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카르디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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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리카르디 도서관은 1600년 리카르도 로몰로 리카르디에 의해 설립된 이탈리아 피렌체에 위치한 도서관이다. 리카르디 가문의 개인 도서관으로 시작하여 1715년 대중에게 개방되었으며, 1813년 피렌체 시에 매각되어 공공 도서관이 되었다. 현재는 이탈리아 문화부 산하 기관으로 운영되며, 10세기 필사본부터 르네상스 시대 인문주의자의 작품까지 다양한 소장품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루카 조르다노, 주세페 니콜라 나시니 등 유명 예술가들의 프레스코화로 장식된 메디치-리카르디 궁전 내부에 위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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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카르디 도서관 - [지명]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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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명칭 | Biblioteca Riccardiana 리카르디 도서관 |
위치 | 이탈리아 - 지역: 토스카나주 |
주소 | 10 Via Ginori, 50123 피렌체 |
소장 정보 | |
장서 규모 | 4,460권의 제본된 필사본 5,620페이지의 제본되지 않은 페이지 73,342권의 인쇄된 책 725점의 초판본 3,880점의 16세기 에디션 258종의 정기간행물 |
운영 정보 | |
웹사이트 | 리카르디아나 도서관 공식 웹사이트 |
관장 | Francesca Gallori 프란체스카 갈로리 |
2. 역사
리카르디 도서관은 1600년 리카르도 로몰로 리카르디가 개인 소장품으로 설립한 것에서 시작되었다. 1670년부터는 가문이 매입한 메디치-리카르디 궁전으로 이전하여 화려하게 장식되었으며, 1715년부터 대중에게 개방되었다. 18세기 후반에는 부제 가브리엘로 리카르디 주도로 신고전주의 양식의 관장실이 추가되는 등 확장되기도 했다.
19세기 초, 리카르디 가문의 재정난으로 도서관은 경매 위기에 처했으나, 1813년 피렌체 시가 매입하여 공공 자산이 되었다. 같은 해부터 아카데미아 델라 크루스카 소속이 되었고, 이후 토스카나 대공국의 관리하에 놓였다. 19세기 후반에는 피렌체 국립 중앙 도서관(1876-1884)과 로렌초 도서관(1898년 이후)이 차례로 관리 책임을 맡았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잠시 폐쇄되었다가 1942년에 독립적인 행정 기관으로 다시 문을 열었다. 현재 이탈리아 문화부 산하 국립 도서관으로 운영되며, 월드 디지털 라이브러리와 협력 관계를 맺고 있다.[18]
2. 1. 설립과 초기 역사 (17세기)
리카르디 도서관은 1600년 리카르도 로몰로 리카르디(Riccardo Romolo Riccardi, 1558–1612)에 의해 설립되었다. 처음에는 리카르디 가문의 개인 소장품 중 하나로, 비아 굴폰다(Via Gualfonda, 현재의 피렌체 비아 발폰다)에 위치해 있었다.
1659년 3월, 가브리엘로 리카르디(Gabriello Riccardi, 1606–1675)가 메디치 궁전 (후에 메디치-리카르디 궁전으로 알려짐)을 매입했다. 이후 1670년부터 마르키스 프란체스코 디 코시모 리카르디(Francesco di Cosimo Riccardi, 1648–1719)는 가문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115,000 "스쿠디"라는 막대한 금액을 투자하여 궁전을 복원하고 확장하는 과정에서 도서관을 궁전 뒷면(오늘날 비아 데 지노리)으로 이전했다.[1] 이 대규모 투자는 리카르디 가문의 생활에 큰 변화를 가져왔지만, 결국 재정적 어려움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궁전의 복원과 확장 작업에는 페르디난도 타카, 피에르 마리아 발디니, 조반니 바티스타 포지니 등 당대의 예술가들이 참여했다. 특히 포지니는 인테리어 디자인을 총괄했으며, 홀과 도서관의 천장 장식은 당대 최고의 화가 중 한 명이자 빠른 작업 속도로 유명했던 루카 조르다노에게 맡겨졌다.[3] 도서관과 갤러리의 장식 프로그램은 학자이자 아카데미아 델라 크루스카의 비서였던 알레산드로 세니 상원 의원이 설계했다.[5] 갤러리와 도서관은 처음에는 하나의 단위로 구상되어 동일한 장식 주제를 공유했다.[4] 도서관 천장에는 1685년 루카 조르다노가 그린 프레스코화 "마음이 진실을 이해한다"가 있는데, 이는 지혜와 이해, 지식을 향한 길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6] 홀의 프레스코화는 인간의 삶의 단계와 사계절, 신화적 인물 등을 묘사했다.[5]
1689년에는 루카 조르다노가 그린 갤러리가 토스카나 대공 페르디난도 데 메디치와 바이에른의 비올란테 베아트리체의 결혼 축하 행사에 맞춰 화려하게 개관했다.[2] 프란체스코 리카르디는 가구 제작에도 신경을 써, 피렌체 장인인 토마소와 주세페 스테키에게 의뢰하여 책장을 만들게 했다.[7]
1691년에는 도서관 내부의 두 방, 즉 오늘날 '살라 에스포지치오네'(Sala Esposizione)와 '살라 카탈로고'(Sala Catalogo)로 알려진 공간도 장식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프레스코화가 그려졌다.[8] 살라 에스포지치오네에는 토마소 나시니가 그린 "헤라클레스의 십자로"가, 살라 카탈로고에는 그의 사촌인 주세페 니콜라 나시니가 그린 "제우스가 그의 번개로 거인들을 치는 모습"이 그려져 인간의 운명이라는 주제를 이어갔다.[9]
2. 2. 확장과 대중 개방 (18세기)
1715년부터 대중들에게 개방되었다.2. 3. 공공 도서관으로의 전환 (19세기)
1715년부터 대중들에게 개방되었다. 1813년부터 지금까지 아카데미아 델라 크루스카에 속해있다.2. 4. 현대 (20세기~현재)
1813년부터 현재까지 아카데미아 델라 크루스카에 속해 있으며, 월드 디지털 라이브러리와 협력 관계를 맺고 있다.[18]3. 소장 자료
리카르디 도서관은 오랜 기간에 걸쳐 수집되고 통합된 방대한 양의 필사본과 인쇄본을 소장하고 있다. 현재 약 4,460권의 제본 필사본과 5,620점의 미제본 필사본 자료, 그리고 약 73,342권의 인쇄본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 중에는 초기 인쇄본인 인쇄본(인큐나불라)과 16세기 판본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이 컬렉션은 리카르디 가문이 피치노, 란디노, 브라촐리니, 베네데토 바르키와 같은 저명한 인문주의자나 메디치 가문 등 피렌체 유력 가문들이 소유했던 개인 도서관의 자료들을 통합하면서 형성되었다. 특히 아직 출판되지 않았거나 제대로 연구되지 않은 자료들도 많아 학술적 가치가 높다.
도서관의 소장품 규모는 17세기 후반 카포니 가문과의 혼인을 통해 크게 확장되었으며,[11] 이후 프란체스코 리카르디와 그의 아들 가브리엘로 리카르디(1705–1798)가 지속적으로 자료를 수집하고 관리하며 도서관을 발전시켰다. 가브리엘로 리카르디는 도서관을 재정적으로 자립시키고 대중에게 개방하였으며, 다양한 출처의 소장품들을 단일 컬렉션으로 통합 관리하는 체계를 마련했다.[12][13][14] 1810년 목록 작성 이후에도 구입과 기증을 통해 소장 자료는 꾸준히 확충되었다.[15]
이 외에도 도서관은 리카르디 가문의 회화 컬렉션 일부였던 드로잉 컬렉션[16][17] 및 여러 기증 자료, 그리고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 연구 자료(Collezione Segré), 지리 자료(Collezione Uzielli), 패션 디자인 관련 자료(키오소 컬렉션) 등 특화된 컬렉션도 보유하고 있다.
3. 1. 필사본
리카르디 도서관은 방대한 양의 필사본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는 도서관의 가장 중요한 자산 중 하나이다. 현재 제본된 필사본 4,460권과 제본되지 않은 낱장 필사본 5,620권을 소장하고 있으며, 여기에는 조반니 라미, 조반 바티스타 파주올리, 로렌조 메후스, 마리오 피에리 등의 개인 소장품이 포함되어 있다. 이 컬렉션은 리카르디 가문이 여러 세대에 걸쳐 피치노, 란디노, 브라촐리니, 베네데토 바르키와 같은 유명 인문주의자나 판돌피니, 미네르베티, 네시, 아디마리, 메디치 같은 피렌체 유력 가문들이 소유했던 개인 도서관들을 통합하면서 형성되었다. 아직 출판되지 않았거나 제대로 목록화되지 않은 자료들도 많아, 연구를 통해 새로운 발견이 이루어지기도 한다.주요 소장 필사본은 다음과 같다.
- 고대 및 중세 문헌: 10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플리니우스의 《박물지》 사본과 여러 중요한 성서 필사본(Minuscule 368, 369, 370)을 소장하고 있다. 또한 아르키메데스의 여러 논문을 모은 필사본(Ricc. 106)에는 르네상스 화가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가 직접 그린 200개 이상의 삽화가 포함되어 있어 예술사적으로도 가치가 높다. 12세기 초에 제작된 거대한 크기의 "대서양 성경"(Ricc. 221)과 황제 프리드리히 2세가 1235년경 아내를 위해 주문 제작한 시편(Ricc. 323)도 중요한 소장품이다. 후자는 이탈리아 남부 비잔틴 양식의 화려한 삽화가 특징이다. 13세기 후반 볼로냐에서 제작된 《성 마가렛과 성 아그네스 전설》(Ricc. 453)은 작지만 매우 정교한 세밀화로 장식되어 있다.

- 고전 문학: 도서관에서 가장 유명한 필사본 중 하나는 '비르길리오 리카르디아노'(Ricc. 492)이다. 15세기 피렌체의 유명 필사자 니콜라우스 리키우스 스피노수스가 필사하고, 화가 아폴로니오 디 조반니와 그의 공방에서 그린 88개의 세밀화(일부는 미완성)로 장식되어 있다. 이 필사본에는 베르길리우스의 주요 작품인 《목가》, 《농경시》, 《아이네이스》가 담겨 있다.

- 르네상스 및 인문주의: 니콜로 마키아벨리가 직접 서명한 《피렌체사》 원고와 그의 대표작 《군주론》의 초기 필사본(Ricc. 2603, 1521년 이전 비아조 부오나코르시 필사)은 르네상스 정치사상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단테 관련 컬렉션도 풍부한데, 조반니 보카치오가 1360년대에 직접 필사하고 지옥 장면을 그린 《신곡》(Ricc. 1035)이 특히 유명하다. 또한 세밀화로 장식된 볼로냐 사본 《신곡》(Ricc. 1005, 지옥편과 연옥편), 단테의 유명한 초상화가 실린 15세기 《운율》 사본(Ricc. 1040) 등도 소장하고 있다. 로렌초 데 메디치가 아들 줄리아노 데 메디치를 위해 주문한 주판 관련 수학 논문(Ricc. 2669)은 당시 상업 교육 내용뿐 아니라 메디치 가문을 찬양하고 피렌체 일상을 묘사한 삽화를 통해 15세기 후반 피렌체의 기술과 도구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이 외에도 페트라르카, 피코 델라 미란돌라,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 아뇰로 폴리치아노 등 주요 인문주의자들의 저작 필사본과 바르톨로메오 암마나티의 건축 관련 드로잉 노트(Ed. rare 120)도 소장하고 있다.

- 기타 희귀 자료: 14세기 초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요리책 중 하나(Ricc. 1071)에는 57개의 조리법이 담겨 있다. 16세기 전반 제노바 지도 제작자 프란체스코 기솔포가 제작하여 메디치 가문에 헌정한 화려한 해양 지도(Ricc. 3615–3616) 두 점도 있다. 또한, 폴리네시아어로 된 19세기 판본 14점(MS Ricc. 4125, 나무껍질에 쓰인 마법/종교 주문), 그리스어, 아랍어, 히브리어로 된 두루마리 세 점(MS Ricc. I-III) 등 특이한 자료들도 소장하고 있다. 연극 관련 컬렉션에는 무대 스케치, 배우 대본, 희극 줄거리 등 공연 기술과 제작에 대한 희귀한 정보들이 포함되어 있다.
필사본 컬렉션은 1810년 목록 작성 이후에도 꾸준히 구입을 통해 확장되어 현재의 규모에 이르렀다.[15]
3. 2. 인쇄본
리카르디 도서관은 총 73,342권의 인쇄된 책을 소장하고 있다. 이 가운데 725권은 15세기에 인쇄된 인쇄본(인큐나불라)이며, 3,880권은 16세기 판본이다.특히 주목할 만한 인쇄본은 다음과 같다.
- '''마누엘 크리솔로라스의 ''에로테마타''': 그리스어로 인쇄된 최초의 책으로 추정되는 귀중한 인쇄본이다.
- '''사보나롤라의 메모가 있는 성경'''(Ed. rare 640): 18세기 후반까지 캄포레기아의 산타 루치아 수도원에 보존되었던 이 작은 책에는 사보나롤라가 직접 쓴 작은 주석들이 많이 남아 있다. 그는 설교 준비 시 자신의 전례서나 성경 여백에 메모를 남기곤 했다. 파란색과 빨간색 머리글자로 각 섹션이 장식되어 있다.
- '''프란체스코 스포르차의 생애'''(Ed. rare 428): 황제에게 헌정된 이 전기의 사본은 화려하게 장식된 앞면이 특징이다.
- '''단테의 ''신곡'''''(Ed. rare 691): 단테의 대표작인 신곡의 첫 번째 피렌체 판본이다. 크리스토포로 란디노의 해설과 함께 산드로 보티첼리의 그림을 바탕으로 제작된 21개의 목판화가 포함되어 있다. 보티첼리는 안토니오 디 니콜로가 삽화를 그린 ''Fiore di virtù''(Ricc. 1711, f. 1v) 사본에 있는 그림(날개 달린 여성이 천구의를 든 모습, 아마도 우라니아)의 원작자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3. 3. 기타 자료
리카르디 도서관은 주요 필사본 컬렉션 내에 그리스어 및 히브리어 필사본(Ricc. 1-98), 아랍어 필사본(Ricc. 167-220) 등 특수한 자료들을 포함하고 있다.드로잉 컬렉션또한, 276점의 드로잉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다. 이 드로잉들은 본래 리카르디 가문이 소장했던 방대한 회화 컬렉션의 일부였던 스케치와 삽화들이다.[16] 여기에는 조반니 바티스타 포기니, 줄리오 캄피, 베르나르디노 포체티, 자코포 키멘티('L'Empoli'), 안톤 도메니코 가비아니, 주세페 조키, 피에르 단디니, 자코포 키아비스트리 등 17세기 피렌체 거장들의 인물 드로잉과, 도메니코 크레스티('Il Passignano'), 발레리아니 형제(주세페와 도메니코) 등의 건축 스케치가 포함된다.[17]
기증시간이 흐르면서 기증을 통해서도 도서관의 소장 자료가 늘어났다. 주요 기증 자료로는 주세페 델 로소 소유였던 134권의 잡자재(1831년 기증), 마리오 피에리의 55권의 필사본과 그의 서신(1852년), 아브라모 바세비가 1873년에 유증한 정치 문서 컬렉션, 레오폴도 갈레오티가 1879년 유언으로 남긴 편지(대부분 정치 및 문학 관련) 등이 있다.
20세기의 기증품으로는 니콜로 로돌리코의 서신과 책(2019년 도착), 레나토 푸치니와 조반니 로사디가 소유했던 자료, 엘레오노라 두세의 편지와 이탈라 푸치니의 드로잉 등이 있다.
리카르디아나는 또한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 연구에 중점을 둔 Collezione Segré와 지리 관련 자료 중심의 Collezione Uzielli를 소유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도서관은 패션 디자이너 체칠리아 키오소(Cecilia Chiosso)와 그녀의 두 자매가 소유했던 컬렉션을 보존하고 있으며, 여기에는 192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이 회사의 활동과 관련된 드로잉, 스케치, 복사본, 크로키 및 사진이 포함되어 있다.
4. 건물 및 시설
리카르디 도서관은 피렌체의 유서 깊은 메디치-리카르디 궁전 내부에 자리 잡고 있으며, 도서관 입구는 비아 데 지노리(Via de' Ginoriita) 거리에 있다.[1] 17세기 후반, 리카르디 가문은 궁전을 대대적으로 개조하면서 가문의 방대한 책과 예술품 컬렉션을 보관하기 위한 공간으로 이 도서관을 조성했다.[1] 건축가 조반니 바티스타 포지니와 화가 루카 조르다노 등이 참여하여 화려한 내부 공간을 완성했다.[3]
도서관 내부는 역사적, 예술적 가치가 높은 여러 공간으로 구성된다. 대표적으로 후기 바로크 양식으로 꾸며진 웅장한 홀(갤러리)은 도서관의 입구 역할을 하며[4], 루카 조르다노가 그린 천장화 "L'intelletto che comprende la Verità|마음이 진실을 이해한다ita"로 유명한 현재의 열람실로 이어진다.[6] 또한, 전시 및 목록 관리를 위한 '살라 에스포지치오네'(Sala Esposizioneita)와 '살라 카탈로고'(Sala Catalogoita)에는 각각 나시니 형제가 그린 프레스코화가 있다.[8][9] 18세기 후반에는 서적 애호가였던 가브리엘로 리카르디(1705–1798)에 의해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꾸며진 관장실이 추가되었다. 각 공간은 정교한 프레스코화, 책장, 조각 등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후기 바로크 양식과 신고전주의 양식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4. 1. 메디치-리카르디 궁전
리카르디 도서관은 원래 메디치 궁전(오늘날 메디치-리카르디 궁전으로 알려짐)의 뒷부분에 자리 잡고 있다. 이 궁전은 1659년 3월 가브리엘로 리카르디(1606–1675)가 매입했으며, 도서관 입구는 지노리 거리에 위치한다.[1]
리카르디 가문은 비교적 최근에 귀족 지위를 얻었기에, 유서 깊은 메디치 궁전의 소유주가 된 것은 가문의 위상을 높이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가문의 재산이 메디치 가문에 버금가게 되자, 프란체스코 디 코시모(1648–1719)는 새로 얻은 궁전을 복원하고 확장하는 데 115,000 "스쿠디"라는 막대한 금액을 투자했다.[1] 이 투자는 리카르디 가문의 생활 방식을 완전히 바꾸었지만, 결국 재정적 어려움을 초래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마르키스 프란체스코는 궁전 뒷면(현재의 비아 데 지노리) 일부를 개조하여 '사립 박물관'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이곳에는 그의 삼촌 리카르도 로몰로(1558–1612)가 수집하기 시작한 도서관 소장품뿐만 아니라 메달, 청동상, 보석, 카메오, 상아, 금세공품 등 가문의 다양한 수집품을 모아 전시했다. 이 작업은 약 30년간 이어졌으며, 1670년경 잠시 중단되었다가 다시 빠르게 진행되었다. 1689년, 비아 라르가의 파사드를 포함한 작업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루카 조르다노가 그린 갤러리가 문을 열었다.[2] 이는 토스카나 대공 페르디난도 데 메디치와 바이에른의 비올란테 베아트리체의 결혼 축하 행사와 맞물려 도시 전체의 큰 관심을 받았다.
궁전 복원과 확장은 페르디난도 타카, 피에르 마리아 발디니, 조반니 바티스타 포지니와 같은 예술가들이 차례로 맡았다. 특히 포지니는 내부 디자인까지 담당했으며, 홀과 도서관 천장 장식은 당대 최고 화가 중 한 명이자 빠른 작업 속도로 '스피디 루카'라는 별명을 가졌던 루카 조르다노에게 맡겨졌다.[3]


갤러리와 도서관(현재 리카르디아나 도서관의 열람실)은 처음부터 하나의 공간으로 계획되어 동일한 장식 주제를 공유했다. 홀은 후기 바로크 양식의 분더캄머(Wunderkammer)처럼 꾸며져 도서관으로 이어지는 웅장한 입구 역할을 했다.[4] 프레스코화는 루카 조르다노가 그렸으며, 학자이자 아카데미아 델라 크루스카 비서였던 알레산드로 세니 상원 의원이 구상한 내용을 따랐다. 홀의 프레스코화는 인간 삶의 여러 단계와 그 결과를 묘사하며,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는 인간, 사계절의 의인화, 신화 속 인물들을 담고 있다.[5] 반면, 도서관 천장화(1685년 작)의 주제는 지혜, 이해, 지식으로 나아가는 길을 상징하는 "마음이 진실을 이해한다"이다. 이 작품은 홀의 프레스코화보다 간결하게 신성, 진실(벌거벗은 처녀), 신학, 과학, 철학 사이의 마음을 묘사한다.[6] 이는 리카르디 가문이 장려하는 '이해'가 인간을 자연 상태 이상으로 끌어올려 진리의 빛으로 나아가게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진리는 신앙뿐 아니라 연구와 이성을 통해서도 도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프란체스코 리카르디는 가구와 목재 종류까지 직접 선택했다. 피렌체 장인 토마소와 주세페 스테키가 책장 제작을 맡았고, 홀에는 로마에서 가져온 옷장들을 안토니오 도메니코 가비아니, 바르톨로메오 빔비, 판돌포 레스키가 그린 거울 옆에 배치했다.[7]
1691년에는 현재 '살라 에스포지치오네'와 '살라 카탈로고'로 불리는 두 방도 동일한 장식 주제(인간의 운명) 아래 프레스코화로 장식되었다. 이 작업은 토마소 나시니(1663–1746)와 그의 사촌 주세페 니콜라 나시니(1657–1736)가 맡았다.[8] 살라 에스포지치오네에는 "헤라클레스의 십자로"(또는 "헤라클레스, 헤스페리데스 정원에 가다")가, 살라 카탈로고에는 "제우스가 번개로 거인들을 치는 모습"이 그려졌다.[9]
리카르디아나 도서관은 18세기 후반, 서적 애호가였던 부제 가브리엘로 리카르디(1705–1798)에 의해 더욱 확장되었다. 그는 1786년 부동산을 추가로 매입하고,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현재의 관장실을 꾸며 무사와 미네르바에게 헌정했다. 천장 구석에는 키케로, 베르길리우스, 호메로스, 플라톤 등 고대 철학자와 시인의 초상이 새겨진 카메오 그림 4개가 고전 문화에 대한 경의를 표한다. 관장실과 인접한 살라 에스포지치오네의 두 층 벽을 덮는 웅장한 책장 역시 이 시기에 제작되었으며, 2층은 회전하는 책장 뒤 숨겨진 계단으로 연결된다.


19세기 초 리카르디 가문이 파산하자, 가족 도서관과 박물관은 경매에 부쳐졌다. 1810년에는 경매를 위해 ''리카르디 도서관의 재고 및 평가''라는 제목의 카탈로그가 출판되어 이탈리아와 유럽 주요 도시에 배포되었다.[10] 2년 후, 책상인 그룹이 도서관 전체 소장품을 98,000 "프랑"에 사들였고, 곧 피렌체 시에 130,000 "프랑"에 되팔려 했다. 결국 3년 안에 110,000 "프랑"을 지불하는 조건으로 합의가 이루어졌고, 1813년 4월 29일 시의회는 도서관 매입을 공식 발표했다.
이로써 3,590권 이상의 필사본, 617권의 초기 인쇄본 및 희귀본, 18,257권의 인쇄 책이 공공 자산이 되었다. 기존 리카르디 도서관 사서였던 프란체스코 폰타니와 루이지 리골리가 무보수로 컬렉션을 관리하며 도서관을 대중에게 개방했다. 1815년 복고 시대에는 도서관이 토스카나 대공국 소유가 되었으나 공공성은 유지되었다. 그러나 폰타니가 1819년 사망한 후, 남은 사서 리골리는 도서관을 마루첼리아나 도서관과 통합하려는 계획에 맞서야 했다.
1876년부터는 피렌체 국립 중앙 도서관의 관장이 리카르디아나 관리를 겸임했으며, 이는 1884년까지 이어졌다. 1898년에는 로렌초 도서관 관장이 감독을 맡게 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20년 이상 폐쇄되었던 리카르디아나는 1942년 자체 행정 조직을 갖춘 독립 도서관으로 다시 문을 열었으며, 모든 국립 도서관과 마찬가지로 이탈리아 문화부 소속이 되었다.
4. 2. 주요 공간
도서관의 주요 공간들은 각각 독특한 장식과 역사를 가지고 있다.
- 열람실: 현재 리카르디아나 도서관의 열람실에 해당하는 공간은 원래 갤러리와 함께 하나의 단위로 구상되었으며, 동일한 장식 프로그램을 공유한다.[4] 천장은 루카 조르다노가 1685년에 그린 프레스코화 "L'intelletto che comprende la Verità|마음이 진실을 이해한다ita"로 장식되어 있다.[6] 이 그림은 지혜, 이해, 지식으로 가는 길을 주제로 삼아, 신성의 의인화, 벌거벗은 진실의 처녀, 신학, 그리고 그 아래 과학과 철학 사이의 마음을 묘사한다.[6] 이는 리카르디 가문이 장려하는 '이해'를 통해 인간이 자연 상태를 넘어 진리의 빛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상징한다. 프란체스코 리카르디는 가구와 사용할 나무 종류를 직접 선택했으며, 피렌체 장인 토마소와 주세페 스테키가 책장 제작을 맡았다.[7]
- 살라 에스포지치오네 (Sala Esposizioneita): 1691년, 토마소 나시니(1663–1746)와 그의 사촌 주세페 니콜라(1657–1736)가 인간의 운명을 주제로 프레스코화를 그렸다.[8] 천장화는 "Ercole al bivio|헤라클레스의 십자로ita" 또는 "Ercole al giardino delle Esperidi|헤라클레스, 헤스페리데스 정원에 가다ita"로 알려져 있다.[9]
- 살라 카탈로고 (Sala Catalogoita): 살라 에스포지치오네와 마찬가지로 1691년에 토마소 나시니와 주세페 니콜라 나시니가 인간의 운명을 주제로 프레스코화를 완성했다.[8] 천장화는 "Giove fulmina i Giganti|제우스가 그의 번개로 거인들을 치는 모습ita"을 묘사한다.[9]
- 관장실: 18세기 후반, 부제(Abbot) 가브리엘로 리카르디(1705–1798)가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의뢰하여 무사와 미네르바에게 헌정된 공간이다. 천장 구석에는 고대 반귀석 작품을 모방하여 키케로, 베르길리우스, 호메로스, 플라톤의 초상화가 새겨진 4개의 카메오가 그려져 있어 고전 문화에 대한 경의를 표한다. 관장실과 인접한 살라 에스포지치오네의 두 층 벽면을 가득 채운 웅장한 책장 역시 이 시기에 제작되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회전하는 책장 세트 뒤에 교묘하게 숨겨져 있다.
4. 3. 장식
궁전의 복원과 확장은 페르디난도 타카, 피에르 마리아 발디니를 거쳐 조반니 바티스타 포지니가 이어받았다. 포지니는 인테리어 디자인까지 총괄했으며, 주요 공간인 홀과 도서관의 천장 장식은 당대 저명한 화가이자 빠른 작업 속도로 "스피디 루카"(Luca fa presto|루카 파 프레스토ita)라는 별명을 가진 루카 조르다노에게 맡겨졌다.[3]
갤러리와 현재 리카르디아나 도서관의 열람실에 해당하는 공간은 처음부터 하나의 단위로 계획되어 동일한 장식 주제를 공유한다. 후기 바로크 양식의 분더캄머(Wunderkammer)로 여겨지는 홀은 도서관으로 이어지는 웅장한 입구 역할을 했다.[4] 홀의 프레스코화는 조르다노가 그렸으며, 학자이자 아카데미아 델라 크루스카의 비서였던 알레산드로 세니 상원 의원이 구상한 프로그램을 따랐다. 이 프레스코화는 인간 삶의 여러 단계와 그 결과를 묘사하며,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는 인간, 사계절의 의인화, 신화적 인물 등을 담고 있다.[5] 반면, 도서관 천장화는 '지혜, 이해, 지식으로 가는 길'을 주제로 한다. 1685년 조르다노가 그린 이 그림의 제목은 "마음이 진실을 이해한다"이다. 홀의 그림보다 간결하게 신성, 진실(벌거벗은 처녀), 신학, 과학, 철학 사이의 마음을 묘사한다.[6] 이는 리카르디 가문이 장려하는 '이해'를 통해 인간이 자연 상태를 넘어 진리의 빛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의미하며, 진리는 신앙뿐 아니라 연구와 지성을 통한 과학과도 연결됨을 보여준다.
프란체스코 리카르디는 가구와 목재 선택에도 관여하여, 피렌체 장인 토마소와 주세페 스테키에게 책장 제작을 맡겼다. 또한 연회용 홀에는 로마에서 가져온 옷장들을 배치했는데, 이 옷장들은 안토니오 도메니코 가비아니, 바르톨로메오 빔비, 판돌포 레스키가 그린 거울 옆에 놓였다.[7]
1691년에는 도서관 내부의 '살라 에스포지치오네'(Sala Esposizione, 전시실)와 '살라 카탈로고'(Sala Catalogo, 목록실) 역시 장식되었다. 두 방의 프레스코화는 인간의 운명을 주제로 하며, 토마소 나시니와 그의 사촌 주세페 니콜라 나시니가 그렸다.[8] 살라 에스포지치오네에는 "헤라클레스의 십자로" 또는 "헤라클레스, 헤스페리데스 정원에 가다"가, 살라 카탈로고에는 "제우스가 번개로 거인들을 물리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9]
18세기 후반, 서적 애호가였던 가브리엘로 리카르디 부제는 도서관을 더욱 확장했다. 그는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현재의 관장실을 꾸미고 이를 무사와 미네르바에게 헌정했다. 천장 모서리에는 키케로, 베르길리우스, 호메로스, 플라톤 등 고대 철학자와 시인의 초상화를 새긴 카메오 4개가 그려져 고전 문화에 대한 경의를 표한다. 관장실과 인접한 살라 에스포지치오네 두 층의 벽을 가득 채운 웅장한 책장 역시 이 시기에 제작되었으며, 2층은 회전 책장 뒤 숨겨진 계단으로 연결된다.
또한, 도서관에는 조반니 바티스타 포지니가 제작한 빈첸지오 카포니의 흉상과 같은 조각 작품도 소장되어 있다.
5. 역대 관장
- 알레산드로 불가리니 (1859년–1875년)
- 1876년부터 1898년까지 리카르디 도서관은 피렌체 국립 중앙 도서관의 관리 하에 있었다. 이 기간 동안 관장은 다음과 같다.
- * 프로스페로 비아니 (1884년–1888년)
- * 살로모네 모르푸르고 (1888년–1898년)
- 1898년부터 1942년 3월 1일까지 행정적으로 메디치 라우렌치아나 도서관과 합병되었다.
- 이르마 메롤레 톤디 (1942년 3월 – 1953년 4월)
- 조반니 세메라노 (1953년 5월 – 1954년 12월/1955년 1월)
- 알베르토 지랄디 (1955년 1월/2월 – 1956년 9월)
- 베르타 마라키 비아지아렐리 (1956년 10월 – 1967년 5월/6월)
- 이르마 메롤레 톤디 (1967년 6월 – 1970년 11월)
- 안토니에타 모란디니 (1970년 12월 – 1973년 5월)
- 마리아 졸레 미니쿠치 (1973년 6월 – 1983년 5월, 1974년부터 1976년까지 휴직)
- 카를라 구이두치 보난니 (1983년 – 1985년)
- 마리아 졸레 미니쿠치 (1985년 – 1986년)
- 마리아 프루나이 팔치아니 (1986년 – 1995년)
- 조반나 라치 (1996년 – 2015년)
- 풀비오 실바노 스타케티 (2015년 – 2018년)
- 프란체스카 갈로리 (2018년 – 현재)
6. 갤러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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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All’usanza moderna ridotto”; gli interventi dei Riccardi'
Flo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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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o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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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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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인용
On the Sphere and the Cylinder; On the Measurement of the Circle; On Conoids and Spheroids; On Spirals; On the Equilibrium of Planes; On the Quadrature of the Parabola; The Sand Reckoner
http://www.wdl.org/e[...]
1450-1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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