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 동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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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라인 동맹은 1806년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1세의 주도로 결성된 프랑스 주도의 국가 연합으로, 뤼네빌 조약 이후 라인강 서안의 독일 영토 병합으로 새롭게 형성된 중앙 유럽의 질서를 반영한다. 이 동맹은 신성 로마 제국의 해체와 함께 4개의 왕국, 5개의 대공국, 13개의 공국, 17개의 후국, 3개의 자유 도시를 포함하며, 프랑스의 보호 아래 군사적 지원을 제공했다. 동맹 내 국가는 나폴레옹의 친척이 통치하는 모델 국가, 개혁 국가, 그리고 소규모 국가로 구분되었으며, 각기 다른 정도의 자치권을 가졌다. 1813년 나폴레옹에 대항한 동맹국에 의해 해체되었고, 이후 빈 회의를 거쳐 독일 연방으로 재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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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 동맹 - [옛 나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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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정보 | |
기본 정보 | |
공식 명칭 (독일어) | Rheinische Bundesstaaten |
공식 명칭 (프랑스어) | États confédérés du Rhin |
일반 명칭 | 라인 동맹 |
다른 명칭 (독일어) | Rheinbund |
다른 명칭 (프랑스어) | Confédération du Rhin |
시대 | 나폴레옹 전쟁 |
지위 | 프랑스 제국의 종속 국가 연합 |
제국 | 프랑스 제1제국 |
정부 형태 | 프랑스 종속 국가들의 연합 |
존속 기간 시작 | 1806년 |
존속 기간 종료 | 1813년 |
설립 사건 | 라인 동맹 조약 |
설립 날짜 | 7월 12일 |
이전 국가 | 신성 로마 제국 |
이전 국가 국기 | Banner of the Holy Roman Emperor (after 1400).svg |
해산 사건 | 라이프치히 전투 이후 해산 |
해산 날짜 | 11월 4일 |
후계 국가 | 독일 연방 |
후계 국가 국기 | Wappen Deutscher Bund.svg |
수도 | 프랑크푸르트 |
공용어 | 독일어 프랑스어 |
종교 | 가톨릭교 개신교 |
통화 | 불분명 |
면적 | 불분명 |
정치 | |
보호자 | 나폴레옹 1세 |
보호자 재임 기간 | 1806년–1813년 |
수석 대리인 | 카를 폰 달베르크 |
수석 대리인 재임 기간 | 1806년–1813년 |
대리인 | 외젠 드 보아르네 |
대리인 재임 기간 | 1813년 |
입법부 | 의회 |
통치 기구 | 연방 |
기타 | |
현재 국가 | 독일 리히텐슈타인 오스트리아 |
민족 | 라인 동맹인 |
2. 역사적 배경
뤼네빌 조약으로 프랑스에 합병된 라인강 서안의 독일 영토는 중앙 유럽에 새로운 질서를 가져왔다. 1803년 최종 제국 칙령은 신성 로마 제국에 급진적인 변화를 일으켰다. 라인강 동쪽의 약 112개 제국 직속령이 더 큰 국가에 흡수되면서 3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영향을 받았다. 단 하나를 제외한 모든 교회령이 세속화되었고, 대부분의 자유 제국 도시는 중재화를 겪었다. 바덴 선제후국(Electorate of Baden)과 뷔르템베르크 공국(Duchy of Württemberg)은 프로이센과 더불어 이러한 변화로 가장 큰 이익을 얻었다. 교회령 소멸은 황제의 정치적 지지 기반 약화를 의미했다. 프란츠 2세는 1804년 오스트리아 황제(Emperor of Austria) 칭호를 사용하여 명성 손실을 만회하려 했다. 1805년 제3차 대프랑스 동맹 전쟁(War of the Third Coalition)에서 러시아, 오스트리아,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과 프랑스가 맞서면서 바이에른, 바덴, 뷔르템베르크는 나폴레옹과 동맹을 맺었다.[2]
아우스터리츠 전투 승리와 프레스부르크 조약(1805년)으로 나폴레옹은 독일에서 입지를 강화했다. 오스트리아는 영토를 할양해야 했고, 나폴레옹은 조제프와 루이를 각각 나폴리 왕국과 네덜란드 왕국 왕으로, 조아킴 뮈라(Joachim Murat)를 베르크 대공으로 임명했다. 또한 바덴, 바이에른, 뷔르템베르크와 동맹을 구축하고자 했다. 프란츠 2세는 바이에른과 뷔르템베르크를 왕국으로, 바덴, 헤세-다름슈타트, 베르크를 대공국으로 승격시켜야 했다. 프랑스 지원을 받은 이 지역의 작은 제국 영지 잔재는 합병되었다. 이러한 라인강 동안의 재편성은 라인 동맹의 기반이 되었다.[2][3]
2. 1. 신성 로마 제국의 쇠퇴와 해체
뤼네빌 조약 이후 프랑스가 점령한 라인강 서안의 독일 영토가 합병되면서 중앙 유럽 국가들의 새로운 질서가 수립되었다. 1803년 최종 제국 칙령은 신성 로마 제국 내에서 급진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라인강 동쪽의 약 112개의 제국 직속령이 더 큰 국가에 흡수되었다. 3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러한 변화의 영향을 받았다. 단 하나를 제외한 모든 교회령이 세속화되었고, 대부분의 자유 제국 도시는 중재화를 겪었다. 프로이센 외에도 바덴 선제후국(Electorate of Baden)과 뷔르템베르크 공국(Duchy of Württemberg)이 이러한 변화로 가장 큰 이익을 얻었다. 교회령의 소멸은 황제가 중요한 정치적 지지를 잃게 되었음을 의미했다. 쇠퇴한 신성 로마 제국의 종말은 예견되었다. 프란츠 2세는 1804년 명성의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오스트리아 황제(Emperor of Austria)의 칭호를 사용했다. 1805년 제3차 대프랑스 동맹 전쟁(War of the Third Coalition)이 발발하여 러시아, 오스트리아,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이 한편에, 프랑스가 다른 한편에 서게 되자 바이에른, 바덴, 뷔르템베르크는 나폴레옹과 동맹을 맺었다.[2]아우스터리츠 전투에서의 승리와 1805년 그 결과로 나온 프레스부르크 조약 이후 나폴레옹은 독일 국가들에서 자신의 입지를 크게 강화할 수 있었다. 오스트리아는 영토를 할양해야 했고, 나폴레옹은 자신의 형제인 조제프와 루이를 각각 나폴리 왕국과 네덜란드 왕국의 왕으로, 그리고 그의 매부인 조아킴 뮈라(Joachim Murat)를 베르크 대공으로 임명했다. 그는 또한 바덴, 바이에른, 뷔르템베르크와의 동맹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했다. 프란츠 2세는 바이에른과 뷔르템베르크가 왕국으로, 바덴, 헤세-다름슈타트 그리고 베르크가 대공국으로 승격되는 것을 승인해야 했다. 프랑스의 지원을 받아 그 지역의 작은 제국 영지의 잔재는 합병되었다. 라인강 동안의 이러한 재편성은 라인 동맹의 기반을 마련했다.[2][3]
2. 2. 나폴레옹의 독일 정책과 라인 동맹 결성
1803년 최종 제국 칙령으로 신성 로마 제국 내에서 큰 변화가 일어났다. 라인강 동쪽의 약 112개의 제국 직속령이 더 큰 국가에 흡수되었고, 3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러한 변화의 영향을 받았다. 대부분의 자유 제국 도시는 중재화를 겪었다. 프로이센 외에도 바덴 선제후국(Electorate of Baden)과 뷔르템베르크 공국(Duchy of Württemberg)이 가장 큰 이익을 얻었다. 교회령의 소멸은 황제의 중요한 정치적 지지 상실을 의미했다. 프란츠 2세는 1804년 오스트리아 황제(Emperor of Austria) 칭호를 사용했다. 1805년 제3차 대프랑스 동맹 전쟁(War of the Third Coalition)에서 러시아, 오스트리아,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이 한편에, 프랑스가 다른 한편에 서게 되자 바이에른, 바덴, 뷔르템베르크는 나폴레옹과 동맹을 맺었다.아우스터리츠 전투 승리와 1805년 프레스부르크 조약 이후 나폴레옹은 독일 국가들에서 자신의 입지를 강화할 수 있었다. 오스트리아는 영토를 할양해야 했고, 나폴레옹은 그의 형제인 조제프와 루이를 각각 나폴리 왕국과 네덜란드 왕국의 왕으로, 그의 매부인 조아킴 뮈라(Joachim Murat)을 베르크 대공으로 임명했다. 그는 바덴, 바이에른, 뷔르템베르크와의 동맹을 구축하기 위해 프란츠 2세는 바이에른과 뷔르템베르크가 왕국으로, 바덴, 헤세-다름슈타트, 베르크가 대공국으로 승격되는 것을 승인해야 했다. 프랑스의 지원을 받아 그 지역의 작은 제국 영지의 잔재는 합병되었다. 라인강 동안의 이러한 재편성은 라인 동맹의 기반을 마련했다.[2][3]
라인 동맹의 형성은 미래 회원국들에게 전적으로 자발적인 선택은 아니었다. 나폴레옹이 미래 동맹의 회원으로 선정한 여러 공후작들과 프랑스 간의 협상은 1806년 처음 6개월 동안 지지부진하게 이어지다가, 나폴레옹이 서둘러 일을 처리하기로 결정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7월 12일, 여러 공후작들의 파리 특사들은 외무부로 소집되어 탈레랑으로부터 새로운 동맹 조약에 서명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조약 조항은 그와 나폴레옹 사이에서 결정된 것이었다. 공후작들에게 예상보다 훨씬 더 힘든 조건이었기에 특사들은 큰 당황에 빠졌다. 그들은 모두 자기 주군의 허락 없이는 서명할 권한이 없다고 항의했지만, 탈레랑은 그 자리에서 즉시 서명하도록 강요했고, 그들은 압력 하에 서명했다. 공후작들 중 유일하게 제안된 조약 사본을 받았던 바이에른의 막시밀리안 요제프 국왕은 경악했다. 무엇보다도 바이에른은 외교 정책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하고, "라인 동맹의 보호자"인 나폴레옹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되었던 것이다. 그는 급히 바론 카를 폰 그라펜로이트를 파리로 보내어, 보호자에게 "독일 황제가 가진 것보다 더 광범위한 권력"을 부여한다고 말하며 동맹을 거부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폰 그라펜로이트는 프랑스 국경에서 상당히 오랫동안 지체되었고, 파리에 도착했을 때는 다른 모든 공후작들이 이미 서명을 마친 상태였다. 따라서 그는 국왕의 견해를 전달하는 것이 현명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에노 E. 크레의 말을 빌리자면, "나폴레옹은 이러한 무례한 방법으로 라인 동맹을 마침내 건설할 수 있었다."[4]
라인 동맹 조약(Rheinbundakte)에 서명함으로써 16개의 독일 국가가 느슨한 연방 형태의 주권 국가들로 구성된 동맹에 참여했다 (조약에서는 이를 ''États confédérés du Rhin프랑스어''이라고 불렀다).[5] "라인 동맹의 보호자"는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의 세습 직책이었다. 8월 1일, 조약이 강요한 대로 동맹 회원국들은 신성 로마 제국에서 공식적으로 탈퇴했고, 8월 6일, 나폴레옹의 최후통첩에 따라 1804년 이미 자신을 오스트리아 황제로 선포했던 프란츠 2세는 신성 로마 제국이 해체되었다고 선언했다.
조약에 따르면, 동맹은 공동 헌법 기구에 의해 운영되어야 했지만, 개별 국가들 (특히 대규모 국가들)은 무제한적인 주권을 원했다.[1] 신성 로마 황제와 같은 군주제 국가 원수 대신, 최고 직책은 전 대총리였던 카를 테오도르 폰 달베르크(Karl Theodor von Dalberg)가 맡았는데, 그는 이제 동맹의 대공(Prince-Primate)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이러한 자격으로 그는 왕들의 의회 의장이었으며, 의회와 같은 기구로 설계되었지만 실제로는 소집되지 않은 동맹의 ''국회''를 주재했다.[1] 공후작 의회 의장은 나사우-우징겐 공작이었다.
나폴레옹에 대한 지지에 대한 보상으로, 일부 통치자들은 더 높은 지위를 얻었다: 바덴, 헤세, 클레베, 베르크는 대공국이 되었고, 뷔르템베르크와 바이에른은 왕국이 되었다. 당시 중재된 제국 백작과 기사들의 영토를 흡수함으로써 여러 회원국들이 확장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은 새로운 지위에 대해 매우 큰 대가를 치러야 했다. 동맹은 무엇보다도 군사 동맹이었고, 회원국들은 상호 방위를 위해 상당한 군대를 유지하고 프랑스에 많은 수의 군사 인력을 공급해야 했다. 결과적으로 동맹 회원국들은 신성 로마 제국에 속해 있을 때 합스부르크 왕가에 복종했던 것보다 나폴레옹에게 더 종속된 것을 알게 되었다.[6] 프랑스 황제는 새로 설립된 왕조에 광채를 더하기 위해 그의 의붓아들인 외젠 드 보아르네(Eugène de Beauharnais)와 바이에른의 아우구스타 사이의 결혼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나폴레옹은 이미 1804년에 보아르네를 비텔스바흐가 공주와 결혼시키는 것을 고려했지만, 막시밀리안 요제프가 나폴레옹의 압력에 굴복한 것은 그가 왕으로 승격된 1806년 이후였다.[7] 다른 왕실 결혼으로는 스테파니 드 보아르네(Stéphanie de Beauharnais)와 바덴의 칼, 그리고 제롬 보나파르트와 뷔르템베르크의 카타리나의 결혼이 있었다.
1806년 프로이센이 프랑스에 패한 후, 나폴레옹은 독일의 대부분의 소국들을 라인 동맹으로 유인했다. 결국 추가로 23개의 독일 국가가 동맹에 가입했다. 라인 동맹은 1808년에 36개국 - 4개 왕국, 5개 대공국, 13개 공국, 17개 공국, 그리고 함부르크, 뤼벡, 브레멘의 자유 한자 도시들 - 을 포함했을 때 가장 큰 규모였다.[1] 라인 서안과 에르푸르트 공국(Principality of Erfurt)은 프랑스 제국에 의해 완전히 병합되었다. 따라서 프랑스 황제 또는 라인 동맹 보호자로서, 나폴레옹은 이제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덴마크 홀슈타인, 스웨덴 포메라니아를 제외한 모든 독일의 지배자였고, 이전에 독립적이었던 스위스도 동맹에 포함되지 않았다.
1810년 현재 독일 북서부의 광대한 지역은 영국과의 무역 금수 조치(trade embargo)인 대륙 봉쇄(Continental System)를 더 잘 감시하기 위해 프랑스에 신속하게 병합되었다.
라인 동맹은 1813년 나폴레옹의 러시아 러시아 제국(Russian Empire) 침공 실패 이후 붕괴되었다. 라이프치히 전투(Battle of Leipzig) 이후 나폴레옹이 제6차 대프랑스 동맹 전쟁(War of the Sixth Coalition)에서 패배할 것이 분명해지자 많은 회원국들이 편을 바꾸었다.
1806년 7월 12일,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1세의 압력으로 신성 로마 제국 내 모든 독일 제후들은 명목상으로만 존속하던 제국을 탈퇴하고 프랑스 제1제정과 동맹을 맺어 라인 동맹이 성립되었다. 이 동맹은 나폴레옹을 맹주로, 마인츠 대주교 카를 테오도르 폰 달베르크를 총재로 하는 프랑스 주도의 국가 연합이었다.
라인 동맹에는 1808년 최대 시기에 4개의 왕국, 5개의 대공국, 13개의 공국, 17개의 후국, 3개의 자유 도시가 가입했다. 공식적으로는 동등한 지위의 동맹이라는 명칭을 사용했지만, 실제로는 프랑스의 속국과 다름없었다. 국가 연합 내에서는 모든 법령에 나폴레옹 법전이 사용되었다. 국가 연합 자체의 힘은 미약하여 나폴레옹을 지원한 총 병력은 겨우 6만 명 정도였다고 한다.
3. 라인 동맹의 형성
1806년 7월 12일,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의 압력으로 신성 로마 제국 내 여러 독일 제후들은 명목상으로만 존속하던 제국을 탈퇴하고 프랑스와 동맹을 맺어 라인 동맹이 성립되었다. 이 동맹은 나폴레옹을 "라인 동맹의 보호자"로, 카를 테오도르 폰 달베르크를 대공으로 하는 프랑스 주도의 국가 연합이었다.
구분 | 국가 | 비고 |
---|---|---|
왕국 | 바이에른 왕국, 뷔르템베르크 왕국, 작센 왕국, 베스트팔렌 왕국 | |
대공국 | 바덴 대공국, 베르크 대공국, 헤센 대공국, 뷔르츠부르크 대공국, 레겐스부르크 후국(1810년 이후 프랑크푸르트 대공국) | |
공국 | 안할트베른부르크 공국, 안할트데사우 공국, 안할트쾨텐 공국, 아렌베르크 공국, 나사우 공국, 올덴부르크 공국, 작센코부르크잘펠트 공국, 작센고타알텐부르크 공국, 작센힐트부르크하우젠 공국, 작센마이닝겐 공국, 작센바이마르 공국, 메클렌부르크슈베린 공국,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 공국 | |
후국 | 호엔촐레른헤힝겐 후국, 호엔촐레른지크마링겐 후국, 이젠부르크 후국, 라이엔 후국, 리히텐슈타인 후국, 리페데트몰트 후국, 로이스에버스도르프 후국, 로이스그라이츠 후국, 로이스로벤슈타인 후국, 로이스슐라이츠 후국, 잘름 후국, 샤움부르크리페 후국, 슈바르츠부르크루돌슈타트 후국, 슈바르츠부르크존더샤우젠 후국, 발데크피르몬트 후국 | |
자유 도시 | 함부르크, 뤼벡, 브레멘 |
라인 동맹은 공식적으로는 동등한 지위의 동맹이라는 명칭을 사용했지만, 실제로는 프랑스의 속국과 다름없었다.
3. 1. 강압적인 조약 체결
라인 동맹의 형성은 미래 회원국들에게 전적으로 자발적인 선택은 아니었다. 1806년 7월 12일, 여러 공후작들의 파리 특사들은 탈레랑으로부터 새로운 동맹 조약에 서명하라는 지시를 받았는데, 조약 조항은 그와 나폴레옹이 결정한 것이었다.[4] 공후작들은 자기 주군의 허락 없이 서명할 권한이 없다고 항의했지만, 탈레랑은 즉시 서명하도록 강요했고, 결국 압력 하에 서명했다.[4] 바이에른의 막시밀리안 요제프 국왕은 조약 사본을 받고 경악하여 동맹을 거부하려 했으나, 이미 다른 공후작들이 서명을 마친 상태였다.[4]라인 동맹 조약(Rheinbundakte|라인 분트 조약de)에 서명함으로써 16개의 독일 국가가 연방 형태의 동맹에 참여했다.[5] 1806년 8월 1일, 동맹 회원국들은 신성 로마 제국에서 공식적으로 탈퇴했고, 8월 6일, 프란츠 2세는 신성 로마 제국이 해체되었다고 선언했다.
3. 2. 동맹의 구조와 운영
라인 동맹 조약(link=no|Rheinbundaktede)에 서명함으로써 16개의 독일 국가가 연방 형태의 주권 국가들의 동맹에 참여했다(조약에서는 이를 ''États confédérés du Rhin프랑스어''이라고 불렀다).[5] "라인 동맹의 보호자"는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의 세습 직책이었다.조약에 따르면, 동맹은 공동 헌법 기구에 의해 운영되어야 했지만, 개별 국가들(특히 대규모 국가들)은 무제한적인 주권을 원했다.[1] 신성 로마 황제와 같은 군주제 국가 원수 대신, 최고 직책은 전 대총리였던 카를 테오도르 폰 달베르크가 맡았는데, 그는 이제 동맹의 대공(Prince-Primate)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그는 왕들의 의회 의장이었으며, 의회와 같은 기구로 설계되었지만 실제로는 소집되지 않은 동맹의 ''국회''를 주재했다.[1] 공후작 의회 의장은 나사우-우징겐 공작이었다.
나폴레옹에 대한 지지에 대한 보상으로, 일부 통치자들은 더 높은 지위를 얻었다. 바덴, 헤세, 클레베, 베르크는 대공국이 되었고, 뷔르템베르크와 바이에른은 왕국이 되었다. 당시 중재된 제국 백작과 기사들의 영토를 흡수함으로써 여러 회원국들이 확장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은 새로운 지위에 대해 큰 대가를 치러야 했다. 동맹은 무엇보다도 군사 동맹이었고, 회원국들은 상호 방위를 위해 상당한 군대를 유지하고 프랑스에 많은 수의 군사 인력을 공급해야 했다. 결과적으로 동맹 회원국들은 신성 로마 제국에 속해 있을 때 합스부르크 왕가에 복종했던 것보다 나폴레옹에게 더 종속되었다.[6]
1806년 프로이센이 프랑스에 패한 후, 나폴레옹은 독일의 대부분의 소국들을 라인 동맹으로 끌어들였다. 결국 23개의 독일 국가가 추가로 동맹에 가입했다. 라인 동맹은 1808년에 36개국 - 4개 왕국, 5개 대공국, 13개 공국, 17개 공국, 그리고 함부르크, 뤼벡, 브레멘의 자유 한자 도시들 - 을 포함했을 때 가장 큰 규모였다.[1]
4. 동맹 내 국가 유형
라인 동맹에 속한 국가들은 프랑스의 영향력과 자치권, 그리고 각 국가의 권력과 영향력에서 큰 차이를 보였으며,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었다.
국기 | 국명 | 가맹일 | 징발 병력 | 비고 |
---|---|---|---|---|
왕국 대우 | ||||
바덴 대공국 | 8,000 | 창립국. 변경백국에서 격상. | ||
바이에른 왕국 | 30,000 | 창립국. 선제후국에서 격상. | ||
베르크 대공국 | 5,000 | 창립국. 클레페스 공국을 흡수하여 대공국으로 격상. | ||
헤센다름슈타트 대공국 | 4,000 | 창립국. 방백국에서 격상. | ||
레겐스부르크 후국 | 968 / 4,000 | 창립국. 구 주교후국 겸 선제후국. 1810년 이후 프랑크푸르트 대공국이 됨. | ||
작센 왕국 | 20,000 | 선제후국에서 격상. | ||
베스트팔렌 왕국 | 25,000 | 나폴레옹이 신설. | ||
뷔르템베르크 왕국 | 12,000 | 창립국. 공국에서 격상. | ||
뷔르츠부르크 대공국 | 2,000 | 나폴레옹이 신설. | ||
공후국 대우 | ||||
안할트베른부르크 공국 | 700 | 후국에서 격상. | ||
안할트데사우 공국 | 700 | 후국에서 격상. | ||
안할트쾨텐 공국 | 700 | 후국에서 격상. | ||
아렌베르크 공국 | 379 / 4,000 | 창립국. 1810년 12월 13일 통폐합. | ||
호엔촐레른헤힝겐 후국 | 4,000 | 창립국. | ||
호엔촐레른지크마링겐 후국 | 193 / 4,000 | 창립국. | ||
이젠부르크 후국 | 291 / 4,000 | 창립국. | ||
라이엔 후국 | 29 / 4,000 | 창립국. 백국에서 격상. | ||
리히텐슈타인 후국 | 4 / 4,000 | 창립국. | ||
리페데트몰트 후국 | 650 | |||
메클렌부르크슈베린 공국 | 1,900 | |||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 공국 | 400 | |||
나사우 공국 | 1,680 / 4,000 | 나사우우징겐 후국과 나사우바일부르크 후백국의 연합. 둘 다 창립국. | ||
올덴부르크 공국 | 800 | 1810년 12월 13일 프랑스 제국 직할령으로 합병. | ||
로이스에버스도르프 후국 | 400 | |||
로이스그라이츠 후국 | 400 | |||
로이스로벤슈타인 후국 | 400 | |||
로이스슐라이츠 후국 | 400 | |||
잘름 후국 | 323 / 4,000 | 창립국. 1810년 12월 13일 프랑스 제국 직할령으로 합병. | ||
작센코부르크잘펠트 공국 | 작센계 제공국 모두 합쳐 병력 2,000 | |||
작센고타알텐부르크 공국 | ||||
작센힐트부르크하우젠 공국 | ||||
작센마이닝겐 공국 | ||||
작센바이마르 공국 | ||||
샤움부르크리페 후국 | 650 | |||
슈바르츠부르크루돌슈타트 후국 | 650 | |||
슈바르츠부르크존더샤우젠 후국 | 650 | |||
발데크피르몬트 후국 | 400 |
4. 1. 모델 국가
라인 동맹 내부의 국가 유형은 프랑스의 영향력과 내부 자치권 모두 큰 차이를 보였으며, 개별 국가의 권력과 영향력에도 큰 차이가 있었다.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는데, 그중 첫 번째 유형은 주로 나폴레옹의 친척들이 통치했던 "모델 국가"들이다. 여기에는 제롬 보나파르트가 통치했던 베스트팔렌 왕국이 포함된다.[8] 베르크 대공국은 1808년 조아킴 뮈라가 나폴리 왕으로 임명되기 전까지 그가 통치했고, 그 후 나폴레옹 자신이 통치했다. 세 번째 모델 국가는 1813년까지 달베르크 가문이 통치했던 프랑크푸르트 대공국이다. 나폴레옹의 패권 붕괴로 인해 이러한 지위는 더 이상 존재를 정당화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러한 새로운 기반들은 나폴레옹 법전과 같은 법적, 사회적 정책을 통해 나머지 라인 연방 국가들의 모델이 되도록 의도되었다.4. 2. 개혁 국가
라인 동맹 내부의 국가 유형은 프랑스의 영향력과 내부 자치권 모두 큰 차이를 보였다. 개별 국가의 권력과 영향력에도 큰 차이가 있었다.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는데, 두 번째 유형은 바이에른, 뷔르템베르크, 바덴, 헤세-다름슈타트와 같은 개혁 국가들이다. 이들은 종속 지역이 아니었지만 여러 면에서 나폴레옹의 진정한 동맹국이었다. 이들 국가는 프랑스 모델에서 영감을 얻었지만, 동시에 자체적인 길을 걸었다. 역사가 로타르 갈(Lothar Gall)은 라인 동맹의 통치자들이 나폴레옹 자신에 의해 혁명가가 되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황제에 대한 반대는 그가 부여한 권력을 포기해야만 가능했을 것이다. "그는 정치적으로 행동할 능력이 없고 무력으로 복종하도록 강요받는 위성국을 만든 것이 아니라, 그의 잘 이해된 국가 이익의 정책을 따르는 진정한 동맹국들을 만들었다."[9]4. 3. 소규모 국가
라인 동맹에 속한 국가들은 프랑스의 영향력과 자치권 정도, 그리고 각 국가의 권력과 영향력에서 큰 차이를 보였다. 라인 동맹은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는데, 1806년 이후 가입한 국가들은 세 번째 유형에 속한다. 이들은 작센을 제외한 다수의 소규모 북부 및 중부 독일 영토들로,[10] 내부 변화는 최소화되었고 개혁도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이들 사이에서도 차이는 존재했다. 메클렌부르크와 작센은 구조 변화가 거의 없었던 반면, 나사우 공국에서는 에른스트 프란츠 루드비히 마샬 폰 비버슈타인 장관이 온건한 행정 현대화와 종교적 관용 정책을 도입했다.5. 회원국
국기 | 국가 | 가맹일 | 비고 |
---|---|---|---|
바덴 대공국 | 1806년 7월 12일 | 창립국. 변경백국에서 격상. | |
바이에른 왕국 | 1806년 7월 12일 | 창립국. 선제후국에서 격상. | |
베르크 대공국 | 1806년 7월 12일 | 창립국. 클레페스 공국을 흡수하여 대공국으로 격상. | |
헤센다름슈타트 대공국 | 1806년 7월 12일 | 창립국. 방백국에서 격상. | |
레겐스부르크 후국 | 1806년 7월 12일 | 창립국. 구 주교후국 겸 선제후국. 1810년 이후 프랑크푸르트 대공국이 됨. | |
작센 왕국 | 1806년 12월 11일 | 선제후국에서 격상. | |
베스트팔렌 왕국 | 1807년 11월 15일 | 나폴레옹이 신설. | |
뷔르템베르크 왕국 | 1806년 7월 12일 | 창립국. 공국에서 격상. | |
뷔르츠부르크 대공국 | 1806년 9월 23일 | 나폴레옹이 신설. | |
안할트베른부르크 공국 | 1807년 4월 11일 | 후국에서 격상. | |
안할트데사우 공국 | 1807년 4월 11일 | 후국에서 격상. | |
안할트쾨텐 공국 | 1807년 4월 11일 | 후국에서 격상. | |
아렌베르크 공국 | 1806년 7월 12일 | 창립국. 1810년 12월 13일 통폐합. | |
호엔촐레른헤힝겐 후국 | 1806년 7월 12일 | 창립국. | |
호엔촐레른지크마링겐 후국 | 1806년 7월 12일 | 창립국. | |
이젠부르크 후국 | 1806년 7월 12일 | 창립국. | |
라이엔 후국 | 1806년 7월 12일 | 창립국. 백국에서 격상. | |
리히텐슈타인 후국 | 1806년 7월 12일 | 창립국. | |
리페데트몰트 후국 | 1807년 4월 11일 | ||
메클렌부르크슈베린 공국 | 1808년 3월 22일 | ||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 공국 | 1808년 2월 18일 | ||
나사우 공국 | 1806년 7월 12일 | 나사우우징겐 후국과 나사우바일부르크 후백국의 연합. 둘 다 창립국. | |
올덴부르크 공국 | 1808년 10월 14일 | 1810년 12월 13일 프랑스 제국 직할령으로 합병. | |
로이스에버스도르프 후국 | 1807년 4월 11일 | ||
로이스그라이츠 후국 | 1807년 4월 11일 | ||
로이스로벤슈타인 후국 | 1807년 4월 11일 | ||
로이스슐라이츠 후국 | 1807년 4월 11일 | ||
잘름 후국 | 1806년 7월 25일 | 창립국. 1810년 12월 13일 프랑스 제국 직할령으로 합병. | |
작센코부르크잘펠트 공국 | 1806년 12월 15일 | ||
작센고타알텐부르크 공국 | 1806년 12월 15일 | ||
작센힐트부르크하우젠 공국 | 1806년 12월 15일 | ||
작센마이닝겐 공국 | 1806년 12월 15일 | ||
작센바이마르 공국 | 1806년 12월 15일 | ||
샤움부르크리페 후국 | 1807년 4월 11일 | ||
슈바르츠부르크루돌슈타트 후국 | 1807년 4월 11일 | ||
슈바르츠부르크존더샤우젠 후국 | 1807년 4월 11일 | ||
발데크피르몬트 후국 | 1807년 4월 11일 |
5. 1. 왕국
구성 군주국 | 가입 연도 | 비고 및 병력 수 |
---|---|---|
바이에른 왕국 | align="center" | | 창립국. 선제후국에서 격상. 30,000명 |
작센 왕국 | align="center" | | 선제후국에서 격상. 20,000명 |
베스트팔렌 왕국 | align="center" | | 나폴레옹이 신설. 25,000명 |
뷔르템베르크 왕국 | align="center" | | 창립국. 공국에서 격상. 12,000명 |
5. 2. 대공국
라인 동맹의 대공국은 다음과 같다.[11]구성 군주국 | 가입 연도 | 비고 및 병력 수 |
---|---|---|
-- 바덴 대공국 | 1806년 7월 12일 | 공동 창립국; 이전 변경백국-선제후령 (8000) |
-- 베르크 대공국 | 1806년 7월 12일 | 공동 창립국; 클레베 공국 흡수, 모두 이전 공국 (5000) |
-- 헤센다름슈타트 대공국 | 1806년 7월 12일 | 공동 창립국; 이전 방백령 (4000) |
1806년 7월 12일 | 공동 창립국; 구 주교후국 겸 선제후국. 1810년 이후로는 | |
-- 뷔르츠부르크 대공국 | 1806년 9월 23일 | 나폴레옹이 신설 (2000) |
5. 3. 공국
구성 군주국 | 가입 연도 | 비고 및 병력 수 |
---|---|---|
-- | 1807년 4월 11일 | 700 |
-- | 1807년 4월 11일 | 700 |
-- | 1807년 4월 11일 | 700 |
-- | 1806년 7월 12일 | 공동 창립국; 1810년 12월 13일 프랑스에 합병됨 (379) |
-- | 1806년 7월 12일 | 공동 창립국 |
-- | 1806년 7월 12일 | 공동 창립국 (193) |
-- | 1806년 7월 12일 | 공동 창립국 (291) |
-- | 1806년 7월 12일 | 공동 창립국; 이전 백작령 |
-- | 1806년 7월 12일 | 공동 창립국 (40) |
-- | 1807년 4월 11일 | 650 |
-- | 1808년 3월 22일 | 1,900 |
-- | 1808년 2월 18일 | 400 |
-- | 1806년 7월 12일 | ![]() |
-- | 1808년 10월 14일 | 1810년 12월 13일 프랑스에 합병됨 (800) |
-- | 1807년 4월 11일 | 400 |
-- | 1807년 4월 11일 | 400 |
-- | 1807년 4월 11일 | 400 |
-- | 1807년 4월 11일 | 400 |
-- | 1806년 7월 25일 | 잘름-잘름과 잘름-키르부르크의 연합, 모두 공동 창립국; 1810년 12월 13일 프랑스에 합병됨 (323) |
-- | 1806년 12월 15일 | 작센계 제공국 모두 합쳐 병력 2,000 |
-- | 1806년 12월 15일 | |
-- | 1806년 12월 15일 | |
-- | 1806년 12월 15일 | |
-- | 1806년 12월 15일 | |
-- | 1807년 4월 11일 | 650 |
-- | 1807년 4월 11일 | 650 |
-- | 1807년 4월 11일 | 650 |
-- | 1807년 4월 11일 | 400 |
5. 4. 후국
라인 동맹의 후국은 다음과 같다.[11]구성 군주국 | 가입 연도 | 비고 및 병력 수 |
---|---|---|
안할트베른부르크 공국 | 1807년 4월 11일 | 후국에서 공국으로 격상. (700명) |
안할트데사우 공국 | 1807년 4월 11일 | 후국에서 공국으로 격상. (700명) |
안할트쾨텐 공국 | 1807년 4월 11일 | 후국에서 공국으로 격상. (700명) |
아렌베르크 공국 | 1806년 7월 12일 | 창립국. 1810년 12월 13일 프랑스 제1제국에 합병. (379명) |
호엔촐레른헤힝겐 후국 | 1806년 7월 12일 | 창립국. (4,000명) |
호엔촐레른지크마링겐 후국 | 1806년 7월 12일 | 창립국. (193명) |
이젠부르크 후국 | 1806년 7월 12일 | 창립국. (291명) |
라이엔 후국 | 1806년 7월 12일 | 창립국. 백국에서 후국으로 격상. (29명) |
리히텐슈타인 후국 | 1806년 7월 12일 | 창립국. (4명) |
리페데트몰트 후국 | 1807년 4월 11일 | (650명) |
메클렌부르크슈베린 공국 | 1808년 3월 22일 | (1,900명) |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 공국 | 1808년 2월 18일 | (400명) |
나사우 공국 | 1806년 7월 12일 | 나사우우징겐 후국과 나사우바일부르크 후백국의 연합. 둘 다 창립국. (1,680명) |
올덴부르크 공국 | 1808년 10월 14일 | 1810년 12월 13일 프랑스 제국 직할령으로 합병. (800명) |
로이스에버스도르프 후국 | 1807년 4월 11일 | (400명) |
로이스그라이츠 후국 | 1807년 4월 11일 | (400명) |
로이스로벤슈타인 후국 | 1807년 4월 11일 | (400명) |
로이스슐라이츠 후국 | 1807년 4월 11일 | (400명) |
잘름 후국 | 1806년 7월 25일 | 창립국. 1810년 12월 13일 프랑스 제국 직할령으로 합병. (323명) |
작센코부르크잘펠트 공국 | 1806년 12월 15일 | } | 작센계 제공국 모두 합쳐 병력 2,000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