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와노 히데유키
1. 개요
아와노 히데유키는 일본의 전 프로 야구 선수이자 지도자, 해설자이다. 선수 시절 긴테쓰 버펄로스, 요미우리 자이언츠,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에서 활동했으며, 1987년 신인왕, 1989년 다승왕, 최다 탈삼진 2회, 베스트 나인, 골든 글러브상을 수상했다. 지도자로서 요미우리, 요코하마, 주니치 등에서 투수 코치를 역임했으며, 2021년 주니치에서 팀 평균자책점 1위를 달성했다. 현재는 요미우리 자이언츠 아카데미 코치로 활동하며, TV 도쿄, 후지 TV 등에서 야구 해설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 이름 | 아와노 히데유키 |
|---|---|
| 원어 이름 | 阿波野 秀幸일본어 |
| 로마자 표기 | Awano Hideyuki |
| 출생일 | 1964년 7월 28일 |
| 출생지 |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 아사히구 |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 신장 | 178cm |
|---|---|
| 체중 | 75kg |
| 투구/타석 | 좌투/좌타 |
| 포지션 | 투수 |
| 드래프트 | 1986년 드래프트 1순위 |
|---|---|
| 데뷔 | 1987년 4월 12일 |
| 마지막 경기 | 2000년 10월 7일 |
| 소속팀 | 긴테쓰 버펄로스 (1987년 ~ 1994년) 요미우리 자이언츠 (1995년 ~ 1997년) 요코하마 베이스타스 (1998년 ~ 2000년) |
| 코치 | 요미우리 자이언츠 (2001년 ~ 2005년) 요코하마 베이스타스 (2006년) 스미토모 금속 가시마 요미우리 자이언츠 (2012년 ~ 2018년) 주니치 드래곤스 (2019년 ~ 2021년) 요미우리 자이언츠 (2023년) |
|---|
| 주요 수상 | 1987년 퍼시픽 리그 신인왕 1989년 퍼시픽 리그 베스트 나인 1989년 퍼시픽 리그 골든 글러브상 NPB 올스타 (1987년 ~ 1990년) |
|---|
| 리그 | NPB |
|---|---|
| 승-패 기록 | 75승 68패 |
| 평균자책점 | 3.71 |
| 탈삼진 | 985 |
| 세이브 | 5 |
-
요코하마시의 야구 선수 -
마쓰이 유키
마쓰이 유키는 일본의 야구 선수로, 고등학교 시절 고시엔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프로 입단 후 퍼시픽 리그 최다 세이브 투수 타이틀을 획득했으며, 2023년 메이저 리그에 진출했다. -
요코하마시의 야구 선수 -
야마구치 데쓰야
야마구치 데쓰야는 일본의 은퇴한 야구 선수이자 요미우리 자이언츠 2군 투수 치프 코치로, 현역 시절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중간 계투로 활약하며 육성 선수 출신 신인왕, 최우수 중간 계투 투수 3회 수상,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일본 대표 발탁 등 다양한 기록을 세웠고 뛰어난 내구성을 자랑했다. -
1964년 출생 -
원희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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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출생 -
오연호
오연호는 대한민국의 언론인이자 작가로, 《오마이뉴스》를 창간하여 시민 참여 저널리즘을 구현했으며 덴마크의 행복 사회 모델을 연구하여 행복한 삶과 사회에 대한 담론을 제시하고 꿈틀리인생학교 이사장 및 사단법인 꿈틀리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
일본 프로 야구 투수 -
다도코로 젠지로
다도코로 젠지로는 시즈오카 상업고등학교 시절 선발 고등학교 야구 대회에서 전 경기 완봉승으로 우승을 이끌었으며, 고쿠테쓰 스왈로스에 입단하여 투수로 활동, 은퇴 후에는 코치, 야구 연맹 임원, 유소년 야구팀 대표를 역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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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타 모토시
후지타 모토시는 일본의 전 프로 야구 선수이자 지도자이며,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선수와 감독으로 활약하며 리그 MVP를 2연패하고 일본 시리즈 우승을 달성했으며, 일본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2. 선수 경력
긴테쓰 버펄로스(1987년 ~ 1994년)
요미우리 자이언츠(1995년 ~ 1997년)
요코하마 베이스타스(1998년 ~ 2000년)
=== 프로 입단 전 ===
아와노 히데유키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야구를 시작했다. 요코하마 시립 쓰루가미네 중학교 시절에는 도카이대 사가미 고등학교의 입학 제의를 받았으나, 공립 학교인 요코하마 시립 사쿠라가오카 고등학교를 지망하여 입학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가나가와 대회 4차전에서 니치다이 고등학교에게 1-2로 패배하여 고시엔 출전은 좌절되었다.
1983년 고등학교 졸업 후 아시아 대학에 진학했다. 1984년 대학 2학년 때 견제구와 싱커·스크루볼을 배우며 성장했고, 전일본 대학 선수권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도토 대학 야구 리그에서는 통산 62경기 등판, 32승 17패, 평균자책점 1.83, 282탈삼진을 기록했다. 최고 우수 선수에 1번, 최우수 투수에 3번, 베스트 나인에 3번 선정되었다. 1986년 대학 4학년 가을에 9승을 기록하여 리그 타이 기록을 세웠다.
1986년 드래프트 회의에서 요미우리 자이언츠, 요코하마 다이요 웨일즈, 긴테쓰 버팔로스의 3개 구단이 1위 지명으로 경합했다. 아와노는 요미우리 또는 다이요 입단을 희망했지만, 추첨 결과 교섭권은 긴테쓰가 획득했다. 당시 긴테쓰 감독 오카모토 이사미는 아와노의 투지와 간사이 지방에 대해 전혀 모르는 점을 회상했다. 아시아대 감독 우치다 토시오는 긴테쓰의 사전 인사 없는 지명에 분노하여 드래프트 당일 축하 세리머니를 하지 않았고, 총감독 야노 유히로는 한동안 긴테쓰 스카우트의 방문을 거부했다고 한다. 담당 스카우트는 가사이 토시오였다. 아와노를 놓친 요미우리는 기다 마사오, 다이요는 토모리 유키를 재지명으로 획득했다.
=== 오사카 긴테쓰 버펄로스 시절 ===
아와노 히데유키는 프로 1년 차인 1987년,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치며 15승 12패, 평균자책점 2.88, 양대 리그 최다인 201 탈삼진과 249.2 이닝을 기록했다. 같은 해 드래프트 1순위로 닛폰햄에 입단한 니시자키 유키히로와 신인왕 경쟁을 펼쳤는데, 아와노는 32경기, 니시자키는 30경기에 등판하여 승수는 같았지만 평균자책점에서 근소한 차이로 아와노가 신인왕을 차지했다. 이를 계기로 아와노와 니시자키는 '트랜디에이스'로 불리며 여성 팬들에게 높은 인기를 얻었다.
1988년에도 팀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14승을 기록했고, 나고야 구장에서 열린 올스타전 2차전에 선발 등판해 3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정규 시즌 최고 승률을 두고 롯데 오리온스와 가와사키 구장에서 벌어진 더블헤더, 이른바 '10.19' 경기에서는 두 경기 모두 구원 등판했다. 1차전에서는 9회 2사 만루 위기를 막아냈지만, 2차전에서는 동점 홈런을 허용하며 팀은 리그 우승에 실패했다. 하지만 아와노는 롯데에 강한 면모를 보이며, 1988년 4승 1패, 1989년 4승 무패, 통산 67승 중 21승을 롯데전에서 거두었다.
1989년에는 19승(최다승), 183탈삼진(최다 탈삼진)을 기록하며 팀의 리그 우승에 기여했고, 일본 시리즈 우수 선수상을 수상했다.
1990년에는 보크 규정 변경의 영향과 부상으로 인해 성적이 하락하기 시작했다. 오기 아키라 감독의 신뢰로 1991년에도 개막전 선발 투수로 발탁되었지만, 1993년과 1994년에는 스즈키 게이시 감독과의 불화로 인해 뚜렷한 성적을 남기지 못하고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이적했다.
=== 요미우리 자이언츠 시절 ===
1995년에는 중간 계투로서 재기를 목표로 했지만 요미우리에서의 3년 동안 단 1승도 올리지 못한 채 시즌을 마감했다. 좌완 투수의 등판 횟수에서는 팀 1위인 24경기를 기록했지만 0승 3패로 끝나, 방어율도 4점대였다.
1996년에는 시즌 막바지에 1군에서 호투. 카와노 히로후미, 카와구치 카즈히사, 미야모토 카즈토모 등과 레프티스를 결성, 은사 오기 아키라가 감독을 맡은 오릭스와의 일본 시리즈에도 등판했다.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의 3년간은 거의 2군 생활로 1군 승리 없이 끝났다.
1997년 시즌 오프에 나가이케 야스오와의 트레이드로 요코하마 베이스타즈로 이적했다.
=== 요코하마 베이스타스 시절 ===
아와노 히데유키는 1998년 주로 중간 계투로 활약하며 50경기에 등판, '곤도 재생 공장'의 제1호로 불리며 부활했다. 일본 시리즈 우승을 결정짓는 경기에서 승리 투수가 되기도 했다. 곤도 히로시 감독은 근대 시절 투수 코치를 맡아 아와노의 절정기를 알고 있었기에 그를 적극적으로 기용했다.
1999년에는 개막부터 구원 투수로 등판, 4월 8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전에서는 8년 만의 세이브를 기록했다. 이후 팀의 투수력 부족으로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 8월 3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전에서 6년 만의 선발승을 기록했으나, 선발로는 1승에 그쳤고, 시즌 전체적으로는 40경기 등판, 2승 8패 1세이브, 6.32의 평균자책점으로 성적이 하락했다.
2000년에는 방출 통보를 받고 현역에서 은퇴했다. 드래프트에서 1순위 지명을 받은 3개 구단(긴테쓰 버펄로스, 요미우리 자이언츠,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에 모두 소속되어, 3개 구단 모두에서 우승과 일본 시리즈 출전 경험을 한 유일한 선수이다.
2.1. 프로 입단 전
아와노 히데유키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야구를 시작했다. 요코하마 시립 쓰루가미네 중학교 시절에는 도카이대 사가미 고등학교의 입학 제의를 받았으나, 공립 학교인 요코하마 시립 사쿠라가오카 고등학교를 지망하여 입학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가나가와 대회 4차전에서 니치다이 고등학교에게 1-2로 패배하여 고시엔 출전은 좌절되었다.
1983년 고등학교 졸업 후 아시아 대학에 진학했다. 1984년 대학 2학년 때 견제구와 싱커·스크루볼을 배우며 성장했고, 전일본 대학 선수권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도토 대학 야구 리그에서는 통산 62경기 등판, 32승 17패, 평균자책점 1.83, 282탈삼진을 기록했다. 최고 우수 선수에 1번, 최우수 투수에 3번, 베스트 나인에 3번 선정되었다. 1986년 대학 4학년 가을에 9승을 기록하여 리그 타이 기록을 세웠다.
1986년 드래프트 회의에서 요미우리 자이언츠, 요코하마 다이요 웨일즈, 긴테쓰 버팔로스의 3개 구단이 1위 지명으로 경합했다. 아와노는 요미우리 또는 다이요 입단을 희망했지만, 추첨 결과 교섭권은 긴테쓰가 획득했다. 당시 긴테쓰 감독 오카모토 이사미는 아와노의 투지와 간사이 지방에 대해 전혀 모르는 점을 회상했다. 아시아대 감독 우치다 토시오는 긴테쓰의 사전 인사 없는 지명에 분노하여 드래프트 당일 축하 세리머니를 하지 않았고, 총감독 야노 유히로는 한동안 긴테쓰 스카우트의 방문을 거부했다고 한다. 담당 스카우트는 가사이 토시오였다. 아와노를 놓친 요미우리는 기다 마사오, 다이요는 토모리 유키를 재지명으로 획득했다.
2.2. 오사카 긴테쓰 버펄로스 시절
아와노 히데유키는 프로 1년 차인 1987년,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치며 15승 12패, 평균자책점 2.88, 양대 리그 최다인 201 탈삼진과 249.2 이닝을 기록했다. 같은 해 드래프트 1순위로 닛폰햄에 입단한 니시자키 유키히로와 신인왕 경쟁을 펼쳤는데, 아와노는 32경기, 니시자키는 30경기에 등판하여 승수는 같았지만 평균자책점에서 근소한 차이로 아와노가 신인왕을 차지했다. 이를 계기로 아와노와 니시자키는 '트랜디에이스'로 불리며 여성 팬들에게 높은 인기를 얻었다.
1988년에도 팀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14승을 기록했고, 나고야 구장에서 열린 올스타전 2차전에 선발 등판해 3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정규 시즌 최고 승률을 두고 롯데 오리온스와 가와사키 구장에서 벌어진 더블헤더, 이른바 '10.19' 경기에서는 두 경기 모두 구원 등판했다. 1차전에서는 9회 2사 만루 위기를 막아냈지만, 2차전에서는 동점 홈런을 허용하며 팀은 리그 우승에 실패했다. 하지만 아와노는 롯데에 강한 면모를 보이며, 1988년 4승 1패, 1989년 4승 무패, 통산 67승 중 21승을 롯데전에서 거두었다.
1989년에는 19승(최다승), 183탈삼진(최다 탈삼진)을 기록하며 팀의 리그 우승에 기여했고, 일본 시리즈 우수 선수상을 수상했다.
1990년에는 보크 규정 변경의 영향과 부상으로 인해 성적이 하락하기 시작했다. 오기 아키라 감독의 신뢰로 1991년에도 개막전 선발 투수로 발탁되었지만, 1993년과 1994년에는 스즈키 게이시 감독과의 불화로 인해 뚜렷한 성적을 남기지 못하고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이적했다.
2.3. 요미우리 자이언츠 시절
1995년에는 중간 계투로서 재기를 목표로 했지만 요미우리에서의 3년 동안 단 1승도 올리지 못한 채 시즌을 마감했다. 좌완 투수의 등판 횟수에서는 팀 1위인 24경기를 기록했지만 0승 3패로 끝나, 방어율도 4점대였다.
1996년에는 시즌 막바지에 1군에서 호투. 카와노 히로후미, 카와구치 카즈히사, 미야모토 카즈토모 등과 레프티스를 결성, 은사 오기 아키라가 감독을 맡은 오릭스와의 일본 시리즈에도 등판했다.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의 3년간은 거의 2군 생활로 1군 승리 없이 끝났다.
1997년 시즌 오프에 나가이케 야스오와의 트레이드로 요코하마 베이스타즈로 이적했다.
2.4. 요코하마 베이스타스 시절
아와노 히데유키는 1998년 주로 중간 계투로 활약하며 50경기에 등판, '곤도 재생 공장'의 제1호로 불리며 부활했다. 일본 시리즈 우승을 결정짓는 경기에서 승리 투수가 되기도 했다. 곤도 히로시 감독은 근대 시절 투수 코치를 맡아 아와노의 절정기를 알고 있었기에 그를 적극적으로 기용했다.
1999년에는 개막부터 구원 투수로 등판, 4월 8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전에서는 8년 만의 세이브를 기록했다. 이후 팀의 투수력 부족으로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 8월 3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전에서 6년 만의 선발승을 기록했으나, 선발로는 1승에 그쳤고, 시즌 전체적으로는 40경기 등판, 2승 8패 1세이브, 6.32의 평균자책점으로 성적이 하락했다.
2000년에는 방출 통보를 받고 현역에서 은퇴했다. 드래프트에서 1순위 지명을 받은 3개 구단(긴테쓰 버펄로스, 요미우리 자이언츠,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에 모두 소속되어, 3개 구단 모두에서 우승과 일본 시리즈 출전 경험을 한 유일한 선수이다.
3. 지도자 경력
아와노 히데유키는 일본 프로 야구 지도자이다. 2001년부터 2003년까지 요미우리 자이언츠 2군 투수 코치를 역임했다. 2004년부터 2005년까지는 요미우리 1군 투수 코치를 맡았지만, 2년 연속 팀 평균 자책점이 리그 최하위를 기록했다. 2006년에는 요코하마 베이스타스 1군 투수 코치를 맡았으나, 팀은 리그 최하위 평균 자책점을 기록하며 최하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2007년부터 2011년까지 TV 도쿄 야구 해설자를 맡았으며, 동시에 스미토모 금속 가시마 경식 야구부 투수 코치를 역임하며 이사카 료헤이, 가가 시게루 등을 지도했다.
2011년 요미우리 2군 코치로 복귀했고, 2016년부터는 요미우리 3군 투수 코치를 맡았다. 2019년에는 요다 고 감독의 초빙으로 주니치 드래건스 1군 투수 코치로 취임하여, 팀 평균 자책점을 크게 개선시켰다. 2021년에는 12개 구단 최고 팀 평균 자책점을 기록하고 퇴단했다.
2023년, 요미우리 1군 투수 수석 코치로 복귀했으나, 팀의 요청에 의해 1년만에 퇴임했다. 2024년부터는 자이언츠 아카데미 코치를 맡고 있다.
4. 해설자 경력
아와노 히데유키는 2007년부터 2011년까지 TV 도쿄 야구 해설위원을 맡았으며, 삿포로 TV, 스카이·A sports+, J SPORTS, 후지 TV ONE 《프로 야구 뉴스》에도 출연했다. 2022년에는 후지 TV, 미야기 TV, tvk, 닛테레 G+의 야구 해설을 맡았다. 2024년부터 미야기 TV, J SPORTS 야구 해설자로 복귀하여 활동하고 있다.
5. 수상 및 타이틀 경력
5.1. 타이틀
아와노 히데유키는 다승왕 1회(1989년), 최다 탈삼진 2회(1987년, 1989년)를 기록했다. 1987년 최다 탈삼진은 연맹 표창이 없었고, 퍼시픽 리그에서 1989년부터 정식 타이틀로 제정되어 1989년에 정식으로 최다 탈삼진을 수상했다.
5.2. 수상
아와노 히데유키는 1987년 신인왕을 수상했다. 1989년에는 베스트 나인과 골든 글러브상을 동시에 석권했고, 일본 시리즈 우수 선수상, IBM 플레이어오브더이어상, 호치 프로 스포츠 대상, UCC 더 맨상, 산스포 MVP 대상을 연달아 수상했다. 또한, 1987년 4월, 1989년 5월, 1989년 8월에는 월간 MVP를 수상했다.
6. 개인 기록
6.1. 첫 기록
아와노 히데유키의 첫 기록은 다음과 같다.
* 첫 등판·첫 선발·첫 승리·첫 완투 승리 : 1987년 4월 12일, 대 롯데 오리온스 2차전(후지이데라 구장), 9이닝 1실점을 기록했다.
* 첫 탈삼진 : 상동, 1회초에 니시무라 노리후미로부터 기록했다.
* 첫 완봉 승리 : 1987년 4월 18일, 대 세이부 라이온스 2차전(세이부 라이온스 구장)에서 달성했다.
* 첫 세이브 : 1988년 10월 19일, 대 롯데 오리온스 25차전(가와사키 구장), 9회말에 3번째 투수로서 구원 등판·마무리, 1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