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혜공주
1. 개요
명혜공주는 조선 현종과 명성왕후의 둘째 딸로, 1662년에 태어났다. 신요경과 혼인이 결정되었으나 가례를 치르기 전 사망했다. 현종은 명혜공주 사후 부마였던 신요경의 작위를 회수했다. 명혜공주와 명선공주의 사당이 숙종 대에 마련되었으며, 숙종은 사당 건립을 지원했다. 명혜공주의 묘는 헌릉 근처에 있었으나, 성남시 개발로 인해 다른 곳으로 이장되었다. 현재 명혜공주의 태실비가 정림사지박물관에 남아있고, 봉국사는 명혜공주와 명선공주의 명복을 빌기 위해 중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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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현종의 자녀 -
숙종 (조선)
숙종은 1674년부터 1720년까지 재위하며 환국 정치를 통해 왕권을 강화하고, 대동법 확대와 상평통보 발행으로 민생 안정에 기여했으며, 당쟁 격화와 외교적 성과를 보인 조선의 제19대 국왕이다. -
조선 현종의 자녀 -
명선공주
현종과 명성왕후의 차녀인 명선공주는 1673년 맹만택과의 혼례를 앞두고 14세의 나이로 천연두에 걸려 사망한 조선의 왕족이다. -
1662년 출생 -
메리 2세
메리 2세는 1662년에 태어나 1689년부터 1694년까지 윌리엄 3세와 함께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를 공동 통치했으며, 명예 혁명 이후 권리 장전 통과를 통해 왕권 제한과 의회 권한 강화를 이끌었다. -
1662년 출생 -
도쿠가와 이에노부
도쿠가와 이에노부는 에도 막부 6대 쇼군으로, 살생금지령 폐지, 문치주의 강화, 재정 개혁 추진 등 막부 정치 쇄신을 꾀하고 아라이 하쿠세키 등 인재를 등용하여 막부 안정과 발전에 기여했다. -
전주 이씨 -
이낙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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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이씨 -
이상민 (법조인)
2. 생애
1662년(현종 3년) 12월 4일, 현종과 명성왕후의 둘째 딸로 태어났다.
신정의 아들인 신요경과 혼인이 결정되어 신요경은 동안위(東安尉)로 봉해졌으나, 1673년(현종 14년) 4월 27일, 가례를 올리지 못한 상태에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당시 현종은 혼약은 했으나 가례는 올리지 못한 상태에서 신부가 죽었으니 부마가 될 예정이었던 신요경을 어떻게 대우해야 하는지 논의하게 했다. 현종은 신요경을 계속 부마의 지위에 두면서 평생 혼인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인정상 어렵다고 판단하여 동안위 작위를 회수하였다.
명혜공주가 사망한 지 약 3개월 뒤인 같은 해 8월 2일에는 언니 명선공주 역시 혼례를 앞두고 요절하였다. 현종은 연이어 딸들을 잃은 것을 안타깝게 여겨, 두 공주에게도 살아있는 공주들의 예에 따라 전장(田庄)과 공장(供帳) 등을 지원하도록 했다. 이후 숙종 대에 이르러 이 물품을 관리하는 내시가 이를 가로채고 백성들에게 부담이 된다는 이유로 지원을 중단하자는 상소가 올라왔다. 그러나 숙종은 아버지 현종의 뜻을 저버릴 수 없고 이미 지원을 많이 줄였다는 이유로 상소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이후 두 공주에 대한 지원 중단 논의는 더 이상 열리지 않았다.
친오빠인 숙종은 즉위 후 명혜공주와 명선공주를 위한 사당을 마련하도록 하고 조정에서 건축을 돕게 했다. 이후 공주들의 제사 역시 조정에서 꾸준히 지원하였다.
3. 기타
* 명혜공주의 태실비가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에 위치한 정림사지박물관에 원형 그대로 남아있다. 이 태실비의 너비는 52.9cm, 높이는 179cm이다.
*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에 있는 사찰 봉국사(奉國寺)는 명혜공주의 묘 근처에 있었기에, 명혜공주와 언니인 명선공주의 명복을 빌기 위해 중수된 적이 있다.
4. 가족 관계
* 조부 : 효종(孝宗, 1619 ~ 1659)
* 조모 : 인선왕후 장씨(仁宣王后 張氏, 1618 ~ 1674)
아버지 : 현종(顯宗, 1641 ~ 1674)
* 외조부 : 청풍부원군 김우명(淸風府院君 金佑明, 1619 ~ 1675)
* 외조모 : 덕은부부인 송씨(德恩府夫人 恩津 宋氏, 1621 ~ 1660)
어머니 : 명성왕후 김씨(明聖王后 金氏, 1642 ~ 1683)
* 언니 : 명선공주(明善公主, 1659 ~ 1673)
* 오빠 : 숙종(肅宗, 1661 ~ 1720)
*** 동생 : 명안공주 온희(明安公主 溫姬, 1665 ~ 16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