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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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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모아이는 '살아있는 얼굴'이라는 뜻을 가진 이스터 섬의 거대한 석상으로, 폴리네시아 전역에서 발견되는 미니멀한 형태를 반영한다. 화산 쇄설암으로 조각되었으며, 머리가 큰 특징을 보인다. 모아이는 고인 조상 숭배와 강력한 족장의 지위를 상징하며, 1250년에서 1500년 사이에 라파누이족에 의해 제작되었다. 대부분 라노 라라쿠 채석장에서 만들어졌으며, 운반 및 설치 방법에 대한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었다. 모아이 제작과 관련된 환경 파괴는 문명 붕괴의 사례로 언급되며, 현대 사회에서도 문화적, 예술적 영감을 주고 있다. 현재 모아이는 보존 및 복원 노력을 통해 관리되고 있으며,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지정되었다.

2. 명칭

모아이는 폴리네시아 전역에서 발견되는 형태를 반영한 거대한 석상으로, 굳어진 화산재인 화산 쇄설암으로 조각되었다.[10] '모아이'는 현지어로 '살아있는 얼굴'이라는 뜻이다.

3. 역사

다양한 ''아후''의 위치를 보여주기 위해 모아이를 사용한 이스터 섬 지도


모아이는 1250년에서 1500년 사이에 섬의 원주민인 폴리네시아인들이 조각했다.[23] 모아이는 고인 조상에 대한 숭배를 나타내는 것 외에도, 아후에 세워졌을 때 강력한 족장과 중요한 혈통 지위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각 모아이는 지위를 나타냈으며, "아후에 놓인 조각상이 클수록, 그것을 의뢰한 족장의 마나(mana)가 더 많았다."[19] 가장 웅장한 조각상을 만들기 위한 경쟁은 이스터 섬 주민들의 문화에서 끊임없이 나타났고, 이는 모아이의 다양한 크기에서 그 증거를 찾을 수 있다.[19]

완성된 모아이는 대부분 해안가의 아후로 옮겨져 세워졌으며, 때로는 머리에 붉은 돌 기둥인 푸카오를 얹기도 했다. 모아이 제작과 운반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라노 라라쿠 채석장의 미완성 모아이


라노 라라쿠 채석장은 갑자기 버려진 것으로 보이는데, 채석장 밖에는 석기 도구와 운송을 기다리는 많은 완성된 모아이들이 남아있고, 아후에 설치된 것만큼이나 많은 미완성 조각상들이 ''현 위치''에 남아 있다. 19세기에는 이로 인해 이 섬이 침몰한 대륙의 잔해이며 대부분의 완성된 모아이가 바다 속에 있다는 추측이 나왔으나, 오랫동안 반박되었다. 현재는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이 알려져 있다.

  • 일부 조각상은 바위 조각이었으며 완성될 의도가 없었다.
  • 일부는 내포물이 발견되었을 때 조각가들이 부분적인 조각상을 포기하고 새로운 조각을 시작했기 때문에 미완성 상태였다.
  • 라노 라라쿠의 일부 완성된 조각상은 영구적으로 그 자리에 배치되었으며 임시로 제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었다.
  • 일부는 조각상 시대가 끝났을 때 실제로 미완성이었다.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저서 『문명 붕괴』 등에서는 이스터 섬 주민들이 모아이를 너무 많이 만들어 문명이 붕괴되어 자멸했다는 설을 제시한다. 과거 섬 주민들은 목재를 연료, 카누, 가옥 등 인프라에 사용했고, 경작지를 넓히기 위해 숲을 개간했다. 부족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제사에 사용하는 모아이를 활발하게 세운 것도 산림 감소에 영향을 주었다. 산림 감소는 토지 침식 등 환경 악화를 초래하여 식량과 경작지 등 자원을 둘러싸고 부족 간의 긴장과 대립을 격화시켰다. 그 결과 더욱 경쟁적으로 조각상을 세우고 산림도 좁아지는 악순환에 빠져들었다고 추측된다. 주변으로부터 고립된 인구 1만 명의 작은 섬에 1,000구의 조각상이 난립한 결과, 최종적으로 산림이 소멸되고 인구도 격감하여 조각상이 만들어지지도 않게 되었으며, 처음에는 세워져 있던 조각상은 부족 간의 항쟁으로 쓰러졌다고 한다.[61] 이는 지구 전체를 라파누이로, 현재 세계 각지의 빌딩을 모아이로 비유하여 지구 온난화와 산림 벌채에 경종을 울리는 사람들도 있다. 현재 이스터 섬(라파누이)에는 대규모 숲이 존재하지 않으며, 지질학적 조사에 따르면, 만들어졌을 당시에는 야자나무가 무성하게 자랐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 부족 간의 싸움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논쟁이 있다. 부족 간의 싸움이 있었다고 하기에는, 사람을 죽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살상 능력이 있는 "무기"가 섬 내에서 거의 발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섬에서 사용되던 "마타아"라고 불리는 석기는 사람을 찔러 죽이는 작업에는 적합하지 않았으며, 섬 내에서 발굴된 469개의 두개골을 조사한 결과, 마타아에 의한 것으로 보이는 베인 자국이 발견된 것은 그 중 겨우 2개뿐이었다. 서양인에 의한 침략 시에도 현지인들은 투석으로 싸웠다고 한다. 이러한 점들 때문에 구전으로 전해지는 격렬한 전투가 실제로 있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전문가도 있다.[65]

나무 썰매궤도를 만들고 그 위를 미끄러지게 하는 방법으로 대량의 목재가 필요했다는 기존의 설과 달리, 2012년에는 모아이를 세운 상태에서 밧줄로 좌우로 흔들면서 걷는 것처럼 앞으로 나아가는 방법으로도 가능하다는 것이 실험으로 확인되었다. 이 모습은 섬에 전해지는 "모아이는 스스로 걸었다"는 전설과도 일치한다.[66]

싸움이 일어났다고 여겨지는 때로부터 수백 년이나 지난 후에 수집된 구전만을 의존하는 것은 연구자들 사이에서 논쟁이 되고 있다.[65] 부족 간 항쟁의 존재에 대해서는 연구가 진행되면서 부정되고 있다. 이스터 섬 주민의 인구가 줄어든 것은 유럽인에 의한 노예 사냥이 원인일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가혹한 노예 사냥으로 섬 주민의 인구는 100명 전후로 줄어들었고, 이윽고 역병의 유행으로 인해 멸망했다고 한다.[63]

3. 1. 기원과 제작

모아이는 1250년에서 1500년 사이에 라파누이족에 의해 제작되었다.[23] 대부분의 모아이는 라노 라라쿠의 응회암(압축된 화산재)으로 만들어졌으며,[14] 현무암, 트라키테, 붉은 스코리아 등으로 만든 모아이도 일부 존재한다.[14]

모아이의 평균 높이는 약 4m이고, 밑면의 평균 너비는 약 1.6m이다. 무게는 보통 약 12.5톤(13.8톤)이다.

모아이는 고인 조상에 대한 숭배를 나타내는 것 외에도, 아후에 세워졌을 때 강력한 생존 또는 전직 족장과 중요한 혈통 지위의 상징으로 여겨졌을 수도 있다.[19] 각 모아이는 지위를 나타냈으며, 아후에 놓인 조각상이 클수록, 그것을 의뢰한 족장의 마나(mana)가 더 많았다.[19]

모아이 제작은 전문 석공 집단이나 각 씨족 구성원들이 담당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구전 역사에 따르면 라노 라라쿠 채석장은 각 씨족별로 다른 구역으로 세분되었다고 한다.

토르 헤이에르달이 현지 주민들의 협력을 얻어 실시한 실험에서는, 당시의 인구와 기술력으로도 모아이 운반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옆으로 눕힌 상을 나무 "통나무" 위에 올려놓고, 많은 사람들이 밧줄로 끌어 설치 장소까지 이동시킨 후, 나무 막대와 크고 작은 돌을 쌓아 세우는 방법으로 가능했다.[62]

그러나, 그 후의 연구에서는 완성 후 바로 세워져, 세워진 상태로 밧줄로 목적지까지 운반되었다는 방법도 제시되었으며, 이 방법에서는 옆으로 눕혀서 운반하는 것보다 인원이 적게 들어도 되고, 효율도 좋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또한, "모아이는 스스로 걸었다"라는 현지 전설의 근거가 되고 있다.[66]

3. 2. 운반 및 설치

모아이 운반 방법은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으나, 여러 가설이 제시되고 있다. 초기 연구자들은 인력, 밧줄, 나무 썰매나 롤러, 평평한 트랙 등을 사용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또 다른 이론은 모아이를 통나무 위에 올려놓고 굴렸다는 것이다.[25] 가장 최근의 연구는 고고학적 증거를 통해 조각상을 양쪽에서 밧줄로 묶어 좌우로 기울여 "걷게" 했다는 것을 보여준다.[32][26][27][28]

구전 역사에는 신의 힘을 사용하여 조각상에게 걷도록 명령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가장 초기의 기록에 따르면 투 쿠 이후(Tuu Ku Ihu)라는 왕이 마케마케의 도움을 받아 움직였다고 하며, 나중에는 산에서 혼자 살면서 마음대로 명령을 내린 여성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1986년 파벨 파벨, 토르 헤이에르달과 콘티키 박물관은 5톤과 9톤 모아이로 실험을 했다. 밧줄을 사용하여 좌우로 회전시키며 모아이를 앞으로 "걷게" 했으나, 조각상 받침대가 깨지면서 실험이 일찍 종료되었다.[29][30]

같은 시기에 고고학자 찰스 러브는 10톤 복제품으로 실험했다. 조각상을 흔들어 걷게 하는 것은 불안정하다는 것을 발견했지만, 조각상을 통나무 롤러 위에 똑바로 세우자 25명이 2분 만에 약 45.72m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고고학자 테리 헌트와 칼 리포는 조각상의 파손 패턴, 형태, 위치가 수직 운송 가설과 일치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32] 그들은 모아이를 걷게 하는 방법에 대한 이론을 개발하여 재현에 성공했다.[27][34]

토르 헤이에르달은 현지 주민들의 협력을 얻어 실험한 결과, 옆으로 눕힌 상을 나무 통나무 위에 올려놓고 밧줄로 끌어 설치 장소까지 이동시킨 후, 나무 막대와 돌을 쌓아 세우는 방법으로 운반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완성된 모아이는 대부분 해안가의 아후에 세워졌으며, 일부는 푸카오(상투 모양의 붉은 돌)를 머리에 얹었다.

3. 3. 모아이 숭배와 몰락

모아이는 고인 조상에 대한 숭배를 나타내며, 아후에 세워졌을 때 강력한 족장과 중요한 혈통 지위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각 모아이는 지위를 나타냈는데, "아후에 놓인 조각상이 클수록, 그것을 의뢰한 족장의 마나(mana)가 더 많았다."[19] 가장 웅장한 조각상을 만들기 위한 경쟁은 이스터 섬 주민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나타났으며, 이는 모아이의 다양한 크기에서 그 증거를 찾을 수 있다.[19]

모아이는 제작과 운반에 매우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실제 조각에 필요한 노력과 자원뿐만 아니라, 완성된 모아이는 최종 위치로 운반되어 세워져야 했다.

라노 라라쿠의 채석장은 갑자기 버려진 것으로 보이는데, 채석장 밖에는 석기 도구와 운송을 기다리는 많은 완성된 모아이들이 남아있고, 아후에 설치된 것만큼이나 많은 미완성 조각상들이 ''현 위치''에 남아 있다.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이 알려져 있다.

  • 일부 조각상은 바위 조각이었으며 완성될 의도가 없었다.
  • 일부는 내포물이 발견되었을 때 조각가들이 부분적인 조각상을 포기하고 새로운 조각을 시작했기 때문에 미완성 상태였다.
  • 라노 라라쿠의 일부 완성된 조각상은 영구적으로 그 자리에 배치되었으며 임시로 제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었다.
  • 일부는 조각상 시대가 끝났을 때 실제로 미완성이었다.


원래 이스터 섬 주민들은 최고 추장이나 단일 지도자를 두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권력은 단독 추장에서 수인의 모습을 한 마타토아로 알려진 전사 계급으로 바뀌었다. 새와 인간의 모습을 반반씩 가진 수인 형상은 마타토아의 상징이었으며, 오롱고의 신성한 장소와 연결되었다. 새로운 컬트는 조상 숭배를 놓고 부족 간의 싸움을 촉발했다. 모아이를 만드는 것은 섬 주민들이 조상에게 경의를 표하는 한 가지 방법이었으며, 새 인간 컬트가 절정에 달했을 때 모아이 건설이 중단되었다는 증거가 있다.

손에 알을 든 새 인간의 암각화


"오롱고에서 가장 흥미로운 볼거리 중 하나는 새 인간과 마케마케의 이미지가 새겨진 수백 개의 암각화이다. 단단한 현무암에 새겨진 이 암각화는 혹독한 날씨에도 수천 년을 견뎌왔다. 이 이미지들은 새 인간 경쟁 우승자를 나타내는 것으로 추정된다. 섬에서 480개 이상의 새 인간 암각화가 발견되었으며, 대부분 오롱고 주변에 있다."[37]

컬트 축제의 장소인 오롱고는 "한쪽은 약 304.80m 높이의 해안 절벽, 다른 한쪽은 깊은 분화구로 이루어진 좁은 능선"으로 위험한 지형이었다. 오롱고의 신성한 장소로 여겨지는 마타 응가라우는 새 인간 사제들이 성공적인 알 사냥을 위해 기도하고 주문을 외우는 장소였다. "새 인간 경쟁의 목적은 계절의 첫 번째 알을 해안의 작은 섬 모투 누이에서 얻는 것이었다. 참가자들은 오롱고의 가파른 절벽에서 내려와 모투 누이로 헤엄쳐 가서 새가 오기를 기다렸다. 알을 구한 참가자는 다시 헤엄쳐 돌아와 후원자에게 알을 바쳤고, 후원자는 그해의 새 인간으로 선언되었으며, 이는 중요한 지위였다."[38]

쓰러진 모아이


1722년 야코프 로헤베인이 섬에 도착한 이후, 아후에 세워졌던 모든 모아이들이 쓰러졌다. 아벨 오베르 뒤 프티-투아르는 1838년에 마지막으로 서 있던 조각상들을 보고했지만, 1868년까지는 라노 라라쿠 바깥쪽 경사면에 부분적으로 묻힌 조각상들을 제외하고는 남아있는 것이 없었다.[40]

구전 역사에 따르면 한 씨족이 밤에 모아이를 하나 밀어뜨렸다고 하지만, 다른 이야기에서는 "땅이 흔들렸다"고 전하며, 적어도 일부는 지진으로 인해 쓰러졌다는 징후도 있다.[41] 일부 모아이들은 앞쪽으로 쓰러져 얼굴이 가려졌고, 종종 목이 부러지는 방식으로 쓰러졌다. 또 다른 것들은 플랫폼 뒤쪽에서 떨어졌다.[41] 오늘날, 약 50개의 모아이가 아후 위에 또는 다른 박물관에 재건되었다.[42]

라파누이 사람들은 1862년 섬을 방문한 노예 상인들의 습격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1년 안에 섬에 남은 사람들은 병들거나 부상을 입었고, 지도력도 부족했다. 노예 습격의 생존자들은 선교사들과 함께하게 되었고, 그들은 나머지 사람들을 기독교로 개종시켰다. 토착 이스터 섬 주민들은 문화 동화되기 시작했으며, 새로운 기독교 금지령에 따라 문신과 바디 페인트가 금지되었고, 강제 이주를 당해 섬의 훨씬 작은 부분에 거주하게 되었으며, 나머지는 페루인들의 농업에 사용되었다.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저서 『문명 붕괴』 등에서 이스터 섬 주민들이 모아이를 너무 많이 만들어서 문명이 붕괴되어 자멸했다는 설이 있다. 과거 섬 주민들은 목재를 연료, 카누, 가옥 등 인프라에 사용했고, 경작지를 넓히기 위해 숲을 개간했다. 게다가 부족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제사에 사용하는 모아이를 활발하게 세운 것도 산림 감소에 박차를 가했다. 산림 감소는 토지 침식 등 환경 악화를 초래하여 식량과 경작지 등 자원을 둘러싸고 부족 간의 긴장과 대립이 격화되었다. 그 결과 더욱 경쟁적으로 조각상을 세우고 산림도 좁아지는 악순환에 빠져들었다고 추측된다. 주변으로부터 고립된 인구 1만 명의 작은 섬에 1,000구의 조각상이 난립한 결과, 최종적으로 산림이 소멸되고 인구도 격감하여 조각상이 만들어지지도 않게 되었으며, 처음에는 세워져 있던 조각상은 부족 간의 항쟁으로 쓰러졌다고 한다.[61] 이로 인해 지구 전체를 라파누이로, 현재 세계 각지의 빌딩을 모아이로 비유하여 지구 온난화와 산림 벌채에 경종을 울리는 사람들도 있다. 현재 이스터 섬(라파누이)에는 대규모 숲이 존재하지 않으며, 앞서 언급했듯이 지질학적 조사에 따르면, 만들어졌을 당시에는 야자나무가 무성하게 자랐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 부족 간의 싸움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논쟁이 있다. 부족 간의 싸움이 있었다고 하기에는, 사람을 죽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살상 능력이 있는 "무기"가 섬 내에서 거의 발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섬에서 사용되던 "마타아"라고 불리는 석기는 사람을 찔러 죽이는 작업에는 적합하지 않았으며, 섬 내에서 발굴된 469개의 두개골을 조사한 결과, 마타아에 의한 것으로 보이는 베인 자국이 발견된 것은 그 중 겨우 2개뿐이었다. 서양인에 의한 침략 시에도 현지인들은 투석으로 싸웠다고 한다. 이 점으로 미루어 볼 때, 구전으로 전해지는 격렬한 전투가 있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전문가도 있다.[65]

종래의 설에서는 나무 썰매궤도를 만들고, 그 위를 미끄러지게 하는 방법으로 대량의 목재가 필요했지만, 2012년에 모아이를 세운 상태에서 밧줄로 좌우로 흔들면서 걷는 것처럼 앞으로 나아가는 방법으로도 가능하다는 것이 실험으로 확인되었다. 이 모습은 섬에 전해지는 "모아이는 스스로 걸었다"는 전설과도 일치한다.[66]

싸움이 일어났다고 여겨지는 때로부터 수백 년이나 지난 후에 수집된 구전만을 의존하는 것은 연구자들 사이에서 논쟁이 되고 있다.[65] 부족 간 항쟁의 존재에 대해서는 연구가 진행되면서 부정되고 있다. 이스터 섬 주민의 인구가 줄어든 것은 유럽인에 의한 노예 사냥이 원인일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가혹한 노예 사냥으로 섬 주민의 인구는 100명 전후로 줄어들었고, 이윽고 역병의 유행으로 인해 멸망했다고 한다.[63]

3. 4. 현대의 모아이

19세기 후반, 유럽인들과의 접촉, 노예 사냥, 질병 등으로 라파누이족 사회는 큰 타격을 입었다. 1722년 서양인으로 처음 야코프 로게베인이 이스터 섬에 도착했을 당시 이미 부족 간 항쟁으로 많은 모아이들이 쓰러져 있었다. 1774년 섬을 방문한 제임스 쿡은 서 있는 조각상만큼이나 쓰러진 조각상들을 많이 보았다고 기록했다. 서양인에 의해 서 있는 조각상이 마지막으로 기록된 것은 1838년이며, 1868년 기록에는 서 있는 조각상은 없었다.[61] 구전에 따르면 1840년경 모든 조각상이 쓰러졌다고 한다.

20세기 이후, 쓰러진 모아이들을 복원하는 작업이 진행되었다. 1955년부터 1978년까지 미국의 고고학자 윌리엄 멀로이는 이스터 섬의 거대한 조상의 제작, 운송, 설치에 대한 광범위한 조사를 수행했다. 멀로이의 라파 누이 프로젝트에는 아후 아키비 복원(1960), 아후 타하이 의례 단지 조사 및 복원(1970), 항가 키오에에서 두 개의 "아후" 조사 및 복원(1972), 오롱고의 의례 마을 조사 및 복원(1974) 등이 포함된다.

라파 누이 국립 공원과 모아이는 1972년 UN 협약에 따라 세계 문화 및 자연 유산으로 보호되었으며, 1995년 유네스코 세계 유산 목록에 포함되었다.[46] 현재 약 40여 개의 모아이가 복원되었다.

가가와현 다카마쓰시에 본사를 둔 주식회사 타다노1992년부터 크레인 등을 이스터 섬에 들여와 섬 남부의 아후 톤가리키에 있는 15체의 조각상 복원 및 수복 등을 실시했으며, 사용 후의 크레인 등을 이스터 섬에 기증했다.[64]

2008년에는 한 핀란드 관광객이 모아이의 귀에서 조각을 떼어가 17000USD의 벌금을 부과받고 3년 동안 섬 출입이 금지되기도 했다.[51][52] 2020년에는 무인 트럭이 모아이에 충돌하여 조상을 파괴하고 '계산할 수 없는 피해'를 입혔다.[53] 2022년에는 라노 라라쿠에서 발생한 산불로 인해 약 150~250에이커 면적에 걸쳐 불특정 다수의 모아이가 손상되었다.[54][55]

열 개 이상의 모아이가 이스터 섬에서 제거되어 전 세계 여러 곳으로 옮겨졌으며, 파리 루브르 박물관런던 대영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것도 여기에 해당한다.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원본 모아이

4. 특징

모아이는 폴리네시아 전역에서 발견되는 형태를 반영한 미니멀한 스타일의 거대한 석상이다. 굳어진 화산재인 화산 쇄설암으로 조각되었으며, 사람 형상을 암벽에 그린 후 이미지만 남기고 깎아내는 방식으로 제작되었다.[10] 머리가 지나치게 크며(머리와 몸통의 비율이 3:5), 굵은 눈썹과 길쭉한 코, 콧구멍의 독특한 물고기 갈고리 모양이 있다. 입술은 얇게 내밀어져 있고, 코와 마찬가지로 귀는 길쭉하고 타원형이다. 턱선은 잘린 목과 대조적으로 두드러진다. 몸통은 묵직하며, 때로는 쇄골도 돌로 섬세하게 윤곽이 잡혀 있다. 팔은 부조로 조각되어 있으며, 손과 가늘고 긴 손가락은 엉덩이의 능선을 따라 있고, 엄지손가락이 배꼽을 향하는 경우도 있다. 일반적으로 등 부위의 해부학적 특징은 상세하지 않지만, 때로는 엉덩이와 허리에 고리 모양과 띠 모양의 무늬가 새겨져 있다. 한 개의 무릎을 꿇고 있는 모아이를 제외하고, 석상들은 다리가 분명하게 보이지 않는다.

모아이의 평균 높이는 약 4m이며, 밑면의 평균 너비는 약 1.6m이다. 이 거대한 창조물들은 일반적으로 각각 약 12.5톤의 무게가 나간다.

라노 라라쿠의 모아이 채석장


현재까지 알려진 900개가 넘는 모아이 중 53개를 제외한 모든 모아이는 라노 라라쿠에서 채취한 응회암 (압축된 화산재)으로 조각되었으며, 오늘날에도 다양한 완성 단계의 모아이 394개가 보인다. 또한 현무암으로 조각된 13개의 모아이, 트라키테로 조각된 22개, 부서지기 쉬운 붉은 스코리아로 조각된 17개가 있다.[14] 조각이 끝나면 제작자들은 부석으로 석상을 문질렀다.

4. 1. 외형

모아이는 폴리네시아 전역에서 발견되는 형태를 반영한 미니멀한 스타일의 거대한 석상이다. 굳어진 화산재인 화산 쇄설암으로 조각되었으며, 사람 형상을 암벽에 그린 후 이미지만 남기고 깎아내는 방식으로 제작되었다.[10]

모아이의 머리는 몸통에 비해 지나치게 큰데(머리와 몸통 비율 3:5), 이는 족장의 머리가 신성하다는 폴리네시아의 믿음과 관련이 있다. 굵은 눈썹, 길쭉한 코와 콧구멍의 독특한 물고기 갈고리 모양, 얇게 내밀어진 입술, 길쭉하고 타원형의 귀, 뚜렷한 턱선이 특징이다. 몸통은 묵직하며, 쇄골이 섬세하게 표현되기도 한다. 팔은 부조로 조각되어 몸에 붙어 있으며, 손과 가늘고 긴 손가락은 엉덩이 능선을 따라 배꼽을 향하기도 한다. 등에는 엉덩이와 허리에 고리 및 띠 모양 무늬가 새겨지기도 한다. 무릎을 꿇고 있는 모아이를 제외하면 다리는 보이지 않는다.

대중적으로는 모아이를 "이스터 섬의 머리"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머리 비율이 크고 라노 라라쿠 경사면에 어깨까지 묻힌 모아이 사진이 많아 몸이 없다는 오해가 생겼기 때문이다.[12][13] 발굴을 통해 몸체가 확인되었고, 매장에 의해 침식으로부터 보호된 흔적도 발견되었다.

모아이의 평균 높이는 약 4m이고, 밑면 평균 너비는 약 1.6m이다. 무게는 보통 약 12.5톤이다.

900개가 넘는 모아이 중 53개를 제외한 대부분은 라노 라라쿠의 응회암으로 만들어졌다. 라노 라라쿠에는 다양한 완성 단계의 모아이 394개가 남아있다. 현무암으로 만든 모아이 13개, 트라키테 22개, 붉은 스코리아 17개도 있다.[14] 조각 후에는 부석으로 문질러 표면을 다듬었다.

복원된 푸카오와 복제 눈을 가진 아후 타하이의 재건된 응회암 모아이


이스터 섬의 모아이는 크고 넓은 코, 큰 턱, 직사각형 모양 귀, 깊은 눈매를 가졌다. 몸은 보통 웅크린 자세이며, 팔은 다양한 자세로 놓여 있고 다리는 없다. 대부분의 아후는 해안을 따라 공동체를 향해 내륙을 바라보고 있다. 아후 아키비처럼 내륙에 있는 아후도 공동체를 바라보지만, 섬이 작아 해안을 보는 듯하다.[8]

1979년, 세르지오 라푸 하오아와 고고학자 팀은 모아이 눈구멍이 산호 눈을 담도록 설계되었음을 발견했다. 검은 흑요석이나 붉은 스코리아 동공을 가진 산호 눈은 여러 유적지에서 발견된 산호 조각을 재조립하여 확인되었다.[15] 눈구멍이 있는 모아이는 아후와 의례 장소에 할당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이는 탕가타 마누 중심 종교가 등장하기 전까지 라파 누이 계층이 모아이 디자인에 영향을 줬음을 시사한다.

최근의 모아이들은 머리에 ''푸카오''를 얹고 있는데, 이는 족장의 상투를 상징한다. 마나는 머리카락에 보존된다는 전설이 있다. 푸카오는 푸나 파우 채석장의 붉은 스코리아로 만들어졌으며, 붉은색은 폴리네시아에서 신성한 색으로 여겨진다. 푸카오는 모아이의 지위를 높이는 역할을 했다.[19]

4. 2. 상징

모아이는 죽은 조상의 영혼을 기리고, 부족의 권위와 마나를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진다.[16] 많은 고고학자들은 "이 조각상들이 종교적, 정치적 권위와 힘의 상징이었을 뿐만 아니라, 조각상을 세우고 사용했던 사람들에게는 신성한 영혼의 실제 저장소였다. 고대 폴리네시아 종교에서 돌과 나무로 조각된 물건들은 적절하게 제작되고 의식적으로 준비되었을 때, 마나(mana)라고 불리는 마법적인 영적 정수로 충전되었다고 믿었다."라고 주장한다.[16]

고고학자들은 이 조각상들이 고대 폴리네시아인들의 조상을 표현한 것이라고 믿고 있다. 모아이 석상은 바다를 등지고 마을을 향하고 있는데, 마치 사람들을 지켜보는 듯하다. 예외적으로 아후 아키비(Ahu Akivi)의 일곱 개 석상은 여행자들이 섬을 찾도록 돕기 위해 바다를 향하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그들은 왕의 도착을 기다리는 일곱 명의 사람들이었다고 한다.[17] 모아이의 크기와 위치는 제작자의 사회적 지위를 반영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4. 3. 모아이 카바카바

모아이 카바카바는 모아이 석상보다 훨씬 작은 나무 조각상으로, 앙상한 모습이 특징이다. 라파누이 문명이 붕괴되기 시작한 후에 만들어진 것으로 여겨지며, 이러한 이유로 더 수척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39]

5. 문화적 영향

서태지의 노래 "Moai" 뮤직비디오 배경이 되면서 모아이는 대중에게 더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70]

태양공원에 있는 이스터 섬 모아이상


모아이를 본떠 만들었거나 모아이의 모습을 활용한 상들은 다음과 같다.

국가위치설명
칠레미야기현미나미산리쿠정1960년 칠레 지진으로 인한 쓰나미 피해 30주년을 기념하고 칠레와의 우호를 상징하기 위해 1991년에 설치되었다. 칠레에서 제작되어 배로 운반되었으나,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쓰나미로 손상되었다. 2013년 칠레에서 이스터 섬의 돌로 만든 새로운 상을 기증했다.[70]
칠레나라현덴리시시청사 북쪽 입구 부근에 설치되어 있다.
일본미야자키현니치난시 선메세 니치난아후 아키비 7체를 모델로 크기와 형태가 완전히 같게 만들어졌다.
일본가가와현 메기 섬쓰러진 상을 세우는 테스트를 위해 만들어졌다.
일본후쿠오카현나카마시 지붕 없는 박물관(모야이 공원)세계 각지의 석상, 돌 유물들과 함께 전시되어 있다.
일본삿포로시미나미구 마코마나이 타키노 영원33체의 모아이("모아이 지장"으로 불림)가 있어 관광 명소가 되었다.
일본히메지시 태양공원유적 테마파크이다.
일본와카야마시 후지토다이2미터 정도 크기의 작은 모아이 상들이 여러 개 있다.
기타
모야이 상모아이 상에서 힌트를 얻어 만들어진 조각 작품이다.
이스터 섬 해저영화 『모아이의 수수께끼』 촬영 세트로 사용된 모아이 상이 가라앉아 있어 다이빙 명소가 되었다.[71]



라파누이(이스터 섬) 사회의 몰락은 환경 파괴와 자원 고갈의 위험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자주 언급된다.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저서 "문명 붕괴"에서 모아이를 지나치게 많이 만든 것이 라파누이 문명 붕괴의 원인 중 하나라고 주장했다.[61] 과거 섬 주민들은 목재를 연료, 카누, 가옥 등 인프라에 사용했고, 경작지를 넓히기 위해 숲을 개간했다. 부족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제사에 사용하는 모아이를 활발하게 세운 것도 산림 감소에 영향을 주었다.[61]

전설에 따르면, 라파누이 사람들이 처음 이스터 섬에 들어왔을 때는 숲이 우거진 섬이었다. 하지만 모아이와 카누를 만들기 위해 나무를 베는 등 빠른 시간 안에 나무를 소모했다. 경쟁적으로 모아이를 만들면서 나무는 기하급수적으로 많이 소모되었고, 결국 카누를 만들 나무조차 남아있지 않아 외부로 나갈 수 없게 되어 섬에 고립되었다.

산림 감소는 토지 침식 등 환경 악화를 초래하여 식량과 경작지 등 자원을 둘러싸고 부족 간의 긴장과 대립을 격화시켰다. 그 결과 더욱 경쟁적으로 조각상을 세우고 산림도 좁아지는 악순환에 빠져들었다고 추측된다. 주변으로부터 고립된 인구 1만 명의 작은 섬에 1,000구의 조각상이 난립한 결과, 최종적으로 산림이 소멸되고 인구도 격감하여 조각상이 만들어지지도 않게 되었다.[61] 이 때문에 지구 전체를 라파누이로, 현재 세계 각지의 빌딩을 모아이로 비유하여 지구 온난화와 산림 벌채에 경종을 울리는 사람들도 있다. 현재 이스터 섬에는 대규모 숲이 존재하지 않으며, 지질학적 조사에 따르면 만들어졌을 당시에는 야자나무가 무성하게 자랐다고 한다.[61]

그러나 부족 간의 싸움이 실제로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논쟁이 있다. 섬에서 사용되던 "마타아"라고 불리는 석기는 사람을 찔러 죽이는 작업에는 적합하지 않았으며, 섬 내에서 발굴된 469개의 두개골을 조사한 결과, 마타아에 의한 것으로 보이는 베인 자국이 발견된 것은 그 중 겨우 2개뿐이었다.[65]

2012년에는 모아이를 세운 상태에서 밧줄로 좌우로 흔들면서 걷는 것처럼 앞으로 나아가는 방법으로도 가능하다는 것이 실험으로 확인되었다. 이는 "모아이는 스스로 걸었다"는 섬의 전설과도 일치한다.[66]

부족 간 항쟁의 존재에 대해서는 연구가 진행되면서 부정되고 있다. 이스터 섬 주민의 인구가 줄어든 것은 유럽인에 의한 노예 사냥이 원인일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가혹한 노예 사냥으로 섬 주민의 인구는 100명 전후로 줄어들었고, 이윽고 역병의 유행으로 인해 멸망했다고 한다.[63]

5. 1. 예술

서태지의 "Moai"(모아이) 뮤직비디오 배경으로 등장하여 화제를 모았다.[70]

다음은 모아이를 소재로 하거나 모아이를 본뜬 상들의 예시이다.

제작 국가내용
칠레
일본
기타


5. 2. 대중문화

서태지의 노래 "Moai" 뮤직비디오 배경이 되면서 모아이는 대중에게 더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70]

다음은 모아이를 본떠 만들었거나 모아이의 모습을 활용한 상들이다.

국가위치설명
칠레미야기현미나미산리쿠정1960년 칠레 지진으로 인한 쓰나미 피해 30주년을 기념하고 칠레와의 우호를 상징하기 위해 1991년에 설치되었다. 칠레에서 제작되어 배로 운반되었으나,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쓰나미로 손상되었다. 2013년 칠레에서 이스터 섬의 돌로 만든 새로운 상을 기증했다.[70]
칠레나라현덴리시시청사 북쪽 입구 부근에 설치되어 있다.
일본미야자키현니치난시 선메세 니치난아후 아키비 7체를 모델로 크기와 형태가 완전히 같게 만들어졌다.
일본가가와현 메기 섬쓰러진 상을 세우는 테스트를 위해 만들어졌다.
일본후쿠오카현나카마시 지붕 없는 박물관(모야이 공원)세계 각지의 석상, 돌 유물들과 함께 전시되어 있다.
일본삿포로시미나미구 마코마나이 타키노 영원33체의 모아이("모아이 지장"으로 불림)가 있어 관광 명소가 되었다.
일본히메지시 태양공원유적 테마파크이다.
일본와카야마시 후지토다이2미터 정도 크기의 작은 모아이 상들이 여러 개 있다.
기타
모야이 상모아이 상에서 힌트를 얻어 만들어진 조각 작품이다.
이스터 섬 해저영화 『모아이의 수수께끼』 촬영 세트로 사용된 모아이 상이 가라앉아 있어 다이빙 명소가 되었다.[71]


5. 3. 환경 문제

라파누이(이스터 섬) 사회의 몰락은 환경 파괴와 자원 고갈의 위험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자주 언급된다.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저서 "문명 붕괴"에서 모아이를 지나치게 많이 만든 것이 라파누이 문명 붕괴의 원인 중 하나라고 주장했다.[61] 과거 섬 주민들은 목재를 연료, 카누, 가옥 등 인프라에 사용했고, 경작지를 넓히기 위해 숲을 개간했다. 부족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제사에 사용하는 모아이를 활발하게 세운 것도 산림 감소에 영향을 주었다.[61]

전설에 따르면, 라파누이 사람들이 처음 이스터 섬에 들어왔을 때는 숲이 우거진 섬이었다. 하지만 모아이와 카누를 만들기 위해 나무를 베는 등 빠른 시간 안에 나무를 소모했다. 경쟁적으로 모아이를 만들면서 나무는 기하급수적으로 많이 소모되었고, 결국 카누를 만들 나무조차 남아있지 않아 외부로 나갈 수 없게 되어 섬에 고립되었다.

산림 감소는 토지 침식 등 환경 악화를 초래하여 식량과 경작지 등 자원을 둘러싸고 부족 간의 긴장과 대립을 격화시켰다. 그 결과 더욱 경쟁적으로 조각상을 세우고 산림도 좁아지는 악순환에 빠져들었다고 추측된다. 주변으로부터 고립된 인구 1만 명의 작은 섬에 1,000구의 조각상이 난립한 결과, 최종적으로 산림이 소멸되고 인구도 격감하여 조각상이 만들어지지도 않게 되었다.[61] 이 때문에 지구 전체를 라파누이로, 현재 세계 각지의 빌딩을 모아이로 비유하여 지구 온난화와 산림 벌채에 경종을 울리는 사람들도 있다. 현재 이스터 섬에는 대규모 숲이 존재하지 않으며, 지질학적 조사에 따르면 만들어졌을 당시에는 야자나무가 무성하게 자랐다고 한다.[61]

그러나 부족 간의 싸움이 실제로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논쟁이 있다. 섬에서 사용되던 "마타아"라고 불리는 석기는 사람을 찔러 죽이는 작업에는 적합하지 않았으며, 섬 내에서 발굴된 469개의 두개골을 조사한 결과, 마타아에 의한 것으로 보이는 베인 자국이 발견된 것은 그 중 겨우 2개뿐이었다.[65]

2012년에는 모아이를 세운 상태에서 밧줄로 좌우로 흔들면서 걷는 것처럼 앞으로 나아가는 방법으로도 가능하다는 것이 실험으로 확인되었다. 이는 "모아이는 스스로 걸었다"는 섬의 전설과도 일치한다.[66]

부족 간 항쟁의 존재에 대해서는 연구가 진행되면서 부정되고 있다. 이스터 섬 주민의 인구가 줄어든 것은 유럽인에 의한 노예 사냥이 원인일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가혹한 노예 사냥으로 섬 주민의 인구는 100명 전후로 줄어들었고, 이윽고 역병의 유행으로 인해 멸망했다고 한다.[63]

6. 보존 및 복원

모아이는 폴리네시아 전역에서 발견되는 형태를 반영하는 미니멀한 스타일의 거대한 석상이다. 대부분 1250년에서 1500년 사이에 폴리네시아인들이 조각했으며, 응회암 (압축된 화산재)으로 만들어졌다. 라노 라라쿠에는 다양한 완성 단계의 모아이 394개가 남아있으며, 현무암, 트라키테, 붉은 스코리아로 만들어진 것도 있다.[14]

모아이의 평균 높이는 약 4m이며, 밑면의 평균 너비는 약 1.6m이다. 무게는 보통 약 12.5톤(13.8톤)에 달한다. 모아이는 제작과 운반에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라노 라라쿠 채석장은 갑자기 버려진 것으로 보이는데, 석기 도구와 운송 대기 중인 완성된 모아이, 미완성 조각상들이 남아있다. 이는 섬이 침몰한 대륙의 잔해라는 추측을 낳았지만, 현재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설명된다.


  • 일부 조각상은 완성될 의도가 없었다.
  • 내포물 때문에 조각을 포기하고 새로 시작했다.
  • 일부는 영구적으로 그 자리에 배치되었다.
  • 조각상 시대가 끝났을 때 미완성이었다.


세바스찬 잉글러트 신부와 칠레 연구자들을 비롯한 여러 그룹이 모아이를 연구하고 지도화했다.[47][48] 이스터섬 조상 프로젝트(EISP)는 모아이의 원래 사용, 맥락, 의미를 이해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그 결과를 라파 누이 가족 및 공공 기관에 제공하여 보존에 활용하고 있다. 브리튼 셰퍼드슨,[49] 테리 L. 헌트, 칼 P. 리포[50] 등의 연구도 진행되었다.

6. 1. 복원 노력

1955년부터 1978년까지 미국의 고고학자 윌리엄 멀로이는 이스터 섬의 거대한 조상들의 제작, 운송, 설치에 대해 광범위하게 조사했다. 멀로이의 라파 누이 프로젝트에는 아키비-바이터카 단지 조사 및 아후 아키비 복원(1960), 아후 코 테 리쿠아후 바이 우리타하이 의례 단지 조사 및 복원(1970), 항가 키오에에서 두 개의 "아후" 조사 및 복원(1972), 오롱고의 의례 마을 조사 및 복원(1974) 및 섬 전체에 대한 수많은 다른 고고학적 조사가 포함된다.[46]

라파 누이 국립 공원과 모아이는 1972년 UN 협약에 따라 세계 문화 및 자연 유산 보호에 포함되었으며, 1995년 유네스코 세계 유산 목록에 포함되었다.

가가와현 다카마쓰시에 본사를 둔 주식회사 타다노1992년부터 크레인 등을 이스터 섬에 들여와 섬 남부의 아후 톤가리키에 있는 15체의 조각상 복원 및 수복 등을 실시했으며, 사용 후의 크레인 등을 이스터 섬에 기증했다. 이는 TBS의 『일립 세계·불가사의 발견!』에서 1988년 가을에 이스터 섬을 특집으로 다룰 때, "크레인이 있다면 모아이를 원래대로 할 수 있을 텐데"라는 지사의 목소리가 방송되었고, 이에 패널인 구로야나기 테츠코가 "일본 기업이 도와주면 좋을 텐데"라는 내용의 발언을 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64] 크레인 운반에는 칠레 해군의 협력을 받았다. 비용 또한 전액 타다노가 부담했다.

6. 2. 보존 문제

모아이는 자연 침식, 관광객에 의한 훼손, 화재 등 다양한 요인으로 인해 손상될 위험에 처해 있다.

2008년에는 핀란드 관광객이 모아이의 귀를 훼손하여 17000USD의 벌금형을 받고 3년 동안 섬 출입이 금지되었다.[51][52] 2020년에는 무인 트럭이 모아이에 부딪혀 '계산할 수 없는 피해'를 입혔다.[53]

2022년에는 라노 라라쿠에서 발생한 대규모 화재로 인해 약 150~250에이커 면적이 불에 탔으며, 여러 모아이가 심각하게 손상되었다.[54][55] 파오아 라파 누이 시장은 이 화재가 고의로 시작되었다고 주장했다. 일부 당국은 피해를 입은 모아이 중 일부가 "복구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54][55]

다른 세계적인 관광 자원과 마찬가지로, 모아이 역시 관광객에 의한 낙서 및 파괴 행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손상 행위를 한 사람에게는 최고 5년의 금고형 또는 최고 19000USD의 벌금이 부과된다. 지역 경찰서는 섬의 바위라도 훼손하는 것은 범죄라고 경고하고 있다.

2003년 1월에는 일본인 관광객이 쓰러져 있는 모아이 상을 단순한 바위로 착각하고 낙서를 새겼다가 현지 칠레 경찰에 체포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대해 일본 외무성은 "해외 안전 홈페이지" 등을 통해 여행자에게 해외 문화재를 포함한 여행지의 물품에 낙서를 하지 않도록 촉구하는 동시에, 모아이 상을 훼손했을 경우 위와 같은 형벌이 부과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7. 한국과의 관계

모아이는 남아메리카 칠레의 이스터 섬에 있는 사람 얼굴 모양의 석상으로, 한국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다. 그러나 일본 미나미산리쿠정에 있는 모아이 상을 통해 간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1960년 칠레 대지진으로 발생한 쓰나미는 미야기현 시즈가와정(현 미나미산리쿠정)에 큰 피해를 입혔다.[70] 1991년, 칠레 지진 쓰나미 30주년을 기념하여 칠레와의 우호의 상징으로 미나미산리쿠정은 칠레에서 흑색 응회암으로 만든 모아이 복제품을 수입하여 시즈가와만의 공원(칠레 광장)에 설치했다.[70]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쓰나미로 이 모아이 상이 손상되자, 2013년 칠레는 이스터 섬의 돌로 만든 새로운 모아이 상을 미나미산리쿠정에 기증했다.[70]

7. 1. 일본에 있는 모아이상



정확히는 동상이 아니라 모두 "레플리카" 혹은 "동상의 의장을 채용한 상" 등으로 불러야 한다.

; 칠레에서 만들어진 상

  • 1960년에 발생한 칠레 지진의 쓰나미로 막대한 피해를 입은 미야기현시즈가와정(현 미나미산리쿠정)에서는 칠레 지진 쓰나미 재해 30주년을 기념하여 같은 피해국인 칠레와의 우호의 상징으로 레플리카를 수입했다(설치는 1991년 7월). 이것은 칠레에서 산출된 흑색 휘록암(응회암)을 사용하여 현지의 기술자가 제작하여 로 46일간 운반된 것으로, 시즈가와만에 면한 공원(칠레 광장)에 설치되었지만, 2011년에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동일본 대지진)의 쓰나미로 피해를 입어 손상되었다. 그 때문에 2013년, 칠레에서 새롭게 이스터 섬의 돌로 제작된 상이 기증되었다.[70]
  • 라 세레나시와 교류가 있는 나라현덴리시에서는 시청사 북쪽 입구 부근에 설치되어 있다.


; 일본에서 만들어진 상

  • 미야자키현니치난시의 선메세 니치난에 있는 상은 아후 아키비 7체를 모델로 한 것으로, 크기도 형태도 완전히 같다(석재는 후쿠시마현 시라카와 마을의 응회암). 진짜와 같은 방향을 향해 설치되어 있지만, 진짜 아후 아키비는 바다를 향해 서 있지만, 이쪽은 바다를 등지는 형태가 되어 있다.
  • 가가와현의 메기 섬에 있는 것은 쓰러진 상을 세우는 테스트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 후쿠오카현나카마시의 지붕 없는 박물관(모야이 공원)에 수체가 존재한다. 같은 공원은 세계 각지의 석상이나 돌의 유물(물론 복사)이 다수 전시되어 있다.
  • 삿포로시미나미구의 마코마나이 타키노 영원에도 다수(2012년 4월 현재 33체) 존재(같은 정원은 "모아이 지장"으로 호칭)하고, 일종의 관광 명소화가 되고 있다. 주변의 휴식용 벤치의 일부에도 같은 상을 본뜬 의장의 것이 존재한다.
  • 히메지시의 유적 테마파크 태양공원.
  • 와카야마시의 와카야마 대학 주변 주택지 후지토다이. 같은 상이 다수 산재해 있지만, 크기는 작다(2미터 정도). 그 외에도, 입구에는 초거대한 "생각하는 사람"이 있거나, 자유의 여신상이나 고대 그리스의 원반 던지는 사람 상 등의 오브제도 있다.

7. 2. 대한민국 미나미산리쿠정의 모아이

1960년 칠레 대지진 쓰나미로 큰 피해를 본 미야기현 시즈가와정(현 미나미산리쿠정)은 칠레 지진 쓰나미 재해 30주년을 기념하여 칠레와의 우호 상징으로 모아이 복제품을 수입, 1991년 7월에 설치했다.[70] 칠레에서 생산된 흑색 휘록암(응회암)을 현지 기술자가 제작, 로 46일간 운반하여 시즈가와만 공원(칠레 광장)에 설치했다.[70] 2011년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동일본 대지진) 쓰나미로 손상되자,[70] 2013년 칠레에서 이스터 섬 돌로 제작된 새 모아이 상을 기증했다.[70]

8. 유니코드

2010년, 모아이는 유니코드 버전 6.0에 "모아이" 이모지 (🗿)로 포함되었으며, 코드 포인트는 U+1F5FF이다.[56]

이 이모지의 공식 유니코드 이름은 "모아이"인데, 이는 실제 이모지가 시부야역 근처에 있는 moyai을 묘사하기 때문이다.[57] 이 조각상은 이스터 섬의 모아이상에서 영감을 받아 니이지마 (도쿄에서 163km 떨어진 섬이지만 행정적으로는 도쿄의 일부) 주민들이 기증한 것이다. 조각상의 이름은 "모아이"와 일본어 방언 催合い|moyai|extra2='서로 돕다'일본어를 결합하여 만들어졌다.

유니코드가 1990년대 일본 이동통신사에서 처음 사용한 독점 이모지를 채택하면서,[58] 다양한 회사에서 독점 이모지 이미지를 사용하여 이 이모지에 대해 일관성 없는 그림을 채택했는데, 모아이상이나 moyai|모야이일본어 조각상 중 하나를 묘사했다.[59]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 이모지는 처음에 도쿄의 moyai|모야이일본어 조각상과 유사했지만, 나중에 모아이상과 유사하도록 수정되었다.[59]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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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웹사이트 Easter Island Statue Project http://www.eisp.org/ Eisp.org 2014-03-10
[3] 서적 Collapse: How Societies Choose to Fail or Succeed
[4] 웹사이트 Easter Island Statue Project http://www.eisp.org/[...] 2019-01-09
[5] 웹사이트 Rapa Nui National Park https://whc.unesco.o[...] Whc.unesco.org 2009-05-29
[6] 웹사이트 Easter Island: A monumental collapse? https://www.newscien[...] Newscientist.com 2006-07-26
[7] 웹사이트 Moai Paro digital reconstruction http://www.eisp.org/[...] Easter Island Statue Project (eisp.org) 2009-05-05
[8] 웹사이트 'NOVA Online | Secrets of Easter Island | Stone Giants' https://www.pbs.org/[...] Pbs.org 2013-06-09
[9] 웹사이트 New Easter Island moai statue discovered in volcano crater https://www.theguard[...] 2023-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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