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도 기미야스
1. 개요
구도 기미야스는 일본의 전 프로 야구 선수이자 야구 감독이다. 1963년 아이치현 나고야시에서 태어나, 나고야 전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82년 세이부 라이온스에 입단했다. 세이부,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요미우리 자이언츠,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에서 선수 생활을 했으며, 통산 224승을 기록했다. 1993년 퍼시픽 리그 MVP를 수상했고, 1986년과 1987년 일본 시리즈 MVP를 연이어 수상했다. 2014년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감독으로 취임하여 2021년까지 팀을 이끌며 2015년부터 2020년까지 6번의 리그 우승과 5번의 일본 시리즈 우승을 달성했다. 2021년 감독직에서 물러났으며, 2012년 은퇴 후에는 해설가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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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구도 기미야스 |
|---|---|
| 원어 이름 | 工藤 公康 (くどう きみやす, Kudō Kimiyasu) |
| 출생일 | 1963년 5월 5일 |
| 출생지 | 아이치현 나고야시 쇼와구(현재의 덴파쿠구) |
| 국적 | 일본 |
| 신장 | 176cm |
| 체중 | 80kg |
| 던지는 손 | 좌투 |
| 치는 손 | 좌타 |
| 포지션 | 투수 |
|---|---|
| 프로 입단 | 1981년 드래프트 6순위 |
| 첫 출장 | 1982년 4월 10일 |
| 마지막 경기 | 2010년 8월 25일 |
| 소속팀 |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 (1982–1994, 2010)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1995–1999) 요미우리 자이언츠 (2000–2006)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 (2007–2009) |
| 승-패 | 224승 142패 |
|---|---|
| 평균 자책점 | 3.45 |
| 완봉 | 24 |
| 투구 이닝 | 3,336.2 |
| 탈삼진 | 2,859 |
| 쇼리키 마쓰타로 상 | 1987년 |
|---|---|
| MVP | 최우수 선수 (1993년, 1999년) |
| 일본 시리즈 MVP | 1986년, 1987년 |
| 베스트 나인 | 1987년, 1993년, 2000년 |
| 골든 글러브 | 1994년, 1995년, 1999년 |
| 평균 자책점 1위 | 1985년, 1987년, 1993년, 1999년 (퍼시픽 리그) |
| 탈삼진 1위 | 1996년, 1999년 (퍼시픽 리그) |
| 올스타 | 1986년–1987년, 1991년, 1993년, 1995년, 1997년, 1999년–2000년, 2004년–2005년 |
| 일본 시리즈 우승 | 11회 (1982년–1983년, 1986년–1988년, 1990년–1992년, 1999년–2000년, 2002년) |
| 소속팀 |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2015–2021) |
|---|---|
| 쇼리키 마쓰타로 상 (감독) | 2015년, 2018년, 2019년, 2020년 |
| 일본 시리즈 우승 (감독) | 5회 (2015년, 2017년–2020년) |
| 헌액 | 일본 야구 명예의 전당 (2016년) |
|---|---|
| 헌액 방식 | 선수 부문 |
| 득표율 | 76.6% (337표 중 258표) |
-
아이치현 출신 야구 선수 -
와다 쓰요시
와다 쓰요시는 2024년 은퇴한 일본의 프로 야구 선수로, NPB와 MLB에서 투수로 활동하며 신인왕, 다승왕, MVP 등을 수상하고 국제대회에서도 활약했으며, 은퇴 후에도 자선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
아이치현 출신 야구 선수 -
스기우라 다다시
스기우라 다다시는 1958년부터 1970년까지 난카이 호크스에서 활약한 일본의 우완 투수로, 1959년 퍼시픽 리그 MVP와 일본 시리즈 4경기 연속 완투승을 통해 팀 우승을 이끌었으며, 은퇴 후 지도자와 해설가로 활동하다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 선수 -
앤디 밴 헤켄
앤디 밴 헤켄은 미국 출신의 야구 선수로, 메이저 리그와 한국, 대만 프로야구에서 활동했으며, 특히 넥센 히어로즈에서 20승을 기록하며 골든글러브를 수상하고, 은퇴 후에는 투구 코치로 활동한다. -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 선수 -
오카모토 신야
일본과 한국 프로야구에서 중간 계투로 활약하며 주니치 드래건스에서 최우수 중간 계투상을 수상하고 여러 팀에서 우승을 경험한 오카모토 신야는 은퇴 후 음식점 운영과 야구 해설가로 활동하고 있다. -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선수 -
와다 쓰요시
와다 쓰요시는 2024년 은퇴한 일본의 프로 야구 선수로, NPB와 MLB에서 투수로 활동하며 신인왕, 다승왕, MVP 등을 수상하고 국제대회에서도 활약했으며, 은퇴 후에도 자선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선수 -
가도타 히로미쓰
가도타 히로미쓰는 일본의 전 프로 야구 선수로, 1970년 난카이 호크스에 입단하여 1988년 MVP를 수상하고 1992년 은퇴했으며, 2006년 일본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2. 프로 입단 전
1963년 5월 5일 아이치현 나고야시 미나미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나고야시 교통국 버스 운전사였으며, 구도가 2살 때 어머니와 이혼 후 6살 때 재혼했다. '공정하고 너그럽게 자라라'라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기미야스(公康)'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시립 고사카 초등학교와 시립 히사카타 중학교를 졸업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야구를 시작했지만 처음에는 좋아하지 않았다. 4학년 때 야구부에 들어가 5학년 때부터 에이스 투수로 활약했다. 중학교에서는 처음에 핸드볼부에 들어갔으나, 교사의 권유로 야구부로 옮겨 에이스가 되었다. 중학교 3학년 때 나고야시 대회에서 우승했지만, 아이치현 대회 결승전에서 져 전국 대회에는 나가지 못했다.
어려운 가정 형편 속에서도 야구 특기생으로 나고야 전기 고등학교(현 아이치 공업대학 메이덴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1979년 고등학교 입학 후 기숙사 생활을 시작했다. 1학년 가을부터 에이스로 등번호 1번을 달고, 동급생인 마키하라 히로미, 하마다 가즈오와 함께 '아이치 삼우'로 불리며 강속구와 커브를 무기로 활약했다.
1981년 제63회 전국 고등학교 야구 선수권 대회에 출전하여 2차전에서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며(4대 0) 팀의 4강 진출을 이끌었다. 2차전 상대는 나가사키니시 고등학교였다.
같은 해 프로 야구 드래프트 회의에서 구마가이구미 취업을 발표하며 프로 입단을 거부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세이부 라이온스가 6순위로 지명했다. 구단 관리부장 네모토 리쿠오의 주도로 입단 교섭이 이루어져 결국 세이부에 입단하게 되었다.
2.1. 출생
工藤 公康일본어는 1963년 5월 5일 아이치현 나고야시 미나미구에서 태어났다. '공정하고 너그럽게 자라라'라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기미야스(公康)'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아버지는 나고야시 교통국 버스 운전사였으며, 구도가 2살 때 어머니와 이혼 후 6살 때 재혼했다. 2남 3녀의 아버지로, 장남은 배우 구도 아스카, 장녀는 프로 골퍼 구도 하루카이다.
2.2.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
1963년 5월 5일 아이치현 나고야시 미나미구에서 태어났으며, 시립 고사카 초등학교와 시립 히사카타 중학교를 졸업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야구를 시작했지만 처음에는 좋아하지 않았다. 4학년 때 야구부에 들어가 5학년 때부터 에이스 투수로 활약했다. 중학교에서는 처음에 핸드볼부에 들어갔으나, 교사의 권유로 야구부로 옮겨 에이스가 되었다. 중학교 3학년 때 나고야시 대회에서 우승했지만, 아이치현 대회 결승전에서 져 전국 대회에는 나가지 못했다.
2.3. 나고야 전기 고등학교 시절
1963년 아이치현 나고야시 미나미구에서 태어난 구도 기미야스는 어려운 가정 형편 속에서도 야구 특기생으로 나고야 전기 고등학교(현 아이치 공업대학 메이덴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1979년 3월, 나고야 시립 구바타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 입학 후 기숙사 생활을 시작했다. 1학년 가을부터 에이스로 등번호 1번을 달고, 동급생인 마키하라 히로미, 하마다 가즈오와 함께 '아이치 삼우'로 불리며 강속구와 커브를 무기로 활약했다.
1981년 제63회 전국 고등학교 야구 선수권 대회에 출전하여 2차전에서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며(4대 0) 팀의 4강 진출을 이끌었다. 이 대회 2차전 상대는 나가사키니시 고등학교였다.
같은 해 프로 야구 드래프트 회의에서 구마가이구미 취업을 발표하며 프로 입단을 거부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세이부 라이온스가 6순위로 지명했다. 구단 관리부장 네모토 리쿠오의 주도로 입단 교섭이 이루어져 결국 세이부에 입단하게 되었다. 당시 언론에서는 구도가 6순위 지명임에도 1살 위인 1순위 지명자 이토 쓰토무보다 더 많은 계약금과 연봉을 보장받은 것으로 추정했다.
3. 프로 선수 시절
구도 기미야스는 1978년 구바타 중학교를 졸업했다.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고등학교 진학이 불투명했지만, 야구 특기생으로 나고야 전기 고등학교(현 아이치 공업대학 메이덴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고등학교 1학년 가을부터 에이스로 활약했으며, 나카무라 미노루, 다카하시 마사히로, 야마모토 코지 등과 함께 팀을 이끌었다.
고등학교 시절, 구도는 마키하라 히로미, 하마다 카즈오와 함께 '아이치 삼우까마귀'로 불렸다. 강속구와 커브를 주무기로 활약했으며, 연습 경기에서 상대 학교가 "선수들이 자신감을 잃는다"며 경기를 거절할 정도로 뛰어났다.
1981년 봄, 아이치현 대회 준준결승에서 마키하라가 속한 오부 고등학교를 상대로 장외 홈런을 치는 등 활약하며 승리했다. 여름에는 아이치현 대회에서 토호 고등학교와의 경기 중 오른쪽 눈 부근에 사구를 맞았지만, 완봉승을 거두며 팀을 고시엔에 진출시켰다.
고시엔에서는 나가사키 니시 고등학교와의 경기에서 16탈삼진, 노히트 노런을 달성했다. 기타요 고등학교와의 3회전에서는 연장 12회 21탈삼진을 기록했다. 시도 상업 고등학교와의 준준결승전에서는 홈런을 치고 완봉승을 거두며 팀을 4강에 진출시켰다. 호토쿠 학원 고등학교와의 준결승전에서는 13피안타 7탈삼진을 기록했지만, 팀은 패했다.
3.1. 세이부 라이온스 시절 (1982-1994)
1982년 프로에 입단한 첫 해부터 히로오카 다쓰로 감독에게 '꼬맹이'라고 불릴 정도로 귀여움을 받으며 중간 계투로 기용됐다. 그 해 27경기에 등판하여 1승 1패, 평균자책점 3.41의 좋은 성적을 기록했다. 히로오카 감독의 엄격한 지도를 받으며 큰 영향을 받았다. 같은 해 퍼시픽 리그 플레이오프에 등판하여 2차전에서는 에나쓰 유타카와의 투수전 끝에 승리 투수가 됐다. 1983년에는 중간 계투의 주축으로 기용됐지만 2경기에 선발로 등판했고 평균 자책점도 3점 대를 기록하며 좋은 활약을 보였다.
1984년에는 9경기 등판에 그쳤고, 히로오카 감독의 지시로 미국 싱글A 팀으로 야구 유학을 갔다. 미국에서 메이저 리그 야구를 관전하며 전환기를 맞았고, 귀국 후 미야타 유키노리의 지도를 받고 팀의 주력 투수로 성장했다.
1985년부터 본격적으로 선발로 전향하여 8승 3패를 기록하고, 자신의 첫 타이틀인 최우수 평균 자책점을 획득했다. 1986년에는 프로 입문 후 처음으로 두 자릿수 승리인 11승을 올렸고 완투 수도 10회를 기록했다. 히로시마 도요 카프와 맞붙은 일본 시리즈에서는 세이부가 1차전 무승부 후 3연패를 당했는데, 5차전에서 연장 12회에 구도가 타석에 들어서 끝내기 안타를 기록했다. 그 후 세이부는 4연승으로 일본 시리즈 정상에 올랐고, 1승 2세이브를 기록한 구도는 일본 시리즈 MVP에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1987년에는 시즌 15승과 최다인 23차례의 완투를 기록하며 통산 두 번째 최우수 평균 자책점, 최고 승률, 베스트 나인 타이틀을 차지했다. 그러나 MVP는 팀의 우승 경쟁 후반기에 9승 1패로 활약한 히가시오 오사무가 선정됐다. 그 해의 일본 시리즈에서는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상대로 완봉승을 포함한 2승 1세이브를 기록하며 2년 연속 MVP를 수상, 명실상부 퍼시픽 리그를 대표하는 좌완 투수가 됐다.
1988년에는 개막전에서 완봉승을 거뒀지만 제구력 난조로 부진하여 6월에 2군으로 내려갔다. 1군 복귀 후 컨디션을 되찾아 10승 10패 1세이브를 기록했고, 11차례의 완투로 3년 연속 두 자릿수 완투를 달성했다. 1989년에는 컨디션 난조와 제구력 문제로 4승 8패 2세이브라는 부진한 성적을 거두며 중간 계투로 등판하기도 했지만, 최종 등판 수는 33경기였다. 1990년에는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하기도 했지만 9승을 기록했다. 그러나 1984년 이후 처음으로 투구 이닝이 100이닝 미만으로 시즌을 마쳤다.
1991년에는 개인 최고 성적인 16승을 올리며 부활했고, 최고 승률 타이틀도 획득했다. 1992년에도 11승을 올리며 팀의 리그 우승과 일본 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1993년에는 15승 3패의 성적과 최우수 평균 자책점, 최고 승률, 베스트 나인을 수상했고, 처음으로 퍼시픽 리그 MVP에 선정됐다. 1993년 시즌 종료 후 FA 권리를 취득했지만 세이부에 잔류했다.
1994년에는 11승을 올리며 4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를 기록했지만, 재계약 협상에서 연습 설비와 시설 개선을 요구했으나 구단 측의 답변을 얻지 못해 FA권을 행사했다. 결국 네모토 리쿠오가 구단 사장, 오 사다하루가 감독으로 취임한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로 이적하여 아키야마 고지와 다시 팀메이트가 되면서 팀 재건을 맡게 됐다.
3.2.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시절 (1995-1999)
1995년, 세이부와의 개막전에 이적 후 첫 등판하여 난타전 끝에 4이닝 8실점을 기록했지만, 팀 승리로 패전은 면했다. 6월에 부상으로 한 달간 결장했지만, 팀 최다인 12승을 기록했다. 그러나 팀은 부진하여 구도 기미야스는 처음으로 B클래스(4위~6위)를 경험했다.
1996년, 2년 연속 개막 투수로 29경기에 선발 등판, 9번의 완투와 8승, 178탈삼진으로 최다 탈삼진 타이틀을 획득했다. 그러나 개막 이후 연패를 기록하며 월간 승리가 없었고, 리그 최다인 15패(규정 이닝 도달자 20명 중 12위)를 기록했다. 반면, 동료 타케다 카즈히로는 더 적은 이닝(171이닝)과 낮은 평균자책점(3.84)을 기록하고도 리그 3위인 15승을 기록했다.
1997년, 등번호를 세이부 시절과 같은 47번으로 변경했다. 2년 만에 두 자릿수 승리(11승)를 거두었지만, 1군 정착 후 처음으로 완투 없이 시즌을 마쳤다.
1998년, 2년 만에 개막 투수를 맡았지만, 부상으로 결장하여 7승에 그쳤다. 그러나 팀은 오릭스 블루웨이브와 동률 3위(전년도 성적은 오릭스가 더 좋았기 때문에 개막전 출전권은 오릭스가 가졌다)를 기록, 다이에이 양도 후 처음으로 A클래스에 진입했다. 구도 기미야스는 4년 만에 A클래스를 경험했다.
1999년, 11승과 함께 4번째 최우수 평균 자책점과 2번째 최다 탈삼진 타이틀을 획득하며 팀의 리그 우승에 크게 기여하여 MVP로 선정되었다. 일본 시리즈 1차전(주니치 드래건스 상대)에서 시리즈 신기록인 13탈삼진을 기록하며 완봉승을 거두었다. 구도는 이 경기를 "생애 최고의 경기"라고 회고했다. "압도적으로 주니치 유리"라는 평가 속에서, 구도의 완봉승으로 다이에이는 4승 1패로 일본 시리즈 우승을 차지했고, 구도는 우수 선수상을 수상했다. 시즌 종료 후 FA를 선언하여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이적했다.
3.3. 요미우리 자이언츠 시절 (2000-2006)
2000년,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이적한 첫 해에 '우승 청부사'로서 투수진을 이끌며 시즌 초반부터 순조롭게 승수를 쌓아 전반기에만 10승을 거두는 활약을 보였다. 시즌 후반에 오른쪽 종아리를 다쳐 잠시 이탈했지만 12승을 거두며 리그 우승에 기여했고, 최우수 투수상을 수상했다. 일본 시리즈에서는 부상에도 불구하고 1차전에 선발 출전해 전년까지 소속했던 다이에를 꺾고 2년 연속 일본 시리즈 우승을 달성했다. 그러나 이듬해인 2001년에는 왼쪽 어깨 부상으로 고생하며 5경기 등판에 그쳤고, 이닝을 소화하며 1승 3패, 8.44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여 아쉬운 시즌을 보냈다.
2002년에는 이적 후 처음으로, 본인으로서는 1999년 이후 처음으로 평균 자책점 2점대(2.91)를 기록했지만 득점 지원을 받지 못해 9승 8패로 마감했다. 그럼에도 팀의 리그 우승에 기여했다. 같은 해 일본 시리즈에서는 친정 팀인 세이부와 대결, 3차전에 선발 출전하여 8이닝 2실점 8탈삼진으로 호투하며 승리 투수가 되었다. 이 승리로 자신이 가지고 있던 일본 시리즈 통산 탈삼진 기록을 102개로 늘렸고, 팀도 4연승으로 일본 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2003년에는 부상으로 전열에서 이탈한 적도 있어 7승 6패, 평균 자책점 4.23으로 마감했다.
2004년 8월 17일 야쿠르트와의 경기에서 2실점 완투승을 거두며 통산 200승을 달성했다. 이는 일본 프로 야구 사상 23번째이자, 당시 역대 최고령(41세 3개월) 기록이었다. 또한 이 경기에서 8회에 제이슨 베바린으로부터 프로 데뷔 첫 홈런이 되는 결승 2점 홈런을 날려, 이 역시 일본 프로 야구 사상 최고령 기록을 세웠다. 같은 해 규정 이닝을 채우고 4년 만에 두 자릿수 승리(10승)를 거두었다.
2005년 5월 19일 소프트뱅크와의 경기에서 센트럴 리그 최고령 완투 승리 기록, 8월 26일 한신과의 경기에서 42세 3개월로 최고령 두 자릿수 승리 기록을 경신했다. 같은 해 올스타전에서는 2차전에 구원 등판하여 올스타 최고령 등판 기록(42세 2개월)을 세웠다. 이 해에는 11승을 거두며 2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를 기록했지만, 규정 이닝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2006년에는 시즌 전반에 3승을 거두며 좋은 출발을 보였으나, 6, 7월 두 경기에서 총 20실점을 기록했고, 어깨 부상으로 등록 말소되었다. 최종적으로 3승 2패, 평균 자책점 4.50의 성적으로 마감했다. 12월 계약 갱신에서는 한도 폭을 넘는 연봉 삭감을 제시받아 보류했고, 연말연시 훈련지로 미국으로 건너갔다. 오프에는 카도쿠라 켄이 FA 이적함에 따라 선수 보상으로 요코하마 베이스타스로의 이적이 결정되었다.
3.4. 요코하마 베이스타스 시절 (2007-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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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월 7일, 가도쿠라 겐이 요미우리로 FA 이적하면서, 요코하마는 그에 대한 인적 보상으로 구도 기미야스를 지명했다. 요미우리는 28명의 보호 선수 명단에 구도를 포함시키지 않았고, 요코하마는 215승 좌완 투수의 경험을 높이 평가했다. 요미우리 프런트는 이 협상이 언론에 먼저 보도된 것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지만, 구도는 "내가 프런트였다면 43세의 선수를 보호 범위에는 넣지 않았을 것이다"라며 이해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1월 9일, 요코하마 이적이 최종 결정되었다. 이는 에토 아키라에 이어 FA 이적과 동시에 FA 보상 선수가 된 두 번째 사례였다. 요코하마에서도 등번호는 47번을 유지했고, 연봉은 2억 9,000만 엔에서 2억 엔 삭감된 90(최고 50의 성과급 별도)으로, 당시 프로 야구 사상 최대 감봉액이었다.
2007년 4월 1일, 요미우리전에 등판하여 노무라 가쓰야가 세운 프로 야구 최장 기록인 26년 연속 1군 경기에 출전했다. 시즌 초반에는 부진하여 2군으로 내려갔지만, 5월 11일 히로시마전에서 9년 만에 구원 투수로 복귀했다. 5월 23일 세이부전에서 선발승을 거두며 요네다 데쓰야의 22년 연속 승리 기록을 경신, 23년 연속 승리 투수가 되었다. 이는 44세 이상 투수의 역대 두 번째 승리 기록이기도 했다.
7월 12일 주니치전에서 센트럴 리그 최고령 안타 기록(44세 2개월)을 세웠고, 9월 26일 한신전에서 자신의 기록을 44세 4개월로 경신했다. 7월 24일 요미우리전 승리로 긴테쓰를 포함한 13개 구단 상대 승리 투수가 되었다. 시즌 후에는 20 인상된 연봉 110에 재계약했다.
2008년 4월 1일 야쿠르트전에서 프로 통산 27년째를 맞이하며 노무라의 기록을 경신했지만, 팔꿈치 부상으로 단 한 경기에만 출전하고 2군으로 내려갔다. 9월 9일 이스턴 리그 닛폰햄-쇼난(요코하마 2군)전에서 승리하며 이스턴 리그 최고령 승리 투수가 되었지만, 1군에서는 24년 만에 승리 없이 시즌을 마쳤다. 연봉은 야구 협약의 감액 제한을 넘는 55% 삭감된 50(성과급 별도)으로 갱신되었다.
2009년에는 등번호 47번 착용 26년으로 프로 야구 신기록을 세웠다. 4월 8일 요미우리전에서 자신의 프로 통산 출전 기록을 28년으로 늘렸다. 이 경기에서 8실점으로 패전 투수가 된 후, 팀 방침에 따라 20년 만에 구원 투수로 전향했다. 5월 5일 요미우리전에서 첫 홀드를 기록했고, 5월 25일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전에서 센트럴 리그 최고령 승리 기록을 46세 20일로 경신했다. 이 승리로 통산 223승을 기록, 무라야마 미노루를 넘어섰다. 7월 1일 야쿠르트전에서 통산 224승째를 올렸지만, 이것이 프로 생활 마지막 승리가 되었다. 9월 15일, 구단은 젊은 선수 기용을 위해 구도에게 전력 외 통보를 했고, 구도는 자유 계약 선수가 되었다.
3.5. 세이부 라이온스 복귀 (2010)
2009년 11월 14일, 세이부는 부족한 중간 계투 좌완 투수 보강을 위해 구도 기미야스를 영입한다고 발표했고, 이로써 구도는 1994년 이후 친정팀으로 복귀하게 되었다. 구도가 데뷔 이후 거의 매년 달았던 등번호 47번은 당시 세이부의 주축 좌완 투수 호아시 카즈유키가 사용하고 있었다. 호아시는 "47번은 원래 구도 선수의 번호다. 구단이나 구도 선수가 원한다면 기꺼이 반환하겠다"라고 말했지만, 구도는 "젊은 선수에게 신경 쓰게 하고 싶지 않다"라며 사양했다. 결국 구도는 등번호 55번을 사용하게 되었는데, 이에 대해 "집에서 아이들과 상의했더니, '가자 가자!'라고 하더라", "후지이의 등번호 15번의 5도 들어가 있고, 좋다고 생각했다. 그의 몫까지 야구를 계속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2010년 7월 18일, 전반기 종료 직전에 1군에 등록되었다. 7월 20일 소프트뱅크전(후쿠오카 Yahoo! JAPAN 돔)에서 7회말에 선발 노가미를 이어받아 두 번째 투수로 등판, 자신이 보유한 실동 연수 기록을 29년으로 갱신했다. 그러나 이후 10경기에서 0승 2패, 평균자책점 10.5을 기록하며 부진했다. 8월 25일 롯데전에서는 동점 상황에서 등판했지만 역전 홈런을 허용했고, 28일에 등록이 말소되었다. 9월 27일 구단으로부터 전력 외 통보를 받았고, 10월 1일에 팀을 떠났다.
3.6. 은퇴
시즌에는 영입을 제안하는 구단이 나타나지 않아 훈련을 계속하면서 메이저 리그 진출도 시야에 두고 선수 생활을 하지 않았다.。 현역 연장을 위해 훈련을 하는 한편, 분카 방송의 게스트 해설자도 맡았다.。
7월, 가을에 메이저 리그의 트라이아웃을 응시할 의향을 표명했다.。 하지만 어깨 부상이 낫지 않아 응시하지 못했다.
2011년 11월 22일 스포츠 호치 취재에서, 어깨 관절순에 염증을 앓는 등 어깨 상태가 나아지지 않아 은퇴를 시사하는 발언이 나왔다. 최종적인 거취 판단은 가족과 상의해서 결정하겠다고 했다.。 그 후, 요코하마 베이스타스를 인수한 DeNA에 신임 감독 취임을 요청받았지만, 12월 5일에 협상이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결렬되었다.。 12월 9일, 자신의 블로그에서 어깨 부상이 낫지 않아 현역 은퇴를 결심했다고 표명했다.。
4. 감독 시절
2012년부터 닛칸 스포츠 야구 평론가와 분카 방송 《라이온즈 나이터》의 야구 해설가로 활동했다. 테레비 아사히의 《보도 스테이션》에도 닛폰햄의 감독으로 취임한 구리야마 히데키의 후임으로 프로 야구 담당 스포츠 캐스터로 정기적으로 출연했다.
2011년까지 구리야마가 맡았던 아사히 방송의 "열투! 고교 야구 내비게이터"를 계승했다. 전국 고등학교 야구 선수권 대회 예선·본선 기간 중에는 프로 야구 해설·평론 활동과 병행하며, 해당 방송국이 제작하는 대회 관련 프로그램(《속보! 고시엔으로 가는 길》, 《열투 고시엔》 등)에서 사회 및 취재를 담당했다.
2013년 7월 19일, 자신의 블로그에서 쓰쿠바 대학 대학원에 합격했음을 발표했고, 이듬해 4월, 동 대학원 인간 종합 과학 연구과에 니시 히사시·요시이 마사토와 함께 입학했다. 2014년에는 이하라 하루키의 후임으로 세이부 감독 후보로 거론되었다.
2014년 11월 1일, 아키야마 고지의 후임으로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감독으로 취임하여, 2021년 팀이 B클래스(4위)로 부진하자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4.1.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감독 (2015-2021)
2014년 11월 1일, 아키야마 고지의 후임으로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감독으로 취임했다. 2015년, 취임 첫 해에 정규 시즌, 클라이맥스 시리즈, 일본 시리즈에서 모두 우승하며 '완전 우승'을 달성했다.
| 연도 | 소속 | 순위 | 경기 | 승리 | 패전 | 무승부 | 승률 | 승차 | 팀 홈런 | 팀 타율 | 팀 평균자책점 | 연령 |
|---|---|---|---|---|---|---|---|---|---|---|---|---|
| 2015년 | 소프트뱅크 | 1위 | 143 | 90 | 49 | 4 | .647 | - | 141 | .267 | 3.16 | 52세 |
| 2016년 | 2위 | 143 | 83 | 54 | 6 | .606 | 2.5 | 114 | .261 | 3.09 | 53세 | |
| 2017년 | 1위 | 143 | 94 | 49 | 0 | .657 | - | 164 | .259 | 3.22 | 54세 | |
| 2018년 | 2위 | 143 | 82 | 60 | 1 | .577 | 6.5 | 202 | .266 | 3.90 | 55세 | |
| 2019년 | 2위 | 143 | 76 | 62 | 5 | .551 | 2.0 | 183 | .251 | 3.63 | 56세 | |
| 2020년 | 1위 | 120 | 73 | 42 | 5 | .635 | - | 126 | .249 | 2.92 | 57세 | |
| 2021년 | 4위 | 143 | 60 | 62 | 21 | .492 | 8.5 | 132 | .247 | 3.25 | 58세 | |
| 통산 : 7년 | 978 | 558 | 378 | 42 | .596 | A클래스 6회, B클래스 1회 | ||||||
* 순위에서 굵은 글씨는 일본 시리즈 우승.
| 연도 | 소속 | 경기명 | 상대팀 | 성적 |
|---|---|---|---|---|
| 2015년 | 소프트뱅크 | 퍼시픽 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 | 지바 롯데 마린스(퍼시픽 리그 3위) | 4승 0패 = 일본 시리즈 진출(※1) |
| 일본 시리즈 |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센트럴 리그 1위) | 4승 1패 = 일본 시리즈 우승 | ||
| 2016년 | 퍼시픽 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 퍼스트 스테이지 | 지바 롯데 마린스(퍼시픽 리그 3위) | 2승 0패 = 파이널 스테이지 진출 | |
| 퍼시픽 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 |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퍼시픽 리그 1위) | 2승 4패 = 파이널 스테이지 탈락(※2) | ||
| 2017년 | 퍼시픽 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 |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퍼시픽 리그 3위) | 4승 2패 = 일본 시리즈 진출 (※1) | |
| 일본 시리즈 |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센트럴 리그 3위) | 4승 2패 = 일본 시리즈 우승 | ||
| 2018년 | 퍼시픽 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 퍼스트 스테이지 |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퍼시픽 리그 3위) | 2승 1패 = 파이널 스테이지 진출 | |
| 퍼시픽 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 |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퍼시픽 리그 1위) | 4승 2패 = 일본 시리즈 진출 (※2) | ||
| 일본 시리즈 | 히로시마 도요 카프(센트럴 리그 1위) | 4승 1무 1패 = 일본 시리즈 우승 | ||
| 2019년 | 퍼시픽 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 퍼스트 스테이지 |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퍼시픽 리그 3위) | 2승 1패 = 파이널 스테이지 진출 | |
| 퍼시픽 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 |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퍼시픽 리그 1위) | 4승 1패 = 일본 시리즈 진출 (※2) | ||
| 일본 시리즈 | 요미우리 자이언츠(센트럴 리그 1위) | 4승 0패 = 일본 시리즈 우승 | ||
| 2020년 | 퍼시픽 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 | 지바 롯데 마린스(퍼시픽 리그 2위) | 3승 0패 = 일본 시리즈 진출 (※1)(※3) | |
| 일본 시리즈 | 요미우리 자이언츠(센트럴 리그 1위) | 4승 0패 = 일본 시리즈 우승 |
* 성적에서의 굵은 글씨는 승리한 것을 나타냄.
: ※1 클라이맥스 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는 6경기제이며 먼저 4승을 한 팀은 일본 시리즈에 진출, 리그 우승 팀에게는 1승의 어드밴티지가 주어짐
: ※2 어드밴티지의 1패를 포함.
: ※3 2020년에는 코로나19의 영향으로 퍼스트 스테이지를 치르지 않고 정규 시즌 1위 팀과 2위 팀간의 파이널 스테이지만으로 치르게 되면서 당초의 일정을 변경했기 때문에 4전 3선승제로 축소하여 개최.
2016년,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2017년부터 2020년까지 4년 연속 일본 시리즈 우승을 달성하며, 감독으로서 뛰어난 역량을 발휘했다.
2021년, 팀이 B클래스(4위)로 부진하자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5. 은퇴 이후
2012년부터 닛칸 스포츠 야구 평론가와 분카 방송 《라이온즈 나이터》의 야구 해설가로 활동했다. 테레비 아사히의 《보도 스테이션》에도 닛폰햄의 감독으로 취임한 구리야마 히데키의 후임으로 프로 야구 담당 스포츠 캐스터로 정기적으로 출연하고 있다.
2011년까지 구리야마가 맡았던 아사히 방송의 "열투! 고교 야구 내비게이터"를 계승했다. 전국 고등학교 야구 선수권 대회 예선·본선 기간 중에는 프로 야구의 해설·평론 활동과 병행하며, 해당 방송국이 제작하는 대회 관련 프로그램(《속보! 고시엔으로 가는 길》, 《열투 고시엔》 등)에서 사회 및 취재를 담당했다.
2013년 7월 19일, 자신의 블로그에서 쓰쿠바 대학 대학원에 합격했음을 발표했다. 이듬해 4월, 동 대학원 인간 종합 과학 연구과에 니시 히사시, 요시이 마사토와 함께 입학했다. 2014년에는 이하라 하루키의 후임으로 세이부 감독 후보로 거론되었다. 2022년 2월 18일, 감독 재임 중이던 2020년 3월에 석사 과정을 수료하고 석사(체육학)을 취득한 쓰쿠바 대학 대학원의 박사 과정에 합격한 것이 보도되었다.
2022년부터는 니혼 TV의 야구 해설자를 맡는 외에, 후쿠오카의 각 방송국(TV 니시닛폰, RKB 텔레비전, NHK 후쿠오카)이나 닛폰 방송 등의 게스트 해설자로도 출연한다. 2023년부터는 TBS 채널의 해설자도 맡는다.
2023년부터 주식회사 KONAMI가 기획하는 인플루언서로 구성된 사회인 야구팀 "파워풀 스피릿츠"의 감독을 맡는다. 등번호는 811이다.
6. 선수로서의 특징
구도 기미야스는 높은 쓰리쿼터 자세에서 공을 던지기 직전까지 숨기는 데 능숙했다. 많은 탈삼진을 잡는 투수는 아니었지만, 타자를 안정적으로 잡아내는 능력이 있었다. 수비도 잘했고, 미쓰이 골든 글러브를 3번 수상했다.
키 176cm, 몸무게 80kg으로, 구도는 전성기에도 148km를 넘지 못할 정도로 강속구를 던지는 투수는 아니었다. 대신 정확한 제구력과 스트레이트(포심 패스트볼)와 다양한 변화구에 의존했다. 변화구 레퍼토리에는 늦게 꺾이는 커브, 슬라이더가 있었고, 가끔 싱커/슈토를 던지기도 했다.
최고 속도 149km의 스트레이트와 회전이 걸린 큰 궤도의 커브를 주무기로 했다. 말년에는 슬라이더나 싱커 등 구종을 늘려갔지만, 기본적으로는 스트레이트와 커브를 중심으로 던졌다. 스트레이트는 130km 후반과 140km 중반~후반, 커브는 100km~130km 대까지 약 10km 간격으로 조절하며, 같은 투구폼으로 던지는 완급 조절 능력이 뛰어났다.
1992년 허벅지 근육 파열을 겪은 후, 쓰쿠바 대학 교수이자 스포츠 트레이너인 시라키 히토시의 지도를 받았다. 시라키가 독일에서 배운 레그 런지, 허리 굽히기 등의 훈련을 통해 고관절의 유연성을 높이고 투구 동작을 개선하면서 고관절 훈련을 중점적으로 했다.
철저한 몸 관리로 유명했으며, 특히 영양가 높은 식사와 청즙 섭취 등 컨디션 관리에 힘썼다. 하지만 이러한 관리는 결혼 후에 시작된 것으로, 이전에는 불규칙한 생활을 했다. 1989년 간 기능 장애를 겪은 후, 아내의 도움으로 체질 개선에 힘써 약 1년간의 재활을 거쳐 회복했다.
7. 에피소드
1980년대 당시 야구 선수들의 일반적인 옷차림은 소매가 조금 큰 골프 셔츠, 조끼, 좁은 바지, 에나멜 구두, 네모나게 짧은 머리나 펀치파마가 당연했지만, 구도는 DC브랜드, 청바지, 스니커를 맵시있게 착용했고, 히어로 인터뷰에서 미소를 짓거나 우승이 결정됐을 때 헹가래에 참여하지 않고 카메라를 향해 장난치는 등의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이 때문에 선배들에게 호된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1986년 신어·유행어 대상에서는 그 해의 유행어인 ‘신인류’(新人類일본어)를 대표해 기요하라 가즈히로, 와타나베 히사노부와 함께 선정되면서 야구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킨 선구자로 급부상했다.
8. 수상 및 타이틀 경력
구도 기미야스는 선수 시절 여러 상을 받고 타이틀을 획득했다. 주요 기록은 다음과 같다.
| 기록 종류 | 내용 | 비고 |
|---|---|---|
| 현역 통산 | 29년 | 역대 1위 |
| 연속 승리 | 23년 | 역대 1위 타이 |
| 일본 시리즈 출장 횟수 | 14회 | 시리즈 타이 기록 |
| 일본 시리즈 통산 탈삼진 | 102 | 시리즈 기록 |
| 최고령 홀드 | 46세 4개월 | 2009년 9월 20일, 대 주니치 드래건스 23차전(나고야 돔), 8회말 1사에 3번째 투수로서 구원 등판, 2/3이닝 무실점 |
| 한 경기 탈삼진 | 13 | 1999년 1차전, 일본 시리즈 기록 |
| 이닝 3자 3구 삼진 | 달성 | 1994년 2차전 3회, 일본 시리즈 사상 최초 |
| 양대 리그 승리 투수 | 달성 | 역대 3번째, 퍼시픽 리그(8승): 세이부에서 7승, 다이에에서 1승, 센트럴 리그(1승): 요미우리에서 1승 |
| 한 이닝 4탈삼진 | 달성 | 1996년 8월 2일, 대 지바 롯데 마린스 17차전(후쿠오카 돔), 7회초, NPB 역대 3번째 |
| 올스타전 출장 | 10회 |
8.1. 주요 기록
* 현역 통산 29년 (역대 1위)
* 23년 연속 승리 (역대 1위 타이)
* 일본 시리즈 출장 횟수: 14회 (시리즈 타이 기록)
* 일본 시리즈 통산 탈삼진: 102 (시리즈 기록)
* 최고령 홀드: 46세 4개월 - 2009년 9월 20일, 대 주니치 드래건스 23차전(나고야 돔), 8회말 1사에 3번째 투수로서 구원 등판, 2/3이닝 무실점
* 한 경기 탈삼진: 13 (1999년 1차전) ※일본 시리즈 기록
* 이닝 3자 3구 삼진 (1994년 2차전 3회) ※일본 시리즈 사상 최초
* 양대 리그 승리 투수 (역대 3번째)
* 퍼시픽 리그(8승): 세이부에서 7승, 다이에에서 1승
* 센트럴 리그(1승): 요미우리에서 1승
* 한 이닝 4탈삼진: 1996년 8월 2일, 대 지바 롯데 마린스 17차전(후쿠오카 돔), 7회초 ※NPB 역대 3번째
* 올스타전 출장: 10회()
수정 내용:
* `` 템플릿을 제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