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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즈루 해군 공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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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마이즈루 해군 공창은 1889년 교토부 마이즈루시에 설립된 일본 해군 기지였다. 1903년 공식적으로 해군 공창으로 설립되어 구축함 건조를 중심으로 선박, 항공기, 무기를 생산했다. 워싱턴 해군 군축 조약 이후 폐쇄와 재가동을 거쳐, 2차 세계 대전 이후 민간 기업에 인수되어 재팬 마린 유나이티드의 마이즈루 사업소가 되었다. 2021년 신조선 건조를 종료하고 함선 수리 사업에 특화하고 있으며, 구축함의 1번함 건조를 주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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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즈루 해군 공창
지도
기본 정보
명칭마이즈루 해군 공창
원어 명칭舞鶴海軍工廠 (일본어)
종류해군 공창
소재지교토부 마이즈루시
폐쇄1945년
역사
기공1901년
개청1903년 10월 1일
주요 시설
선거2기
갑거3기
길이170m
23m
깊이9m
잔교3개소
공작부24개 공장
제작 함선 (일부)
전함히에이
구축함미네카제
노카제
나미카제
시마카제
키쿠즈키
우라나미
히비키
아마츠카제
키요시모
후유즈키
시마카제
기타 함선다이게이
이세
아스카
미우라
이로
카시마
하야스이
현재
시설해상자위대 마이즈루 지방대
마이즈루시 소방 본부
국토교통성 긴키 지방 정비국 마이즈루 항만 사무소
교토부 부립 마이즈루 공원

2. 역사

1889년 일본 제국일본 열도 방어를 위해 교토부 마이즈루시에 마이즈루 해군 구역을 설치했다. 1901년에는 드라이 도크를 갖춘 선박 수리 시설이, 1903년에는 선박 생산 시설이 추가되면서 마이즈루 해군 공창이 공식적으로 설립되었다.

재팬 마린 유나이티드 마이즈루 조선소. 사진은 JS 후유즈키 DD-118.


1904년1914년에 추가 드라이 도크가 완공되었으며, 특히 1914년 완공된 3번 드라이 도크는 당시 일본 최대 규모였다. 1923년 워싱턴 해군 군축 조약 체결 후 일본 해군성 내부에서 시설 폐쇄 논의가 있었으나, 1936년까지 예비 함대 보존 상태로 유지되다가 다시 문을 열고 확장하여 선박, 항공기, 무기를 건조했다.[1] 마이즈루 해군 공창은 주로 구축함 크기 이하의 선박 건조를 전문으로 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이노 산업(Iino Industries Co. Ltd.)이 마이즈루 조선소를 인수했다.[1] 1963년 마이즈루 중공업으로, 1971년 히타치 조선으로 합병되었다.[2] 2002년 JFE 홀딩스의 JFE 엔지니어링과의 합작 투자로 유니버설 조선이 되었고, 2013년 IHI 해양 유나이티드와 통합되어 재팬 마린 유나이티드가 되었다.

구 본사, 조선소 관련 창고 일부는 마이즈루 시에서 기념 박물관으로 보존하고 있으며, 전쟁 전 드라이 도크와 대형 크레인 중 하나는 현재도 사용 중이다.

2. 1. 설립 배경과 초기 발전 (1889년 ~ 1903년)

1889년 일본 해군은 전국 항구를 답사한 후, 동해의 마이즈루를 4번째 진수부로 선정하고 군항으로 정비하기로 결정했다.[1] 그러나 마이즈루 진수부 설치는 12년 후인 1901년 10월에야 이루어졌다.[1] 진수부 설치와 함께 설치된 '조선 공장'은 초기에는 함정 정비 정도만 가능했지만, 2년 후인 1903년 11월 '''마이즈루 해군 공창'''으로 개편되면서 점차 시설을 확충해 나갔다.[1]

마이즈루 해군 공창에서 생산된 구축함 중 하나인 아키즈키(Akizuki)


마이즈루 해군 공창은 구축함 건조를 중심으로 담당했다.[1] 특히, 후부키급, 가게로급, 유구모급, 시마가제급, 아키즈키급, 마추급 등 각 유형의 1번함을 건조하여 기술을 축적하고, 이를 바탕으로 다른 조선소에서 후속 함선을 건조하는 방식을 택했다. 또한, 신형 기관(엔진)을 시험적으로 도입하는 역할도 맡았다.

1944년 5월에는 철강재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마이즈루 해군 공창의 기술 중령 하야시 쿠니오가 콘크리트 선박인 다케치마루를 설계하여 효고현 다카사고시의 조선소에서 건조했다. 이 콘크리트 선박은 1944년부터 1945년까지 사용된 후, 1947년부터 히로시마현 구레시 야스우라 어항에서 방파제로 활용되었다.

'''마이즈루 해군 공창 설립 초기 연혁'''

연도사건
1889년마이즈루에 군항 설치 결정
1901년마이즈루 진수부 개설, 마이즈루 조선창 설립
1903년마이즈루 조선창마이즈루 해군 공창으로 조직 개편
1904년제1도크 (현 2호 도크) 완성
1914년제2도크 (현 3호 도크) 완성 (당시 일본 최대 규모)


2. 2. 구축함 건조 중심 기지 (1903년 ~ 1923년)

전국 항구를 답사한 일본 해군은 1889년에 전국에서 4번째 진수부로 동해의 마이즈루를 선택하고, 군항으로 정비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마이즈루의 진수부 설치는 지연되었고, 실제로 설치된 것은 12년 후인 1901년 10월이었다. 진수부 설치 전후해 있던 ‘조선 공장’은 처음에는 함정 정비나 할 수 있을 정도의 설비였지만, 2년 후 1903년 11월에 마이즈루 해군 공창으로 조직 개편을 통해 점차 시설을 충실하게 갖춰 나갔다. 그 후, 마이즈루 해군 공창은 구축함 건조를 중심으로 담당하게 되었다.

마이즈루 해군 공창은 구축함 건조의 주도적 역할을 했다. 마이즈루에서는 각 유형의 1번 함을 건조하고, 그 노하우로 2번 함 이후를 각지의 조선소에서 건조하는 경우가 많았다. 마이즈루 해군 공창에서 건조된 대표적인 구축함은 다음과 같다.

  • 후부키급 구축함
  • 가게로급 구축함
  • 유구모급 구축함
  • 시마가제급 구축함
  • 아키즈키급 구축함
  • 마추급 구축함


위의 각 1번 구축함이 이곳에서 건조되었다. 또한 구축함은 새로 개발된 기관(엔진)이 시험적으로 도입되는 경우가 많았으며, 이 분야에서도 마이즈루 해군 조선소가 주도하고 있었다.

1923년 4월 워싱턴 해군 군축 조약의 영향으로 일시적으로 공작부로 격하되었지만, 구축함을 건조하는 주도적 입장은 변함이 없었고, 1936년 7월에 조병창으로 복귀하여 전쟁 종반까지 구축함 건조를 계속했다.[1]

2. 3. 군축 조약과 공작부 격하 (1923년 ~ 1936년)

1923년 워싱턴 해군 군축 조약 체결 이후, 일본 해군성 내부에서는 마이즈루 해군 공창 시설 폐쇄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그 결과, 1936년까지 대부분의 시설이 예비 함대 보존 상태로 유지되었다.[1] 이후 다시 문을 열고 확장하여 군대를 위한 선박, 항공기 및 무기를 건조하게 되었다.[1]

연도사건
1923년마이즈루 진수부가 요항부로 격하되고, "마이즈루 공창"도 "마이즈루 작업부"로 격하됨.
1936년"마이즈루 작업부"가 "마이즈루 해군 공창"으로 복귀함.


2. 4. 제2차 세계 대전 시기 (1936년 ~ 1945년)

1936년 7월, 워싱턴 해군 군축 조약의 영향으로 일시적으로 공작부로 격하되었던 마이즈루 해군 공창은 다시 공창으로 복귀하여 전쟁 종반까지 구축함 건조를 계속했다. 마이즈루 해군 공창은 구축함 건조의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으며, 각 유형의 1번함을 건조하고 그 기술을 바탕으로 2번함 이후를 각지의 조선소에서 건조하는 경우가 많았다.[1]

마이즈루 해군 공창에서 건조된 대표적인 구축함은 다음과 같다.

함급1번함
후부키급-
가게로급-
유구모급-
시마가제급-
아키즈키급
마추급-



이처럼 마이즈루 해군 공창은 신형 구축함 건조의 중심지였으며, 새로 개발된 기관(엔진)이 시험적으로 도입되는 경우도 많아 이 분야에서도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1944년 5월, 철강재 부족을 보충하기 위해 마이즈루 해군 공창의 기술 중령이었던 하야시 쿠니오는 콘크리트 선박인 다케치마루(武智丸)를 설계했다. 이 배는 효고현 다카사고시의 조선소에서 건조되어 1944년부터 1945년까지 사용되었으며, 1947년부터 히로시마현 구레시 야스우라(安浦) 어항에서 방파제로 활용되었다.

2. 5. 민간 기업 인수와 현재 (1946년 ~ 현재)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마이즈루 해군 공창 시설은 이노산업(飯野産業)이 인수하여 조선업을 계속하였다. 이후 회사명은 이노 중공업(飯野重工業), 마이즈루 중공업(舞鶴重工業), 히타치 조선(日立造船), 유니버설 조선(ユニバーサル造船)으로 변경되었고, 현재는 재팬 마린 유나이티드의 마이즈루 사업소가 되었다. 민간 조선소임에도 현재까지 함정 건조를 계속하고 있어, 동해 연안 최대의 조선소로 알려져 있다.[1]

  • 1946년: 이노 산업 마이즈루 조선소 설립, 구(舊) 조병창 시설 인수.[1]
  • 1953년: 이노 중공업으로 사명 변경.
  • 1963년: 히타치 조선 산하로 들어가 마이즈루 중공업으로 사명 변경.[2]
  • 1971년: 히타치 조선과 합병하여 히타치 조선 마이즈루 공장이 됨.
  • 2002년: 선박 부문 분리, 유니버설 조선 마이즈루 사업소가 됨.
  • 2013년: 합병으로 재팬 마린 유나이티드 마이즈루 사업소가 됨.
  • 2020년 2월 3일: 마이즈루 사업소 구조 개혁으로, 이미 수주한 선박이 완공되는 대로 신조 상선 건조를 종료하고 함선 수리 사업에 특화하기로 발표.[3]
  • 2021년 5월 26일: 마이즈루 사업소에서 마지막으로 건조한 선박인 'SAKIZAYA VICTORY' 인도. 이날을 기점으로 구 일본 해군 마이즈루 해군 공창 시대부터 100년 이상 이어져 온 신조선 건조는 마침표를 찍음.[4]


3. 주요 건조 함정

마이즈루 해군 공창은 다양한 함선을 건조했다.

함급함명
우미카제급우미카제(초대)
이소카제급도키쓰카제(초대, 가와사키 조선소에서 건조되었으나 좌초되어 마이즈루에서 대체 함선 건조)
고우카제형타니카제(초대)
미네카제급미네카제, 오키카제, 시마카제(초대), 나다카제, 시오카제, 타치카제, 호카제, 노카제, 누마카제, 나미카제
가미카제급하루카제(2대), 마츠카제(2대), 하타카제
무츠키급키사라기(2대), 키쿠즈키(2대)
후부키급후부키(2대), 하츠유키(2대), 시키나미(2대), 유기리(2대), 사자나미(2대), 히비키(2대)
하츠하루급유구레(2대)
시라츠유급하루사메(2대), 우미카제(2대)
아사시오급오시오, 아라레(2대)
가게로급가게로(2대), 오야시오, 아마츠카제(2대), 노와키(2대), 아라시
유구모급유구모, 마키나미, 하야나미, 하마나미, 오키나미, 하야시모
시마카제급시마카제(2대)
아키즈키급아키즈키, 하츠즈키, 후유즈키, 하나즈키
마츠급, 타치바나형마츠(2대), 모모(2대), 마키(2대), 카야(2대), 츠바키(2대), 니레(2대), 시이, 에노키(2대), 오다케, 하츠우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이이노 중공업과 마이즈루 중공업에서도 함선을 건조했다.

회사명함선 종류함선 이름
이이노 중공업카리형 구축잠수정키지, 와시
이이노 중공업아야나미형 호위함마키나미
이이노 중공업이즈즈형 호위함오오이
마이즈루 중공업야마구모형 호위함아사구모
마이즈루 중공업아즈마형 훈련 지원함아즈마
마이즈루 중공업미네구모형 호위함무라쿠모


3. 1. 일본 제국 해군 시기

1889년 일본 해군은 전국에서 4번째 진수부로 마이즈루를 군항으로 정비하기로 결정했다. 1901년 10월에 마이즈루 진수부가 설치되었고, 2년 후인 1903년 11월에는 '조선 공장'이 마이즈루 해군 공창으로 개편되어 시설을 갖추어 나갔다. 이후 마이즈루 해군 공창은 구축함 건조를 중심으로 담당했다. 1923년 4월 워싱턴 해군 군축 조약의 영향으로 일시적으로 공작부로 격하되었지만, 구축함 건조의 주도적 입장은 변함이 없었고, 1936년 7월에 조병창으로 복귀하여 전쟁 종반까지 구축함 건조를 계속했다.

마이즈루 해군 공창은 각 유형의 1번함을 건조하고, 그 기술을 바탕으로 다른 조선소에서 2번함 이후를 건조하는 경우가 많았다. 후부키급, 가게로급, 유구모급, 시마카제급, 아키즈키급, 마추급의 1번함이 이곳에서 건조되었다. 또한, 새로 개발된 기관 (엔진)이 시험적으로 구축함에 도입되는 경우가 많았으며, 이 분야에서도 마이즈루 해군 공창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1944년 5월에는 철강재 부족을 보충하기 위해 해군 공창 기술 중령이었던 하야시 쿠니오가 콘크리트 선인 다케치마루를 설계하여 효고현 다카사고시의 조선소에서 건조했다. 이 콘크리트 선박은 1944년부터 1945년까지 사용된 후 1947년부터 히로시마현 구레시 야스우라 어항에서 방파제로 사용되었다.

마이즈루 해군 공창에서 건조된 주요 함선은 다음과 같다.

함급함명
우미카제급우미카제(초대)
이소카제급도키쓰카제(초대, 가와사키 조선소에서 건조되었으나 좌초되어 마이즈루에서 대체 함선 건조)
고우카제형타니카제(초대)
미네카제급미네카제, 오키카제, 시마카제(초대), 나다카제, 시오카제, 타치카제, 호카제, 노카제, 누마카제, 나미카제
가미카제급하루카제(2대), 마츠카제(2대), 하타카제
무츠키급키사라기(2대), 키쿠즈키(2대)
후부키급후부키(2대), 하츠유키(2대), 시키나미(2대), 유기리(2대), 사자나미(2대), 히비키(2대)
하츠하루급유구레(2대)
시라츠유급하루사메(2대), 우미카제(2대)
아사시오급오시오, 아라레(2대)
가게로급가게로(2대), 오야시오, 아마츠카제(2대), 노와키(2대), 아라시
유구모급유구모, 마키나미, 하야나미, 하마나미, 오키나미, 하야시모
시마카제급시마카제(2대)
아키즈키급아키즈키, 하츠즈키, 후유즈키, 하나즈키
마츠급, 타치바나형마츠(2대), 모모(2대), 마키(2대), 카야(2대), 츠바키(2대), 니레(2대), 시이, 에노키(2대), 오다케, 하츠우메


3. 2. 전후 민간 기업 시기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시설은 이노산업(飯野産業)이 인수하여 조선업을 계속했다. 회사는 이노 중공업(飯野重工業), 마이즈루 중공업(舞鶴重工業), 히타치 조선(日立造船), 유니버설 조선(ユニバーサル造船)으로 바뀌었고, 현재는 재팬 마린 유나이티드의 마이즈루 사업소가 되었다. 민간 조선소가 현재에도 함정 건조를 계속하고 있어서, 현재에도 동해 연안 최대의 조선소로 알려져 있다.[1]

1963년에는 마이즈루 중공업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1971년에는 히타치조선에 합병되었다.[2] 2002년, 히타치조선은 조선 부문을 합작 투자 형태로 JFE 홀딩스(JFE Holdings)의 JFE 엔지니어링(JFE Engineering)과 합작하여 유니버설 조선 주식회사로 분사시켰다. 유니버설 조선 주식회사와 IHI 해양 유나이티드(IHI Marine United Inc.)는 2013년에 통합되어 재팬 마린 유나이티드가 되었다.

구 본사와 조선소와 관련된 일부 창고는 마이즈루 시 정부에 의해 기념 박물관으로 보존되어 있다. 전쟁 전의 드라이 도크와 대형 크레인 중 하나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이이노 중공업과 마이즈루 중공업에서 건조한 함선은 다음과 같다.

회사명함선 종류함선 이름
이이노 중공업카리형 구축잠수정키지, 와시
이이노 중공업아야나미형 호위함마키나미
이이노 중공업이즈즈형 호위함오오이
마이즈루 중공업야마구모형 호위함아사구모
마이즈루 중공업아즈마형 훈련 지원함아즈마
마이즈루 중공업미네구모형 호위함무라쿠모


4. 역대 공창장

대수이름계급취임일퇴임일
초대
(1903년
11월
10일)
하시모토 마사아키소장1903년 11월 10일1903년 12월 28일
무카이야마 신키치소장1903년 12월 28일1905년 5월 11일
나카미조 도쿠타로소장1905년 5월 11일1908년 5월 15일
기타코가 다케이치로소장1908년 5월 15일1908년 8월 28일
사카모토 하지메소장1908년 8월 28일1910년 4월 9일
가토 사다키치소장1910년 4월 9일1911년 3월 11일
고이즈미 겐타로소장1911년 3월 11일1911년 12월 1일
차야마 도요야소장1911년 12월 1일1913년 12월 1일
다나카 모리히데소장1913년 12월 1일1915년 12월 13일
우에무라 오스케소장1915년 12월 13일1916년 12월 1일
기무라 고소장1916년 12월 1일1918년 9월 4일
난리 단이치소장1918년 9월 4일1920년 12월 1일
히라츠카 다모쓰기관소장1920년 12월 1일1921년 9월 1일
오카자키 데이고기관소장1921년 12월 1일1922년 12월 1일
마사키 요시타소장1922년 12월 1일1923년 4월 1일
기시모토 노부타기관대좌1924년 6월 21일1925년 12월 1일
구로다 다쿠마소장1925년 12월 1일1927년 12월 1일
마쓰시타 가오루소장1928년 12월 10일1929년 11월 30일
와다 노부후사소장1929년 11월 30일1932년 11월 15일
2대
(1937년
12월
1일)
마쓰키 마스요시소장1937년 12월 1일1939년 9월 20일
니카이도 유켄소장1939년 9월 20일1940년 11월 15일
이시이 츠네지로중장1940년 11월 15일1941년 10월 15일
오자와 센키치소장1941년 10월 15일1944년 3월 10일
모리주 마쓰오소장1944년 3월 10일1945년 5월 1일
고바야시 요시하루중장1945년 5월 1일1945년 11월 1일


5. 유산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마이즈루 해군 공창은 이노 산업 주식회사(Iino Industries Co. Ltd.)에 인수되어 마이즈루 조선소가 설립되었다.[1] 1963년에 마이즈루 중공업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1971년에는 히타치조선에 합병되었다.[2] 2002년, 히타치조선은 조선 부문을 JFE 홀딩스(JFE Holdings)의 JFE 엔지니어링(JFE Engineering)과 합작 투자 형태로 유니버설 조선 주식회사로 분사시켰다. 2013년에는 유니버설 조선 주식회사와 IHI 해양 유나이티드가 통합되어 재팬 마린 유나이티드가 되었다.

마이즈루시 정부는 구 본사와 조선소 관련 창고 일부를 기념 박물관으로 보존하고 있다. 전쟁 전의 드라이 도크와 대형 크레인 중 하나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참조

[1] 웹사이트 The Contributions and Roles of Industrial Policy in Postwar Japanese Economic Development https://web.archive.[...] 2012-05-23
[2] 웹사이트 Shipbuilding in Japan 2003 http://nippon.zaidan[...] Nippon.zaidan.info 2012-05-23
[3] 웹사이트 舞鶴事業所における構造改革に関するお知らせ https://www.jmuc.co.[...] 2023-02-18
[4] 뉴스 JMU舞鶴 最後の新造船を引き渡し 1世紀にわたる新船建造に幕 https://trafficnews.[...] 2021-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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