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안공주
1. 개요
명안공주는 조선 현종과 명성왕후의 셋째 딸로, 숙종의 여동생이다. 1671년에 공주에 봉해졌으며, 1680년 오태주와 결혼했다. 22세에 사망했으며, 묘소는 경기도 안산시에 있다. 기사환국 당시 시아버지 오두인이 인현왕후 폐위와 관련해 상소를 올렸으나, 숙종의 배려로 가문이 화를 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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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현종의 자녀 -
숙종 (조선)
숙종은 1674년부터 1720년까지 재위하며 환국 정치를 통해 왕권을 강화하고, 대동법 확대와 상평통보 발행으로 민생 안정에 기여했으며, 당쟁 격화와 외교적 성과를 보인 조선의 제19대 국왕이다. -
조선 현종의 자녀 -
명선공주
현종과 명성왕후의 차녀인 명선공주는 1673년 맹만택과의 혼례를 앞두고 14세의 나이로 천연두에 걸려 사망한 조선의 왕족이다. -
1665년 출생 -
앤 (영국)
앤은 1665년에 태어나 1702년부터 1714년까지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의 여왕으로 재위했으며, 그레이트브리튼 왕국 통합과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에 관여했고, 양당 정치 발전과 예술, 문화 번영을 이끌었다. -
1665년 출생 -
사카키바라 마사미치
사카키바라 마사미치는 에도시대 초기의 무라카미 번주로, 어린 나이에 가문을 계승하여 무라카미 번으로 전봉되었으나 후사 없이 사망하여 사카키바라 마사쿠니가 양자로 가문을 이었다. -
1687년 사망 -
요하네스 헤벨리우스
폴란드 그단스크 출신의 천문학자이자 맥주 양조업자였던 요하네스 헤벨리우스는 직접 제작한 망원경으로 달을 관측하여 달 지형 연구의 선구자가 되었고, 혜성 관측 및 궤도 이론 제시, 새로운 별자리 정의 등으로 천문학 발전에 기여하여 그의 이름이 붙은 천체들이 존재한다. -
1687년 사망 -
르네 로베르 카벨리에 드 라 살
프랑스 탐험가 르네 로베르 카벨리에 드 라 살은 북아메리카 내륙 탐험과 프랑스령 루이지애나 선포, 미시시피 강을 따라 멕시코 만에 이르는 항해 등으로 알려졌으나, 텍사스 식민지 건설 실패 후 부하들의 반란으로 암살당했다.
2. 생애
명안공주는 1665년(현종 6년) 현종과 명성왕후의 셋째 딸로 태어나, 1671년(현종 12년) 공주로 봉해졌다. 1680년(숙종 6년) 오태주와 혼인하였으나, 1687년(숙종 13년) 22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명안공주의 시댁은 기사환국 당시 멸문될 위기에 처했으나, 숙종의 여동생이었기에 화를 면했다.
2.1. 출생과 초기 생애
1665년(현종 6년) 5월 18일, 현종과 명성왕후의 셋째 딸로 태어났다.
1671년(현종 12년) 12월 21일, 명안공주(明安公主)에 봉해졌다. 1673년 두 언니가 사망한 후, 명안공주는 세자(世子)의 유일한 여동생이 되었으며, 남매 사이는 매우 각별했다고 전해진다.
1679년(숙종 5년) 서인의 핵심 인물인 오두인의 아들 오태주와 정혼하였고, 이듬해인 1680년(숙종 6년) 12월 18일 가례를 올렸다. 당시 가뭄이 극심하였는데 명안공주의 살림집을 성대하게 지어 송시열 등이 규모와 비용을 줄일 것을 청하는 상소를 올리기도 하였다.
1681년(숙종 7년), 명안공주 집안에서 충청도 덕산의 방죽과 전지를 불법으로 차지하여 송사가 일어났는데, 숙종은 이를 주민들에게 되돌려 줄 것을 명하였다.
2.2. 혼인
1679년(숙종 5년) 서인의 핵심 인물인 오두인의 아들 오태주와 정혼하였고, 이듬해인 1680년(숙종 6년) 12월 18일에 가례를 올렸다. 당시 가뭄이 극심하였는데, 명안공주의 살림집을 성대하게 지어 송시열 등이 규모와 비용을 줄일 것을 청하는 상소를 올리기도 하였다.
1681년(숙종 7년), 명안공주 집안에서 충청도 덕산의 방죽과 전지(田地)를 불법으로 차지하여 송사가 일어났는데, 숙종은 이를 주민들에게 되돌려 줄 것을 명하였다.
2.3. 논란
1681년(숙종 7년), 명안공주 집안에서 충청도 덕산의 방죽과 전지를 불법으로 차지하여 송사가 일어났는데, 숙종은 이를 주민들에게 되돌려 줄 것을 명하였다.
1680년 명안공주의 혼인 당시 가뭄이 심하여, 송시열 등은 공주의 거처를 간소하게 지어 규모와 비용을 줄여달라고 상소하였다.
2.4. 죽음
1687년(숙종 13년) 5월 16일, 22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명안공주의 시댁인 해창위(海昌尉) 오태주 일가는 1689년(숙종 15년), 기사환국 당시 명안공주의 시아버지인 오두인이 인현왕후 폐위와 관련해 올린 상소 사건으로 멸문지화를 입을 뻔하였으나, 숙종의 여동생의 시가이기에 멸문의 화를 피할 수 있었고 삭탈되었던 오태주의 작위도 다음 달에 특별히 복작되었다. 오태주는 1716년에 졸하였다.
명안공주의 무덤은 경기도 안산시 사사동 산 48번지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