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린리 테일러
1. 개요
메리 린리 테일러는 1889년 영국에서 태어나 1917년 앨버트 테일러와 결혼하여 한국에서 거주했다. 딜쿠샤에서 생활하며 경성구락부 활동을 했으며, 앨버트 테일러는 일제강점기 당시 투옥되기도 했다. 1942년 일본에 의해 추방된 후 1948년 남편이 사망하자 한국으로 돌아와 남편을 양화진 외국인 묘원에 안장했다. 1982년 사망했으며, 그녀의 자서전 《호박 목걸이》는 한국어로 번역 출판되었다. 2006년 서울시는 아들 브루스 테일러에게 명예 시민증을 수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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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 거주한 영국인 -
샤넌 (가수)
샤넌(김아름)은 영국 웨일스 출신으로 영국과 한국 국적을 가진 가수로, 솔로 가수로 데뷔하여 음반 발매와 방송 출연 등 활동 후 MBK엔터테인먼트 계약 종료 후에는 발로란트 스트리밍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
대한민국에 거주한 영국인 -
제임스 후퍼
영국의 탐험가 제임스 후퍼는 최연소 영국인 에베레스트 등반 기록과 '180° 극에서 극으로' 탐험으로 내셔널 지오그래픽 올해의 탐험가상을 수상한 후 한국에서 대중적 인지도를 얻고 동국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긍정적 한류 확산에 기여하고 있다. -
잉글랜드의 여자 연극 배우 -
엘리자베스 슬레이든
엘리자베스 슬레이든은 잉글랜드 배우로, BBC SF 드라마 《닥터 후》에서 사라 제인 스미스 역을 맡아 세 번째, 네 번째 닥터의 컴패니언으로 출연했으며, 이후 스핀오프 드라마 《사라 제인 어드벤처》에서 주연을 맡았다. -
잉글랜드의 여자 연극 배우 -
폴리 워커
폴리 워커는 발레리나의 꿈을 접고 배우로 전향하여 영화 《패트리어트 게임》에서 테러리스트 역으로 주목받은 잉글랜드 출신 배우로, 드라마 《로마》의 아티아 역으로 골든 글로브상 후보에 오르는 등 다양한 작품에 출연하며 활동하고 있다. -
1982년 사망 -
윤태일 (1918년)
윤태일은 만주군 장교 출신으로 한국 전쟁에 참전한 대한민국의 군인, 정치인, 기업인이며, 박정희 정권에서 서울특별시장과 대한주택공사 총재, 제9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나 만주군 복무 경력으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었다. -
1982년 사망 -
김지태
2. 생애
메리 린리 테일러는 1889년 9월 14일 잉글랜드 맘즈베리에서 태어났다. 1917년 앨버트 테일러와 인도 뭄바이에서 결혼하였고, 이후 한국으로 이주하여 경성부(현 서울)에서 아들 브루스 티켈 테일러(1919-2015)를 낳았다.
1923년, 부부는 서울 종로구 행촌동에 '딜쿠샤'라는 이름의 집을 짓고 살았는데, 이는 인도 러크나우의 딜쿠샤 코티에서 영감을 받은 이름이다. 메리는 경성구락부의 일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남편 앨버트 테일러는 금광 사업가이자 국제합동통신(UPI) 통신원이었는데, 그의 활동과 영향력 때문에 일제 강점기 말기인 1941년경부터 일제의 감시를 받게 되었다. 한국을 떠나기를 거부하자 결국 서대문 형무소에 6개월간 투옥되기도 했다.
1942년, 테일러 부부는 일제에 의해 딜쿠샤에서 추방되어 미국으로 돌아갔다. 앨버트는 1948년 사망하였고, 메리는 그의 유해를 한국으로 가져와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 있는 시아버지 무덤 옆에 안장하였다. 메리는 1982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사망했다. 그녀의 한국 생활 경험을 담은 자서전 《호박 목걸이》는 사후 출간되었으며, 2014년 3월 한국어로 번역되어 출판되었다. 이 책에는 3·1 운동과 광무제의 장례식 등 한국 근대사의 중요한 순간들에 대한 목격담도 담겨 있다. 2006년 2월, 아들 브루스 테일러는 서울특별시로부터 명예 시민증을 받았다.
2.1. 초기 생애
메리 린리 테일러는 1889년 9월 14일 잉글랜드 맘즈베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찰스 에드워드 포브스 모앳비그스(Charles Edward Forbes Moat-Biggs영어) 박사였고, 어머니는 메리 루이사 티켈(Mary Louisa Tickell영어)이었다. 그녀에게는 베티(Betty영어)와 우나(Una영어)라는 두 명의 여동생이 있었으며, 이 중 베티 역시 배우로 활동했다.
2.2. 한국에서의 결혼 생활
메리 린리는 1917년 6월 15일 인도 뭄바이의 성 토마스 대성당에서 앨버트 테일러와 결혼하였다. 결혼 후 한국으로 건너와 경성부(현 서울)에서 1919년 아들 브루스 티켈 테일러(1919-2015)를 낳았다.
1923년, 부부는 서울 종로구 행촌동에 '딜쿠샤'라는 이름의 서양식 가옥을 짓고, 1942년 일제에 의해 강제로 추방당할 때까지 그곳에서 거주하였다. '딜쿠샤'는 힌디어와 우르두어로 '마음의 기쁨'이라는 뜻이며, 인도 러크나우에 있는 딜쿠샤 코티에서 영감을 받아 이름을 지었다. 메리는 당시 외국인 사교 클럽이었던 경성구락부(서울 클럽)의 활발한 회원이었으며, 여러 사교 모임과 만찬을 주최하는 등 활발한 사교 활동을 펼쳤다.
그녀의 자서전 《호박 목걸이》에 따르면, 한국에 거주하는 동안 3·1 운동과 고종의 장례식 등 한국 근대사의 중요한 순간들을 직접 목격하고 기록으로 남겼다. 또한 당시 한국에 거주하던 다양한 국적의 선교사, 광산업자, 사업가들과 교류했으며, 광산촌을 방문하고 시베리아를 기차로 여행하는 등 다채로운 경험을 하였다.
2.3. 일제 강점기 투옥과 추방
남편 앨버트 테일러는 성공적인 금광 채굴자이자 유나이티드 프레스 인터내셔널 (UPI) 통신원이었다. 그의 인맥과 영향력, 그리고 1941년 한국을 떠나기를 거부한 태도는 당시 일제 당국의 눈 밖에 나게 되었다. 결국 일제는 그를 범죄자로 몰아 서대문형무소에서 6개월간 옥살이를 시켰다. 다음 해인 1942년, 메리와 앨버트 부부는 일제에 의해 살던 집 딜쿠샤에서 강제로 쫓겨나 한국에서 추방되었다. 부부는 미국으로 돌아갔다.
2.4. 귀국과 남편의 죽음, 그리고 한국과의 인연
앨버트는 국제합동통신(UPI) 통신원이기도 했으며, 그의 영향력과 인맥, 그리고 1941년 한국을 떠나기를 거부한 점 때문에 당시 일본 정부는 그를 범죄자로 간주하였다. 이로 인해 그는 서대문 형무소에서 6개월간 옥살이를 하게 되었고, 1942년에는 딜쿠샤에서 강제로 추방당했다. 다음 해 미국으로 돌아간 앨버트는 1948년에 사망하였다.
메리는 남편 앨버트의 시신을 한국으로 가져와, 그의 아버지가 묻힌 양화진 외국인 묘지의 아버지 무덤 옆에 안장하였다. 메리 자신은 1982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녀의 자서전인 《호박 목걸이》(Chain of Amber영어)는 사후 아들 브루스에 의해 출판되었으며, 2014년 3월 한국어로 번역되어 대한민국에서 출간되었다. 이 책에는 3·1 운동과 광무제의 장례식 등 한국 근대사의 역사적 순간에 대한 기록도 담겨 있다.
테일러 가문과 한국의 인연은 이어져, 2006년 2월 서울특별시는 대한민국을 방문한 메리의 아들 브루스 테일러와 그의 가족들에게 명예 시민증을 수여하였다.
3. 저서
* 1956년 『호랑이 발톱』 (조지 얀코프스키의 전기)
* 1992년 『호박 사슬』
* 2014년 『호박 목걸이』 (송영달 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