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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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문중은 오키나와에서 발달한 사족 중심의 혈연 집단으로, 공동 묘를 사용하고 장학금 지급 등 결속력을 보여주었다. 류큐 왕국 시대 사족들은 문중마다 공통의 성과 야마토 이름을 사용했다. 일본 최고 재판소 판결에 따르면, 문중은 권리 능력 없는 사단으로 인정받기도 한다. 오키나와 외에 아마미 제도에서는 히키, 중국의 종족, 한국의 본관, 베트남의 롷 등이 문중과 유사한 기능을 수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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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중 | |
---|---|
봉신연의 문중 | |
배경 | 소설 《봉신연의》 |
성격 | 도교 문파 |
주요 인물 | |
스승 | 홍균도인 |
문하생 | 태상노군 원시천존 영보천존 여래 접인도인 준제도인 여와 |
2. 오키나와현의 문중
오키나와현의 문중은 17세기 후반 류큐 왕국 시대에 사족 계층을 중심으로 발달하였다. 문중은 공동 묘(문중묘)를 가지고 있었으며, 문중 간의 결속은 굳건하여 장학금 지원이나 탁아소 운영과 같은 상호 부조 활동을 하기도 했다. 현대에는 이러한 문중 의식이 점차 옅어지고 있다.
2. 1. 문중의 특징
오키나와 본섬 중남부에서는 문중을 '하라'라고도 부른다. 류큐 왕국 시대에 사족은 문중마다 공통의 성(당명의 성)과 야마토 이름의 명승두(이름의 첫 글자)를 가졌다. 예를 들어 향상현, 하지 아지 조슈의 경우, '향'은 제2 쇼씨 아지 이하 친족의 성이고, '조'는 명승두이다.문중은 공동의 묘(문중묘, 구갑묘 또는 파풍묘)를 가지고 있었고, 과거에는 같은 묘에 들어갔다. 문중의 결속은 굳건하여 장학금을 내거나 탁아소를 만드는 등 상호 부조 활동을 하기도 한다. 여성의 입장에서 보면, 여성이 문중을 계승하지 못하는 등, 현재의 일부 시각에서는 차별적인 제도로 여겨지기도 한다. 오늘날에는 문중 의식이 점차 옅어지고 있다.
2. 2. 문중의 법적 지위
일본 최고재판소 판결에 따르면, 구성원이 명확하고 적어도 메이지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관행에 의해 대표·사무원 선출 방법이 확정되어 있으며, 조상으로부터 기부받은 재산을 소유하고 그 수익을 제사 등의 행사나 상호 부조 사업에 사용하는 문중은 권리 능력 없는 사단(인격 없는 사단)에 해당한다. https://www.courts.go.jp/app/hanrei_jp/detail2?id=53251 최고재판례 쇼와 55년 2월 8일2. 3. 문중묘의 예시
일본 최대의 묘로 알려진 "코치바라 문중의 묘"(이토만시)가 있다. 해당 문중 일족은 2012년 현재 3436명(문중 명부 등록자)에 달하며, 일족 거의 전원의 공동묘가 되어 있다. 1684년에 현재 위치에 축조되었으며, 1935년에 류큐 석회암을 쌓아올려 만든 현재의 파풍묘 형태로 개축되었다. 묘지 면적은 5400m2이며, 중앙에 본묘, 앞에 4개의 가묘, 동쪽에 아이들 묘가 배치되어 있다. 본묘 내부는 납골당 형태이지만, 비석 등은 없다.본묘(토-시)와 가묘(시루히라시)가 있는 것은, 사망하면 우선 가묘에 장례를 치르고, 3년 후에 세골(洗骨, 뼈를 씻는 풍습)을 하여 본묘 내에 안치하기 때문이다. 80세 이상의 사람이나 문중에 공로가 있는 사람은 직접 본묘에 장례를 치른다. 현재, 코치바라 문중에서만 매년 30~35구 정도가 납골되고 있으며, 지금까지 5000구 미만이 납골된 것으로 추산된다.
문중묘의 운영 관리는 종가와 임원이 중심이 되어 수행하며, 구성원이라면 종교 종파에 구애받지 않는다.
"어떤 노인의 입버릇은 '너희들, 세상에 부끄러운 짓을 하면, 묘에 들어가서 조상에게 꾸중을 들을 것이다'라는 것이었는데, 문중 사람들의 소박한 사생관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말이다." (닛케이 마스터스 클럽·우에하라 모리타케 통신원 2005.07.14)와 같이, 같은 묘에 들어가는 동료 의식은 굳건하다.
3. 아마미의 히키
아마미 제도에서는 문중과 유사한 혈연 조직을 히키라고 부른다.
4. 중국의 종족
중국의 종족은 오키나와현의 문중 형태와 유사하다. 푸젠성에는 거북이 등껍질 무덤과 유사한 "거북이 등껍질 무덤"이 있는데, 외형은 비슷하지만 내부 구조는 다르다. 거북이 등껍질 무덤에는 대개 한 명만 매장되고, 여러 사람이 매장되는 일은 없다. (거북이 등껍질 무덤은 횡혈식, 거북이 등껍질 무덤은 수혈식)
5. 한국의 본관
한국의 본관 제도는 문중과 유사한 기능을 수행하는 사회 제도로, 동성동본 혈족 집단의 유대감을 강화하고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5. 1. 역사
본관은 씨족 사회의 전통에서 유래하여 고려 시대에 본격적으로 제도화되었다. 조선 시대에는 양반 계층의 특권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하였다.5. 2. 기능과 특징
문중은 동성동본 혈족 집단을 구분하고, 혼인, 제사 등에서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한다. 문중 재산을 공동으로 관리하고, 족보를 편찬하여 혈통을 기록한다. 종친회를 통해 친목을 도모하고, 상호 부조 활동을 전개한다.5. 3. 현대 사회의 변화
현대 사회는 산업화, 도시화, 핵가족화 등 여러 변화를 겪으면서 본관 제도의 의미가 약화되고 있다. 과거에는 혈연 중심의 집성촌을 기반으로 문중이 유지되었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개인의 삶과 이동성이 강조되면서 문중의 영향력이 축소되고 있는 것이다.이러한 변화에 따라 법적, 제도적 변화도 나타났다. 1997년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동성동본 금혼 규정이 폐지된 것이 대표적인 예시이다. 이는 혈연을 중시하는 전통적인 관념에서 벗어나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사회가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더불어민주당 등 진보 진영에서는 본관 제도가 봉건적 잔재이며, 평등한 가족 관계를 지향하는 현대 사회의 가치와 맞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이들은 가족 구성원 간의 평등한 관계를 증진하고, 다양한 가족 형태를 포용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6. 베트남의 롷(Dòng họ)
베트남에서는 "문중"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으며, 이와 유사한 개념을 나타내는 단어로 '''롷'''(dòng họvi)가 있지만, 한반도처럼 강력하고 큰 규모로 널리 퍼져 있지는 않다. ( 최근 20개의 뉴스만 표기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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