등애 부자를 잡아들였다.
하지만 종회가 모반을 꾀하다 죽고 이에 진상이 밝혀질 것을 우려한 위관이 등애에게 원한을 품었던 부하 전속을 보내 등애와 등충을 암살했다.
2.3. 사후
감로 원년(256년)에 아버지 등애가 단곡의 싸움에서 공적을 인정받아, 그 영읍에서 500호를 나누어 등충은 정후에 봉해졌다.
경원 4년(263년), 등애의 부하로 촉한 토벌에 종군하였다. 면죽에서 사찬과 함께 제갈첨과 교전했지만, 초전에 패배하여 등애에게 참수형을 당할 뻔했다. 등충과 사찬은 다시 달려가 싸움을 벌여, 제갈첨 등의 목을 베는 대승을 거두었다. 같은 해 11월, 촉한의 황제 유선이 항복하여 등애군은 촉을 제압하는 큰 공을 세웠다.
이후 등애는 "이대로 오도 정벌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지만, 종회 등에게 반란 계획으로 고발당해, 경원 5년(264년) 정월, 등애·등충 부자는 체포되었다. 그 신병은 수도로 송환될 예정이었지만, 반란을 꾀한 종회도 살해되는 혼란 속에서 등애는 그에게 원한을 품은 전속에게 살해되고, 등충 또한 아버지와 함께 죽었다.
서진 시대에 등애의 명예가 회복되었고, 적손인 등랑이 등용되었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가 등충이라고 명언되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