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게리크 환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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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롱게리크 환초는 마셜 제도에 위치한 환초로, 1885년 독일 제국이 영유권을 주장했고,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일본의 위임 통치를 거쳐 미국 통치하에 있다가 1986년 마셜 제도의 독립과 함께 그 영토가 되었다. 이 환초는 1946년부터 1948년까지 미국 핵실험인 크로스로드 작전으로 인해 비키니 환초 주민들이 임시 거주했던 곳으로, 이후 1954년 캐슬 브라보 핵실험으로 방사성 낙진 피해를 입었다. 또한, 1948년 스페인 연구원에 의해 스페인의 영유권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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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롱게리크 환초 - [지명]에 관한 문서 | |
|---|---|
| 개요 | |
![]() | |
| 위치 | 북태평양 |
| 좌표 | 북위 11° 20', 동경 167° 27' |
| 군도 | 랄리크 열도 |
| 국가 | 마셜 제도 |
| 지리 | |
| 총 섬 수 | 22개 |
| 면적 | 1.68km2 |
| 해안선 길이 | (정보 없음) |
| 해발 고도 | 3m |
| 인구 | |
| 인구 | 0명 |
| 민족 | (과거) 마셜 제도인 |
| 기타 | |
| 언어 | (롱디크) |
| 로마자 표기 | Rongdik (롱디크) |
2. 역사
롱게리크 환초는 1885년 독일 제국이 다른 마셜 제도와 함께 영유권을 주장하면서 국제 사회에 알려지기 시작했다.[2] 제1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승전국인 일본 제국이 국제 연맹으로부터 위임받아 남양 군도의 일부로 통치하였다. 비록 당시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였으나, 전략적 위치 때문에 열강의 관심 대상이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일본 제국이 패망하면서, 롱게리크 환초는 미국의 영향권 아래 놓이게 되었다. 미국은 이 섬을 태평양 제도 신탁통치령에 포함시켜 관리했으며, 이는 1986년 마셜 제도가 독립할 때까지 이어졌다. 이 시기 롱게리크 환초는 미국의 중요한 군사적 활동 무대가 되었는데, 특히 냉전 시대 핵무기 개발과 관련하여 비극적인 역사를 겪게 된다.
미국은 1946년 크로스로드 작전 핵실험을 위해 인근 비키니 환초의 원주민들을 이곳으로 강제 이주시켰으며, 이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약 2년간 거주해야 했다.[3] 또한 1954년에는 캐슬 브라보 핵실험으로 인해 발생한 막대한 양의 방사성 낙진에 직접적으로 노출되는 피해를 입었다. 이러한 사건들은 롱게리크 환초와 그 인근 주민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2. 1. 독일과 일본의 통치
롱게리크 환초는 1885년 독일 제국에 의해 다른 마셜 제도와 함께 영유권이 주장되었다.[2]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이 섬은 남양 군도의 일부로서 일본 제국의 위임 통치하에 놓였다.2. 2. 미국의 핵실험과 피해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롱게리크 환초는 미국의 통제 하에 놓였으며, 1986년 마셜 제도가 독립할 때까지 태평양 제도 신탁통치령의 일부로 관리되었다.미국은 1946년 크로스로드 작전 핵실험을 위해 비키니 환초 원주민들을 롱게리크 환초로 이주시켰다. 이들은 1948년까지 약 2년간 이곳에 임시 거주했으나, 열악한 환경과 식량 부족으로 고통받았다.[3] 이후 1954년 3월 1일에는 캐슬 작전의 일환으로 실시된 캐슬 브라보 핵실험으로 인해 롱게리크 환초가 방사성 낙진에 직접 노출되는 피해를 입었다.
2. 2. 1. 크로스로드 작전과 비키니 환초 주민 이주

롱게리크 환초는 미국 정부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핵무기 실험인 크로스로드 작전을 준비하면서 그 중요성이 부각되었다. 이 작전을 위해 원래 비키니 환초에 살던 원주민들은 자신들의 터전을 떠나야 했다. 미국 정부는 1946년 3월 7일, 비키니 환초 주민들을 롱게리크 환초로 이주시켰고, 이들은 1948년 3월 14일까지 이곳에서 임시로 거주하게 되었다.
그러나 롱게리크 환초는 사람이 살기에 매우 척박한 환경이었다. 비키니 환초 주민들은 이주 후 수개월 동안 심각한 식량 부족과 영양실조에 시달렸다.[3] 결국 미국 정부는 이들을 1948년 3월에 다시 콰잘레인으로 옮겼고, 이후 최종적으로 킬리 섬에 정착시켰다. 이 과정에서 비키니 환초 주민들은 고향을 잃고 여러 차례 강제 이주를 당하는 고통을 겪었다.
2. 2. 2. 캐슬 브라보 핵실험과 방사능 낙진 피해
1954년 3월 1일, 롱게리크는 캐슬 작전의 브라보 핵실험 폭발로 인해 방사성 낙진에 노출되었다.2. 3. 스페인의 영유권 주장
1948년 스페인 연구원 에밀리오 파스토르는 스페인 정부에 제출한 논문을 통해 미크로네시아의 여러 작은 섬들(카핑아마랑이 또는 ''Pescadores'', 마피아 또는 ''Güedes'', 키리티마티 또는 ''Matador'', 롱게리크 또는 ''Coroa'' 등)이 여전히 스페인의 주권 아래에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1899년 독일-스페인 조약이 스페인령 동인도의 일부였던 북마리아나 제도(괌 제외)와 캐롤라인 제도(팔라우 포함)를 독일에 넘길 때, 이 작은 섬들을 명시적으로 포함하지 않았다는 해석에 근거했다. 스페인 정부는 1949년에 이 문제를 검토하고 파스토르의 해석을 받아들였으나, 실제로 이 섬들에 대한 영유권을 공식적으로 주장하지는 않았다.[4]참조
[1]
웹사이트
Marshallese-English Dictionary - Place Name Index
http://www.trussel2.[...]
[2]
논문
Germany's Lost Pacific Empire
1920
[3]
웹사이트
Scientists and natives discussing the food shortage on Rongerik Island, 1947
https://digitalpasif[...]
[4]
뉴스
Las cuatro islas españolas perdidas en el Océano Pacífico
http://es.noticias.y[...]
Yahoo News (Span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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