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너럴 모터스
1. 개요
제너럴 모터스(GM)는 1908년 설립된 미국의 자동차 제조 지주 회사로, 뷰익을 성공시킨 윌리엄 듀란트가 설립했다. 쉐보레, 캐딜락, GMC, 뷰익 등 다양한 브랜드를 소유했으며, 1920년대 알프레드 슬론의 경영 전략을 통해 포드를 제치고 세계 최대 자동차 제조업체로 성장했다. 2차 세계 대전 중 군수 물자를 생산하며 성장했지만, 2000년대 이후 재정 위기를 겪으며 2009년 파산보호 신청을 했다. 이후 구조조정을 거쳐 2010년 뉴욕 증시에 재상장했으며, 전기차 및 자율주행 기술 개발에 투자하며 사업 포트폴리오를 확장하고 있다. GM은 여러 논란과 비판에 직면해 왔으며, 모터스포츠 분야에서도 쉐보레 브랜드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 이름 | 제너럴 모터스 컴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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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형 | 상장 회사 |
|---|---|
| 산업 | 자동차 |
| 설립일 | 1908년 9월 16일 (원래 회사) 2009년 7월 10일 (현재 회사) |
| 창립자 | 윌리엄 C. 듀런트 |
| 전신 | 제너럴 모터스 코퍼레이션 |
| 본사 위치 | 르네상스 센터 |
| 본사 도시 | 디트로이트, 미시간 |
| 본사 국가 | 미국 |
| 사업장 | 6개 대륙 396개 시설 |
| 서비스 지역 | 전 세계 |
| 주요 인물 | 피에르 S. 뒤퐁 회장 (1915–1929) 찰스 케터링 연구 책임자 (1920–1947) 앨프리드 P. 슬론 CEO (1923–1946) |
| 제품 | 자동차 고성능 차량 럭셔리 차량 상업용 차량 군용 차량 자동차 부품 |
| 생산량 | 6,186,000대 (판매량, 2023년) |
| 서비스 | 자동차 금융 차량 리스 차량 정비 |
| 매출 | 1,718억 달러 (2023년) |
| 영업 이익 | 92억 9,800만 달러 (2023년) |
| 순이익 | 98억 4,000만 달러 (2023년) |
| 자산 | 2,731억 달러 (2023년) |
| 자기 자본 | 681억 9,000만 달러 (2023년) |
| 직원 수 | 163,000명 (2023년) |
| 브랜드 | 쉐보레 뷰익 GMC 캐딜락 |
| 거래소 | S&P 100 구성 종목 S&P 500 구성 종목 |
| 공식 웹사이트 | gm.com |
| 회장 겸 CEO | 메리 배라 |
|---|---|
| 사장 | 마크 로이스 |
| 운송 | 크루즈 LLC |
|---|---|
| 금융 서비스 | GM 파이낸셜 GM 보험 |
| 물류 | GM 인증 서비스 GM 에너지 GM 인볼브 온스타 |
| 산업 | AC델코 DMAX GM 부품 홀딩스 GM 디펜스 GM 서브시스템 매뉴팩처링 LLC 얼티엄 셀 LLC |
| 국제 | 캐딜락 유럽 GM 아르헨티나 GM 브라질 GM 캐나다 GM 칠레 GM 콜롬비아 GM 에콰도르 GM 이집트 GM 일본 GM 코리아 GM 기술 센터 코리아 GM 멕시코 GM 뉴질랜드 GM 스페셜티 비히클 범아시아 기술 자동차 센터 (50%) SAIC-GM (50%) SAIC-GM-우링 (44%) SGMW 모터 인도네시아 |
| 간략 정보 | 미국 다국적 자동차 회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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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버스 제조사 -
포드 모터 컴퍼니
포드 모터 컴퍼니는 1903년 헨리 포드가 설립한 미국의 다국적 자동차 제조 기업으로, 대량 생산 방식을 통해 자동차 대중화에 기여했으며, 현재 포드와 링컨 브랜드를 통해 다양한 차량을 판매하고 전기차 개발에도 힘쓰고 있다. -
미국의 버스 제조사 -
IC 버스
IC 버스는 1933년 Ward Body Works에서 시작되어 Navistar International의 자회사가 된 미국의 버스 제조업체로, 스쿨 버스를 주력으로 상업용 및 특수 목적 차량을 생산하며, 2000년대 이후 대체 연료 및 하이브리드 모델 개발을 시도하고 오클라호마주 털사에 생산 시설을 두고 있다. -
1908년 설립된 기업 -
동양척식주식회사
동양척식주식회사는 1908년 일제가 한국 경제 수탈을 목적으로 설립한 국책 회사로, 토지 매매, 금융 사업 등을 통해 한국 농민을 수탈하고 일제강점기 동안 막대한 토지를 소유하다가 해방 후 미군정에 의해 몰수되었다. -
1908년 설립된 기업 -
캘커타 증권거래소
캘커타 증권거래소는 1863년 설립되어 영국 동인도회사 채권 거래로 시작, 1980년 인도 정부의 영구 인가를 받고 1997년 전자 거래 플랫폼으로 전환되었으며, 뭄바이 증권거래소가 지분을 인수하기도 했다. -
미시간주의 기업 -
쉐보레
쉐보레는 1911년 설립되어 오버헤드 밸브 엔진 기술 발전을 이루고 1918년 제너럴 모터스에 합병된 미국의 자동차 제조 회사이다. -
미시간주의 기업 -
디트로이트 디젤
디트로이트 디젤은 1938년 제너럴 모터스에서 시작하여 트럭, 버스 등에 사용되는 디젤 엔진을 생산했으며, 2000년 다임러 크라이슬러에 인수된 후 현재 다양한 엔진과 부품을 생산하며 엔진 재제조 서비스 등을 제공한다.
2. 역사
제너럴 모터스(GM)는 1908년 윌리엄 C. 듀란트가 뷰익을 인수하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올즈모빌, 캐딜락, 폰티악 등 여러 자동차 회사를 인수하며 성장했다. 1920년대에는 알프레드 P. 슬론의 경영 아래 다양한 브랜드와 가격대의 자동차를 출시하며 시장 점유율을 확대했다.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GM은 연합군을 위해 막대한 양의 군수 물자를 생산했다. 전쟁 이후 경제 호황과 함께 성장을 지속, 1950년대에는 미국 최대 기업이자 연 매출 1를 돌파한 최초의 기업이 되었다.
1970년대 이후 석유 파동과 소형차 수요 증가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1980년대 도요타와의 합작을 통해 품질 관리 노하우를 습득하는 등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경영 악화로 2009년 파산 보호를 신청했고, 미국 정부의 지원을 받아 회생했다.
2.1. 설립 초기와 성장 (1908년 ~ 1945년)
윌리엄 C. 듀란트가 세운 듀란트-도트 마차 회사는 1900년까지 미국에서 가장 큰 마차 제조업체였다. 듀란트는 자동차에 반대했지만, 제임스 H. 화이팅은 1904년에 그에게 뷰익을 매각했다. 듀란트는 1908년에 지주회사인 제너럴 모터스를 설립했는데, 이는 제너럴 일렉트릭의 명명 규칙을 차용한 것이다. GM의 첫 번째 인수는 뷰익 자동차였고, 1908년 11월 12일에는 올즈모빌을 인수했다. 1909년에는 캐딜락, 엘모어, 웰치, 카터카, 오클랜드(폰티악의 전신), 래피드 모터 차량 회사(GMC의 전신), 릴라이언스 모터카 회사를 인수했다.
듀란트는 포드 자동차 회사 인수도 시도했지만, 200만 달러가 더 필요했다. 듀란트는 인수 과정에서 GM에 과도한 레버리지를 사용했고, 1910년 GM 유지를 위해 대출을 지원한 은행가들의 지시에 따라 이사회에서 해임되었다. 1911년, 찰스 F. 케터링과 헨리 M. 릴랜드는 미국 최초의 전기 시동기를 발명하고 특허를 획득했다. 같은 해 11월, 듀란트는 루이 쉐보레와 함께 쉐보레를 공동 설립했는데, 쉐보레는 1915년 듀란트와의 의견 충돌 후 회사를 떠났다.
GM은 1916년 디트로이트에서 제너럴 모터스 주식회사로 재설립되었고, 기업공개를 통해 상장회사가 되었다. 1917년까지 쉐보레는 성공을 거두었고, 듀란트는 새뮤얼 맥클라우린과 피에르 S. 듀퐁의 지원을 받아 GM의 지배 지분을 다시 인수했다. 같은 해 GM은 삼손 트랙터를 인수했다. 1918년 5월 2일, 쉐보레 자동차 회사는 GM에 통합되었고, 같은 해 GM은 유나이티드 모터스 회사를 45에 인수했으며, 맥클라우린 모터카 회사는 캐나다 제너럴 모터스가 되었다. 1919년 GM은 가디언 냉장고 회사를 인수하여 프리지데어로 이름을 바꾸었다. 또한 같은 해 자동차 고객에게 자금을 제공하는 제너럴 모터스 금융 회사(GMAC)가 설립되었다.
1920년, 듀퐁은 다시 한번 듀란트를 해임하고 알프레드 P. 슬론을 그 자리에 임명했다. 슬론은 매년 모델을 변경하여 이전 연도 모델을 "구식"으로 만들고 중고차 시장을 창출했으며, 쉐보레, 폰티악, 올즈모빌, 뷰익, 캐딜락을 가장 저렴한 가격부터 가장 비싼 가격 순으로 책정했다.
1921년, GM의 엔지니어 토마스 미들리 주니어는 테트라에틸납을 발견했고, GM은 이 화합물에 대한 특허를 획득했다. 이는 더 높은 압축 엔진 개발로 이어져 더 많은 동력과 효율성을 가져왔다. 그러나 가솔린에 포함된 납은 인간을 포함한 여러 생물체에 해로운 것으로 밝혀졌다. 미들리는 프레온도 개발했는데, 이는 현재 기후 변화에 대한 기여로 인해 금지되었다.
1925년, GM은 복스홀 모터스를 2.5에 인수했다. 같은 해 옐로우 캡 제조 회사의 지분을 인수했고, 존 D. 허츠는 GM 이사회에 합류했다. 1943년에 나머지 회사를 인수했다. 1926년, 폰티악 브랜드를 출시하고 직원들에게 생명보험을 제공하는 제너럴 모터스 그룹 보험 프로그램을 설립했다. 그 다음 해, 캐딜락 라살 1927년형 모델(디자이너 해리 얼)의 성공 이후, 슬론은 GM에 "예술 및 색상 부서"를 만들고 얼을 초대 부서장으로 임명했다. 얼은 오늘날에도 사용되는 자동차 디자인 시스템을 만들었다. 빌 미첼은 얼에 의해 GM 디자인팀에 영입되었고, 이후 캐딜락의 수석 디자이너로 임명되었다. 1958년 12월 얼이 은퇴한 후, 미첼이 GM의 자동차 디자인을 맡았다. 1926년에는 자동차 차체 공급업체인 피셔 바디를 인수했다.
GM은 앨리슨 엔진 회사를 인수하고 1929년에 1,000마력의 수냉식 항공기 엔진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같은 해, 오펠의 지분 80%를 26에 인수했다. 나머지 20%는 1931년에 인수했다.
1920년대 후반, 찰스 케터링은 자동차에 사용할 수 있는 경량의 2행정 디젤 엔진 개발을 시작했다. 얼마 후, GM은 일렉트로-모티브 회사와 윈튼 엔진 회사를 인수했고, 1941년에는 EMC의 영역을 기관차 엔진 제조로 확장했다.
1932년, GM은 패커드 일렉트릭을 인수했다. 1933년에는 노스 아메리칸 에비에이션의 지배 지분을 인수하여 제너럴 에비에이션 매뉴팩처링 코퍼레이션과 합병했다.
GM 노동력은 1935년 미국 자동차 노동 조합 노동 조합 결성에 참여했고, 1936년 UAW는 플린트 앉아서 파업을 조직했는데, 처음에는 미시간주 플린트의 두 주요 공장을 놀라게 했고, 이후 다른 6개 공장으로 확산되었다. 이 파업은 1937년 2월 11일 GM이 UAW를 근로자의 독점적 교섭 대표로 인정하고 근로자에게 5%의 임금 인상과 구내식당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면서 해결되었다.
1937년, GM의 월터 E. 조미니와 A.L. 보이게홀드는 탄소강의 경화성을 위한 조미니 엔드 퀀치 시험을 발명했는데, 이는 오늘날에도 ASTM A255로 사용되는 열처리의 획기적인 발전이었다. 이듬해 디트로이트 디젤을 설립했다.
1939년, 모터스 보험 회사를 설립하고 자동차 보험 시장에 진출했다. 같은 해, 1940년 올즈모빌을 위해 최초의 저렴하고 성공적인 자동 변속기인 하이드라마틱을 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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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 대전 동안 GM은 제2차 세계 대전 연합국을 위해 막대한 양의 무기, 차량, 항공기를 생산했다. 1940년 GM의 윌리엄 S. 크누드센은 대통령 프랭클린 루즈벨트의 미국 전시 생산 책임자를 역임했고, 1942년까지 GM의 모든 생산은 전쟁 지원을 위해 이루어졌다. GM의 복스홀 모터스는 연합군을 위해 처칠 탱크를 제조했는데, 이는 북아프리카 작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독일에 본사를 둔 오펠 부서는 베르마흐트에 차량을 공급했다. 당시 GM의 수장이었던 슬론은 노동 조합과 대중교통을 지원했던 뉴딜 정책의 열렬한 반대자였으며, 아돌프 히틀러를 존경하고 지지했다. 나치 무기 책임자 알베르트 슈페어는 1977년 히틀러가 제너럴 모터스가 제공한 합성 연료 기술 없이는 "폴란드 침공을 고려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GM은 전쟁 중 미군의 폭격으로 독일 공장이 피해를 입어 미국 정부로부터 32의 보상을 받았다.
2.2. 전후 번영과 위기 (1946년 ~ 2008년)
1953년 1월 28일, 당시 GM 사장이었던 찰스 어윈 윌슨은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에 의해 미국 국방장관으로 임명되었다. 같은 해 12월, GM은 덤프트럭, 로더 및 휠 트랙터 스크레이퍼를 포함한 토목 공사용 중장비 제조업체인 유클리드 트럭을 인수했으며, 이후 테렉스 브랜드를 탄생시켰다. 1956년 4월, 알프레드 P. 슬론이 회장직에서 물러나자 알버트 브래들리가 그의 뒤를 이었다.
1962년, GM은 세계 최초로 터보차저가 장착된 양산차인 올즈모빌 컷라스 터보-제트파이어를 출시했다. 2년 후, 회사는 1964년 뉴욕 세계 박람회에서 "탁월함의 상징(Mark of Excellence)" 로고와 상표를 선보였다. 이 상표는 2021년까지 회사의 주요 기업 식별자로 사용되었다.
1966년, GM은 최초의 수소 연료 전지 자동차인 일렉트로밴을 출시했다. 제너럴 모터스는 유니온 카바이드에서 공급받은 연료 전지를 사용하여 "수백만 달러"의 예산으로 차량의 바퀴에 동력을 공급했다.
1960년대에 GM은 V6 엔진의 초기 지지자였지만, 머슬카의 인기가 높아짐에 따라 빠르게 관심을 잃었다. GM은 등유로 구동되는 가스터빈 차량을 시연했지만, 1973년 석유 위기로 인해 대체 엔진 구성을 포기했다.
1971년, GM의 델코 방위 전자 부서는 보잉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달 표면을 탐험한 달 탐사 차량을 설계했다. 이듬해, GM은 토로나도와 엘도라도 두 모델에 최초로 후륜 안티록 브레이크 시스템을 장착했다.
1973년, 올즈모빌 토로나도는 승객용 에어백이 장착되어 판매된 최초의 양산차였다.
1974년 11월, 토마스 머피가 리처드 C. 거스텐버그의 뒤를 이어 CEO가 되었다.
GM은 1975년형 모델에 최초로 촉매 변환기를 장착했다.
1978년부터 1985년까지 GM은 디젤 엔진과 실린더 비활성화 기술의 장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올즈모빌 디젤 엔진의 내구성 저하와 캐딜락 V8-6-4 가변 실린더 엔진의 주행 성능 문제로 인해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했다.
GM은 1979년에 프리지데어를 매각했다.
1984년, GM은 로저 스미스 CEO의 전략에 따라 로스 페로로부터 일렉트로닉 데이터 시스템즈(EDS)를 2500에 인수했다. 1986년, GM은 로스 페로가 보유한 모든 주식을 750에 매입했다.
1985년, GM은 휴즈 항공을 현금과 주식 5에 인수하여 델코 일렉트로닉스와 합병했다. 이듬해, GM은 고성능 스포츠카를 생산하는 영국의 로터스 지분 59.7%를 인수했다.
1989년, GM은 600에 사브 자동차 자동차 사업의 절반을 인수했다.
1950년대에 GM은 미국의 최대 기업이 되었고, 1955년 12월 말, 미국에서 최초로 연 매출 1를 돌파한 기업이 되었다.
1959년, GM의 유클리드 트럭이 생산하는 덤프트럭과 토목용 장비가 시장을 독점하여 반독점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었다. 8년간의 재판 끝에 GM은 유클리드 브랜드 매각에 합의했고, 1968년부터 1972년까지 4년간 미국 내 건설기계 판매가 금지되었다.
1970년대 이후, 석유파동으로 소형차 수요가 증가했지만, GM은 품질과 생산성 저하를 겪었다. 1981년부터 1990년까지 회장직을 역임한 로저 스미스 재임 시절, 다양한 노력이 진행되었다. 1984년에는 도요타와 합작회사 NUMMI를 설립하여 품질관리 노하우를 흡수했다.
1996년 GM은 디트로이트의 워터프런트에 있는 재개발 건물인 르네상스 센터를 인수하고, 세계 본사를 이전했다.
2000년경부터 소비자의 기호는 연비가 좋은 소형차로 이동했지만, GM은 풀사이즈 SUV와 픽업트럭에 집중하여 소형차 부문을 정리, 축소했다.
2001년 미국 동시다발 테러 사건 직후 판매량이 떨어졌을 때 생산량을 줄이지 않아 재고가 증가했다. 2005년까지 기업 수익은 급격히 악화되었고, 회사채는 “투자 부적격”으로 평가받게 되었다.
2005년 이후에는 제휴 회사의 주식 처분도 진행되었다. 2008년 11월 18일, 스즈키와의 자본 제휴를 완전히 해소했다.
2007년 자동차 판매 대수는 도요타 그룹과 근소한 차이로 세계 1위였지만, 2008년 상반기에는 77년간 지켜온 판매 대수 세계 1위 자리를 도요타에 내주었다.
GM의 순손실액은 2005년 10567, 2006년 1978, 2007년 38732였다.
2008년 1분기부터 3분기까지의 재무 데이터는 매출액 118600, 영업 손실 13900, 순손실 21300였다. 2008년 3분기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13% 감소한 37941였다.
2008년 10월 GM의 신차 판매 대수가 전년 동월 대비 45% 감소하는 상황 속에서, 미국 재무부는 GM과 크라이슬러의 합병에 필요한 구조조정 비용 10 지출을 거부했고, GM은 크라이슬러와의 합병 협의를 중단했다.
2008년 11월 11일에는 주가가 2.75달러로 1943년 이후 65년 만의 최저가를 기록했다. 11월 GM의 신차 판매는 2개월 연속 40% 감소(-41.2%)였다.
GM은 포드, 크라이슬러와 함께 미국 연방 정부에 금융 지원을 요구했지만, 의회는 11월에 표결을 하지 않았다. 12월 19일, 조지 W. 부시는 GM에 13400, 크라이슬러에 4000를 합쳐 17400의 추가 융자를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2.3. 파산 보호 신청과 회생 (2009년 ~ 현재)
2009년 6월 1일, 제너럴 모터스(GM)는 미국 연방 파산법 제11장에 따른 파산 보호를 신청했다. 이는 일본의 민사 재생 절차와 유사한 제도이다. 당시 GM의 부채 총액은 1,728억 달러(약 16)로, 제조업 역사상 최대 규모였다. 이와 동시에 미국 정부가 60%, 캐나다 정부가 12%의 지분을 보유하는 사실상의 국유 기업으로 재건을 목표로 했다.
뉴욕 증권거래소는 GM의 파산 보호 신청을 받아들여 2009년 6월 2일 거래 시작 전부터 GM 주식의 매매를 중단하고 상장 폐지했다. 티커 심볼은 "GM"에서 "GMGMQ"로 변경되었다. 이에 따라 다우존스는 자사가 산출·공표하는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 구성 종목에서 GM을 제외했다. 같은 해 6월 3일, 생산 설비를 포함한 "험머 브랜드" 인수에 대해 중국의 텐중 중공과 합의했지만, 중국 정부의 승인을 얻지 못해 브랜드는 폐지되었다.
이에 앞서 2009년 2월 20일, 자회사인 세브 오토모빌이 스웨덴 정부의 공적 지원을 거부당하면서 사실상 경영 파탄에 이르렀다. 2009년 4월, 미국 정부는 GM에 5, 크라이슬러에 500를 합쳐 총 5.5의 추가 유동성 지원을 결정했고, 4월 말 크라이슬러에 500의 자금 지원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회사 측과 채권자 간의 부채 감축 협상이 5월 26일 심야에 결렬되면서, 다음 날 27일 협상 중단이 발표되었다. 미국 정부 지원 조건 충족이 불투명해지면서 29일 뉴욕 증권거래소에서 GM 주가는 0.75USD로 급락, 1933년 이후 76년 만에 1달러 아래로 떨어졌다.
3. 브랜드
제너럴 모터스는 여러 브랜드를 소유하고 있다. 현재 산하 브랜드로는 쉐보레, 캐딜락, 뷰익, GMC, 상하이-GM 우링, 바오준 등이 있다.
과거에는 올즈모빌, 폰티액, 허머, 새턴 등의 브랜드도 소유했었다. 2017년에는 오펠과 복스홀을 PSA 그룹에 매각하며 유럽 시장에서 철수했고, 2020년에는 쉐보레의 태국 생산·판매를 종료, 2021년에는 홀덴 브랜드의 호주 및 뉴질랜드 판매를 종료하며 우핸들 시장에서 완전히 철수했다.
3.1. 현재 브랜드
3.2. 과거 브랜드
| 원산국 | 브랜드 | 설립 | 생산 시작 | GM 합류 | 결과 | 폐업 또는 매각 | 비고 |
|---|---|---|---|---|---|---|---|
| 아카디안(Acadian) | 1962 | 1962 | 1962 | 단종 | 1987 | 1971년까지는 폰티액 디자인 요소가 가미된 쉐보레 II였으며, 1976년 이후에는 폰티악의 이름과 외관을 가진 쉐보레 씨비엣이었다. | |
| 알페온(Alpheon) | 2010 | 2010 | 2010 | 단종 | 2015 | 유일한 모델은 뷰익 라크로스를 기반으로 했다. | |
| 아수나(Asüna) | 1992 | 1992 | 1992 | 단종 | 1994 | 스즈키, 이스즈, 토요타 모델로 구성되었다. | |
| 보먼트(Beaumont) | 1966 | 1966 | 1966 | 단종 | 1969 | 폰티악 디자인 요소가 가미된 캐나다산 쉐벨 | |
| 베드퍼드(Bedford) | 1931 | 1931 | 1931 | 단종 | 1991 | ||
| 카터카(Cartercar) | 1905 | 1905 | 1909 | 단종 | 1915 | ||
| 일렉트로 모티브 디젤(Electro Motive Diesel) | 1922 | 1924 | 1930 | 프로그레스 레일에 매각 | 2010 | EMD는 여전히 SD70ACe와 같은 기관차를 생산한다. | |
| 대우(Daewoo) | 1972 | 1972 | 1999 | 단종 | 2011 | GM 한국에 의해 계승됨 | |
| 엘모어(Elmore) | 1893 | 1900 | 1912 | 단종 | 1916 | ||
| 앙보이(Envoy) | 1959 | 1959 | 1959 | 단종 | 1970 | 캐나다 쉐보레 및 올즈모빌 대리점에서 판매되는 수입 복스홀 및 베드퍼드 차량 | |
| 에픽(Epic) | 1964 | 1964 | 1964 | 단종 | 1970 | 캐나다 폰티악, 뷰익 및 GMC 대리점에서 판매되는 수입 복스홀 모델 | |
| 지오(Geo) | 1989 | 1989 | 1989 | 단종 | 1997 | 스즈키, 이스즈, 토요타 모델로 구성되었다. 쉐보레 대리점을 통해 판매되었다. | |
| 홀덴(Holden) | 1856 | 1908 | 1926 | 단종 | 2020 | ||
| 험머(Hummer) | 1992 | 1992 | 1998 | 부서로서 단종, 브랜드명은 GMC에서 부활 | 2010 | 모회사 AM 제너럴, 이전에는 AMC 소유. 1978년 AMC와 르노 합병 후 독립. 2021년 GMC 험머 EV를 위해 브랜드명 부활 | |
| 라세일(LaSalle) | 1927 | 1927 | 1927 | 단종 | 1940 | 캐딜락의 자매 브랜드 | |
| 리틀(Little) | 1911 | 1911 | 1913 | 단종 | 1913 | 1913년 쉐보레에 흡수됨. | |
| 로터스(Lotus) | 1948 | 1948 | 1986 | 로마노 아르티올리에게 매각 | 1993 | 현재 지리자동차 소유 | |
| 마케트 (1)(Marquette (1)) | 1909 | 1909 | 1909 | 단종 | 1912 | 이전에는 페닌슐라 모터 컴퍼니. 레이니어와 웰치 브랜드 기반. | |
| 마케트 (2)(Marquette (2)) | 1929 | 1929 | 1929 | 단종 | 1931 | 1928년 뷰익의 자매 브랜드. | |
| 메이슨(Mason) | 1898 | 1900 | 1918 | 단종 | 1918 | 1915년 쉐보레의 자매 부서로 흡수됨. | |
| 맥러플린(McLaughlin) | 1907 | 1907 | 1918 | 단종 | 1942 | 캐나다 뷰익 관련, 제너럴 모터스 캐나다의 기반이 됨 | |
| 오클랜드(Oakland) | 1907 | 1907 | 1909 | 단종 | 1931 | 폰티악에 의해 대체됨 | |
| 올즈모빌(Oldsmobile) | 1897 | 1897 | 1908 | 단종 | 2004 | ||
| 오펠(Opel) | 1899 | 1899 | 1931 | PSA 그룹에 매각 | 2017 | 현재 스텔란티스 소유 | |
| 패스포트(Passport) | 1987 | 1987 | 1987 | 단종 | 1991 | 스즈키, 이스즈, 토요타 모델로 구성됨 | |
| 폰티악(Pontiac) | 1926 | 1926 | 1926 | 단종 | 2010 | 오클랜드의 자매 브랜드로 시작됨 | |
| 레이니어(Rainier) | 1905 | 1905 | 1909 | 단종 | 1911 | 1909년 인수 후 마케트 모터 컴퍼니로 재편. 1911년까지 '레이니어' 자동차 생산 | |
| 릴라이언스(Reliance) | 1903 | 1903 | 1911 | 단종 | 1912 | GMC가 되는 것으로 통합됨 | |
| 레인저(Ranger) | 1968 | 1968 | 1968 | 단종 | 1978 | ||
| 래피드(Rapid) | 1902 | 1902 | 1909 | 단종 | 1912 | GMC가 되는 것으로 통합됨 | |
| 사브(Saab) | 1945 | 1949 | 1990 | 스파이커 N.V.에 매각 | 2010 | 2016년 회사 폐업 | |
| 새턴(Saturn) | 1985 | 1990 | 1985 | 단종 | 2010 | ||
| 스크립스-부스(Scripps-Booth) | 1913 | 1913 | 1916 | 단종 | 1923 | ||
| 셰리던(Sheridan) | 1920 | 1920 | 1920 | 단종 | 1921 | 기술적으로 제너럴 모터스가 개발한 최초의 자동차였음 | |
| 스테이츠맨(Statesman) | 1971 | 1971 | 1971 | 단종 | 1984 | 홀덴의 부서 | |
| 복스홀(Vauxhall) | 1903 | 1903 | 1925 | PSA 그룹에 매각 | 2017 | 현재 스텔란티스 소유 | |
| 바이킹(Viking) | 1929 | 1929 | 1929 | 단종 | 1930 | 올즈모빌의 자매 브랜드로 시작됨 | |
| 웰치(Welch) | 1901 | 1901 | 1910 | 단종 | 1911 | 인수 직후 브랜드 폐쇄 | |
| 윈튼(Winton) | 1897 | 1897 | 1930 | 단종 | 1962 | 윈튼 엔진 코퍼레이션으로 재편. 1938년 GM의 클리블랜드 디젤 엔진 부서와 합병. 1962년 일렉트로-모티브 디젤에 통합됨. | |
| 옐로우 캡(Yellow Cab) | 1920 | 1920 | 1925 | 단종 | 1943 | GMC에 흡수됨 | |
| 옐로우 코치(Yellow Coach) | 1923 | 1923 | 1925 | 단종 | 1943 | GMC에 흡수됨 |
4. 대한민국과의 관계
1915년 야나세 자동차(현 야나세)가 수입 대리점으로서 GM의 뷰익, 캐딜락 판매를 시작했다. 당시 뷰익은 ‘비우익호’, 캐딜락은 ‘카데라츠쿠호’로 표기되었다. 나중에 쉐보레도 판매를 시작했다.
1925년 포드가 일본에 진출하여 가나가와현요코하마시에 조립 공장을 개업했다. 1927년 GM은 오사카시항구구 (현・다이쇼구) 츠루마치 1정목(현재 오사카 시영 도선 선마치 도선장 부근)에 일본 법인인 일본 제너럴 모터스를 설립하고, 조립 공장에서 쉐보레 차량의 완전 노크다운 생산과 판매를 실시했다. 포드와 마찬가지로 일본뿐 아니라 중화민국과 만주국 등 아시아 전체를 시야에 넣은 진출이었다.
GM은 전국에 걸친 자동차 판매 서비스 (판매・정비)망을 구축했고, 이후 자동차 판매업계는 여기서부터 발전한 것이다. 쇼와 초기 일본 국내 중형차 시장은 GM의 쉐보레와 포드의 독점 시장이었다.
하지만 1930년대 중반에는 일미 관계가 악화되어, 1936년 자동차 제조 사업법 시행에 따라 닛산자동차나 토요타자동차 등 국산 메이커만 대량 생산이 허용되어 발전의 여지가 없어졌고, 1941년 (대동아 전쟁 개전의 해)에 일본에서 철수했다.
제2차 세계 대전 후, 다시 야나세가 일본 시장의 판매 대리점을 장기간 맡은 한편, 차종에 따라 세이부 자동차 판매, 닛폰 에이코 자동차, 토호 모터스, 미쓰이물산 오토모티브도 GM차 판매에 참여했다.
최근의 일본 법인은 일본 제너럴 모터스(GMJ)와 제너럴 모터스 아시아 태평양 재팬(GMAPJ)의 2사 체제였지만, 2011년 두 회사가 합병하여 제너럴 모터스 재팬 주식회사가 되었다. 현재는 캐딜락과 쉐보레 브랜드를 판매하고 있다.
5. 논란 및 비판
1938년부터 1950년 사이에 GM은 1890년 셔먼 반독점법(Sherman Antitrust Act of 1890)을 위반하여, 내셔널 시티 라인스(National City Lines, NCL) 및 그 자회사에 대한 버스 및 부품 판매를 의도적으로 독점함으로써, 미국의 많은 도시에서 노면전차 시스템을 해체하고 GM이 판매하는 버스를 주요 대중교통 수단으로 만들려고 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1965년에 출판된 랠프 네이더(Ralph Nader)의 저서 어느 속도에서도 안전하지 않다: 미국 자동차의 설계상 위험성은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안전 기능 도입을 늦추고 안전 개선에 돈을 쓰는 것을 꺼린다고 비난했다. 이 책은 특정 상황에서 '차체 밑으로 끼어드는(tuck under)' 현상이 발생하기 쉬운 스윙 액슬(swing axle) 서스펜션 디자인을 채택한 초기형 쉐보레 코베어(Chevrolet Corvair, 1960~1964년형)와 관련이 있다. 비용 절감을 위해 프런트 스태빌라이저 바(안티롤 바)를 제거한 것을 보완하기 위해 코베어는 타이어 제조업체의 권장 허용치를 벗어나는 타이어 공기압을 필요로 했다. 코베어는 전후방 공기압 차이가 비정상적으로 컸다(차가운 상태에서 앞 15psi, 뒤 26psi; 뜨거운 상태에서 앞 18psi, 뒤 30psi). 당시 다른 모든 차량의 표준 관행이었던 것처럼 타이어 공기압을 동일하게 채우면 위험한 오버스티어가 발생했다.
1966년 3월 초, 뉴 리퍼블릭과 뉴욕 타임즈를 포함한 여러 언론 매체는 GM이 랠프 네이더의 명예를 훼손하려고 사설 탐정을 고용하여 그의 전화를 도청하고 과거를 조사했으며, 그를 함정에 빠뜨리려고 매춘부를 고용했다고 주장했다. 네이더는 GM을 상대로 프라이버시 침해 소송을 제기하여 425000USD에 합의했다. 네이더의 GM 상대 소송은 결국 뉴욕 항소법원(New York Court of Appeals)에서 판결되었고, 이 판결은 "과도한 감시"를 다루는 불법행위법(tort law)을 확장했다. 네이더는 소송으로 얻은 수익금을 사용하여 소비자 옹호 단체인 책임 있는 법 연구 센터(Center for Study of Responsive Law)를 설립했다.
1972년 텍사스 A&M 대학교(Texas A&M University)가 실시한 안전 위원회 보고서는 1960~1963년형 코베어가 극한 상황에서 다른 경쟁 차량보다 제어력 상실 가능성이 더 크지 않다고 결론지었다. 같은 해 미국 교통부(United States Department of Transportation, DOT)는 전년도의 국가 고속도로 교통 안전청(National Highway Traffic Safety Administration, NHTSA) 테스트 결과를 설명하는 보도 자료를 발표했다. NHTSA는 1971년에 1963년형 코베어와 당시의 다른 네 대의 차량(포드 팔콘(Ford Falcon), 플리머스 발리언트(Plymouth Valiant), 폭스바겐 비틀(Volkswagen Beetle), 르노 도핀(Renault Dauphine))과 2세대 코베어(완전히 새롭게 설계된 독립형 후방 서스펜션 장착)의 핸들링을 연구하는 일련의 비교 테스트를 실시했다. 143페이지 분량의 보고서에서는 NHTSA의 극한 상황 핸들링 테스트, 테스트 차량의 전국 충돌 관련 데이터, 코베어의 핸들링에 관한 제너럴 모터스의 내부 문서를 검토했다. NHTSA는 테스트를 검토하기 위해 독립적인 엔지니어 자문단을 계약했고, 이 검토 위원회는 "1960~63년형 코베어는 테스트에 사용된 당시 차량과 비교하여 우수하며... 1960~63년형 코베어의 핸들링 및 안정성 성능은 제어력 상실 또는 전복 가능성이 비정상적으로 높지 않으며, 일부 국내외 경쟁 차량의 성능만큼은 우수하다"고 결론지었다.
1980년, 전 GM 임원 존 딜로리언(John DeLorean)은 그의 저서 맑은 날에는 제너럴 모터스를 볼 수 있다(On a Clear Day You Can See General Motors)에서 네이더의 비판이 타당하다고 썼다. 기자 데이비드 E. 데이비스(David E. Davis)는 네이더가 스윙 액슬 후방 서스펜션이 위험하다고 주장했음에도 불구하고 포르쉐(Porsche), 메르세데스-벤츠(Mercedes-Benz), 폭스바겐(Volkswagen)이 모두 당시에 유사한 스윙 액슬 개념을 사용했다고 말했다.
2002년, 제너럴 모터스(GM)는 다른 다국적 기업들과 함께 쿠루마니 지원 그룹(Khulumani Support Group)이 대표하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시민 단체의 소송을 당했다. 원고들은 GM이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 시대 남아프리카공화국 보안군에 차량을 제공했다고 주장했다. GM은 2012년 원고들과 합의하여 최대 1500000USD를 지급하기로 했다.
2014년 5월,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ational Highway Traffic Safety Administration)은 제너럴 모터스(General Motors)가 결함이 있는 점화 장치 문제를 알고도 10년 동안 리콜하지 않은 것에 대해 35의 벌금을 부과했다. 제너럴 모터스는 결함 있는 점화 장치와 관련된 124명의 사망에 대해 보상금을 지급했다. 35의 벌금은 규제 기관이 부과할 수 있는 최대 금액이었다. 리콜 총비용은 1500로 추산되었다. 코발트(Cobalts) 외에도 문제가 된 점화 장치는 폰티악 G5, 새턴 Ion, 쉐보레 HHR, 새턴 Sky, 폰티악 솔스티스와 같은 다른 많은 차량에도 설치되었다. 리콜은 전 세계적으로 약 260만 대의 GM 차량에 해당되었다.
2020년, 호주 전략정책연구소(Australian Strategic Policy Institute)는 제너럴 모터스를 포함한 82개 이상의 주요 브랜드가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강제 위구르족 노동과 연관되어 있다고 비난했다.
제너럴 모터스(General Motors)는 운전자의 매우 상세한 데이터를 수집하여 소비자의 동의나 지식 없이 보험 회사에 개인 정보를 판매한 것에 대해 비판을 받고 있다. 텍사스 주 법무장관 켄 팩스턴(Ken Paxton)은 2024년 8월 13일 제너럴 모터스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여 제너럴 모터스가 렉시스넥시스 리스크 솔루션스(LexisNexis Risk Solutions)와 베리스크 애널리틱스(Verisk Analytics) 등 최소 두 개의 회사에 정보를 판매했고, 이들 회사가 다시 보험 회사에 정보를 판매했다고 주장했다.
48세에 GM 북미 승용차·트럭 부문 부사장(기함 브랜드인 시보레 사업부장에서 승진. 일본식으로 말하면 전무)이 된 존 딜로리언(John DeLorean)(그가 만든 델로리안 DMC-12는 영화 「백 투 더 퓨처」에도 등장한다)은 재무 부문과의 내부 갈등에서 패배하여 퇴사했고, 「맑은 날에는 GM이 보인다」(원제: ON A CLEAR DAY YOU CAN SEE GENERAL MOTORS: 1979)라는 인터뷰 기록(본인 비승인)이 출판되었다. 그중에서 특히 강조되는 것은 외부나 내부에서 나온 충고·제안을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거절하는 모습이다.
강하게 인상에 남는 내용은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가 GM을 연구한 긍정적인 저서 「회사라는 개념」(1946년)에서 쓰여진 "전후에는 조직·사업·목표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라는 온건한 서술에 대해 일어난 GM 내부의 분노이다. 「GM은 세계 최고이기 때문에 비판은 있을 수 없다」라는 논리이다. 또한 최상층부(「14층」)에는 자동차 산업 운영의 지식과 경험과 능력이 없다고도 쓰고 있다.
저널리스트 데이비드 할버스탐은 『거장의 오만-자동차, 남자들의 산업사』(원저, 1986년)에서 GM을 비롯한 빅3가 오만해져서 그 결과 일본차의 공세에 점차 패배하지만 개혁을 거부하는 태도를 그리고 있다.
소비자 운동가 랠프 네이더가 『어떤 속도에서도 자동차는 위험하다』( Unsafe at Any Speed )라는 시보레 콜베어의 결함을 고발한 책을 출판했을 때 GM으로부터 탐정의 미행을 당했고, GM은 의회에서 사과하는 상황이 되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은 이 활동은 최상층부의 승인 없이 자동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GM은 비판을 여러 가지 수단으로 억압하는 회사로 여겨졌다(네이더는 매우 금욕적인 인물이었고, 전혀 약점을 찾을 수 없었다).
현재의 GM은 「그것들은 옛날 GM이며, 지금의 GM과는 다르다」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2014년에 발각된 대규모 리콜 은폐로 인해 세금으로 구제받았음에도 제너럴 모터스의 은폐 체질은 변하지 않았다고 비판받고 있다.
6. 모터스포츠
제너럴 모터스는 주로 투어링카 및 스포츠카 레이스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특히 쉐보레 브랜드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미국 내 최고봉인 NASCAR컵 시리즈에서는 쉐보레가 데이토나 500과 몬스터 에너지 NASCAR컵 시리즈에서 최다 챔피언 브랜드로 군림하고 있다. 2018년 현재 헨드릭 모터스포츠, 칩 가나시 레이싱과 같은 팀들이 쉐보레로 참전하고 있으며, 쉐보레 엔진은 헨드릭 모터스포츠와 ECR(리처드 차일드레스 레이싱의 엔진 부문)이 개발을 담당하고 있다.
프로토타입 레이싱카에서는 1965년 세브링 12시간, 1969년 데이토나 24시간을 쉐보레 엔진 탑재 차량이 제패했다. 아메리칸 르망 시리즈에 캐딜락 노스스타 LMP로 참전했으며, 2012년부터 로렉스 스포츠카 시리즈(그랜담 시리즈)에 콜벳을 본뜬 데이토나 프로토타입(콜벳 DP)으로 참전하여 2016년까지 6년 연속 챔피언십을 석권했다. 2017년 데이토나 프로토타입 인터내셔널(DPi) 규정이 도입되면서 쉐보레에서 캐딜락으로 브랜드를 변경했다. 섀시는 달라라와의 공동 개발이며, 엔진은 DPi 4개 제조사 중 유일하게 대배기량 자연흡기 엔진을 탑재하고 있다. 이 머신은 데이토나 24시간, 세브링 12시간, 챔피언십을 모두 제패했다. 고바야시 가무이도 2019년과 2020년에 캐딜락 DPi를 운전하여 데이토나 24시간을 연속 우승했다. 2017년까지 존재했던 오레카 FLM09의 원메이크인 LMPC 클래스에 쉐보레의 V8 자연흡기 엔진을 공급했다.
GT카에서는 1999년에 콜벳 레이싱을 조직하여 쉐보레 콜벳으로 르망 24시, 데이토나, 세브링에 매년 참전하고 있다. 콜벳 레이싱은 페라리, 포르쉐에 뒤지지 않고 르망에서 8번이나 클래스 우승을 차지했다. PWC(피렐리 월드 챌린지)에는 쉐보레 카마로 외에 캐딜락이나 폰티악 머신으로 참전하고 있다.
세계 각지의 투어링카 레이스에도 참전하고 있으며, 영국의 BTCC에는 쉐보레, 복스홀, 오펠(후 2개사는 2017년 PSA에 매각됨), 구 독일 투어링카 챔피언십(DTM 1기)에는 오펠, 스톡카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슈퍼 TC2000, 호주 슈퍼카 챔피언십(구 V8슈퍼카는 홀덴 브랜드)에는 쉐보레 브랜드가 각각 활약하여 수많은 타이틀을 획득하고 있다. 스톡카 브라질은 현지 쉐보레 딜러 협회를 뿌리로 하기 때문에 역사의 대부분이 쉐보레 차량의 원메이크이다. WTCC에도 2005년 쉐보레 브랜드를 유럽에 부활시켰을 때 참전을 시작하여, 이반 뮐러와 로버트 허프에 의해 2010년~2012년에 드라이버, 제조사 3연패를 달성했다. 2013년 이후는 제조사로서의 참전은 철수했지만, 프라이베이터인 RML이 쉐보레 크루즈를 개발·공급함으로써 계속 존속하고 있으며, 2013년에는 웍스 팀을 제치고 뮐러가 드라이버 타이틀을 획득하고 있다.
북미 포뮬러카(오픈휠) 최고봉인 인디카 시리즈에 자주 참전하여 1986년~1993년에는 인디 500에서 6연승을 장식하고, 같은 기간 CART(Champ Car World Series)에서도 1993년을 제외하고 5연패를 달성했다. 이후 쉐보레에서 올즈모빌(오로라)로 브랜드를 변경하여, 여기에서도 1997년부터 2002년까지 인디 500을 5연패했다. 2005년에 철수했지만, V8 자연흡기에서 V6 터보로 전환된 2012년에 복귀했다. 복귀 후 챔피언십 획득 수는 혼다를 능가하고 있다. 과거에는 포뮬러 5000에 엔진을 공급했던 것 외에, 주니어 카테고리의 포뮬러 쉐보레(브라질), 포뮬러 오펠, 포뮬러 복스홀 주니어(이상 유럽) 등도 운영했다. 사토 타쿠마도 포뮬러 오펠과 포뮬러 복스홀 주니어 출신이다.
2026년부터 캐딜락 브랜드명(캐딜락 F1팀)으로 F1에 참전하고, 2028년부터는 파워 유닛도 자체 제작하는 풀 웍스 팀으로 할 예정이다.
랠리에서는 그룹 4 및 그룹 B 시대에 오펠이 WRC에 참전하여, 1982년에 발터 뢰를이 드라이버 타이틀을, 1983년에 하위 클래스인 FIA 2리터 컵을 획득했지만, 그 이외에는 거의 기록이 없다. 한편 북미의 랠리 레이드나 오프로드 레이스에서는 GM제 픽업 트럭이 자주 볼 수 있다.
일본 레이스 카테고리에서는 JTCC(전일본 투어링카 챔피언십)나 JGTC(전일본 GT 챔피언십)에 복스홀 벡트라와 오펠 아스트라가, SUPER GT에 콜벳이 참전했지만, 어느 것도 큰 성과를 남기지 못하고 끝났다. 또한 쉐보레 캐벌리어의 OEM인 토요타 캐벌리어도 FF차량이면서 N1 내구(후의 슈퍼 내구)나 JGTC에 참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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