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코추오 대교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메이코추오 대교는 1998년 3월 30일 공용 개시된 일본 나고야항의 사장교이다. 1979년 도시 계획 결정 이후, 1989년부터 본격적인 건설이 시작되어 약 7년간의 공사 끝에 완공되었다. 3경간 연속 강 사장교로, 교량 연장은 1,170m이며, 나고야항의 랜드마크로 교통 흐름 개선과 물류 효율 증진에 기여하고 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일본의 사장교 - 메이코히가시 대교
메이코히가시 대교는 일본의 사장교로, 연약 지반 위에 건설되어 특수 공법으로 지반을 개량하고 흰색 A자형 주탑과 독특한 케이블 및 주형 구조를 가지며, 지역 경제 발전을 위해 2005년에 완공되었다. - 일본의 사장교 - 메이코니시 대교
메이코니시 대교는 나고야항의 이세만안 도로 일부로, A자형 주탑과 육각형 다실 상자형 주형이 특징이며, 레인 바이브레이션 대책과 확폭 공사가 적용된 사장교이다. - 나고야시의 교량 - 메이코히가시 대교
메이코히가시 대교는 일본의 사장교로, 연약 지반 위에 건설되어 특수 공법으로 지반을 개량하고 흰색 A자형 주탑과 독특한 케이블 및 주형 구조를 가지며, 지역 경제 발전을 위해 2005년에 완공되었다. - 나고야시의 교량 - 메이코니시 대교
메이코니시 대교는 나고야항의 이세만안 도로 일부로, A자형 주탑과 육각형 다실 상자형 주형이 특징이며, 레인 바이브레이션 대책과 확폭 공사가 적용된 사장교이다. - 미나토구 (나고야시)의 교통 - 나고야항
나고야항은 1907년 개항한 일본 최대 규모의 항만으로, 일본 경제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며 관광시설도 갖춘 복합 항만으로 발전해 왔으나, 사이버 보안 위협에 직면하기도 했다. - 미나토구 (나고야시)의 교통 - 메이코히가시 대교
메이코히가시 대교는 일본의 사장교로, 연약 지반 위에 건설되어 특수 공법으로 지반을 개량하고 흰색 A자형 주탑과 독특한 케이블 및 주형 구조를 가지며, 지역 경제 발전을 위해 2005년에 완공되었다.
| 메이코추오 대교 - [지명]에 관한 문서 | |
|---|---|
| 지도 정보 | |
| 교량 정보 | |
![]() | |
| 명칭 | 메이코추오 대교 |
| 위치 | 나고야시 |
| 수역 | 나고야항 |
| 노선명 | 24px국도 302호(이세완간 도로) |
| 관리자 | 중일본 고속도로 |
| 개통 | 1998년3월 30일 |
| 위도 | 35° 3′ 12″ |
| 경도 | 136° 51′ 37″ |
| 좌표 표시 | title |
| 지도 이름 | Japan Aichi#Nagoya |
| 길이 | 1170 m |
| 최대 지간장 | 590 m |
| 폭 | 34 m |
| 높이 (주탑) | 190 m도쿄만 평균 해면(T.P.) 기준에서는 195 m |
| 형식 | 사장교 |
| 소재 | 강철 |
| 건설 | 일본도로공단 |
2. 역사적 배경
메이코추오 대교는 나고야항의 기능 강화와 이세만안 자동차도, 나고야 순환 2호선 등 지역 교통망 확충 계획의 일환으로 건설되었다.
이 다리는 나고야항 내 인공섬인 킨조후토와 시오미후토 사이를 잇는 총 길이 1170m, 중앙 경간 590m의 강철 사장교이다. 주요 항로인 북 항로(수심 12m) 위를 지나가며, 하루 수백 척의 선박 통행을 고려하여 설계되었다. 특히, 대형 선박의 안전한 통항을 위해 해수면으로부터 47m의 공간(항로 상공)을 확보하였는데, 이는 메이코 트리톤을 구성하는 세 개의 다리 중 가장 큰 규모이다.
1979년 도시 계획 결정 이후, 여러 계획 변경과 기술 검토를 거쳐 사장교 형식이 채택되었다. 1989년 12월 기초 공사를 시작하여 약 7년의 공사 끝에 1996년 6월 주 거더가 연결되었다.
그러나 완공 이후 선박 대형화 추세에 따라, 당초 확보했던 47m의 높이가 일부 초대형 크루즈선의 통항에는 부족하다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이는 나고야 지역 관광객 유치 및 항만 경쟁력에 제약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2][3][4]
2. 1. 초기 구상 및 계획
나고야항 횡단 도로의 구상은 1964년 5월 나고야항 관리 조합이 수립한 항만 계획에서 시작되었으며[5], 이는 이후 나고야 순환 2호선 계획에 통합되어 순환 도로의 일부를 형성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꿈의 다리"로 보도되었으나[8], 곧 대교 또는 터널 방식으로 구체화되었다[9]。초기에는 도요타시와 욧카이치시를 잇는 제2 메이시 국도(현 이세만안 자동차도)의 일부로 계획되었고, 메이시 동 IC(현 나고야미나미 분기점)와 히비키마 IC 구간이 순환 2호선과 병행하면서 왕복 10차선 도로로 구상되었다. 그러나 사업비 절감을 위해 왕복 6차선으로 축소되었고, 제2 메이시 국도는 신토메이 고속도로와 신메이신 고속도로의 일부로 통합되었다[6][7]。
이러한 계획 변경 과정에서 나고야항 횡단 방식은 교량 → 터널 → 교량으로 여러 차례 바뀌는 복잡한 경과를 겪었다[10]。최종적으로 해상 횡단 도로는 왕복 6차선 교량 방식으로 결정되었다.
교량 방식으로 결정된 후, 초기 계획에서는 서대교는 사장교(또는 트러스교)로, 중앙대교와 동대교는 현수교로 구상되었다. 중앙대교를 현수교로 계획한 주된 이유는 당시 북 항로(당시 명칭 내항 항로)의 위치가 9호지(현 시오미 부두) 쪽에 있어 항로를 건너기 위해 긴 경간장이 필요했고, 당시 기술 수준으로는 사장교 건설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또한, 동대교는 중앙대교의 지반 조건이 좋지 않아 중앙대교의 동쪽 앵커리지와 동대교의 서쪽 앵커리지를 공유하기 위해 현수교로 계획되었다.
중앙대교 현수교의 초기 안은 왕복 10차선 구상을 반영한 2층 구조(상부 4차선, 하부 6차선)였으며, 트러스 높이 12m, 주탑 높이 141m로 예비 설계되었다. 이후 6차선으로 축소되면서 트러스 높이 9m, 주탑 높이 138m로 변경되었다. 교량 길이는 1490m였고, 거더 아래 높이는 당시 입항 실적이 있는 가장 높은 선박인 항해 연습선 니폰마루와 카이오마루의 높이를 기준으로, 해수면에서 48m의 공간에 2m의 여유를 더해 50m로 설계되었다.
그러나 이후 동대교 형식이 사장교로 변경되면서 중앙대교는 단독 앵커리지를 갖게 되었다. 1978년에는 위험물 취급 문제로 9호지 루트 재검토가 요청되어 현재의 북쪽 위치로 루트가 변경되었다[11]。이로 인해 교량 길이는 1560m로 늘어났고[13], 1979년 3월 항만 계획에 반영되었다[12]。1978년 선박 항행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거더 하부 공간은 대상 선박을 화물선(19100D/W)으로 하여 47m로 낮추었다[14]。
현수교 계획은 앵커리지를 지지할 만한 견고한 지반이 부족하다는 문제에 직면했다. 특히 연약 지반인 킨조 부두 쪽 앵커리지는 큰 수평력으로 인해 기초 지반 변형 및 앵커리지 기울어짐(크리프 현상)이 우려되었다. 또한 긴 경간장으로 인한 막대한 건설비는 유료도로로서의 채산성 문제를 야기했고[16], 9호지 인터체인지가 한 방향 진출입만 가능해져 서비스 수준이 저하되는 문제도 있었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나고야항 관리 조합은 북 항로의 위치를 B수역 중앙 부근으로 변경하기로 결정했다[15]。이에 따라 기존에 항로를 건너 계획되었던 동쪽 주탑을 수역 내에 설치하는 것이 가능해져, 교량 경간장은 1560m에서 1170m로 단축되었다[16]。이 변경으로 9호지 인터체인지(현 메이코시오미 IC)는 양방향 진출입이 가능하게 되었다. 교량 규모 축소로 사장교 채용이 가능해졌고[16], 현수교 안과 사장교 안을 비교 검토한 결과 공사 기간과 경제성 면에서 유리한 사장교 안이 1985년 5월에 최종 채택되었다[12][16]。
교량 건설 계획은 국가 재정난과 선박 관계자들의 반대로 인해 구체적인 조사가 1973년이 되어서야 시작되는 등 지연되었다[16]。1978년 교량안이 정식 결정된 후에도 선박 항행에 장애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었다. 이에 나고야항 관리 조합은 선박 항행의 안전 확보를 위해 중부지방건설국에 여러 사항을 요청하여 최종 계획안에 반영시켰다. 중앙대교의 경우, 최고 조위면에서 교량 거더까지 높이를 47m 확보하고, 52번 부두 앞에 터닝 베이슨(선박 회두 장소) 설치, 해중 방호 시설 설치 등이 포함되었다.
한편, 1989년 이세만안 도로가 제2 토메이 및 제2 메이신 고속도로의 일부로 포함되면서 도로 규격을 맞출 필요성이 생겼다. 당초 제2종 제1급(설계 속도 80 km/h)[17], 폭 32m였던 규격은 제1종 제2급, 설계 속도 100 km/h, 폭 37.5m로 상향 조정되었으며[18], 이는 1991년 8월 도시 계획 변경으로 결정되었다[19]。중앙대교는 사장교 설계가 시작된 이후 규격이 변경되어, 초기 사장교 안(탑 높이 165m, 주 거더 폭 30m)보다 규모가 커지게 되었다[20]。
2. 2. 건설 과정
메이코추오 대교는 1989년 12월 기초 공사 시공에 착수한 이래 주 거더의 병합까지 약 7년의 공사 기간을 거쳐 1998년 3월 30일에 최종 완공 및 개통되었다.건설 초기, 이세만안 도로가 제2 토메이 및 제2 메이신 고속도로의 일부로 포함되면서, 기존 메이 니칸과 동일했던 도로 규격(제2종 제1급, 설계 속도 80km/h[17], 폭원 32m)을 제1종 제2급, 설계 속도 100km/h, 폭원 37.5m로 상향 조정할 필요가 생겼다.[18] 이는 1991년 8월 도시 계획 변경을 통해 결정되었으며,[19] 이미 사장교 설계가 진행 중이었기에 초기 설계안(탑 높이 165m, 주 거더 폭 30m)[20]에서 변경이 이루어졌다.
주요 건설 과정은 다음과 같다.
| 날짜 | 주요 내용 |
|---|---|
| 1989년 12월 18일 | 중앙대교 하부 공사(기초 공사) 발주 |
| 1991년 3월 28일 | 중앙대교 서탑 강각 인입 |
| 1991년 4월 13일 | 중앙대교 동탑 강각 인입 |
| 1992년 6월 | 중앙대교 동탑 케이슨 침하 굴착 완료 |
| 1992년 8월 3일 | 중앙대교 서탑 케이슨 침하 굴착 완료 |
| 1993년 1월 14일 | 중앙대교 하부 공사 준공 |
| 1994년 1월 29일 | 중앙대교 동탑 하층 기둥 가설 |
| 1994년 2월 3일 | 중앙대교 서탑 하층 기둥 가설 |
| 1994년 2월 28일 | 중앙대교 서탑 하단 수평 보 가설 |
| 1994년 3월 11일 | 중앙대교 주거더 G1 대블록 가설 |
| 1994년 3월 19일 | 중앙대교 주거더 G3 대블록 가설 |
| 1994년 3월 24일 | 중앙대교 주거더 G4 대블록 가설 |
| 1994년 3월 31일 | 중앙대교 주거더 G2 대블록 가설 |
| 1994년 6월 22일 | 중앙대교 서탑 소블록 가설 시작 |
| 1994년 11월 10일 | 중앙대교 동탑 소블록 가설 종료 |
| 1994년 12월 2일 | 중앙대교 서탑 소블록 가설 종료 |
| 1995년 3월 15일 | 중앙대교 동탑 공사 준공 |
| 1995년 6월 17일 | 중앙대교 주거더 직하 매달기 가설 시작 |
| 1996년 6월 22일 | 중앙대교 주거더 병합 블록 가설 |
| 1996년 7월 13일 ~ 14일 | 중앙대교 주거더 연결식 "꿈을 건너는 페스티벌" 개최 |
| 1996년 12월 18일 | 중앙대교 서탑 야간 조명 시험 점등 |
| 1997년 7월 19일 | 중앙대교 동서 양탑 점등식 |
| 1997년 7월 20일 | 메이코 3대교 애칭 "메이코 트리톤" 발표 |
| 1998년 3월 30일 | 공용 개시 |
1996년 6월, 기초 공사 발주로부터 6년 반 만에 주 거더 병합이 완료되었다. 이를 기념하여 3주 후인 7월 13일과 14일에는 주 거더 연결식인 "꿈을 건너는 페스티벌"이 성대하게 열렸다. 당시 세계 5위 규모의 사장교 탄생을 축하하는 이 행사에서는 아이치현 경찰 음악대의 연주를 시작으로 아이치현 지사와 나고야 시장 등 내빈이 참석하여 용접기 스위치를 누르고 구슬 깨기 등을 진행했다. 또한, 결혼 행진곡에 맞춰 신랑 신부가 등장하는 브리지 웨딩 이벤트도 열렸으며, 다리의 넓이를 체감할 수 있도록 테니스 코트를 설치하고 전 프로 테니스 선수를 초빙하여 테니스 스쿨을 개최하는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마련되었다.
2. 3. 개통 및 현재
1996년 6월 주 거더가 연결되었고, 이를 기념하여 7월 13일과 14일에는 '꿈을 건너는 페스티벌'이 성대하게 열렸다. 이 행사에서는 아이치현 경찰 음악대 연주, 아이치현 지사 및 나고야 시장 등의 주요 인사 참석 하에 연결식이 진행되었으며, 다리 위에서 결혼식과 테니스 스쿨 등이 열리기도 했다. 이후 야간 조명 시험 점등(1996년 12월)과 점등식(1997년 7월)을 거쳤으며, 1997년 7월 20일에는 메이코 3대교(메이코니시 대교, 메이코추오 대교, 메이코히가시 대교)의 애칭으로 '메이코 트리톤'이 공식 발표되었다.메이코추오 대교는 1998년 3월 30일에 정식 개통되었다. 이 다리는 나고야항의 인공섬인 킨조후토와 시오미후토를 연결하며, 나고야 순환 2호선 및 이세만안 자동차도의 중요한 일부를 구성한다. 개통 당시에는 나고야항을 통과하는 대형 선박의 항해를 고려하여 해수면으로부터 47m의 높이를 확보했으나, 최근에는 전 세계적으로 선박이 대형화되는 추세에 따라 이 높이가 일부 초대형 크루즈선의 통항에는 부족하다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이는 나고야 지역의 관광객 유치 및 항만 경쟁력에 있어 잠재적인 제약 요인으로 지적되기도 한다.[2][3][4]
3. 구조
메이코추오 대교는 나고야항의 인공섬인 킨조후토(金城ふ頭)와 시오미후토(潮見ふ頭) 사이에 건설된 총 길이 1170m, 중앙 경간 590m의 강철 사장교이다. 3경간 연속 사장교 형식으로, A자형 주탑 2개와 양쪽 끝 교각 2개(킨조후토 측 P-1, 시오미후토 측 P-4)로 구성된다. 주탑은 각각 P-2(킨조후토 측)와 P-3(시오미후토 측)으로 불린다. 나고야항을 통과하는 대형 선박의 항행을 고려하여 해수면으로부터 47m의 높이(항로부 클리어런스)를 확보했으며, 이는 메이코 트리톤을 구성하는 세 다리 중 가장 큰 규모이다.
메이코추오 대교가 놓인 B수역은 중앙부에 북 항로(수심 12m)가 설정되어 있어 대형 선박의 통행이 잦으며, 그 외 수역으로도 소형 선박을 포함하여 하루 수백 척의 배가 통과한다. 이 때문에 교각과 주탑 사이의 간격(경간)이 매우 길게 설계되었다.
초기 계획 단계에서는 중앙 대교를 현수교 방식으로 건설하는 안이 유력했다. 당시 북 항로의 위치 때문에 긴 경간장이 필요했고, 사장교 기술로는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동대교와의 앵커리지 공유 문제도 고려되었다. 그러나 이후 연약 지반 문제로 인한 앵커리지 설치의 어려움, 건설 비용 및 채산성 문제, 도로 이용 편의성 저하 등의 이유로 계획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1978년에는 항로 위치가 B수역 중앙부로 변경되었고, 이에 따라 주탑 위치 조정이 가능해지면서 교량 길이를 1170m로 축소할 수 있게 되었다. 교량 규모가 축소되면서 사장교 방식의 채택이 가능해졌고, 공사 기간 단축과 경제성 측면에서 유리한 사장교 안이 최종적으로 1985년 5월에 채택되었다.[16][12]
또한, 이세 만안 자동차도가 신토메이 고속도로 및 신메이신 고속도로의 일부로 편입되면서 도로 규격이 상향 조정되었다. 당초 제2종 제1급(설계 속도 80 km/h)에서 제1종 제2급(설계 속도 100 km/h)으로 변경되었고, 이에 따라 교량 폭도 37.5m로 확대되었다.[18][19] 이러한 계획 변경은 이미 사장교 설계가 진행 중이던 시점에 이루어져, 주탑 높이와 주 거더 폭 등 세부 설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3. 1. 제원
| 항목 | 내용 |
|---|---|
| 교량 형식 | 3경간 연속 강 사장교 |
| 교량 연장 | 1170m |
| 경간 구성 | 290m + 590m + 290m |
| 거더 하부 공간 | T.P+47m (선박 항행 고려) |
| 기초 형식 | |
| 주 거더 형식 | 변형 육각형 박스 거더 |
| 케이블 형식 | 세미 평행 와이어 (NEW-PWS), 직경 7mm |
교량의 기초를 지지하는 지지층은 해부야토미 누층 あまやとみるいそう일본어으로, 그 깊이는 해수면 아래 50m에 달하며, 이는 메이코 트리톤의 3개 교량 중 가장 깊다. 해부야토미 누층은 단단한 사력층이다. 해상부 교각인 P-2, P-3의 기초는 플로팅 공법에 의한 뉴매틱 케이슨 방식을 채택했는데, 이는 선박 항행이 많은 구역에서 작업 공간을 최소화하고 시공성과 공사비 면에서 유리했기 때문이다. 단부 교각인 P-1, P-4는 현장 타설 콘크리트 말뚝 방식이 사용되었다.
주탑은 A자형 2개로 구성되며, 높이는 190m(T.P 기준 195m)에 달한다. 이는 나고야항의 주 항로를 통과하는 대형 선박을 고려하여 주 거더를 높게 설치했기 때문이다. 높은 주탑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유해한 진동을 억제하기 위해 주탑 단면은 팔각형으로 설계되었다. 주탑의 색상은 큰고니가 날개를 펼친 이미지를 살려 흰색으로 도색되었다.
주 거더는 바람 저항을 줄이고 비틀림 강성을 확보하며 유지보수가 용이하도록 양쪽에 삼각형 페어링(Fairing: 공기 역학적 저감을 위해 형상을 다듬는 것)을 부착한 변형 육각형의 일체형 다실 상자형 단면을 채택했다. 전체 폭은 37.5m, 전체 높이는 3.5m이다. 주 거더의 높이는 T.P 기준 63m로, 선박 항행을 위한 하부 공간(클리어런스)은 55m(항로부 47m)를 확보하고 있다.[2][3][4]
케이블은 세미 패러렐 와이어(NEW-PWS) 방식으로, 직경 7mm의 아연 도금 강선을 평행하게 묶어 사용했다. 이 강선을 179개에서 398개까지 묶어 총 10종류의 케이블을 제작했으며, 가장 굵은 케이블의 직경은 173mm, 가장 가는 것은 124mm이다. 주탑에서 방사상(팬형)으로 뻗어 주 거더 양쪽에 연결되는 2면 매달기 방식이며, 총 136개의 케이블(17개씩 8면)로 주 거더를 지지하는 멀티 케이블 배치이다. 케이블은 방청 및 보호를 위해 고밀도 폴리에틸렌으로 피복되었고, 야간 라이팅 효과를 높이기 위해 불소 수지를 추가로 피복하여 흰색으로 마감되었다. 이로써 주탑, 주 거더, 케이블 모두 흰색으로 통일감을 주었다. 케이블의 레인 바이브레이션(비와 바람에 의한 진동)을 억제하기 위해, 케이블 길이가 긴 중앙대교의 특성을 고려하여 케이블 정착부에 점성 전단 댐퍼를 설치했다.
3. 2. 하부 구조 (기초)
지지층은 누층( あまやとみるいそう|아마야토미루이소일본어 )이다.[1] 그 깊이는 해수면 아래 50m에 달하며,[2] 메이코 트리톤에서는 가장 깊다.[3] 3대 교량의 지층 단면은 도카이층군이 기초를 이루고 있다. 히가시 오하시 부근에서는 T.P-30m 부근이지만 서쪽으로 갈수록 깊게 경사지기 때문에, 그보다 얕은 위치에 있는 해부야토미 누층에 지지를 구했다. 이 지층은 단단한 사력층이다.[4]기초 형식은 교각 위치에 따라 다르다.[1]
| 구분 | 교각 위치 | 기초 형식 |
|---|---|---|
| 해상부 교각 | P-2, P-3 | 플로팅 공법에 의한 뉴매틱 케이슨 |
| 단부 교각 | P-1, P-4 | 현장 타설 콘크리트 말뚝 |
해상부 교각(P-2, P-3) 기초 공법으로는 강관 시트파일 기초와 지중 연속벽 기초도 검토되었다. 하지만 중앙 대교 구역은 선박 항행이 많아, 강관 시트파일 기초 방식은 넓은 작업 공간이 필요해 항행 금지 구역이 커지는 문제가 있었다.[4] 지중 연속벽 기초는 해상에 인공섬을 만든 후 케이슨을 침하시키는 방식인데, 수심 12m의 수역에서 시공하려면 막대한 공사와 지반 개량이 필요했기 때문에 채택되지 않았다.[4] 반면, 플로팅 공법은 인공섬 조성이 필요 없고 강철 케이슨을 바다의 부력을 이용해 띄운 후 해저에 착저시키면 되므로, 시공성과 공사비 면에서 유리하여 최종 채택되었다.[4]
다만 뉴매틱 케이슨 공법은 케이슨 바닥 작업실에 고압의 압축 공기를 주입하기 때문에[2] 질소 중독이나 잠함병 발병 위험이 따른다. 해수면 아래 50m에서는 작업 기압이 4기압 이상이 되어 안전 기준인 3기압을 초과한다.[2] 작업실에 지하수가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고압의 압축 공기를 사용하는데, 사전에 지하수를 퍼내면 해수면 아래 40m 이하에서도 높은 압력의 공기를 주입할 필요가 없어진다. 따라서 케이슨 주변에 깊은 우물을 파서 물을 퍼내 지하 수위를 낮추는 딥 웰 공법이 함께 사용되었다. 그러나 과도한 양수로 주변 매립지의 지반 침하가 우려되어, 케이슨 주변만 양수할 수 있도록 약액 주입을 통해 차수벽을 만들었다.[5]
케이슨을 안정적으로 침하시키기 위해 해저 지반 개량 작업도 이루어졌다. 침하 예정 지점에는 연약한 충적 점토층이 있었는데, 이를 해저 약 10m 깊이까지 모래를 다져 넣는 샌드 콤팩션 공법을 적용했다. 모래 타설로 인해 밀려 나온 흙을 포함한 불량토를 제거하고, 그 자리를 두께 2m의 쇄석으로 치환하여 지반을 개량했다. 이를 통해 지반 지지력을 높여 케이슨을 안정적으로 침강시킬 수 있었다.[6]
3. 3. 주탑 및 교각
주탑은 규모가 크기 때문에 기초의 치수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주형을 얹는 하단 수평보보다 하층은 V자형으로 좁혔다. 주탑의 색상은 큰고니가 날개를 펼친 이미지를 살려 흰색으로 했다.
메이코추오 대교는 나고야항의 메인 항로에 가설되었기 때문에 대형 선박의 항행을 고려하여 주형은 대략 해수면상 50m의 높이에 있다. 그 관계로 주형을 지지하는 주탑도 다른 2개의 다리보다 높아졌다. 그 규모는 190m(T.P 기준으로는 195m)이다. 그 높이에서 유해한 발산 진동의 발생이 풍동 실험을 통해 확인되면서 메이코추오 대교에 한해 탑 단면을 팔각형으로 했다. 팔각형 단면으로 함으로써 주탑의 진동을 억제할 수 있었던 것은 기초 구조를 컴팩트화하는 것으로 이어졌고, 결과적으로 비용 절감으로 이어졌다.
가설 공사는 탑 하층 기둥(높이 35m)을 주탑 기부에 설치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V자형 기둥 2개가 세워진 후 주형을 지지하는 하단 수평보를 가설하고, 이 시점에서 후술할 해중 벤트(bent)를 세워 주형 대형 블록을 벤트에 얹는 공사가 시작되었다. 따라서 주탑이 완성된 후 주형을 가설한 것이 아니라, 주탑이 위로 뻗어가는 과정과 병행하여 주형도 가설되었다. 하단 수평보 이상은 서대교나 동대교처럼 공장에서 A형으로 조립한 후, 플로팅 크레인선으로 현장으로 예인하여 일괄적으로 가설하는 방식은 메이코추오 대교에서는 채택할 수 없었다. 이것은 당시 최대급 플로팅 크레인선의 인양 능력 4100톤, 최대 인양 높이 132m에 비해, 메이코추오 대교의 주탑 총 중량은 약 6700톤, 탑정부 높이 TP+195m로 크레인선의 잠재력을 훨씬 초과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상부 기둥을 29개 블록으로 분할한 후, P-2는 크롤러 크레인, P-3은 타워 크레인으로 1개 블록마다 인양하여 용접 접합했다. 다만, 상하 수평보 상부는 HTB(고력 볼트)로 접합했다.
P-1, P-4 교각은 동대교, 서대교와 공통인 역 사다리꼴로, 하단 수평보 이하의 V자형 탑 형상에 맞춰 통일감을 연출했다. 교각 중앙에는 슬릿 1개를 설치하여 경관에 배려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같은 두 교각도 구조는 전혀 다르다. 기초는 공통의 현장 타설 말뚝이지만, 각 교각이 놓인 조건이 상부 공의 차이를 결정했다. 킨조후토(金城ふ頭) 측과 달리, 시오미후토(潮見ふ頭) 측은 벤트 설치가 불가능하고, 이 때문에 P-3 주탑 측 주형의 가설은 밸런싱 공법을 채택하고 있다(후술). 그리고 벤트가 없는 것의 반대 급부로서, P-4 교각이 완성되지 않으면 주형 가설이 완료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게다가 P-4 교각 부근의 주형 가설은 방파제가 있기 때문에 바지선이 침입할 수 없고, 주형의 직하 인양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P-4 측 단부의 주형 3개 블록은 공장에서 일체화한 것을 플로팅 크레인선으로 예인하여 일괄 가설하게 되었다. 이 때문에 P-4 교각의 급속 시공이 요청되었고, P-1과 같은 철근을 조립하는 방식으로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직선 판재 및 각형 강판, 형강 등에 가공을 한 부재(엘리먼트)를 철근 대신 사용했다. 엘리먼트는 공장 제작이므로 현장 야드를 불필요하게 하고, 거푸집도 엘리먼트가 겸하므로 어느 정도 생략할 수 있었다. 철근은 교각 표면의 균열 방지근 등 최소한으로 억제되었다.
3. 4. 주거더
사장교이기 때문에 바람에 의한 진동이 특히 우려되어 바람 저항을 줄일 수 있는 얇은 형태를 채택했다. 그리고 자동차나 바람 등에 의한 비틀림 변형에 저항하는 강도 확보와 도장 등 유지 보수의 용이함 때문에 일체형 다실 상자형으로 설계되었으며, 양쪽에 삼각 형태의 Fairing|페어링eng(공기 역학적 저감을 위해 형상을 다듬는 것, 그 부재)을 부착한 육각형이 선택되었다. 주형 양쪽 끝에서 케이블을 연결하여 들어 올리는 2면 현수 방식이다. 전체 폭은 37.5m, 전체 높이는 3.5m이다. 또한, 메인 항로에 가교되기 때문에 주형도 매우 높으며, T.P+63m, 하부 공간은 55m (항로 공간은 47m)이다.주탑 높이도 그렇지만, 중앙 대교가 다른 두 다리와 크게 다른 점은 그 경간비이다. 측 경간(P-1과 P-2 사이, P-3과 P-4 사이의 경간)도 항로이기 때문에 중앙 경간(P2와 P3 사이)과 마찬가지로 측 경간도 길며, 그 경간 배분은 290m + 590m + 290m(측 경간과 중앙 경간의 비율은 1:2)이다. 이 정도 수준으로 길면 측 경간에 자동차를 적재했을 때 주형이 무게로 인해 가라앉으면서 주탑이 측 경간 쪽으로 크게 변형된다. 게다가 중앙 경간의 주형이 솟아오르면서 주형도 크게 휜다. 이러한 변형을 억제하기 위해 최초 설계 단계에서는 중앙 경간 중앙에 중량물을 적재하는 것이 검토되었다. 이 경우, 중량 증가로 인해 가설 기재가 대형화되는 것 외에도 하부 공의 부담이 늘어나는 등 불리한 요소가 많아, 케이블 배치와 장력을 개선하는 것으로 대응하고 중량물 적재는 하지 않기로 했다.
주형 가설은 킨죠 부두 측이 수중 벤트(Bent: 교각을 의미하지만, 일본에서는 가설 지주를 벤트라고 부른다. 스테이징이라고도 한다) 병용에 의한 내밀기 가설 공법, 시오미 부두 측이 밸런스 내밀기 가설 공법 (밸런싱 공법)을 채택했다. 킨죠 부두 측의 경우, 수중 벤트를 주탑 근처에 설치한 다음 플로팅 크레인(배에 실린 크레인)으로 주형 3블록(전체 길이 116m - 150m)을 수중 벤트 위에 함께 올린 후 케이블과 연결한다. 즉, 케이블 연결까지는 수중 벤트로 주형을 지지한다. 내항 항로에는 벤트를 설치할 수 없기 때문에, 가설된 주형에 가설 크레인을 놓고, 바지선에 실린 주형 단일 블록을 가설 크레인으로 들어 올려 연결하고, 함께 케이블 가설도 수행하여 주형은 조금씩 중앙부로 뻗어 나간다. 한편, 시오미 부두 측에서는 항로 관계상 수중 벤트를 설치할 수 없기 때문에 밸런싱 공법을 채택했다. P-3 주탑 양쪽에 사선 벤트를 설치하고 플로팅 크레인으로 주형 대형 블록을 올린다. 그 후 좌우 균등하게 단일 블록을 덧붙여, 좌우 균형을 유지하면서 조금씩 주형을 늘려가는 공법이다. 이 균형이 깨지면 한쪽에 부하가 걸려 주탑이 굽어지는 등의 악영향을 미친다. 이렇게 P-2, P-3 양 주탑에서 연장된 주형은 마지막 단일 블록을 들어 올림으로써 병합한다. 이 때, 주형 접합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좌우 주형을 각각 육지 측으로 이동(셋백)하여 좌우 주형 간격을 벌린다. 바지선에서 들어 올린 주형은 수평으로 들어 올려서는 맞지 않으므로, 한쪽을 낮추어 경사지게 들어 올려 소정 높이에서 수평을 회복하고, 셋백을 해제하여 좌우 주형을 중앙으로 모아 병합했다. 1996년 6월 22일의 일로, 중앙 대교가 하부 공을 발주한 지 7년째였다.
3. 5. 케이블
케이블은 세미 패러렐 와이어(NEW-PWS[13]) 방식을 채택했다. 직경 7mm의 아연 도금 강선을 평행하게 묶어 사용했으며[14], 179개에서 398개까지 묶은 것을 총 10종류 제작했다.[15] 가장 굵은 케이블의 직경은 173mm, 가장 가는 것은 124mm이며[15], 주탑에 가까운 쪽에는 가는 케이블을, 멀어질수록 굵은 케이블을 배치했다.[15]총 136개의 케이블이 주거더를 지지하며[18], 가장 굵은 케이블 하나는 2445ton의 무게를 지탱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는 136000ton의 하중을 지지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으나[16], 실제로는 안전율을 높게 설정하여 설계 하중의 2배 강도를 갖도록 했다.[16][14] 케이블은 부식 방지와 보호를 위해 고밀도 폴리에틸렌으로 피복되었고, 야간 조명 효과를 높이기 위해 그 위에 불소 수지를 추가로 피복하여 흰색으로 마감했다.[17] 이로 인해 주탑, 주거더, 케이블 모두 흰색으로 통일되었다.
케이블은 주탑에서 방사형(팬형)으로 뻗어 나와 주거더 양쪽에 연결되는 2면 매달기 방식이다. 각 면에 17개씩, 총 136개의 케이블이 사용된 멀티 케이블 배치이다.[18] 이러한 다수의 케이블 배치는 교량 건설 시 내민보 가설 공법이나 밸런싱 공법을 사용할 때 케이블을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19]
케이블은 비와 바람의 영향으로 레인 바이브레이션이라는 진동이 발생할 수 있다. 이는 케이블 표면을 따라 흐르는 빗물과 특정 속도의 바람이 상호작용하여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20] 과거 다른 교량(서대교)에서는 진동을 막기 위해 케이블들을 수평 와이어로 연결했으나 파단되는 문제가 있었다.[20] 메이코추오 대교에서도 레인 바이브레이션 발생이 예상되어 진동 방지 대책이 필요했다.[20] 다른 교량(서대교, 동대교)에서는 케이블 고정 부분에 고감쇠 고무를 사용했지만, 케이블 길이가 매우 긴 메이코추오 대교에서는 이 방식만으로는 진동을 충분히 억제할 수 없었다. 따라서 고무 대신 점성 전단 댐퍼를 사용했다.[21] 이 댐퍼는 주거더와 케이블이 연결되는 부분 근처에 설치되었으며, 장치가 눈에 띄지 않도록 난간 상단보다 낮은 위치에 설치하여 미관을 해치지 않도록 고려했다.[22]
참조
[1]
문서
東京湾平均海面(T.P.)基準では195 m
[2]
뉴스
クルーズ船誘致、前途は荒波 外国から名古屋港、昨年わずか4回
2016-12-08
[3]
뉴스
名港に4月25日豪華客船が寄港 記念クルーズ参加を
2014-02-17
[4]
뉴스
なごやみち 2本目 名港トリトン モノづくり支える
2016-01-18
[5]
뉴스
管理組合が長期整備計画を発表 10年後に大名古屋港 貨物は年間9500万トン 商港の中心に13号地
1964-05-17
[6]
뉴스
第二東名ルートの一部 伊勢湾岸道あてる 建設相表明
1988-06-08
[7]
뉴스
第2東名・名神 全ルート固まる 御殿場以東と栗東以西 拡幅し当面供用
1988-06-10
[8]
뉴스
管理組合が長期整備計画を発表 10年後に大名古屋港 貨物は年間9500万トン 商港の中心に13号地
1964-05-17
[9]
뉴스
環状二号道路を急げ 名古屋大都市計画懇談会が中間報告
1965-06-02
[10]
뉴스
名港大つり橋、建設へ前進 西、中央、東の3本 『環2』計画を港湾審が了承 来年度にも着工
1978-12-23
[11]
서적
『二十年のあゆみ』
建設省中部地方建設局 名四国道工事事務所
1980-03
[12]
서적
『三十年のあゆみ』
建設省中部地方建設局 名四国道工事事務所
1989-10
[13]
서적
『二十年のあゆみ』
建設省中部地方建設局 名四国道工事事務所
1980-03
[14]
서적
『二十年のあゆみ』
建設省中部地方建設局 名四国道工事事務所
1980-03
[15]
간행물
名古屋港史 建設編
名古屋港史編集委員会
1990-03-31
[16]
서적
『三十年のあゆみ』
建設省中部地方建設局 名四国道工事事務所
1989-10
[17]
서적
『二十年のあゆみ』
建設省中部地方建設局 名四国道工事事務所
1980-03
[18]
서적
『三十年のあゆみ』
建設省中部地方建設局 名四国道工事事務所
1989-10
[19]
간행물
『愛知県公報』第404号、愛知県告示第785号、同786号、同787号
[20]
서적
『三十年のあゆみ』
建設省中部地方建設局 名四国道工事事務所
1989-10
[21]
간행물
『愛知県公報』第404号、愛知県告示第785号、同786号、同787号
[22]
뉴스
名古屋高速1号 2.8キロをトンネル化 都市計画変更の知事案を発表 場所により幅員拡大 伊勢湾岸道路
1991-04-27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