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애미 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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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마이애미 히트는 1988년 창단된 NBA 팀으로, 현재 동부 컨퍼런스 소속이다. 창단 초기에는 부진했지만, 1990년대 후반 팻 라일리 감독 부임 후 알론조 모닝, 팀 하더웨이 등을 중심으로 강팀으로 성장했다. 2006년 드웨인 웨이드와 샤킬 오닐의 활약으로 첫 NBA 챔피언십을 차지했으며, 2010년 르브론 제임스, 크리스 보쉬가 합류하여 "빅 3" 시대를 열고 4번의 파이널 진출과 2번의 우승을 달성했다. 이후 르브론 제임스가 떠난 뒤 지미 버틀러를 영입하여 2020년 파이널에 진출했고, 2022-23 시즌에는 파이널에 진출하는 등 꾸준히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홈 경기장은 카세야 센터이며, G 리그 제휴팀으로 수폴스 스카이포스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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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애미 히트 - [스포츠팀]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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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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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단 | 1988년 |
역사 | 마이애미 히트 (1988년~현재) |
연고지 |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
경기장 | 카세야 센터 |
약칭 | MIA |
소속 리그 | NBA |
콘퍼런스 | 동부 콘퍼런스 |
디비전 | 사우스이스트 디비전 |
색상 | 검정, 빨강, 노랑 |
스폰서 | 로빈후드 |
구단주 | 미키 아리슨 |
회장 | 팻 라일리 |
감독 | 에릭 스폴스트라 |
제휴 | 수폴스 스카이포스 |
우승 기록 | |
리그 우승 | 3회 (2006년, 2012년, 2013년) |
콘퍼런스 우승 | 7회 (2006년, 2011년, 2012년, 2013년, 2014년, 2020년, 2023년) |
디비전 우승 | 16회 (1997년, 1998년, 1999년, 2000년, 2005년, 2006년, 2007년, 2011년, 2012년, 2013년, 2014년, 2016년, 2018년, 2020년, 2022년, 2023년) |
영구 결번 | |
영구 결번 선수 | 1, 3, 10, 23, 32, 33, 40 |
유니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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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링크 | |
웹사이트 | 마이애미 히트 공식 웹사이트 |
2. 역사
1987년, NBA는 4개의 신규 확장 팀 중 하나를 마이애미에 부여했다. 1988년 11월, 마이애미 플로리디언스의 연고지였던 마이애미에서 히트라는 팀이 경기를 시작했다. 초창기에는 평범한 성적을 거두며 처음 8년 동안 단 두 번만 플레이오프에 진출했고, 두 번 모두 1라운드에서 탈락했다.
시라큐스 대학교의 로니 사이칼리를 드래프트 1순위로 지명했지만, 서부 콘퍼런스의 미드웨스트 디비전에 편성되어 혹독한 원정 경기를 치렀고, 전력 부족으로 개막 초 17연패를 기록하며 15승 67패로 시즌을 마감했다. 2년차에는 미시간 대학교의 글렌 라이스를 지명했지만 부진은 계속되었다.
1991-92 시즌, 케빈 로리 코치 부임과 함께 스티브 스미스를 지명하고, 성장한 선수들의 활약으로 이스턴 컨퍼런스 8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지만, 시카고 불스에게 패했다. 1993-94 시즌에는 처음으로 정규 시즌 승수를 기록하며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지만, 애틀랜타 호크스에 패했다. 스티브 스미스는 농구 세계 선수권 대회 미국 대표팀(드림팀 II)에 선발되었다. 1994-95 시즌은 선수 மாற்றம்으로 기대에 못 미치는 시즌이었다.
1995년, 팻 라일리가 팀 사장 겸 헤드 코치로 영입되면서, 센터 알론조 모닝과 포인트 가드 팀 하더웨이를 영입, 1990년대 후반 마이애미를 챔피언십 경쟁팀으로 변화시켰다. 1996-97 시즌에는 61승 21패를 기록, "로드 워리어스"라는 별명을 얻었다. 플레이오프에서는 마이클 조던이 이끄는 시카고 불스와의 컨퍼런스 결승에서 패했다. 이후 뉴욕 닉스와의 라이벌 관계가 형성되었고, 2002년과 2003년에는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하는 등 부진한 시기를 겪었다.
2003년 NBA 드래프트에서 드웨인 웨이드를 지명하고, 라마 오덤을 영입했다.[9] 스탠 반 건디 감독 아래, 2004년 NBA 플레이오프에 진출, 1라운드 승리 후 2라운드에서 패했다. 오프 시즌에 샤킬 오닐을 영입하고, 알론조 모닝이 복귀했다.[10] 샤킬 오닐과 드웨인 웨이드는 2006년 히트에게 첫 번째 NBA 챔피언십을 안겨주었다. 2005-06 시즌, 게리 페이튼, 제임스 포지, 제이슨 윌리엄스, 앙투안 워커를 영입했다.[11] 시즌 중반 팻 라일리 감독 복귀 후, 댈러스 매버릭스를 꺾고 창단 첫 챔피언십을 차지했으며, 웨이드는 파이널 MVP를 수상했다.[13]
2007년부터 2010년까지 챔피언 타이틀 획득 후, 2007년 NBA 플레이오프 1라운드 완패를 포함하여 어려움을 겪었다. 2007–08 시즌에는 웨이드의 부상과 오닐의 트레이드로 리그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 에릭 스포엘스트라가 감독으로 승진했고, 웨이드는 2009년과 2010년에 팀을 플레이오프로 이끌었지만, 각각 1라운드에서 패했다. 웨이드는 2009년 득점왕, 2010년 올스타 MVP가 되었다.
르브론 제임스, 드웨인 웨이드, 크리스 보쉬의 "빅 3"는 히트를 4번 연속 파이널 진출과 2번의 NBA 챔피언십으로 이끌었다. 2010-11 시즌, 크리스 보쉬와 르브론 제임스를 영입하며 "빅 3" 시대가 열렸다.[14][15] 2011년 NBA 파이널에 진출했지만, 댈러스 매버릭스에게 패했다. 2011-12 시즌, 셰인 배티어를 영입하고, 오클라호마시티 썬더를 꺾고 우승, 르브론 제임스는 파이널 MVP를 수상했다.[18][19]
2012년, 레이 앨런과 래샤드 루이스를 영입했다.[20] 2012-13 시즌에는 27연승을 기록했고,[21] 샌안토니오 스퍼스와의 파이널에서 승리하며 2년 연속 우승, 르브론 제임스는 2년 연속 파이널 MVP를 수상했다.[24] 2014년 NBA 파이널에 진출했지만, 샌안토니오 스퍼스에게 패하며 3연속 우승에는 실패했다.
2014-2019년은 "빅3" 해체 이후의 시기이다. 2016년, 드웨인 웨이드가 시카고 불스로 이적하고, 크리스 보쉬는 건강 문제로 은퇴했다.[30][31][32][33][34][35] 2018년, 드웨인 웨이드가 복귀했지만, 2018년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패했다. 웨이드는 2018-19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했다. 보쉬와 웨이드의 유니폼은 각각 2019년 3월과 2020년 2월에 영구 결번되었다.
지미 버틀러 시대는 2019년부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2019년 NBA 드래프트에서 타일러 히로를 지명하고,[1] 지미 버틀러를 영입했다.[2]
2023-24 시즌 현재 마이애미 히트의 선수 명단은 다음과 같다.
선수 이름 | 등번호 | 포지션 | 생년월일 |
---|---|---|---|
뱀 아데바요 | 13 | FC | Bam Adebayo|1997년 7월 18일영어 |
토마스 브라이언트 | 31 | C | Thomas Bryant|1997년 7월 31일영어 |
알렉 버크스 | 18 | GF | Alec Burks|1991년 7월 20일영어 |
지미 버틀러 | 22 | GF | Jimmy Butler|1989년 9월 14일영어 |
조쉬 크리스토퍼 | 8 | G | Josh Christopher|2001년 12월 8일영어 |
타일러 히로 | 14 | G | Tyler Herro|2000년 1월 20일영어 |
헤이우드 하이스미스 | 24 | GF | Haywood Highsmith|1996년 12월 9일영어 |
하이메 하케스 주니어 | 11 | F | Jaime Jaquez Jr.|2001년 2월 18일영어 |
케샤드 존슨 | 16 | F | Keshad Johnson|2001년 6월 23일영어 |
니콜라 요비치 | 5 | F | Nikola Jović|2003년 6월 9일sr |
펠레 라르손 | 9 | GF | Pelle Larsson|2001년 2월 23일sv |
케빈 러브 | 42 | FC | Kevin Love|1988년 9월 7일영어 |
조시 리차드슨 | 0 | G | Josh Richardson|1993년 9월 15일영어 |
던컨 로빈슨 | 55 | GF | Duncan Robinson|1994년 4월 22일영어 |
테리 로지어 | 2 | G | Terry Rozier|1994년 3월 17일영어 |
드류 스미스 | 12 | G | Dru Smith|1997년 12월 30일영어 |
아이제이아 스티븐스 | 4 | G | Isaiah Stevens|2000년 11월 1일영어 |
칼릴 웨어 | 7 | C | Kel'el Ware|2004년 4월 20일영어 |
2. 1. 창단 초기 (1988-1995)
1987년, NBA는 4개의 신규 확장 팀 중 하나를 마이애미에 부여했다.(나머지는 올랜도 매직, 샬럿 호네츠, 미네소타 팀버울브스였다.) 히트라고 알려진 이 팀은 1988년 11월에 경기를 시작했다. 마이애미 히트는 초창기에 평범한 성적을 거두며, 처음 8년 동안 단 두 번만 플레이오프에 진출했고 두 번 모두 1라운드에서 탈락했다.마이애미는 1968년부터 1972년까지 아메리카 농구 협회(ABA)의 마이애미 플로리디언스의 연고지였다. 창단 첫해에는 시라큐스 대학교의 로니 사이칼리를 드래프트 1순위로 지명하고, 서부 콘퍼런스의 미드웨스트 디비전에 편성되어 혹독한 원정 경기를 계속 치렀으며, 전력이 전혀 부족했던 탓에 개막 초에는 17연패를 기록하며 결국 15승 67패로 시즌을 마감했다. 2년차에는 전체 4순위로 미시간 대학교의 글렌 라이스를 지명했지만 부진은 계속되었다.
히트가 변하기 시작한 것은 4년차인 1991-92 시즌, 론 로스스타인을 대신하여 케빈 로리가 코치로 취임하면서 부터였다. 드래프트 전체 5순위로 미시간 주립 대학교의 스티브 스미스를 지명하고, 보스턴 셀틱스에서 이적한 브라이언 쇼, 성장한 사이칼리, 라이스, 그랜트 롱, 후보 선수인 빔보 콜스 등의 활약으로 이스턴 컨퍼런스 8위로 처음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그러나 전성기의 시카고 불스에게 0승 3패로 맥없이 패배했다.
1993-94 시즌에는 42승 40패로 정규 시즌에서 처음으로 승수를 기록하며 플레이오프에 진출했고, 시즌 1위인 애틀랜타 호크스를 상대로 2승 1패로 앞섰지만, 최종적으로 2승 3패로 패했다. 스티브 스미스는 이 시즌의 활약을 인정받아 1994년 농구 세계 선수권 대회 미국 대표팀(드림팀 II)에 선발되었다. 1994-95 시즌은 스미스 등을 방출하는 이해할 수 없는 트레이드로 대폭적인 선수 변경을 단행하여 기대에 못 미치는 시즌으로 끝났다.
2. 2. 팻 라일리 시대 (1995-2008)
카니발 크루즈 라인 회장 미키 아리슨이 1995년에 구단을 인수하면서, 팻 라일리가 팀 사장 겸 헤드 코치로 영입되었다. 라일리는 센터 알론조 모닝과 포인트 가드 팀 하더웨이를 영입하여 팀의 핵심 선수로 삼아, 1990년대 후반 마이애미를 챔피언십 경쟁팀으로 변화시켰다. 히트는 1996-97 시즌에 61승 21패를 기록하며 당시 구단 최고 기록이자 현재 팀 역사상 두 번째로 좋은 기록을 세웠다. 같은 해, 마이애미는 원정에서 32승 9패라는 놀라운 기록으로 "로드 워리어스"라는 별명을 얻었다. 하더웨이와 모닝의 활약으로 히트는 플레이오프에서 처음으로 2번의 시리즈 승리를 거두었고, 마이클 조던이 이끄는 시카고 불스와의 컨퍼런스 결승에서 5경기 만에 패했다. 당시 그들의 가장 큰 라이벌은 라일리의 전 팀인 뉴욕 닉스였으며, 1998년부터 2000년까지 플레이오프에서 히트를 탈락시켰다. 이후 2002년과 2003년에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 못하는 등 부진한 시기를 겪었다.2003년 NBA 드래프트에서 마이애미는 전체 5순위로 마켓 대학교 출신 슈팅 가드 드웨인 웨이드를 지명했다.[9] 자유 계약 선수인 스윙맨 라마 오덤은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에서 영입되었다. 2003-04 시즌 시작 직전에 라일리는 히트를 재건하는 데 집중하기 위해 감독직에서 물러나고 스탠 반 건디를 감독으로 승진시켰다. 반 건디의 지휘 아래 웨이드의 뛰어난 신인 시절과 오덤의 괄목할 만한 성장으로 히트는 2004년 NBA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여 1라운드에서 뉴올리언스 호네츠를 4–3으로 꺾었지만, 2라운드에서 인디애나 페이서스에 4–2로 패했다. 오프 시즌에 라일리는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에서 샤킬 오닐을 영입하는 대형 트레이드를 성사시켰다.[10] 알론조 모닝은 같은 시즌에 히트로 복귀하여 오닐의 백업 역할을 했다. 챔피언십 경쟁팀으로 돌아온 마이애미는 59–23의 기록으로 동부 컨퍼런스에서 1번 시드를 획득했다. 1라운드와 준결승을 모두 스윕한 마이애미는 8년 만에 컨퍼런스 결승에 진출하여 디펜딩 챔피언 디트로이트 피스톤스를 만났다. 3–2로 앞서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이애미는 웨이드가 6차전에서 부상을 당했다. 히트는 웨이드가 복귀했음에도 불구하고 홈에서 열린 7차전에서 패했다.
샤킬 오닐과 드웨인 웨이드는 2006년 히트에게 첫 번째 NBA 챔피언십을 안겨주었다.
2005년 여름, 라일리는 자유 계약 베테랑 게리 페이튼을 보스턴 셀틱스에서 영입했고, 제임스 포지, 제이슨 윌리엄스, 앙투안 워커를 트레이드를 통해 데려왔다.[11] 2005-06 시즌을 실망스러운 11승 10패로 시작한 후, 라일리는 반 건디를 해고하고 헤드 코치 직을 다시 맡았다.[12] 히트는 2006년 컨퍼런스 결승에 진출하여 재대결에서 피스톤스를 4-2로 꺾고 시리즈에서 승리했다. 첫 NBA 파이널 진출에서, 그들은 댈러스 매버릭스와 경기를 치렀고, 댈러스에서 열린 첫 두 경기를 대승했다. 이후 히트는 다음 네 경기를 모두 승리하며 창단 첫 챔피언십을 차지했다. 웨이드는 파이널 MVP를 수상했다.[13]
히트는 2007년부터 2010년까지 4년 동안 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한 이후 고전을 겪었다. 여기에는 2007년 NBA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시카고 불스에게 4–0으로 완패한 것도 포함된다. 2007–08 시즌, 웨이드는 부상에 시달렸고, 히트는 리그 최악의 15–67의 성적을 기록했다. 오닐은 시즌 중반에 피닉스 선스로 트레이드되었다. 라일리는 시즌 후 감독직에서 물러났지만, 구단 사장직은 유지했다. 오랜 기간 어시스턴트였던 에릭 스포엘스트라가 감독으로 승진했다. 건강한 웨이드는 2009년에 히트를 43승, 2010년에 47승으로 이끌었고, 두 시즌 모두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지만, 2009년에는 1라운드에서 4–3으로, 2010년에는 4–1로 패했다. 웨이드는 2009년에 득점왕에 올랐고, 2010년에는 올스타 MVP가 되었다.
모닝의 신장병과 그 후의 이적 등으로 다시 저조할 뻔했던 히트였지만, 2003년에는 드래프트 전체 5순위로 드웨인 웨이드를, 2004년에는 트레이드로 샤킬 오닐을 영입하여 다시 강호 팀의 반열에 올랐다. 2004-2005 시즌은 59승 23패로 정규 시즌을 마쳤지만, 플레이오프에서는 웨이드의 부상도 있어 컨퍼런스 결승에서 3승 4패로 디트로이트 피스톤스에 패했다.
그 시즌 오프에는, 플레이오프에서 승리하는 것을 주안점으로 앤트완 워커, 제이슨 윌리엄스, 게리 페이튼, 제임스 포지 등을 영입했다. 2005-06년은 정규 시즌에서 52승 30패로 2위였지만, 라일리의 헤드 코치 복귀와 웨이드의 대활약으로 플레이오프에서 불스, 뉴저지 네츠, 피스톤스를, NBA 파이널에서 댈러스 매버릭스를 꺾고, 창단 19년 만에 첫 우승을 달성했다.
첫 우승 후에는 선수들의 고령화나 부상자 발생 등으로 팀 성적이 저조해졌다. 2007-2008 시즌에는 승률이 리그 최하위까지 떨어졌고, 샤킬 오닐 등 우승 멤버의 다수가 팀을 떠났다.
이후, 2008-2009 시즌 드래프트에서 마이클 비즐리를 1라운드 2순위로 지명했다. 트레이드로 숀 메리언(단 2008-09 시즌 중에 이적)과 저메인 오닐을 영입함으로써, 히트는 다시 플레이오프 무대로 돌아왔다.
2. 3. "빅3" 시대 (2010-2014)
르브론 제임스, 드웨인 웨이드, 크리스 보쉬의 "빅 3"는 히트를 4번 연속 파이널 진출과 2번의 NBA 챔피언십으로 이끌었다. 2010-11 시즌, 히트는 약 4,800만 달러의 샐러리캡 여유를 가지고 크리스 보쉬와 르브론 제임스를 영입하며 "빅 3" 시대를 열었다.[14][15] 시즌 초반 9승 8패로 부진했지만, "선수들만의" 회의 후 58승 24패를 기록하며 동부 컨퍼런스 2번 시드를 차지했다. 2011년 NBA 플레이오프에서 마이애미는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 보스턴 셀틱스, 시카고 불스를 모두 5경기 만에 꺾고 2011년 NBA 파이널에 진출했으나, 댈러스 매버릭스에게 2승 4패로 패했다.NBA 직장 폐쇄 이후, 히트는 셰인 배티어를 영입했다. 단축된 2011-12 시즌에서 히트는 27승 7패로 좋은 출발을 보였지만, 시즌 후반 19승 13패로 주춤했다. 2012년 NBA 플레이오프에서 뉴욕 닉스를 4승 1패, 인디애나 페이서스를 4승 2패로 꺾고 동부 컨퍼런스 파이널에 진출했다. 보스턴 셀틱스와의 컨퍼런스 파이널에서는 7차전 접전 끝에 승리하며 NBA 파이널에 진출, 오클라호마시티 썬더를 4승 1패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18] 르브론 제임스는 파이널 MVP를 수상했다.[19]
2012년 7월, 히트는 레이 앨런과 래샤드 루이스를 영입했다.[20] 2012-13 시즌에는 2013년 2월 3일부터 3월 27일까지 27연승을 기록했고,[21] 시즌 66승 16패로 프랜차이즈 최고 기록을 세웠다. 2013년 NBA 플레이오프에서 밀워키 벅스, 시카고 불스, 인디애나 페이서스를 차례로 꺾고 NBA 파이널에 진출했다. 샌안토니오 스퍼스와의 파이널에서는 7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승리하며 2년 연속 우승을 달성했다. 르브론 제임스는 2년 연속 파이널 MVP를 수상했다.[24]
2014년 NBA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히트는 샬럿 밥캐츠를 스윕하고,[25] 브루클린 네츠를 4-1로 꺾었다. 컨퍼런스 파이널에서는 인디애나 페이서스를 4-2로 이기고 4년 연속 파이널에 진출했지만, 샌안토니오 스퍼스에게 1승 4패로 패하며 3연속 우승에는 실패했다.
2. 4. "빅3" 해체 이후 (2014-2019)
2016년 7월 6일, 드웨인 웨이드는 히트를 떠나 고향 팀인 시카고 불스에 합류한다고 발표했다.[30] 2016년 9월, 크리스 보쉬는 신체검사에 불합격하여 팀 훈련 캠프 참가를 허락받지 못했다.[31][32] 2016년 9월 26일, 히트 사장 팻 라일리는 보쉬의 선수 경력이 끝났다고 보고, 팀이 그의 복귀를 위해 더 이상 노력하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했다.[33] 2017년 7월 4일, NBA의 판결에 따라 보쉬의 혈액 응고 문제가 선수 경력을 끝내는 질병으로 선언된 지 한 달 후, 히트는 보쉬를 방출했다.[34][35] 라일리는 즉시 보쉬에 대한 존경과 히트에서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그의 등번호를 미래에 영구 결번할 것이라고 발표했다.[34]빅3 시대의 거의 모든 잔재가 불과 두 시즌 만에 사라지면서, 마이애미는 41승 41패를 기록했고, 시카고 불스와의 승자승 원칙에 밀려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2018년 2월 8일,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는 드웨인 웨이드를 다시 마이애미로 트레이드했다.[36] 웨이드는 2018년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를 상대로 2차전 승리를 이끌었지만, 팀은 5경기 만에 시리즈에서 패했다. 웨이드는 2018-19 시즌을 마지막으로 히트에서 은퇴했다. 보쉬와 웨이드의 유니폼은 각각 2019년 3월과 2020년 2월에 영구 결번되었다.
2. 5. 지미 버틀러 시대 (2019-현재)
2019년 NBA 드래프트에서 마이애미 히트는 13번 픽으로 켄터키 대학교의 타일러 히로를 지명했다.[1] 히트는 또한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와의 4팀 트레이드를 통해 지미 버틀러를 영입하고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에 조시 리차드슨을 보냈다.[2]2023-24 시즌 현재 마이애미 히트의 선수 명단은 다음과 같다.
선수 이름 | 등번호 | 포지션 | 생년월일 |
---|---|---|---|
뱀 아데바요 | 13 | FC | Bam Adebayo|1997년 7월 18일영어 |
토마스 브라이언트 | 31 | C | Thomas Bryant|1997년 7월 31일영어 |
알렉 버크스 | 18 | GF | Alec Burks|1991년 7월 20일영어 |
지미 버틀러 | 22 | GF | Jimmy Butler|1989년 9월 14일영어 |
조쉬 크리스토퍼 | 8 | G | Josh Christopher|2001년 12월 8일영어 |
타일러 히로 | 14 | G | Tyler Herro|2000년 1월 20일영어 |
헤이우드 하이스미스 | 24 | GF | Haywood Highsmith|1996년 12월 9일영어 |
하이메 하케스 주니어 | 11 | F | Jaime Jaquez Jr.|2001년 2월 18일영어 |
케샤드 존슨 | 16 | F | Keshad Johnson|2001년 6월 23일영어 |
니콜라 요비치 | 5 | F | Nikola Jović|2003년 6월 9일sr |
펠레 라르손 | 9 | GF | Pelle Larsson|2001년 2월 23일sv |
케빈 러브 | 42 | FC | Kevin Love|1988년 9월 7일영어 |
조시 리차드슨 | 0 | G | Josh Richardson|1993년 9월 15일영어 |
던컨 로빈슨 | 55 | GF | Duncan Robinson|1994년 4월 22일영어 |
테리 로지어 | 2 | G | Terry Rozier|1994년 3월 17일영어 |
드류 스미스 | 12 | G | Dru Smith|1997년 12월 30일영어 |
아이제이아 스티븐스 | 4 | G | Isaiah Stevens|2000년 11월 1일영어 |
칼릴 웨어 | 7 | C | Kel'el Ware|2004년 4월 20일영어 |
마이애미 히트는 여러 팀들과 라이벌 관계를 맺고 있다.
3. 라이벌
3. 1. 뉴욕 닉스
뉴욕 닉스와 마이애미 히트 간의 라이벌 관계는 1997년부터 2000년까지 이어진 네 번의 연속된 플레이오프 시리즈에서 비롯되었다. 각 시리즈는 모두 7차전까지 진행되었다. 이 라이벌 관계의 중심 인물은 두 팀의 감독을 모두 역임한 팻 라일리였다 (닉스는 1990년대 초, 히트는 1990년대 후반). 제프 반 건디는 라일리가 닉스의 감독으로 재직하던 시절을 이어받았고, 그의 형인 스탠 반 건디는 동시에 히트의 코치로 활동했다. 패트릭 유잉과 앨론조 모닝은 조지타운 대학교 농구 시절부터 친구였다. 닉스의 선수 중 한 명인 래리 존슨은 샬럿 호네츠 시절부터 모닝과 좋지 않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1]
3. 2. 보스턴 셀틱스
2010년 플레이오프에서 두 팀은 처음으로 맞붙었고, 셀틱스가 히트를 4승 1패로 꺾고 NBA 파이널에 진출했다.[51] 드웨인 웨이드는 3년 연속 1라운드에서 탈락한 후, 셀틱스에게 패배한 것은 앞으로 얼마 동안은 1라운드에서 "내 마지막" 패배가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르브론 제임스가 보스턴 셀틱스에 대해 품은 적개심은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에서 처음 활약하던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셀틱스는 2008년과 2010년에 캐벌리어스를 꺾었다. 웨이드는 셀틱스를 개인적으로 증오한다고 말했고, 제임스는 2011년에 셀틱스를 "그 팀"이라고만 지칭하면서 보스턴에 대한 혐오감을 드러냈다. 2010년 제임스와 크리스 보쉬를 영입하면서 히트는 동부 컨퍼런스에서 셀틱스의 지배에 도전했다. 제임스는 히트의 빅 3가 폴 피어스, 레이 앨런, 케빈 가넷으로 구성된 셀틱스의 빅 3를 모방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규 시즌에서 셀틱스를 상대로 처음 세 경기를 내준 마이애미는 네 번째 경기에서 승리하여 셀틱스에게서 2번 시드를 가져와 포스트시즌에서 최종적으로 맞붙을 때 홈 코트 이점을 얻었다. 2011년 NBA 플레이오프 동부 컨퍼런스 준결승에서 두 팀은 다시 만났고, 폴 피어스는 1차전에서 퇴장당했고, 드웨인 웨이드는 3차전에서 실수로 라존 론도의 팔을 부러뜨렸으며, 제임스는 최종 5차전에서 마지막 10점을 득점했다. 제임스는 셀틱스가 패배하자 팬들을 향해 포효했고, 마침내 셀틱스를 꺾은 후 안도하며 무릎을 꿇기도 했다.
다음 시즌에도 라이벌 관계는 이어져 히트가 다시 셀틱스를 상대로 홈 코트 이점을 가져갔지만, 보스턴이 다시 히트를 상대로 시즌 시리즈에서 승리했다. 준결승에서 보쉬가 부상으로 이탈했음에도 불구하고 히트는 2-0으로 앞서나갔지만, 셀틱스가 다음 세 경기를 모두 이겼다. 첫 다섯 경기에는 두 번의 연장전, 2차전에서 론도의 44득점, 4차전에서 피어스와 제임스의 파울 아웃이 포함되었다. 보스턴에서 열린 6차전에서 제임스가 45득점을 올린 덕분에 두 팀은 7차전까지 갔고, 3쿼터와 4쿼터 깊숙이까지 서로 주고받았지만, 마이애미가 4-3으로 승리하며 2012년 NBA 파이널에 진출했다.
오프 시즌에 레이 앨런이 히트에 합류하면서 셀틱스의 빅 3는 해체되었다. 팀 동료가 라이벌 팀으로 떠나는 것을 보고 즉각적인 반응에 대한 질문을 받자, 케빈 가넷은 앨런의 전화번호를 삭제했다고 주장했고, 폴 피어스는 앨런이 2008년 챔피언십을 함께 했던 "형제"라고 생각하지만, "상처"를 받았다고 인정했다. 두 팀은 플레이오프에서 만나지 않았지만, 네 번의 정규 시즌 경기에서 적대감은 계속되었다. 히트가 승리한 시즌 개막전에서 론도는 웨이드의 목을 옷자락으로 때렸고, 가넷은 경기 전에 앨런과 악수를 거부했으며, 가넷은 마리오 챌머스에게 팔꿈치를 휘둘렀다. 마이애미가 2013년에 연승 행진을 할 때 폴 피어스는 마이애미가 그 시점에서 남은 모든 경기에서 패배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제임스가 시카고 불스의 거친 플레이에 불만을 표명하자, 보스턴의 단장 대니 에인지는 르브론이 불평하는 것은 "창피한 일"이라고 말했다. 히트 팀 사장인 팻 라일리는 "대니는 입 다물어."라고 응수했다. 두 팀은 연승 기간에 만났는데, 셀틱스가 휴스턴 로키츠의 20경기 이상 연승을 막은 지 5년이 되는 날이었다. 제임스가 제이슨 테리를 상대로 덩크슛을 터뜨린 히트의 승리로 끝났고, 덩크슛 후 테리를 내려다보는 바람에 테크니컬 파울을 받았다. 경기 후 기자들이 이에 대해 질문하자, 제임스는 "그에게 그런 일이 생겨서 기쁘다"고 말했다.
2020년부터 2023년까지 히트와 셀틱스는 4년 중 3번 동부 컨퍼런스 결승전에서 맞붙었다. 히트는 첫 번째와 세 번째 경기를 이겼고, 셀틱스는 두 번째 경기를 이겼다.[51][52] 히트와 셀틱스는 그 해에 치른 모든 파이널에서 패배했다. 2024년에는 히트와 셀틱스가 1라운드에서 만났지만, 히트는 지미 버틀러 없이 경기를 치렀고,[53] 셀틱스가 그 해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54]
3. 3. 인디애나 페이서스
인디애나 페이서스와의 라이벌 관계는 2012년 NBA 플레이오프 동부 컨퍼런스 준결승에서 시작되었다. 두 팀은 2004년 NBA 플레이오프에서 만난 적이 있지만, 당시 선수 중 2014년까지 남아있는 선수는 유도니스 하슬렘뿐이었다.[55]
프랭크 보겔 인디애나 감독은 히트가 플라핑을 한다고 비난했고, 에릭 스포엘스트라 마이애미 감독은 페이서스가 의도적으로 선수들을 노린다고 불쾌해하며 양 팀 감독 모두 벌금을 물었다. 인디애나는 크리스 보쉬가 부상으로 빠진 마이애미를 상대로 2-1로 앞서나갔지만, 르브론 제임스와 드웨인 웨이드의 활약으로 마이애미가 3연승을 거두며 시리즈를 4-2로 승리했다.[55]
이 시리즈는 선수 간 충돌, 과격한 파울, 출장 정지 등으로 얼룩졌다. 주요 사건은 다음과 같다:[55]
다음 시즌, 마이애미는 레이 앨런과 크리스 앤더슨을 영입했고, 인디애나는 폴 조지와 랜스 스티븐슨이 성장하며 전력이 강화되었다. 특히 히트가 페이서스에게 패한 후 27연승을 기록한 것이 주목할 만하다. 양 팀은 2013년 NBA 플레이오프 컨퍼런스 결승에서 다시 만났다. 주요 사건은 다음과 같다:[55]
히트는 1차전을 승리했지만, 페이서스는 2차전에서 시리즈를 동점으로 만들었다. 3차전에서 히트는 포스트시즌 전반전에 70점을 기록하며 팀 기록을 세웠다. 히트는 결국 4-3으로 시리즈에서 승리했다.[55]
2014년 NBA 플레이오프에서 히트와 인디애나는 동부 컨퍼런스 결승에서 다시 만났다. 히트는 1차전에서 패했지만, 이후 3연승을 거두었다. 5차전에서 제임스가 부진하며 패했지만, 6차전에서 승리하며 4-2로 시리즈를 승리, 4회 연속 NBA 파이널에 진출했다.[55]
4. 선수
번호 | 이름 | 포지션 | 신장 | 체중 | 생년월일 | 출신 대학 | 비고 |
---|---|---|---|---|---|---|---|
13 | 뱀 아데바요 | FC | 약 1.83m 약 22.86cm | 약 115.67kg | 1997-07-18 | 켄터키 | |
18 | 알렉 버크스 | G | 약 1.83m 약 12.70cm | 약 97.07kg | 1991-07-20 | 콜로라도 | |
22 | 지미 버틀러 | F | 약 1.83m 약 17.78cm | 약 104.33kg | 1989-09-14 | 마켓 | |
8 | 조쉬 크리스토퍼 | G | 약 1.83m 약 10.16cm | 약 97.52kg | 2001-12-08 | 애리조나 주립 | (TW) |
14 | 타일러 히로 | G | 약 1.83m 약 12.70cm | 약 92.99kg | 2000-01-20 | 켄터키 | |
24 | 헤이우드 하이스미스 | F | 약 1.83m 약 12.70cm | 약 97.52kg | 1996-12-09 | 휠링 | |
11 | 하이메 자케스 주니어 | F | 약 1.83m 약 15.24cm | 약 104.33kg | 2001-02-18 | UCLA | |
16 | 케샤드 존슨 | F | 약 1.83m 약 17.78cm | 약 101.60kg | 2001-06-23 | 애리조나 | (TW) |
5 | 니콜라 요비치 | F | 약 1.83m 약 25.40cm | 약 108.86kg | 2003-06-09 | 세르비아 | |
9 | 펠레 라르손 | G | 약 1.83m 약 12.70cm | 약 96.16kg | 2001-02-23 | 애리조나 | |
42 | 케빈 러브 | F | 약 1.83m 약 20.32cm | 약 111.13kg | 1988-09-07 | UCLA | |
0 | 조쉬 리차드슨 | G | 약 1.83m 약 12.70cm | 약 90.72kg | 1993-09-15 | 테네시 | |
55 | 던컨 로빈슨 | F | 약 1.83m 약 17.78cm | 약 97.52kg | 1994-04-22 | 미시간 | |
2 | 테리 로지어 | G | 약 1.83m 약 2.54cm | 약 86.18kg | 1994-03-17 | 루이빌 | |
12 | 드루 스미스 | G | 약 1.83m 약 5.08cm | 약 92.08kg | 1997-12-30 | 미주리 | (TW) |
7 | 켈렐 웨어 | C | 약 2.13m 약 0.00cm | 약 104.33kg | 2004-04-20 | 인디애나 |
마이애미 히트의 현재 선수 명단이다.
4. 1. 영구 결번
번호 | 선수 | 포지션 | 재임 기간 | 수여일 |
---|---|---|---|---|
1 | 크리스 보쉬 | F | 2010–2017 | 2019년 3월 26일[82][83] |
3 | 드웨인 웨이드 | G | 2003–2016 2018–2019 | 2020년 2월 22일[84] |
10 | 팀 하더웨이 | G | 1996–2001 | 2009년 10월 28일[85][86] |
23 | 마이클 조던 | G | — | 2003년 4월 11일[87] |
32 | 샤킬 오닐 | C | 2004–2008 | 2016년 12월 22일[88] |
33 | 알론조 모닝 | C | 1995–2002 2005–2008 | 2009년 3월 30일[89] |
40 | 유도니스 하슬렘 | F/C | 2003-2023 | 2024년 1월 20일[90] |
마이애미 히트는 6명의 등번호를 영구 결번으로 지정했는데, 그 중 5명은 프랜차이즈에서 선수로 뛰었다. 마이클 조던은 히트에서 뛰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영구결번이 된 첫 번째 선수이다. 팻 라일리 감독은 2002-03 시즌 조던의 마이애미에서의 마지막 경기에 앞서 그의 선수 경력에 대한 찬사로 등번호 '23'을 영구 결번으로 지정했다.[80]
2005-06 시즌에는 내셔널 풋볼 리그 (NFL)의 마이애미 돌핀스에 대한 공헌을 기리기 위해 프로 풋볼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쿼터백 댄 마리노의 등번호 '13'을 수여했다.[81] 그러나 13번 유니폼은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지 않았으며, 현재도 히트 선수들이 사용할 수 있다.
2022년 8월 11일, NBA는 모든 가맹팀에 대해 빌 러셀의 6번을 영구 결번 처리했다.
4. 2. 명예의 전당
2005–20082018–2019
2005–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