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토니시 아쓰히로
1. 개요
모토니시 아쓰히로는 일본의 전 프로 야구 선수로, 외야수와 내야수로 활약했으며, 지도자와 해설위원으로도 활동했다. 그는 사회인 야구팀을 거쳐 1987년 한큐 브레이브스에 입단하여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으며, 오릭스, 한신, 닛폰햄, 지바 롯데 등에서 뛰었다. 1989년 골든 글러브를 수상했으며, 1994년에는 이치로를 지도하기도 했다. 은퇴 후에는 코치, 해설위원, 감독으로 활동하며, 2024년에는 홋카이도 프론티어 리그의 감독으로 취임했다.
| 선수명 | 본서 후미히로 |
|---|---|
| 소속 구단 | KAMIKAWA・시베쓰 사무라이브레이즈 |
| 직책 | 감독 |
| 등번호 | 미정 |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 출생지 | 나가사키현 나가사키시 |
|---|---|
| 신장 | 175 |
| 체중 | 76 |
| 利き腕 | 오른손 |
| 타석 | 오른손 |
| 수비 위치 | 외야수, 3루수 |
| 드래프트 순위 | 드래프트 4위 |
| 첫 출장 | 1987년 4월 10일 |
| 최종 출장 | 2001년 10월 2일 |
| 瓊浦高等学校 미쓰비시 중공업 나가사키 한큐 브레이브스 오릭스 브레이브스 오릭스 블루웨이브 (1987 - 1997) 한신 타이거스 (1997 - 1998) 닛폰햄 파이터스 (1999) 지바 롯데 마린스 (2000 - 2001) |
| 경력 보충 | 지바 롯데 마린스 (2002) 지바 열혈 MAKING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2010 - 2012) 롯데 자이언츠 (2014 - 2015) 나가노 그랑세로스 (2016 - 2018) 하나마우이 여자 경식 야구부 하나마우이 KAMIKAWA・시베쓰 사무라이브레이즈 (2025 - ) |
|---|
| 로마자 표기 | Atsuhiro Motonishi |
|---|---|
| 가나 | もとにし あつひろ |
| 한자 | 本西 厚博 |
| 한국어 (간체) | 모토니시 아쓰히로 |
| 한국어 (정체) | 모토니시 아쓰히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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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릭스 브레이브스 선수 -
후쿠하라 미네오
후쿠하라 미네오는 닛폰 통운 우라와 사회인 야구 선수에서 한큐 브레이브스 프로 야구 선수로 활동하며 1984년 퍼시픽 리그 우승과 일본 시리즈 우승에 기여했고, 은퇴 후에는 일본과 한국 프로야구 구단에서 20년 이상 코치, 야구 해설가 및 평론가로 활동했다. -
오릭스 브레이브스 선수 -
가도타 히로미쓰
가도타 히로미쓰는 일본의 전 프로 야구 선수로, 1970년 난카이 호크스에 입단하여 1988년 MVP를 수상하고 1992년 은퇴했으며, 2006년 일본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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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고등법원
광주고등법원은 1952년에 설치되어 광주광역시, 전라남도, 전북특별자치도, 제주특별자치도를 관할하며, 제주와 전주에 원외재판부를 두고 있다. -
빈 문단이 포함된 문서 -
1502년
1502년은 율리우스력으로 수요일에 시작하는 평년으로, 이사벨 1세의 이슬람교 금지 칙령 발표, 콜럼버스의 중앙아메리카 해안 탐험, 바스쿠 다 가마의 인도 상관 설립, 크리미아 칸국의 킵차크 칸국 멸망, 비텐베르크 대학교 설립, 최초의 아프리카 노예들의 신대륙 도착 등의 주요 사건이 있었다. -
1962년 출생 -
정경심
정경심은 자녀 입시 비리 혐의로 징역 4년형이 확정되어 복역 후 가석방된 대한민국의 영문학자이자 대학교수였다. -
1962년 출생 -
원유철
원유철은 고려대학교 졸업 후 5선 국회의원, 새누리당 원내대표 등을 역임했으며, 핵무장을 주장하고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2. 선수 경력
모토니시 아쓰히로는 사회인 야구 미쓰비시 중공업 나가사키를 거쳐 다음과 같은 프로팀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 팀명 | 연도 |
|---|---|
| 한큐 브레이브스·오릭스 브레이브스·오릭스 블루웨이브 | 1987년 ~ 1997년 |
| 한신 타이거스 | 1997년 ~ 1998년 |
| 닛폰햄 파이터스 | 1999년 |
| 지바 롯데 마린스 | 2000년 ~ 2001년 |
2.1. 아마추어 시절
게이호 고등학교에서는 투수로서 1980년 여름의 제62회 전국 선수권 대회에 출장했다. 1회전에서 도호쿠 고등학교의 나카조 요시노부와 맞붙었으나 0-4로 완봉패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사회인 야구의 미쓰비시 중공업 나가사키에 진학하여, 내야수로 전향했다. 1981년부터 도시 대항에 3회 출장, 1985년, 1986년 대회에서는 NTT 규슈에 보강되어 찬스 메이커로서 활약했다. 국제 대회에서는 1985년 제13회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제7회 인터컨티넨탈컵 일본 대표로 선출되었다.
2.2. 프로 선수 시절
wiki
| 팀명 | 연도 |
|---|---|
| 한큐 브레이브스·오릭스 브레이브스·오릭스 블루웨이브 | 1987년 ~ 1997년 |
| 한신 타이거스 | 1997년 ~ 1998년 |
| 닛폰햄 파이터스 | 1999년 |
| 지바 롯데 마린스 | 2000년 ~ 2001년 |
1987년(1년 차)부터 1군에 정착했다. 외야 수비의 명수로 알려져 외야뿐만 아니라 3루를 맡기도 했다(3루수 레귤러인 마쓰나가 히로미가 이탈했을 때는 선발로 기용되었다).
1989년에 골든 글러브를 수상했다. 같은 해에는 규정 타석 미달이었지만 타율 0.302를 기록하는 등 타격에서도 활약했다. 5월 26일 긴테쓰전에서는 요시이 마사토로부터 끝내기 안타를 날렸다. 1991년에는 본인 유일의 규정 타석을 달성했다.
1994년에는 당시 레귤러로 정착한 지 얼마 안 된 다구치 소와 이치로에게 외야 수비를 지도했으며, 모토니시를 포함한 이들 외야수 트리오는 당시 구계 최고의 수비력이라고 불렸다. 이치로는 맹우라고 한다.
1997년 시즌 도중, 금전 트레이드로 한신 타이거스로 이적했다. 8월 12일 야쿠르트전에서는 야마모토 츠요시로부터 대타 만루 역전 홈런을 날렸다.
1998년 시즌에 한큐·오릭스 시대의 동료였던 후루미조 가쓰유키와 함께 전력 외 통보를 받은 후, 두 명 모두 금전 트레이드로 은사인 우에다 토시하루가 감독을 맡는 닛폰햄 파이터즈로 이적했다.
1999년에 다시 전력 외 통보를 받았다. 같은 해 시즌 오프에 지바 롯데 마린스에 테스트 입단하여, 롯데에서도 수비 굳히기로 활약했으며, 때로는 3루수로 선발 출장도 했다(3루수 레귤러인 하츠시바 기요시의 수비에 불안이 있었기 때문).
2001년 오프에 현역에서 은퇴했다.
3. 지도자 경력
모토니시 아쓰히로일본어는 2002년 지바 롯데 마린스에서 2군 내야 수비·주루 코치를 맡았고, 같은 해 퇴단했다. 프로 야구 마스터스 리그에서는 오사카 로만즈에서 선수로 뛰며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이후 NHK-BS의 메이저 리그 중계와 J SPORTS (주로 롯데, 오릭스의 주최 경기)에서 해설을 했다. 인터넷 라디오 방송(온에어 스테이션)에서는 최초의 이스턴 리그(일본 프로 야구 2군) 중계 해설을 담당했고, 사회인 야구 클럽팀 지바 넷케츠MAKING의 수석 코치도 맡았다.
2010년,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의 1군 외야 수비 주루 코치(3루 베이스 코치)로 취임했다. 2011년 5월 16일부터 1군 타격 코치 보좌를 맡았고, 6월 5일에 1군 타격 코치로 승격했다. 2012년에는 1군 외야 수비 주루 코치로 복귀했지만, 시즌 종료 후 해임되었다.
2013년 1월부터 3월까지 한국 프로 야구 롯데 자이언츠의 스프링 캠프에서 주루 인스트럭터를 맡았다. 같은 해부터 FOX SPORTS 재팬, NHK-BS의 메이저 리그 해설을 담당했다. 그해 10월 30일, 롯데 자이언츠의 1군 작전 주루 코치에 취임했다. 2015년부터 2군 타격 코치를 맡았고, 같은 해에 퇴단했다.
2016년, 독립 리그 베이스볼 챌린지 리그의 시나노 그란세로스 감독에 취임했다. 2017년에는 팀 창단 이후 첫 리그 우승을 달성했다. 2018년 전기는 근소한 차이로 우승을 놓쳤고, 후기는 3위로 마쳐, 9월 17일에 퇴임이 발표되었다.
2019년부터는 J SPORTS의 MLB 중계 야구 해설자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같은 해에는 여자 야구 하나마우이의 부감독에 취임했다.
2020년부터 사회인 야구 클럽팀 하나마우이의 감독에 취임했다. 창단 2년차 팀을 도시 대항예선 첫 출전에서 본선에 진출시키는 쾌거를 이루었다.
2024년 11월 28일, 홋카이도 프론티어 리그의 카미카와·시베츠 사무라이 브레이즈 감독에 취임하여 2025년 시즌부터 지휘를 맡는다고 발표했다.
| 연도 | 팀명 | 직책 | 비고 |
|---|---|---|---|
| 2002년 | 지바 롯데 마린스 | 2군 내야 수비 주루 코치 | |
| 2010년 ~ 2011년 |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 1군 외야 수비 주루 코치 | |
| 2011년 |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 1군 타격 코치 보좌 | |
| 2011년 ~ 2012년 |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 1군 타격 코치 | |
| 2012년 |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 1군 외야 수비 주루 코치 | |
| 2013년 | 롯데 자이언츠 | 주루 인스트럭터 | 춘계 캠프 한정(1월 ~ 3월) |
| 2014년 | 롯데 자이언츠 | 1군 작전 주루 코치 | |
| 2015년 | 롯데 자이언츠 | 2군 타격 코치 | |
| 2016년 ~ 2018년 | 시나노 그란세로스 | 감독 | |
| 2019년 | 하나마우이 | 부감독 | |
| 2020년 ~ | 하나마우이 | 감독 | |
| 2025년 ~ | 카미카와·시베츠 사무라이 브레이즈 | 감독 |
4. 해설자 경력
프로 야구 마스터스 리그에서 오사카 로만즈에 참가하여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그 후, NHK-BS의 메이저 리그 중계와 J SPORTS(주로 롯데, 오릭스의 주최 게임)에서 해설을 했다. 인터넷 라디오 방송(온에어 스테이션)에서는 최초의 이스턴 리그 중계가 이루어졌을 때 해설을 담당했다.
2013년부터 FOX SPORTS 재팬, NHK-BS의 메이저 리그 해설을 담당했다. 2019년부터는 J SPORTS의 MLB 중계 야구 해설자로 활동한다.
5. 수상 경력
* 골든 글러브상 : 1회(1989년)
6. 개인 기록
| 첫 기록 | |
|---|---|
| 첫 출장 | 1987년 4월 10일, 대 난카이 호크스 1차전(한큐 니시노미야 구장), 9회초에 좌익수로서 출장 |
| 첫 도루 | 1987년 4월 12일, 대 난카이 호크스 3차전(한큐 니시노미야 구장), 10회말에 2루 안착(투수 : 야마우치 가즈히로, 포수 : 이와키 사토시) |
| 첫 선발 출장 | 1987년 5월 10일, 대 롯데 오리온스 5차전(후쿠시마 현영 아즈마 구장), 2번·좌익수로서 선발 출장 |
| 첫 안타 | 1987년 5월 10일, 대 롯데 오리온스 5차전(후쿠시마 현영 아즈마 구장), 1회말에 소노카와 가즈미로부터 |
| 첫 타점 | 1987년 5월 15일, 대 난카이 호크스 7차전(한큐 니시노미야 구장), 6회말에 후쿠모토 유타카의 대타로 출장, 나카무라 히로미치로부터 |
| 첫 홈런 | 1987년 7월 1일, 대 긴테쓰 버펄로스 12차전(닛폰 생명 구장), 6회초에 오노 가즈요시로부터 솔로 홈런 |
| 기록 달성 경력 | |
| 통산 1000경기 출장 | 1996년 8월 7일, 대 세이부 라이온스 20차전(세이부 라이온스 구장), 9번·3루수로서 선발 출장 ※역대 335번째 |
6.1. 첫 기록
* 첫 출장 : 1987년 4월 10일, 대 난카이 호크스 1차전(한큐 니시노미야 구장), 9회초에 좌익수로서 출장
* 첫 도루 : 1987년 4월 12일, 대 난카이 호크스 3차전(한큐 니시노미야 구장), 10회말에 2루 안착(투수 : 야마우치 가즈히로, 포수 : 이와키 사토시)
* 첫 선발 출장 : 1987년 5월 10일, 대 롯데 오리온스 5차전(후쿠시마 현영 아즈마 구장), 2번·좌익수로서 선발 출장
* 첫 안타 : 상동, 1회말에 소노카와 가즈미로부터
* 첫 타점 : 1987년 5월 15일, 대 난카이 호크스 7차전(한큐 니시노미야 구장), 6회말에 후쿠모토 유타카의 대타로 출장, 나카무라 히로미치로부터
* 첫 홈런 : 1987년 7월 1일, 대 긴테쓰 버펄로스 12차전(닛폰 생명 구장), 6회초에 오노 가즈요시로부터 솔로 홈런
6.2. 기록 달성 경력
* 통산 1000경기 출장: 1996년 8월 7일, 대 세이부 라이온스 20차전(세이부 라이온스 구장), 9번·3루수로서 선발 출장 ※역대 335번째
7. 기타
주간 베이스볼에서 독자들에게 기술 지도를 하는 코너(수비 담당)를 담당했는데, 독자들이 지바 마린 스타디움은 강풍 때문에 수비하기 어렵다고 하는데 정말이냐는 질문에 "전혀 어렵지 않다. 오히려 바람이 부는 편이 재미있었다"라며 수비의 명수다운 코멘트를 남겼다.
현역 시절, 최고의 외야수라고 불린 만큼 수비에 대한 비평은 엄격하다. 오릭스 시절 동료이자, 메이저리그에서 명수로 알려진 이치로의 수비에 관해서조차 주간 베이스볼 기사에서 "잘하지 못한다. 보여주는 플레이가 많고 기본에서 벗어났다"라고 평가할 정도이다. 특히 다이빙 캐치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어서, "외야수는 캠프 중에 다이빙 캐치 연습을 한 번도 하지 않는다. 연습하지 않은 것을 시합에서 하면 안 된다", "다이빙하는 만큼 타구에 따라잡는 속도가 늦어진다. 뛰는 편이 빠르다", "나는 현역 시절에 한 번도 다이빙 캐치를 하지 않았고, 이치로나 다구치 소도 슬라이딩 캐치는 해도 다이빙 캐치를 하도록 가르치지 않았다"라고 말하고 있다. 한편, 지금까지 봐온 외야수 중 가장 대단한 선수가 누구냐는 질문에는 신조 쓰요시의 이름을 거론하며 "타자가 친 순간 첫 발의 스타트가 매우 빠르다"라고 말했다.
타격은 수비만큼 특출나지는 않았지만, 끈기 있고 끈질긴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현역 시절에 특히 잘했던 투수는 당시 긴테쓰의 에이스였던 아와노 히데유키로, "각 구종의 버릇을 전부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공은 빠르지만 칠 자신이 있었다"라고 말했다. 반대로 서툴렀던 투수는 구도 기미야스 (당시 세이부)였다. 특이하게도 잘하고 못하는 투수 모두 좌완 투수이지만, 이에 대해서는 "우완 투수일 때는 기용되지 않았기 때문에"라고 자학적으로 말했다.
유행어는 "반대로~", "~라고 할까", "요컨대~"이다.
세 딸은 오피스 메이 소속의 배우 모토니시 사키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