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로이트 교향악단
1. 개요
디트로이트 교향악단은 1914년에 창단된 미국의 오케스트라이다. 오십 가브릴로비치의 장기 재임 기간 동안 실력 향상과 오케스트라 홀 건립에 기여했으며, 1922년 세계 최초로 연주회 실황을 라디오로 중계하는 등 미디어와 일찍부터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폴 파레 시대에는 프랑스 작품 연주로 명성을 얻었으며, 네메 예르비는 다양한 레퍼토리를 소화하며 호평을 받았다. 2010년 노사 분규로 파업을 겪었으나, 이후 'OneDSO'라는 이름 아래 지역 사회 참여 및 디지털 접근성을 강화했다. 현재는 야데르 비냐미니가 음악 감독을 맡고 있으며, 타비타 베르글룬드는 수석 객원 지휘자로 임명되어 디트로이트 교향악단 최초의 여성 지휘자가 되었다.
| 이름 | 디트로이트 교향악단 |
|---|---|
| 영문 명칭 | Detroit Symphony Orchestra (DSO) |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 창립 | 1887년 |
|---|---|
| 공연장 | 오케스트라 홀 ( 맥스 M. 피셔 뮤직 센터 내) |
| 웹사이트 | 디트로이트 교향악단 공식 웹사이트 |
| 음악 감독 | 야데르 비냐미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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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석 팝스 지휘자 | (정보 없음) # 정보 누락, 2023년 10월 20일자 뉴스 인용 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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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해체된 단체 -
피츠버그 교향악단
피츠버그 교향악단은 1895년 피츠버그 예술 협회에서 설립되어 저명한 지휘자들의 지휘 아래 국제적인 오케스트라로 성장했으며 하인츠 홀을 상주 공연장으로 사용하며 활발히 활동하는 미국의 대표적인 교향악단이다. -
디트로이트 출신 음악 그룹 -
템테이션스
템테이션스는 1960년대 모타운 레코드에서 데뷔하여 "마이 걸" 등으로 성공한 미국의 소울 음악 그룹으로, 멤버 교체와 음악적 실험을 거치며 50년 이상 활동, 롤링 스톤지 선정 역대 최고의 아티스트 100팀에 선정되기도 했다. -
디트로이트 출신 음악 그룹 -
슈프림스
슈프림스는 다이애나 로스, 메리 윌슨, 플로렌스 발라드 등을 주축으로 1959년 결성되어 "Baby Love", "Stop! In the Name of Love" 등으로 1960년대 미국을 대표하는 걸 그룹으로 자리매김하며 흑인 음악 대중화에 기여하고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친 미국의 여성 음악 그룹이다. -
미국의 관현악단 -
시카고 교향악단
시카고 교향악단은 1891년 찰스 노먼 페이에 의해 창립되어 테오도르 토마스를 비롯한 명지휘자들을 거치며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로 성장, 현재까지 65회의 그래미상을 수상하며 활발한 연주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미국의 대표적인 교향악단이다. -
미국의 관현악단 -
보스턴 교향악단
보스턴 교향악단은 1881년 헨리 리 히긴슨이 창단한 미국의 대표적인 교향악단으로, 보스턴 심포니 홀을 주요 공연장으로 사용하며, 다양한 앙상블과 협력하여 폭넓은 음악 활동을 펼치고 있다.
2. 역사
1914년 디트로이트 교향악단이 창단된 이래, 악단은 디트로이트의 자동차 산업 발전과 함께 성장하고 쇠퇴하는 역사를 함께 했다. 초기에는 자동차 산업의 호황에 힘입어 안정적인 재정을 유지했으나, 대공황의 여파로 1944년과 1949년 두 차례 해단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재결성 이후에도 지역 경제 침체로 인해 크고 작은 재정난을 겪었지만, 최근에야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디트로이트 교향악단은 1922년 세계 최초로 라디오 방송을 통해 연주회를 중계한 이후, 포드와 제너럴 모터스의 후원을 받아 미국 전역에 라디오 방송을 지속하는 등 방송 매체와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다. 또한, 1926년부터 어린이들을 위한 무료 교육 음악회를 개최하는 등 지역 사회와 소통하며 청중 확보에도 힘썼다.
초기에는 디트로이트 오페라 하우스를 주요 공연장으로 사용했으나, 오시프 가브릴로비치가 콘서트 전용 공연장의 필요성을 역설하여 1919년 디트로이트 오케스트라 홀이 완공되었다. 그러나 대공황으로 인해 홀 운영이 어려워져 프리메이슨 회당인 디트로이트 메이스닉 템플로 공연장을 옮겨야 했다. 1956년에는 신축 공연장인 포드 오디토리엄으로 이전했으나, 1989년 단원들과 지역 유지들의 노력으로 오케스트라 홀이 보수 공사를 거쳐 다시 상주 공연장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2003년에는 맥스 M. 피셔 뮤직 센터라는 복합 공연장으로 통합되었다.
녹음은 1928년 오시프 가브릴로비치의 지휘로 시작되었으며, 폴 파레 시대에 머큐리 레코드와 계약하여 본격적인 녹음 활동을 시작했다. 특히 마르셀 뒤프레와 협연한 생상스의 교향곡 3번은 큰 화제를 모았다. 안탈 도라티는 데카에서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을 녹음하여 샤를 크로 디스크 대상을 수상하는 등 주목할 만한 음반을 남겼다. 네메 예르비는 샨도스와 계약하여 다양한 작품을 녹음했으며, 특히 미국 작곡가들의 작품을 담은 음반이 호평을 받았다. 최근에는 악단 자체 음반사를 통해 음반을 발매하고 있다.
2.1. 창단과 성장 (1914-1949)
1914년 디트로이트 교향악단이 창단되었고, 초대 음악 감독으로 웨스턴 게일즈가 임명되었다. 게일즈는 1917년까지 재임했으며, 후임으로는 러시아 출신의 오시프 가브릴로비치가 임명되었다. 가브릴로비치는 1936년까지 장기간 재임하면서 악단의 실력 향상에 주력했고, 상주 공연장의 필요성을 역설해 오케스트라 홀 건립에도 크게 기여했다. 1922년에는 지역 방송국을 통해 세계 최초로 연주회 실황을 라디오로 중계했으며, 1934년부터는 매주 일요일 오후에 미국 전역에 방송되는 공연 실황 프로그램인 '포드 선데이 이브닝 아워(이후 포드 심포니 아워로 개칭)'에 출연하는 등 방송 매체와 일찍부터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가브릴로비치 사후, 이탈리아 출신의 프랑코 기오네, 헝가리 출신 빅토르 콜러르, 독일 출신 칼 크뤼거가 차례로 음악 감독을 역임했다. 그러나 이 시기 악단은 심각한 재정난을 겪었고, 운영진 간 대립으로 1944년과 1949년에 해단되는 최악의 상황을 겪기도 했다.
2.2. 파레와 도라티 시대 (1951-1981)
폴 파레는 비제, 생상스, 샤브리에, 드뷔시, 라벨 등 모국 프랑스 작곡가들의 작품을 중심으로 악단 재건과 연주력 향상에 힘썼다. 샤를 뮌슈가 이끌던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 미국 관현악단 중 프랑스 작품을 탁월하게 소화하는 악단으로 명성을 얻었다. 파레는 머큐리 레코드에서 생상스의 교향곡 3번을 비롯한 다량의 음반을 녹음하여 그 명성을 전 세계에 떨쳤다.
1963년 파레가 사임한 후, 스웨덴 출신 식스텐 에얼링, 이탈리아 출신 알도 체카토, 헝가리 출신 안탈 도라티가 차례로 음악 감독직을 인계받았다. 파레 퇴임 후 악단은 재정 상황 악화로 침체기를 겪었지만, 안탈 도라티의 취임으로 다시 황금기를 맞이했다. 도라티는 녹음과 방송 프로그램 출연을 활발하게 진행했으며, 1979년에는 첫 유럽 연주 여행을 실시했다. 특히 도라티가 전속사였던 데카에 남긴 스트라빈스키의 발레 '봄의 제전' 녹음은 프랑스의 샤를 크로 디스크 대상을 수상했다.
2.3. 예르비와 슬래트킨 시대 (1990-2018)
에스토니아 태생의 네메 예르비는 1990년에 음악 감독으로 부임하여 모국 작품들을 비롯한 다양한 레퍼토리를 소화하면서 청중과 악단 양측에서 호평받았다. 예르비는 불황으로 악단 경영이 어려웠던 시기에 끈기 있게 이끌었고, 오랜 재임 기간 동안 찬도스 레이블을 중심으로 녹음 활동을 하는 등, 연주 수준을 유지했다. 특히 아이브스, 바버, 채드윅, 랜달 톰슨, 윌리엄 그랜트 스틸 등 미국 작곡가들의 관현악 작품 음반들이 호평을 받았다.
예르비 사임 후에는 한동안 음악 감독이 공석인 상태로 활동했고, 캐나다 출신의 피터 운지안과 토머스 윌킨스가 각각 예술 고문 겸 수석 객원 지휘자와 부지휘자로 악단을 이끌었다. 2008년 봄, 레너드 슬래트킨이 신임 음악 감독으로 부임하여 현재까지 재직 중이다. 슬래트킨도 다양한 방식으로 녹음을 남겼다.
2.4. 2010-2011 파업과 그 이후
디트로이트 교향악단은 초기에는 디트로이트의 자동차 및 철강 산업 호황 덕분에 안정적인 재정 상태를 유지했다. 그러나 대공황의 여파로 심각한 타격을 받아 1944년과 1949년에 해단되는 사태를 겪었다. 재결성 후에도 지역 경제 침체로 인해 지속적인 재정난을 겪었으나, 최근에야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1920년대 중반부터 무료 교육 음악회를 개최하고, 라디오와 텔레비전 등의 매체를 적극 활용하여 명성을 얻었다.
녹음 활동은 1928년 가브릴로비치의 지휘로 시작되었고, 크뤼거도 피아니스트 클라우디오 아라우와 협주곡 녹음을 남겼다. 파레는 머큐리와 계약하여 프랑스 근대 음악을 중심으로 많은 녹음을 남겼으며, 특히 마르셀 뒤프레와 협연한 생상의 교향곡 제3번이 화제가 되었다.
도라티는 데카에서 주목할 만한 녹음들을 많이 남겼으며, 특히 스트라빈스키의 발레 '봄의 제전' 녹음은 프랑스의 샤를 크로 디스크 대상을 수상했다. 예르비는 샨도스와 계약하고 다양한 작품들을 녹음했으며, 아이브스, 바버, 채드윅, 랜달 톰슨, 윌리엄 그랜트 스틸 등 미국 작곡가들의 관현악 작품 음반들이 호평을 받았다. 최근에는 악단 자체 음반사를 통해 음반을 발매하고 있다.
3. 주요 공연장
창단 이후 1919년까지 디트로이트 오페라 하우스를 주요 공연장으로 사용하였으나, 콘서트 전문 공연장의 필요성이 계속 제기되면서 약 4개월 가량의 단기간 공사로 디트로이트 오케스트라 홀이 완공되어 옮겨갔다. 그러나 세계 경제 대공황으로 인해 홀 운영이 힘들어지면서 프리메이슨 회당인 디트로이트 메이스닉 템플로 공연장을 다시 바꾸어야 했다.
1956년에는 신축 공연장인 포드 오디토리엄으로 다시 옮겨 활동했고, 그 사이 오케스트라 홀은 사설 극장으로 이용되다가 폐쇄된 뒤 철거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단원들과 지역 유지들이 정부에 사적 지정을 요구하고 개축 계획을 수립하면서 대규모 장기 보수 공사에 들어갔고, 1989년에 다시 상주 공연장으로 쓰이게 되었다. 2003년에는 오케스트라 홀의 음향 보수 공사를 추가로 진행하였고, 홀 주변에 새로 건립된 리사이틀 홀, 교육 시설과 함께 맥스 M. 피셔 뮤직 센터라는 이름의 복합 공연장으로 통합되었다.
4. 역대 음악 감독
5. 미디어 활동
디트로이트 교향악단은 1920년대 중반부터 유소년과 청소년층을 대상으로 무료 교육 음악회를 개최하는 등 청중 확보에 힘썼고, 라디오와 텔레비전 등의 매체를 적극 활용하면서 명성을 얻었다. 1922년 2월 10일에는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슈나벨을 초청하여 세계 최초로 라디오 방송을 실시했다. 그 후에도 포드와 제너럴 모터스의 지원을 받아 미국 내에서 라디오 방송을 계속하고 있다.
녹음 활동은 1928년에 오십 가브릴로비치의 지휘로 처음 시작되었고, 이후 크뤼거도 피아니스트 클라우디오 아라우와 협주곡 녹음을 남기기도 했다. 그러나 본격적인 녹음은 폴 파레 재임기부터 시작되었으며, 최신 스테레오 녹음 기술을 적극 홍보하던 음반사인 머큐리와 계약하고 프랑스 근대 음악을 중심으로 상당량의 녹음을 남겼다. 특히 생상스의 교향곡 제 3번은 프랑스의 노장 오르가니스트인 마르셀 뒤프레와 협연해 화제가 되었다.
파레 이후에는 안탈 도라티가 전속사였던 데카에 주목할 만한 녹음들을 많이 남겼으며, 특히 스트라빈스키의 발레 '봄의 제전' 녹음은 프랑스의 샤를 크로 디스크 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예르비도 영국 음반사인 샨도스와 계약하고 다양한 작품들을 녹음했으며, 특히 아이브스나 바버, 채드윅, 랜달 톰슨, 윌리엄 그랜트 스틸 등 미국 작곡가들의 관현악 작품 음반들이 호평을 받았다. 최근에는 악단 이름을 내건 자체 음반사를 통해서도 음반을 발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