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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리올 교향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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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몬트리올 교향악단(OSM)은 1934년 윌프리드 펠티에가 창단한 캐나다의 오케스트라이다. 1935년 첫 공연을 시작으로, 데지레 드포, 주빈 메타, 샤를 뒤투아 등 저명한 지휘자들이 음악 감독을 역임하며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특히 뒤투아 재임 시절에는 데카 레이블을 통해 많은 음반을 발매하며 프랑스 음악 해석으로 호평을 받았다. 2002년 뒤투아의 사임 이후 내분으로 어려움을 겪었으나, 켄트 나가노를 거쳐 현재 라파엘 파야레가 음악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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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리올 교향악단
지도
기본 정보
이름몬트리올 교향악단
프랑스어 이름Orchestre symphonique de Montréal
약칭OSM
이전 이름레 콘세르 심포니크
설립일1935년
위치몬트리올, 퀘벡 주, 캐나다
공연장몬트리올 심포니 하우스
웹사이트몬트리올 교향악단 공식 웹사이트
음악
장르클래식 음악
운영진
음악 감독라파엘 파야레

2. 역사

몬트리올에서는 19세기 후반부터 여러 아마추어 혹은 비상설 관현악단이 활동하고 있었으나, 대부분 단명하여 정규 관현악 연주회를 위한 상설 관현악단의 설립이 절실히 요구되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1934년 윌프리드 펠티에를 중심으로 '르 콩세르 생포니크'가 창단되었고, 1954년 현재의 명칭인 몬트리올 교향악단으로 변경되었다.

초기에는 윌프리드 펠티에와 데지레 드포가 악단의 기틀을 다졌으며, 1957년부터 이고르 마르케비치, 주빈 메타, 프란츠-파울 데커 등 세계적인 지휘자들이 음악 감독을 맡아 악단의 성장과 발전을 이끌었다. 특히, 주빈 메타는 최연소 음악 감독으로 부임하여 첫 유럽 순회 공연을 성공적으로 이끌었으며, 프란츠-파울 데커는 독일계 레퍼토리를 확충하는 데 기여했다.

1977년 샤를 뒤투아가 음악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몬트리올 교향악단은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뒤투아는 데카/런던과의 협업을 통해 수많은 음반을 발매하고, 국제적인 순회 공연을 통해 악단의 위상을 높였다. 그러나 2002년, 뒤투아는 단원들과의 갈등으로 인해 사임하게 되었고, 이후 악단은 여러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2006년 켄트 나가노가 음악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몬트리올 교향악단은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다. 나가노는 2020년까지 재임하면서 악단의 안정과 발전에 기여했으며, 옥토베이스를 도입하는 등 혁신적인 시도를 했다. 2021년부터는 라파엘 파야레가 음악 감독을 맡아 몬트리올 교향악단을 이끌고 있다.

2. 1. 창단 초기 (1934-1950년대)

1934년 몬트리올에서는 퀘벡 출신 지휘자 윌프리드 펠티에가 주축이 되어 '르 콩세르 생포니크(Les Concerts Symphoniques)'라는 이름의 상설 악단을 창단했다. 펠티에는 이듬해 초대 음악 감독으로 취임해 5년간 재임하면서 악단의 활동 기초를 마련하는 데 주력했다.[1][2] 이는 19세기 후반부터 몬트리올에서 여러 아마추어 혹은 비상설 관현악단이 활동하고 있었으나, 대부분 단명하면서 정규 관현악 연주회를 위한 상설 관현악단의 설립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펠티에의 후임으로는 벨기에 출신의 데지레 드포가 임명되었으며, 드포는 1952년까지 재임하면서 프랑스계 레퍼토리를 중심으로 연주력 향상에 이바지했다. 1950년에는 오토 클렘퍼러가 예술 고문 자격으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드포와 클렘페러가 사임한 뒤에는 일정 기간 동안 객원 지휘 체제로만 운영되었다. 1954년에는 악단 명칭을 현재의 몬트리올 교향악단으로 고쳤다.[1][2]

2. 2. 성장기 (1950년대-1970년대)

1950년에는 오토 클렘페러가 예술 고문 자격으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드포와 클렘페러가 사임한 뒤에는 일정 기간 동안 객원 지휘 체제로만 운영되었다. 1954년에는 악단 명칭을 현재의 것으로 고쳤다.[1]

1957년에는 우크라이나 출신 지휘자인 이고르 마르케비치가 임명되어 1961년까지 재임했으며, 후임으로는 인도 출신의 주빈 메타가 역대 최연소 음악 감독으로 발탁되었다. 메타는 겸직하고 있던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에 전념하기 위해 1967년에 사임할 때까지 자리를 지켰고, 창단 이래 첫 유럽 순회 공연을 개최하기도 했다. 메타와 데커 재임 시절인 1960년대와 1970년대 초, 오케스트라는 투어 공연과 녹음을 시작했다.[1] 메타의 후임으로 임명된 독일 출신 지휘자인 데커는 그 동안 비교적 소홀히 다루어졌던 독일계 레퍼토리의 확충과 연주력 향상에 주력했다.

데커의 후임으로는 에스파냐 지휘자인 라파엘 프뤼벡 데 부르고스가 취임했으나, 운영진들과의 마찰 등으로 인해 이듬해에 조기 퇴진하고 말았다. 프뤼벡 데 부르고스의 음악 감독 재임 기간(1975-1976) 동안 OSM은 카네기 홀에서 공연할 수 있는 첫 초청을 받았다. 그러나 프뤼벡 데 부르고스는 OSM의 투어 공연을 위해 작곡된 질 트랭블레이의 작품 ''플뢰브(Fleuves)''를 거절했다. 게다가 프뤼벡 데 부르고스는 ''라 프레스(La Presse)''지에 OSM의 일부 음악가들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발언을 한 것으로 인용되었다. 이로 인한 논란으로 프뤼벡 데 부르고스는 사임했다. (프뤼벡 데 부르고스는 2002년 초청 지휘자로 돌아와 이전 행동에 대해 사과했다.)[1][2]

2. 3. 전성기 (1977-2002): 샤를 뒤투아 시대

샤를 뒤투아는 1977년 몬트리올 교향악단의 음악 감독이 되었다. 뒤투아는 런던/데카 레코드 프로듀서 레이 민슐과 친분을 맺었고, 이는 데카/런던과 20년간의 녹음 파트너십으로 이어졌다.[3] 이 기간 동안 뒤투아와 몬트리올 교향악단은 많은 녹음을 발매하고 북미, 유럽, 아시아, 남미를 순회 공연했다. 이들은 프랑스 레퍼토리, 특히 모리스 라벨의 음악과 스트라빈스키드뷔시의 작품을 주로 녹음하여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몬트리올 교향악단과 뒤투아는 그랑프리 뒤 프레지당 드 라 레퓌블리크(프랑스)와 몽트뢰 몽디알 뒤 디스크 등의 상을 수상했다. 또한 헥토르 베를리오즈의 ''트로이인'' 녹음으로 1996년,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와 벨라 바르토크의 피아노 협주곡을 마르타 아르헤리히와 함께 EMI에서 녹음한 것으로 2000년 그래미상을 수상했다. 이외에도 여러 개의 주노상과 펠릭스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고전 음악 녹음 산업의 시장 변화로 런던/데카와의 녹음은 1990년대 후반에 중단되었다.

1977년 샤를 뒤투아가 음악 감독에 취임하여, 몬트리올 교향악단은 갈고 닦은 아름다운 음색과 확실한 기술을 갖추게 되어 「프랑스 오케스트라보다 프랑스적인 오케스트라」라고 불리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현재는 세계적인 오케스트라 중 하나로 여겨진다. 뒤투아와 몬트리올 교향악단(OSM)의 조합으로 내한 공연을 가졌고, 일본 각지에서의 연주회는 호평을 받았다.

1998년, 몬트리올 교향악단 음악가들은 3주 동안 파업을 벌였는데, 이는 뒤투아와 당시 퀘벡 총리였던 뤼시앵 부샤르의 개인적인 관계 덕분에 대부분 해결되었다. 그러나 2002년에 단원들과의 갈등으로 뒤투아는 수석 지휘자직을 사임했다.[4][5] 간부 및 이사회에서는 사임을 아쉬워하는 목소리가 나왔으나, 퀘벡 음악가 노조는 관계가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악화되었음을 밝혔다. 뒤투아는 2016년까지 몬트리올 교향악단에 초청 지휘자로 돌아오지 않았다.[4][5]

2. 4. 시련과 극복 (2002-현재)

샤를 뒤투아가 2002년에 사임한 뒤, 몬트리올 교향악단(OSM) 내부뿐만 아니라 퀘벡 음악계에서는 악단의 장래성 문제를 둘러싸고 갈등이 심화되었다.[4] 1998년에 벌어진 뒤투아와 일부 악단원 사이의 갈등을 공론화하는 내용의 공개 편지가 퀘벡 음악가 조합 명의로 언론에 발표되는 등 파문이 오랫동안 지속되었다.[5]

악단 경영진은 2003년에 켄트 나가노를 신임 음악 감독으로 내정했다고 발표해 이러한 혼란을 수습하려고 했다.[6] 그러나 2005년에 악단 노조가 뒤투아와 퀘벡 주지사였던 뤼시앙 부샤르 사이에 개인적인 뒷거래가 있었다며 약 5개월 간의 장기 농성에 들어가 사실상 개점 휴업 상태가 되기도 했다.

나가노는 예정대로 2004년에 음악 고문 자격으로 부임해 준비 과정을 거친 뒤 2006년에 신임 음악 감독으로 임명되었고, 2020년까지 재임했다. 나가노의 부임과 동시에 장-프랑수아 리베스트도 전임 지휘자로 임명되어 활동하고 있다. 나가노는 OSM과 함께 ECM 뉴 시리즈(ECM New Series)와 아날렉타(Analekta)와 같은 레이블을 통해 상업적 녹음을 했다. 그의 재임 기간 동안 OSM은 옥토베이스를 구입했는데, 이는 작동하는 옥토베이스를 보유한 세계 유일의 오케스트라였다.[7]

2018년, 오케스트라는 톰슨 하이웨이와 매슈 리켓츠의 원주민 오페라 ''차카페시: 트릭스터의 퀘스트(Chaakapesh: The Trickster's Quest)''를 공연하기 위해 노르뒤퀘벡의 여러 크리족과 이누이트족 공동체를 순회 공연했다.[10] 이 투어는 로제 프라피에와 저스틴 킹즐리에 의해 2019년 다큐멘터리 영화 ''차카페시''로 기록되었다.[11]

2021년부터 라파엘 파야레가 음악 감독을 맡고 있다.

3. 주요 활동 및 특징

몬트리올 교향악단(OSM)은 1934년 윌프리드 펠티에가 결성한 '레 콩세르 심포니크'를 기원으로 하며, 1954년에 현재의 명칭으로 바뀌었다. 1960년대에는 몬트리올의 자선 사업가 존 윌슨 매코넬이 악장 캘빈 시브를 위해 1727년 제작된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을 기증하기도 했다.[1]

주빈 메타와 프란츠-파울 데커 재임 시절인 1960년대와 1970년대 초, 오케스트라는 투어 공연과 녹음을 시작했다. 라파엘 프루베크 데 부르고스 음악 감독 재임 기간(1975-1976) 동안 OSM은 카네기 홀에서 공연할 수 있는 첫 초청을 받았다. 그러나 프루베크 데 부르고스는 OSM의 투어 공연을 위해 작곡된 질 트랭블레이의 작품 ''플뢰브''를 거절하고, ''라 프레스''지에 OSM의 일부 음악가들을 공개적으로 비판하여 논란 끝에 사임했다.[1][2]

1977년 샤를 뒤투아가 음악 감독으로 취임하면서 몬트리올 교향악단은 "프랑스 오케스트라보다 프랑스적인 오케스트라"라는 평가를 받으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뒤투아는 런던/데카 레코드 프로듀서 레이 민슐과 친분을 맺었고, 이는 데카/런던과 20년간의 녹음 파트너십으로 이어졌다.[3] 그러나 2002년 단원들과의 갈등으로 뒤투아는 음악 감독직을 사임했다.[4][5]

1998년, OSM 음악가들은 3주 동안 파업을 벌였는데, 이는 뒤투아와 당시 퀘벡 총리였던 뤼시앵 부샤르의 개인적인 관계 덕분에 대부분 해결되었다. 2005년 5월 10일에는 단원들이 파업을 단행하여, 《성자의 행진》을 연주하며 떠났다.

2006년부터 2020년까지 켄트 나가노가 음악 감독을 맡았으며, 그의 재임 기간 동안 OSM은 옥토베이스를 구입했는데, 이는 작동하는 옥토베이스를 보유한 세계 유일의 오케스트라였다.[7] 2018년에는 톰슨 하이웨이와 매슈 리켓츠의 원주민 오페라 ''차카페시: 트릭스터의 퀘스트''를 공연하기 위해 노르뒤퀘벡의 여러 크리족과 이누이트족 공동체를 순회 공연했다.[10] 2021년부터 라파엘 파야레가 음악 감독을 맡고 있다.

3. 1. 공연장

초대 음악 감독이었던 윌프리드 펠티에의 이름을 따 1963년에 준공된 살르 윌프리드 펠티에를 상주 공연장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이 공연장은 이후 주변에 계속 건립된 테아트르 메종뇌브와 테아트르 장-뒤세프 등의 공연 시설과 통합되어 '예술 광장(Place des Arts)'의 한 부분으로 운영되고 있다. 1963년까지 플라토 홀을 본거지로 삼았으나, 1964년부터 플레이스 데 자르와 윌프리드 펠티에 홀에서 연주 활동을 하게 되었다. 2011년부터 본거지를 몬트리올 심포니 하우스로 이전했다.

3. 2. 부속 합창단

1980년대에는 뒤투아의 요구로 부속 합창단인 몬트리올 교향악단 합창단(Chœur de l’Orchestre symphonique de Montréal, Montreal Symphony Chorus)이 창단되어 활동하고 있다.[1]

3. 3. 녹음 활동

뒤투아 시대에는 주로 데카에서 수많은 녹음 작품을 발표하여 널리 알려졌다. 베를리오즈, 비제, 드뷔시, 라벨 등 프랑스 음악을 중심으로 대량 제작되었고, 이외에도 쇼스타코비치, 홀스트, 차이콥스키, 스트라빈스키, 프로코피에프 등의 작품들도 음반으로 제작되었다.[3] 뒤투아의 녹음은 대다수가 데카에서 출반되었으나, 뒤투아의 전처였던 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리치와 녹음한 협주곡은 아르헤리치의 전속사인 EMI를 통해 발매되기도 했다.

대표적인 명반으로는 프랑스 ACC 디스크 대상을 수상한 베를리오즈의 《트로이의 사람들》[19], 음악之友社 레코드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드뷔시의 《바다[20], 라벨의 《다프니스와 클로에》[21] 등의 녹음이 있다. 이러한 음반 중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프랑스 레퍼토리, 특히 모리스 라벨(Maurice Ravel)의 음악과 스트라빈스키와 드뷔시의 작품이다. OSM과 뒤투아는 그랑프리 뒤 프레지당 드 라 레퓌블리크(프랑스)와 몽트뢰 몽디알 뒤 디스크 등의 상을 수상했다. OSM은 헥토르 베를리오즈(Hector Berlioz)의 ''트로이인(Les Troyens)'' 녹음으로 1996년,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Sergei Prokofiev)와 벨라 바르토크(Béla Bartók)의 피아노 협주곡을 마르타 아르헤리치(Martha Argerich)와 함께 EMI에서 녹음한 것으로 2000년 그래미상(Grammy)을 수상했다. 또한 여러 개의 주노상(Juno Award)과 펠릭스상(Felix Awards)도 수상했다.

이러한 녹음들은 과거 앙세르메=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가 남긴 레퍼토리의 CD 재녹음을 기획한 데카와의 전속 계약에 의해 제작되었다. 그러나 뒤투아 사임 후 악단 안팎의 심각한 내분으로 인해 이미지를 크게 실추했고, 연주력에도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 고전 음악 녹음 산업의 시장 변화로 런던/데카와의 녹음은 1990년대 후반에 중단되었다.

켄트 나가노(Kent Nagano)는 현재 별다른 녹음 작업을 하지 않고 있으며, 악단의 명성과 연주력 회복에 주력하고 있다. 나가노는 OSM과 함께 ECM 뉴 시리즈(ECM New Series)와 아날렉타(Analekta)와 같은 레이블을 통해 상업적 녹음을 했다.

OSM의 추가적인 활동으로는 2023년 라이브 앨범 ''앙 콩세르 아벡 롤르셰스트르 심포니크 드 몬트리올 (수 라 디렉시옹 뒤 셰프 시몽 르클레르크)(En concert avec l’Orchestre symphonique de Montréal (sous la direction du chef Simon Leclerc))''에서 레 까우보이 프랭강(Les Cowboys Fringants)과의 협업이 있는데, 이 앨범은 2024년 주노상(Juno Awards)에서 주노 프랑코폰 앨범상을 수상했다.[15]

4. 역대 음악 감독

재임 기간이름비고
1935-1940윌프리드 펠티에
1941-1952데지레 드포
1950-1953오토 클렘퍼러음악 고문
1957-1961이고르 마르케비치
1961-1967주빈 메타
1967-1975프란츠-파울 데커
1975-1976라파엘 프뤼벡 데 부르고스
1977-2002샤를 뒤투아
2006-2020켄트 나가노
2022-현재라파엘 파야레


참조

[1] 뉴스 Obituary: Rafael Frühbeck de Burgos played pivotal role with OSM https://montrealgaze[...] 2014-06-12
[2] 뉴스 Rafael Fruehbeck de Burgos: Musician until the very end https://www.theglobe[...] 2014-06-11
[3] 서적 The first OSM recordings (in brochure for Decca recording 289 458 605-2) Decca
[4] 뉴스 Charles Dutoit is back to lead the OSM, as a guest this time https://montrealgaze[...] 2016-02-17
[5] 뉴스 Charles Dutoit returns to OSM 14 years after bitter split https://www.theglobe[...] 2016-02-12
[6] 보도자료 Conductor Jacques Lacombe prepares to enthrall Montreal once again https://www.osm.ca/e[...] Montreal Symphony Orchestra 2018-01-22
[7] 뉴스 Montreal Symphony Orchestra welcomes rare octobass https://www.cbc.ca/n[...] 2016-10-18
[8] 보도자료 Kent Nagano will be passing the torch in 2020 https://www.osm.ca/e[...] Montreal Symphony Orchestra 2017-06-29
[9] 뉴스 Kent Nagano has timed his departure from the OSM just right https://montrealgaze[...] 2017-06-29
[10] 웹사이트 Chaakapesh is an introspective exploration of musical performance https://cultmtl.com/[...] 2019-12-12
[11] 웹사이트 Chaakapesh celebrates creation and performance of a Cree opera https://nationalpost[...] 2020-01-30
[12] 뉴스 Rafael Payare, nouveau maestro de l'OSM https://www.lapresse[...] 2021-01-07
[13] 보도자료 Départ de Madeleine Careau, Cheffe de la direction de l'OSM https://www.osm.ca/a[...] Orchestre symphonique de Montréal 2024-01-29
[14] 보도자료 Mélanie La Couture est nommée cheffe de la direction de l'OSM https://www.osm.ca/a[...] Orchestre symphonique de Montréal 2024-05-22
[15] 뉴스 Junos 2024: full list of winners https://www.cbc.ca/m[...] 2024-03-23
[16] 웹사이트 About Biography https://www.kentnaga[...] Kent Nagano 2023-02-03
[17] 웹사이트 L`Orchestre https://www.osm.ca/f[...] Orchestre symphonique de Montréal. 2023-02-03
[18] 웹사이트 BIOGRAPHY https://www.universa[...] 2023-02-04
[19] 웹사이트 歌劇「トロイ人」 https://tower.jp/ite[...] 2023-02-04
[20] 웹사이트 DISCOGRAPHY ドビュッシー:交響詩《海》 https://www.universa[...] 2023-02-04
[21] 웹사이트 DISCOGRAPHY ダフニスとクロエ https://www.universa[...] 2023-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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