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선공주
1. 개요
명선공주는 조선 현종과 명성왕후의 둘째 딸로, 1659년에 태어났다. 1669년, 사신이 가져온 물품을 하사받으려다 송준길의 반대로 무산되었고, 1673년 맹만택과 혼인할 예정이었으나 천연두에 걸려 가례를 치르기 전에 사망했다. 14세의 나이로 요절했으며, 묘는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태평동에 있다.
| 이름 | 명선공주 |
|---|---|
| 한자 표기 | 明善公主 |
| 출생일 | 1659년 12월 28일 |
| 사망일 | 1673년 9월 12일 (향년 14세) |
| 묘소 위치 | 대한민국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태평동 |
| 아버지 | 현종 |
|---|---|
| 어머니 | 명성왕후 김씨 |
| 소속 왕가 | 이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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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현종의 자녀 -
숙종 (조선)
숙종은 1674년부터 1720년까지 재위하며 환국 정치를 통해 왕권을 강화하고, 대동법 확대와 상평통보 발행으로 민생 안정에 기여했으며, 당쟁 격화와 외교적 성과를 보인 조선의 제19대 국왕이다. -
조선 현종의 자녀 -
명안공주
현종과 명성왕후의 딸이자 숙종의 친동생인 명안공주는 1671년 공주에 봉해졌고 1680년 오태주와 혼인했으나 22세의 나이로 요절했으며, 기사환국 당시 숙종의 비호로 시댁이 멸문지화를 면하기도 했다. -
1673년 사망 -
유형원
유형원은 조선 후기의 실학자로, 토지 제도 개혁과 과거제 폐지 등을 주장하며 《반계수록》을 저술하여 경세치용 실학 사상을 펼쳤다. -
1673년 사망 -
미하우 코리부트 비시니오비에츠키
미하우 코리부트 비시니오비에츠키는 얀 2세 카지미에시의 퇴위 후 폴란드 국왕이자 리투아니아 대공으로 선출되어 친프랑스 진영의 반대와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 등 혼란 속에서 재위하다 갑작스럽게 사망했고, 이후 얀 3세 소비에스키가 왕위를 계승했다. -
1659년 출생 -
희빈 장씨
희빈 장씨는 조선 숙종의 총애를 받은 후궁이자 경종의 생모로, 뛰어난 미모와 숙종 시대의 당쟁 속에서 왕비까지 올랐으나, 결국 사약을 받고 죽음을 맞이한 비극적인 인물이다. -
1659년 출생 -
민진후
민진후는 조선 후기 문신으로, 인현왕후의 오빠이자 문과 급제 후 여러 관직을 거쳐 충청도관찰사로 민생 안정에 힘썼으며, 소론의 탄핵으로 귀양을 갔다가 동지사로 청나라에 다녀온 후 경종 묘정에 배향되고 충문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2. 생애
1659년(현종 즉위년) 11월 15일, 현종과 명성왕후 김씨의 둘째 딸로 태어났으며, 언니가 생후 한 달 만에 사망하여 사실상 장녀로 여겨졌다.
1669년(현종 10년), 청나라 북경을 방문한 사신이 은자와 비단을 받아 돌아왔는데, 현종이 이를 명선공주에게 하사하자 송준길이 공적으로 얻은 것을 사적으로 사용하지 말고 호조에 보내라고 아뢰자 현종이 부끄러워하였다.
1673년(현종 14년) 맹주서의 아들 맹만택과 정혼하였으나 가례를 치르기 전 명선공주에게 천연두 증상이 나타나 현종을 비롯한 세자, 세자빈 등이 경덕궁으로 거처를 옮겼다. 명선공주는 같은 해 8월 2일, 14세의 나이로 요절하였으며 이미 혼례일을 정하고 가례청을 설치하였다는 이유로 현종은 맹만택의 작호를 거두지 않았다. 그러나 대신들이 혼례를 치르기 전에 공주가 죽은 점을 들어 작호를 거두기를 여러 차례에 걸쳐 간하여 현종이 이를 따랐다. 명선공주의 무덤은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태평동에 있다.
2.1. 출생과 초기 생애
1659년(현종 즉위년) 11월 15일, 현종과 명성왕후 김씨의 둘째 딸로 태어났다. 언니가 생후 한 달 만에 사망하여 사실상 장녀로 여겨졌다.
1669년(현종 10년), 청나라 북경을 방문한 사신이 은자와 비단을 받아 돌아왔는데, 현종이 이를 명선공주에게 하사하자 송준길이 공적으로 얻은 것을 사적으로 사용하지 말고 호조에 보내라고 아뢰자 현종이 부끄러워하였다.
1673년(현종 14년) 맹주서의 아들 맹만택과 정혼하였으나 가례를 치르기 전 명선공주에게 두역(천연두)의 증상이 나타나 현종을 비롯한 세자, 세자빈 등이 경덕궁으로 거처를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