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갈자게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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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루갈자게시는 기원전 24세기 수메르의 도시 국가 움마의 왕으로, 수메르를 통일하려는 팽창주의 정책을 펼쳤다. 그는 라가시를 정복하고 우루크를 수도로 삼았으며, "국토의 왕"이라는 칭호를 사용했다. 루갈자게시는 비문을 통해 지중해와 페르시아 만을 아우르는 광대한 영토를 정복했다고 주장했지만, 아카드 제국의 사르곤에게 패배하여 포로로 잡혔다. 그의 업적은 니푸르 화병 비문과 라가시 멸망을 슬퍼하는 점토판에서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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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갈자게시 | |
---|---|
기본 정보 | |
칭호 | 움마 총독 우루크 왕 땅의 왕 |
![]() | |
재위 | 기원전 2358년 – 2334년경 (중간 연대기) |
왕조 | 우루크 제3왕조 |
계승 순서 | 수메르 왕 |
로마자 표기 | LUGAL.ZAG.GE.SI |
설형 문자 | 𒈗𒍠𒄀𒋛 |
출생과 사망 | |
사망 | 기원전 2334년경 |
가족 관계 | |
아버지 | 움마 총독 우쿠시 |
통치 | |
이전 통치자 | 우쿠시(아버지, 움마 총독) 우르자바바(키시) 우루카기나(라가시) |
후임 통치자 | 아카드의 사르곤(아카드 제국) |
2. 생애와 업적
2. 1. 움마의 엔시 즉위와 세력 확장
에 따르면,[6][7] 루갈자게시는 우마의 통치자 우쿠쉬의 아들이었다. 루갈자게시는 팽창주의 외교 정책을 추구했다. 그는 움마의 ''엔시''로서 경력을 시작하여 여러 수메르 도시 국가를 정복했다. 그의 통치 7년째에, 우루크는 루갈자게시의 지배하에 떨어졌고, 결국에는 라가시 영토의 대부분을 왕 우루카기나 치하에서 합병했으며, 모든 수메르를 아우르는 최초의 확실하게 기록된 왕국을 세웠다.[12] 이후 루갈자게시는 키시를 침략하여 우르자바바, 우르, 니푸르, 라르사를 전복시켰으며, 그의 새로운 수도를 세운 우루크도 전복시켰다. 그는 ''수메르 왕 목록''에 따르면 25년 (또는 34년) 동안 통치했다.[13]thumb 최후의 왕 루갈자게시 시대, 주황색으로 표시된 대략적인 영토, 아카드 제국의 부상 이전. 기원전 2350년경]]
루갈자게시는 그의 비문에 따르면 엔릴이 그에게 "상해와 하해 사이의 모든 땅", 즉 지중해와 페르시아 만 사이의 땅을 주었다고 주장했다.[14] 비록 그의 지중해 침공이, 일부 현대 학자들의 눈에는 "성공적인 약탈대"에 불과했지만, 이 비문은 "수메르 왕자가 그들에게 세계의 서쪽 가장자리에 도달했다고 주장한 최초의 사례"를 나타낸다.[14]

원래는 움마의 왕이었으나, 인접한 도시 국가 라가쉬의 왕 우루이님기나 (우루카기나)를 쓰러뜨리고 이를 정복했으며, 더 나아가 우루크를 포함한 수메르의 주요 도시 국가의 대부분을 정복하여 지배하에 두었다. 치세 후기에는 거점을 우루크에 두었다. 그가 사용한 칭호 중에는 "'''국토의 왕'''" (수메르어: Lugal kalam ma ki)이 있는데, 이는 과거 우루크 왕 엔샤쿠슈안나 시대에 사용된 칭호를 답습한 것으로, 도시라는 범주를 넘어선 영역에 대한 왕권을 나타내는 칭호였다는 설이 있다.
그가 남긴 비문에 따르면 루갈자게시는 "해 뜨는 곳에서 해 지는 곳까지 정복하고, 아래 바다(페르시아 만)에서 윗 바다(지중해)까지 길을 열었다"고 한다.
2. 2. 라가시 정복과 수메르 통일
루갈자게시는 팽창주의 외교 정책을 추구했다. 그는 움마의 ''엔시''로서 경력을 시작하여 여러 수메르 도시 국가를 정복했다.[12] 그의 통치 7년째에, 우루크는 루갈자게시의 지배하에 떨어졌고, 결국에는 라가시 영토의 대부분을 왕 우루카기나 치하에서 합병했으며, 모든 수메르를 아우르는 최초의 확실하게 기록된 왕국을 세웠다. 라가시의 파괴는 애가에서 묘사되었으며, 움마의 사람이 닌기르수에게 죄를 지었고, 우루카기나에게는 죄가 없지만, 움마의 총독 루갈자게시에게는 그의 여신 니사바가 그의 죄를 짊어지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12]이후 루갈자게시는 키시를 침략하여 우르자바바, 우르, 니푸르, 라르사를 전복시켰으며, 그의 새로운 수도를 세운 우루크도 전복시켰다. 그는 ''수메르 왕 목록''에 따르면 25년 (또는 34년) 동안 통치했다.[13]
루갈자게시는 그의 비문에 따르면 엔릴이 그에게 "상해와 하해 사이의 모든 땅", 즉 지중해와 페르시아 만 사이의 땅을 주었다고 주장했다.[14] 비록 그의 지중해 침공이, 일부 현대 학자들의 눈에는 "성공적인 약탈대"에 불과했지만, 이 비문은 "수메르 왕자가 그들에게 세계의 서쪽 가장자리에 도달했다고 주장한 최초의 사례"를 나타낸다.[14]
그는 "'''국토의 왕'''" (수메르어: Lugal kalam ma ki)이라는 칭호를 사용했는데, 이는 과거 우루크 왕 엔샤쿠슈안나 시대에 사용된 칭호를 답습한 것으로, 도시라는 범주를 넘어선 영역에 대한 왕권을 나타내는 칭호였다는 설이 있다.
그가 남긴 비문에 따르면 루갈자게시는 "해 뜨는 곳에서 해 지는 곳까지 정복하고, 아래 바다(페르시아 만)에서 윗 바다(지중해)까지 길을 열었다"고 한다. 그가 실제로 페르시아 만에서 지중해에 이르는 영역을 지배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2. 3. 루갈자게시의 칭호
루갈자게시는 "국토의 왕"(수메르어: 루갈 칼람 마/lugal-kalam-masum)이라는 칭호를 사용했는데,[6][7] 이는 도시 국가를 넘어선 영역 지배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 칭호는 이전 우루크 왕 엔샤쿠슈안나가 사용했던 것을 계승한 것이다. 니푸르의 루갈자게시 항아리에 따르면, 루갈자게시는 우마의 통치자 우쿠쉬의 아들이었다.[6][7]
니푸르 항아리 비문에는 루갈자게시가 "우루크의 왕, 땅의 왕, 아나의 사제, 니다바의 예언자, 우마의 파테시인 우쿠쉬의 아들, 니다바의 예언자, 땅의 왕인 아나에게 호의를 받았고, 엔릴의 위대한 파테시, 엔키에 의해 이해력을 부여받았으며, 그의 이름은 바바르(태양신)에 의해 언급되었고, 엔주(달의 신)의 수석 대신이자 바바르의 대표자이며, 닌니의 후원자이며, 니다바의 아들이며, 닌카르사그에 의해 성스러운 젖으로 양육되었으며, 메스 신의 종이며, 우루크의 사제이며, 우루크의 여주인인 니나부크하두의 제자이며, 신들의 위대한 대신"이라고 기록되어 있다.[8][9][10][11]
2. 4. "상해와 하해" 정복 주장
루갈자게시는 비문을 통해 엔릴이 그에게 "상해와 하해 사이의 모든 땅", 즉 지중해와 페르시아 만 사이의 땅을 주었다고 주장했다.[14] 그는 "해 뜨는 곳에서 해 지는 곳까지" 정복하고 "아래 바다"(페르시아 만)에서 "윗 바다"(지중해)까지 길을 열었다고 주장했다.[15][16]"모든 땅의 왕 엔릴이 루갈자게시에게 땅의 왕권을 주었을 때, 그는 땅의 "눈"을 정당화했다; 그는 모든 땅이 그의 발에 엎드리게 했고; 해가 뜨는 곳에서 해가 지는 곳까지, 그들을 그 앞에서 엎드리게 했다."[15][16]
이러한 주장은 "성공적인 약탈"에 불과했을지라도, 수메르 왕자가 세계의 서쪽 가장자리에 도달했다고 주장한 최초의 사례로 평가받는다.[14] 비록 그의 지중해 침공이, 일부 현대 학자들의 눈에는 "성공적인 약탈대"에 불과했지만, 이 비문은 "수메르 왕자가 그들에게 세계의 서쪽 가장자리에 도달했다고 주장한 최초의 사례"를 나타낸다.[14] (훨씬 후대의 기록에서, 약간 앞선 왕인 아다브의 루갈-안네-문두도 지중해와 토러스 산맥까지 정복했다고 주장했지만, 사르곤 이전 시대의 기록들은 너무나 불완전하여 학자들이 실제 사건을 매우 확신을 가지고 재구성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2. 5. 아카드 사르곤과의 전쟁 및 최후
수메르 최후의 왕 루갈자게시는 팽창주의 외교 정책을 추구했다.[12] 그는 움마의 ''엔시''로서 경력을 시작하여 여러 수메르 도시 국가를 정복했다.[12] 그의 통치 7년째에, 우루크는 루갈자게시의 지배하에 떨어졌고, 결국에는 라가시 영토의 대부분을 왕 우루카기나 치하에서 합병했으며, 모든 수메르를 아우르는 최초의 확실하게 기록된 왕국을 세웠다.[12] 이후 루갈자게시는 키시를 침략하여 우르자바바, 우르, 니푸르, 라르사를 전복시켰으며, 그의 새로운 수도를 세운 우루크도 전복시켰다.[13] 그는 ''수메르 왕 목록''에 따르면 25년 (또는 34년) 동안 통치했다.[13]루갈자게시는 그의 비문에 따르면 엔릴이 그에게 "상해와 하해 사이의 모든 땅", 즉 지중해와 페르시아 만 사이의 땅을 주었다고 주장했다.[14] 비록 그의 지중해 침공이, 일부 현대 학자들의 눈에는 "성공적인 약탈대"에 불과했지만, 이 비문은 "수메르 왕자가 그들에게 세계의 서쪽 가장자리에 도달했다고 주장한 최초의 사례"를 나타낸다.[14]
루갈자게시는 아카드 사르곤에게 패배하고 그의 왕국은 합병되었다. 사르곤의 비문의 후기 바빌론 버전들에 따르면, 아카드 사르곤은 우루크의 성벽을 파괴한 후 루갈자게시를 포획하여 그를 목에 칼을 씌워 엔릴의 니푸르 신전으로 이끌었다.[17]
원래는 움마의 왕이었으나,[12] 인접한 도시 국가 라가쉬의 왕 우루이님기나 (우루카기나)를 쓰러뜨리고 이를 정복했으며, 더 나아가 우루크를 포함한 수메르의 주요 도시 국가의 대부분을 정복하여 지배하에 두었다. 치세 후기에는 거점을 우루크에 두었다. 그가 사용한 칭호 중에는 "'''국토의 왕'''" (수메르어: Lugal kalam ma ki)이 있는데, 이는 과거 우루크 왕 엔샤쿠슈안나 시대에 사용된 칭호를 답습한 것으로, 도시라는 범주를 넘어선 영역에 대한 왕권을 나타내는 칭호였다는 설이 있다.
사르곤의 말에 따르면 루갈자게시는 산 채로 붙잡혀 목에 쇠사슬을 채워 엔릴의 문(니푸르시의 신전)으로 끌려갔다고 한다. 그가 사용했던 칭호와 "아래 바다에서 윗 바다까지"라는 구절은 그를 쓰러뜨린 사르곤에 의해 답습되었다.
3. 루갈자게시 시대의 유물
3. 1. 니푸르 화병 비문
니푸르에서 발견된 화병에는 루갈자게시의 광범위한 업적과 신에 대한 헌사가 새겨져있다.[18][19] 이 비문은 엔릴 신으로부터 왕권을 부여받은 루갈자게시가 "상해와 하해"를 통치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20][21][22]
비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모든 땅의 왕 엔릴에게 - 우루크의 왕 루갈자게시, 국가의 왕, 아누의 주술사, 니사바의 루마흐 사제, 움마의 통치자이자 니사바의 루마흐 사제인 우쿠쉬의 아들"이라며, 루갈자게시의 출신과 지위를 먼저 밝히고, "모든 땅의 왕인 아누의 진정한 눈, 엔릴의 수석 통치자, 엔키의 지혜를 받고, 신의 수석 대신인 우투에 의해 지명되었으며, 우투의 군사 총독, 이난나를 위한 자, 니사바의 아들, 닌후르사그에 의해 풍부한 우유를 먹고, 메스-상가-우누가의 사람, 우루크의 여왕 닌기리마에 의해 길러진 종, 신들의 수석 관리자"라고 덧붙였다.[24][25][26]
"모든 땅의 왕 엔릴이 루갈자게시에게 국가의 왕위를 주고, 국가의 눈이 그를 향하게 하고, 모든 땅을 그의 발 아래 두고, 동쪽에서 서쪽까지 그에게 복종하게 했을 때, 아래 바다에서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를 따라 위쪽 바다까지, 그는 그를 위해 그들의 길을 정돈했습니다. 동쪽에서 서쪽까지 엔릴은 그에게 경쟁자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강가 초원의 모든 땅은 그 아래에서 (만족스럽게) 안식했고, 국가는 그 아래에서 즐겁게 기뻐했습니다."라고 하여, 엔릴 신이 루갈자게시에게 왕권을 부여하고, 그의 통치가 널리 미쳤음을 보여준다.
"수메르의 왕좌에 앉은 모든 자들과 외국 땅의 통치자들은 그를 위해 우루크 땅에 대한 왕자의 신성한 권력을 결정했습니다(?). 그 시대에 우루크는 그 아래에서 기쁨을 누리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우르는 황소처럼 머리를 하늘로 치켜들었습니다. 우투가 사랑하는 도시 라르사는 그 아래에서 기쁘게 기뻐했습니다. 샤라가 사랑하는 도시 움마는 그 아래에서 큰 뿔을 치켜들었습니다. 자발라 땅은 새끼 양을 잃은 암양처럼 그 아래에서 울부짖었습니다. 키아나는 그 아래에서 목을 하늘로 치켜들었습니다." 라는 구절은 루갈자게시 통치 하의 여러 도시들의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우루크의 왕이자 국가의 왕인 루갈자게시는 그의 주 엔릴에게 니푸르에서 매우 큰 음식 제물을 정성스럽게(?) 바치고, 그를 위해 단물을 쏟습니다. 모든 땅의 왕 엔릴이 그의 사랑하는 아버지 안에게 내 편에서 기도를 드린다면, 내 삶에 (추가적인) 삶을 더해주소서! 강가 초원의 땅이 내 아래에서 (만족스럽게) 안식하고, 백성이 향기로운 풀처럼 내 아래에서 널리 퍼지고, 하늘의 가슴이 내 아래에서 제대로 기능하며, 국가가 내 아래에서 쾌적한 곳을 보게 하소서. 그들(안과 엔릴)이 결정한 호의적인 운명이 나에게 영원히 변하지 않게 하소서! 나는 영원히 자랑스러운 목자가 되리라! 그는 그의 사랑하는 주 엔릴에게 그의 삶을 위해 이것(이 그릇)을 바쳤습니다."라며, 루갈자게시가 엔릴 신에게 바치는 헌사와 기원의 내용을 담고 있다.[24][25][26]
3. 2. 라가시 멸망에 대한 탄식
라가시의 멸망을 슬퍼하는 내용이 담긴 점토판이 발견되었다.[27][28] 이 기록은 루갈자게시의 라가시 정복 전쟁의 잔혹함을 보여준다.[29]
4. 평가 및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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