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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체아 라우렌치아나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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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메디체아 라우렌치아나 도서관은 1523년 교황 클레멘스 7세의 의뢰로 미켈란젤로가 설계하여 건설된 이탈리아 피렌체의 도서관이다. 미켈란젤로가 피렌체를 떠난 후 다른 건축가들이 그의 설계를 이어받아 1571년에 완공되었으며, 현관, 계단, 열람실로 구성된다. 이 도서관은 건축의 매너리즘적 특징을 보이며, 마크 로스코의 작품에 영향을 미쳤다. 약 11,000권의 필사본, 2,500개의 파피루스 등을 소장하고 있으며, 피렌체 코덱스, 라불라 복음서, 아미아티누스 코덱스, 스콰르치알루피 코덱스 등 중요한 자료들을 보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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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체아 라우렌치아나 도서관 - [지명]에 관한 문서
도서관 정보
이름메디체아 라우렌치아나 도서관
원어 이름Biblioteca Medicea Laurenziana (이탈리아어)
위치이탈리아, 피렌체
로렌치아나 도서관
로렌치아나 도서관은 사진 왼쪽의 회랑 위에 있는 긴 창문 행에서 식별할 수 있음; 바로 오른쪽에 창문이 두 줄 있는 더 높은 구조는 현관임.
건축 양식매너리즘
건축가미켈란젤로
소유자메디치 가문
소속메디치 가문
개관일미완성 (1571년)
웹사이트메디체아 라우렌치아나 도서관

2. 건축

라우렌치아나 도서관은 1523년 교황 클레멘스 7세(줄리오 데 메디치)가 의뢰하여 계획되었고, 1525년 미켈란젤로의 주도로 건설이 시작되었다.[1][2] 그러나 미켈란젤로가 1534년 피렌체를 떠났을 때는 열람실 벽만 완성된 상태였다. 이후 트리볼로, 바사리, 암마나티가 미켈란젤로의 계획과 구두 지시에 따라 공사를 이어받아 진행했고, 도서관은 1571년에 완공되어 개관했다. 이처럼 도서관은 미켈란젤로가 직접 실행한 부분과 그의 지시를 후대에 해석하여 건설된 부분이 통합된 결과물이다.

라우렌치아나 도서관은 미켈란젤로의 가장 중요한 건축적 업적 중 하나로 꼽힌다. 동시대 사람들조차 라우렌치아나 도서관의 혁신적인 공간 활용과 디자인이 기존의 건축 방식과는 매우 다른 혁명적인 시도임을 인식했다. 바사리는 이 건물에 대해 다음과 같이 극찬했다.

> 창문의 훌륭한 배치, 천장의 구조, 현관의 훌륭한 입구는 아무리 칭찬해도 부족하다. 대담함과 우아함이 전체 작품과 모든 부분, 즉 처마 장식, 코벨, 조각상 틈새, 편리한 계단, 그리고 그것의 기발한 분할, 모든 건물에서 똑같이 두드러진다. 즉, 일반적인 처리 방식과는 너무나 달라서 모든 사람이 그 모습을 보고 놀란다.[4]

도서관은 산 로렌초 성당의 콰트로첸토 양식으로 지어진 2층 회랑 위에 증축되었는데, 이 기존 구조는 변경되지 않았다. 이로 인해 도서관의 길이와 너비 등 미켈란젤로의 계획에 제약이 따랐다. 새로운 벽은 기존 회랑의 벽 위에 세워졌기 때문에, 기둥을 벽 안으로 집어넣는 구조적 처리가 불가피했고, 이는 미켈란젤로 특유의 독창적인 스타일과 패턴을 형성하는 배경이 되었다.

2. 1. 현관 (Vestibule)

현관


'리체토'(Ricetto|리체토it)라고도 불리는 현관은 길이 10.5m, 너비 10.5m, 높이 14.6m의 크기를 가진다.[3] 이 공간은 회랑 동쪽 구역의 기존 수도원 건물 위에 지어졌으며, 입구는 회랑 위층에서 이어진다. 원래 미켈란젤로는 채광창을 계획했으나, 교황 클레멘스 7세가 지붕 누수를 우려하여 서쪽 벽에 창문을 내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현관 내부는 피에트라 세레나(Pietra serena, 회색 사암)로 틀을 잡고 삼각형 또는 반원형 페디먼트로 장식된 빈 창문들이 벽에 설치된 쌍 기둥 사이에 배치되어 둘러싸고 있다.[2]

현관 평면도, 배니스터 플레처 작


현관은 천장의 들보에 해당하는 필라스터로 구분된 구획(bay)의 창문을 통해 빛을 받는다. 높고 좁은 이 현관은 열람실로 이어지는 계단으로 채워져 있으며, 종종 건축 매너리즘의 대표적인 예로 언급된다.[5] 이 창문들은 1559년 바르톨로메오 암마나티가 미켈란젤로의 설계를 바탕으로 만들었다.[1]

계단


계단의 디자인은 계획 단계에서 크게 변경되었다. 1524년 초기 설계에서는 양쪽 벽에 계단을 두어 열람실 문 앞에서 합쳐지는 형태였으나, 1년 후 현관 중앙으로 계단 위치가 옮겨졌다. 니콜로 트리볼로가 1550년에 이 계획을 실행하려 했으나 실패했고, 이후 바르톨로메오 암마나티가 미켈란젤로가 남긴 작은 점토 모형과 부족한 자료, 구두 지시만을 가지고 그의 아이디어를 해석하여 계단을 완성하는 도전을 맡았다.[3]

계단은 현관 바닥의 절반을 차지하며 열람실로 이어진다. 중앙 계단의 디딤판은 볼록하며 너비가 다양하고, 양옆의 외부 계단은 직선 형태이다. 중앙 계단의 가장 아래 세 계단은 다른 계단보다 넓고 높으며, 거의 동심원의 타원형 석판과 같은 모습이다. 계단은 내려가면서 세 갈래로 나뉜다.[2][3]

비평가들은 현관 벽면에 움푹 들어간 기둥들이 마치 수직 지지대 사이에 팽팽하게 당겨진 피부와 같다고 지적했다. 이는 공간이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이상적인 형태인 인체를 모방하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또한 기둥이 코벨(내밀내기) 위에 얹혀 있는 것처럼 보여, 무게가 약한 요소에 실리는 듯한 불안정한 느낌을 준다. 이러한 구조적 모호함 때문에 관람자는 지붕이 기둥에 의해 지지되는지, 벽에 의해 지지되는지 분간하기 어렵다. 이런 모호함은 파격적인 형태의 창문과 모든 건축 요소들이 압축된 듯한 느낌에 의해 더욱 강조되어, 공간 전체에 긴장감과 억제된 에너지를 만들어낸다.[2]

현관에서 고전 건축 양식을 사용한 방식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움푹 들어간 기둥은 겉보기에는 남성적인 특징을 가진 것으로 여겨지는 검소하고 장식 없는 도리아 양식처럼 보인다. 도리아 양식은 로마의 콜로세움처럼 이오니아 양식, 복합식 기둥, 코린토스 양식으로 이어지는 위계질서의 가장 기초에 놓인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실제로는 복합식 양식이 사용되었지만, 기둥머리의 특징적인 장식인 아칸서스 잎과 사선 볼루트가 제거되어 기둥 상단이 벗겨진 듯한 모습이다. 건축 용어에서 이러한 장식 제거는 매너리즘에서 전례 없는 과감한 시도였으며, 동시대 관찰자들도 알아차렸을 정교한 표현 기법이다.

계단의 역동적인 조각 형태는 마치 용암이 위층에서 흘러내리는 것처럼 보이며, 매우 독특한 방식으로 현관 바닥 공간을 채운다. 중앙 계단의 볼록한 디딤판들은 너비가 일정하지 않아 전체적인 배치에 불안정한 느낌을 더한다.[2]

2. 2. 계단 (Staircase)



계획 초기 단계에서 계단의 설계는 큰 변화를 겪었다. 1524년 첫 설계안에서는 두 개의 계단을 양쪽 벽에 배치하고, 열람실 문 앞에서 다리처럼 이어지도록 구상했다. 그러나 1년 후, 계단은 현관 중앙으로 위치를 옮기게 되었다. 1550년 트리볼로가 이 변경된 계획을 실행하려 했으나 실제로 건설되지는 못했다. 결국 암마나티가 미켈란젤로가 남긴 작은 점토 모형과 부족한 자료, 구두 지시만을 가지고 그의 아이디어를 해석하여 계단을 완성하는 어려운 과제를 맡았다.[3]

현관 중앙에 자리한 이 계단은 위층의 열람실로 이어지며, 현관 바닥 면적의 절반가량을 차지한다. 계단의 디자인은 매우 독창적인데, 중앙 계단의 디딤판은 바깥쪽으로 볼록한 곡선 형태이며 각 디딤판의 너비가 서로 다른 반면, 양쪽의 외부 계단은 직선으로 이루어져 뚜렷한 대조를 보인다. 특히 중앙 계단의 가장 아래쪽 세 개 디딤판은 다른 디딤판들보다 더 넓고 높으며, 거의 동심원을 이루는 타원형 석판과 같은 모습이다. 계단은 아래로 내려오면서 중앙과 양쪽의 세 갈래로 자연스럽게 나뉜다.[2][3]

계단의 전체적인 모습은 마치 용암이 위층에서부터 흘러내리는 듯한 역동적인 조각처럼 느껴지며, 이러한 디자인은 현관 공간을 매우 독특한 방식으로 채운다. 특히 중앙 계단 디딤판들의 너비가 일정하지 않고 변화하는 형태는 보는 이로 하여금 시각적인 불안정감을 느끼게 만들기도 한다.[2]

2. 3. 열람실 (Reading Room)

계단 꼭대기에서 본 열람실


열람실은 길이 46.2m, 너비 10.5m, 높이 8.4m이다. 중앙 통로를 사이에 두고 두 개의 좌석 블록이 있으며, 각 좌석의 등받이는 뒤쪽 벤치를 위한 책상 역할을 한다. 책상은 벽을 따라 균등하게 배치된 창문으로 자연 채광을 받는다. 창문은 기둥으로 둘러싸여 천장과 바닥의 배치를 명확하게 구분하는 베이(bay) 시스템을 형성한다.[3]

열람실은 기존 층 위에 지어졌기 때문에 미켈란젤로는 열람실 벽의 무게를 줄여야 했다. 벽의 틀과 층 시스템은 기둥 사이의 베이의 부피와 무게를 줄이는 방식으로 설계되었다.[3]

열람실의 현재 나무 바닥 아래에는 15개의 직사각형 빨간색과 흰색 테라코타 바닥 패널이 있다. 한 변의 길이가 약 2.6m인 이 패널들은 순서대로 보면 기하학의 기본 원리를 보여준다. 이 타일들은 원래 계획된 가구 아래에 보이도록 배치되었으나, 나중에 방의 열람 책상 수를 늘리기 위해 가구 배치가 변경된 것으로 여겨진다.[6][7]

3. 건축적 해석

라우렌치아나 도서관은 미켈란젤로의 가장 중요한 건축적 업적 중 하나로, 동시대인들도 그 혁신성과 공간 활용이 혁명적임을 인정했다. 조르조 바사리는 창문의 배치, 천장 구조, 현관 입구의 훌륭함을 칭찬하며, 전체 작품과 모든 부분에서 드러나는 대담함과 우아함, 특히 일반적인 건축 방식과 다른 독창적인 계단 설계에 대해 언급하며 모든 사람이 그 모습에 놀란다고 기록했다.[3] 이 도서관은 건축의 매너리즘 양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자주 언급된다.[5]

도서관 건축 시 기존 건물의 구조적 제약, 특히 콰트로첸토 양식의 회랑 위에 도서관을 증축해야 했기 때문에 미켈란젤로는 독창적인 해결책을 고안해야 했다. 기존 벽 위에 새로운 벽을 세우면서 기둥을 벽 안으로 움푹 들어가게 배치하는 것이 구조적으로 불가피했는데, 미켈란젤로는 이를 독특한 스타일로 승화시켰다.

'리체토'라고도 불리는 현관(베스티블)은 길이 10.5m, 너비 10.5m, 높이 14.6m의 공간이다.[3] 이곳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벽 안으로 움푹 들어간 기둥이다. 비평가들은 이 움푹 들어간 기둥이 마치 수직 지지대 사이에 팽팽하게 당겨진 피부와 같다고 지적하며, 이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에 이상적인 형태로 여겨졌던 인체를 모방한 것처럼 보이게 한다고 해석했다. 기둥이 코벨 위에 얹혀 있는 것처럼 보여 무게가 약한 요소에 실리는 듯한 시각적 불안정성을 유도하며, 지붕을 기둥이 지지하는지 벽이 지지하는지 모호하게 만든다. 이러한 모호함은 파격적인 형태의 창문과 건축 요소들의 압축된 배치와 결합되어 공간 전체에 긴장감과 억제된 에너지를 부여한다.[2]

현관 내부 벽면에는 피에트라 세레나 석재로 틀을 만들고 삼각형 또는 반원형 페디먼트로 장식된 빈 창문들이 쌍을 이루는 기둥 사이에 배치되어 있다.[2] 미켈란젤로는 원래 채광창을 계획했으나, 교황 클레멘스 7세의 우려로 서쪽 벽에 창문을 내는 것으로 변경되었다.[3]

고전 건축 양식의 사용 또한 독특하다. 움푹 들어간 기둥은 겉보기에는 장식이 없는 도리아 양식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복합식 양식을 사용하면서 기둥머리의 특징적인 장식인 아칸서스 잎과 사선 볼루트를 제거하여 기둥 상단을 단순화했다. 이는 고전 건축 규범에서 벗어난 의도적인 변형으로, 매너리즘의 특징을 보여주는 파격적인 시도이다.

현관 공간의 절반을 차지하는 계단은 라우렌치아나 도서관의 가장 극적인 요소이다. 미켈란젤로는 원래 측벽에 두 개의 계단을 두는 안을 구상했으나, 이후 현관 중앙으로 옮기는 것으로 변경했다. 이 계획은 미켈란젤로가 피렌체를 떠난 후 니콜로 트리볼로와 바르톨로메오 암마나티에 의해 실현되었는데, 특히 암마나티는 미켈란젤로가 남긴 작은 점토 모형과 부족한 자료, 구두 지시를 바탕으로 그의 아이디어를 해석하여 계단을 완성했다.[3]

계단은 마치 용암이 흘러내리는 듯한 역동적인 조각적 형태를 띠며 현관 바닥 공간을 압도한다. 중앙 계단의 디딤판은 볼록한 타원형이며 아래로 내려올수록 폭이 넓어지고, 양쪽의 외부 계단은 직선형으로 디자인되었다. 특히 중앙 계단의 가장 낮은 세 계단은 다른 계단보다 넓고 높으며 거의 동심원 형태를 이루어 시각적인 불안정감을 더욱 강조한다.[2][3]

라우렌치아나 도서관 열람실


이러한 극적인 현관 및 계단과 대조적으로, 열람실은 차분하고 안정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필라스터 사이에 규칙적으로 배치된 창문을 통해 풍부한 자연광이 들어오며, 고요하고 편안한 독서 공간을 제공한다.[2] 이는 미켈란젤로가 의도한 공간의 대비 효과를 잘 보여준다.

4. 현대 문화에 미친 영향

라우렌치아나 도서관 현관. 마크 로스코에게 영감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추상표현주의 화가 마크 로스코는 도서관의 현관과 계단 벽에서 영감을 받아 1959년 시그램 벽화를 제작했다고 밝혔다.[8] 미켈란젤로, 라우렌치아나 도서관 (스마트히스토리)[9]

5. 소장 자료

1571년, 토스카나 대공 코시모 1세는 아직 완공되지 않았던 도서관을 학자들에게 처음 공개했다.[1] 이후 도서관의 소장 자료는 꾸준히 증가했으며, 특히 1757년에 임명된 사서 안젤로 마리아 반디니는 소장 목록을 인쇄하고 관리하며 컬렉션 확충에 크게 기여했다.

라우렌치아나 도서관은 필사본, 파피루스, 도편, 초기 인쇄본(Incunabula) 등 방대한 고문헌과 희귀 자료를 소장하고 있다.[10] 도서관의 핵심 컬렉션은 15세기 메디치 가문이 수집한 자료들을 기반으로 형성되었으며, 교황 레오 10세교황 클레멘스 7세를 거치며 피렌체로 옮겨져 현재 도서관 소장품의 기초가 되었다. 이 외에도 여러 개인 컬렉션과 산마르코 수도원의 도서관 자료 등이 더해져 규모가 확장되었다.

소장 자료 중에는 아즈텍 문명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피렌체 코덱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라틴 불가타 성경인 아미아티누스 코덱스, 6세기 시리아어 라불라 복음서 등 세계적으로 중요한 고문서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5. 1. 주요 소장 자료

라우렌치아나 도서관은 방대한 자료를 소장하고 있다.

도서관 소장 자료 규모[10]
종류수량
필사본약 11,000권
파피루스2,500개
도편 (Ostraka)43개
인쇄본 (Incunabula)566개
16세기 인쇄물1,681개
17세기~20세기 인쇄물126,527개



핵심 컬렉션은 약 3,000권의 필사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는 1571년 도서관 개관 당시 난간(plutei)에 배치되었고 1589년 조반니 론디넬리와 바초 발로리가 색인 작업을 진행했다. 이 필사본들은 'Pluteus' 또는 'Pluteo' ('Plut.')라는 서명을 가지고 있다. 이 컬렉션에는 15세기 동안 메디치 가문이 수집한 필사본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이들은 1508년 조반니 디 메디치(교황 레오 10세)에 의해 다시 확보되어 1520년대에 훌리오 디 줄리아노 데 메디치(교황 클레멘스 7세)에 의해 피렌체로 옮겨졌다. 메디치 도서관은 프란체스코 사세티와 프란체스코 필레르포가 수집한 컬렉션, 레오 10세가 획득한 필사본, 그리고 산마르코 도미니크 수도원의 도서관 자료들을 통합하며 확장되었다.

도서관이 소장한 주요 자료는 다음과 같다.


  • 피렌체 코덱스: 나와틀어로 작성되었으며, 아즈텍 문명의 정복 이전 생활상에 대한 핵심 정보를 담고 있는 주요 자료이다.
  • 라불라 복음서: 6세기에 제작된 시리아어 복음서이다.
  • 아미아티누스 코덱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라틴 불가타 성경 필사본이다.
  • 스콰르치알루피 코덱스: 중요한 초기 음악 필사본이다.
  • 에리나의 시: 고대 그리스 시인 에리나가 쓴 시 "Ἠλακάτη|엘라카테grc(물레)"의 일부를 보존하고 있는 파피루스이다.

참조

[1] 서적 Medicean-Laurentian Library Encyclopædia Britannica
[2] 서적 Buildings across Time Lawrence King Publishing Ltd
[3] 서적 Architecture in Italy, 1500–1600 Yale University Press
[4] 서적 Lives of Seventy of the Most Eminent Painters, Sculptors, and Architects C. Scribner's Sons
[5] 웹사이트 Vestibule of the Laurentian Library http://www.abcgaller[...] 2007-02-14
[6] 간행물 The Hidden Pavement Designs of the Laurentian Library http://www.nexusjour[...] Edizioni dell'Erba
[7] 논문 Hidden Inscriptions in the Laurentian Library http://ralph.cs.cf.a[...] 2007-02-16
[8] 뉴스 Feeding fury https://www.theguard[...] 2002-12-06
[9] 웹사이트 Michelangelo, Laurentian Library http://smarthistory.[...] Smarthistory at Khan Academy 2013-03-18
[10] 웹사이트 Fondi principali http://www.bml.fir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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