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앙정보국 한국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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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 중앙정보국(CIA) 한국지부는 미국의 정보 활동을 위해 한국에 설치된 기관으로, 초기에는 활동의 미흡함이 드러나기도 했다. 1960년대부터 한국 정부와 정보 업무를 공유하며, 장면 총리에게 쿠데타 정보를 전달하는 등 정치적 상황에 개입했다. 1970년대에는 김대중 납치 사건과 최종길 교수 의문사 사건 등 주요 사건에 관여했으며, 특히 도널드 그레그 지부장은 최종길 교수 사건에 대해 한국 정부에 항의하기도 했다. CIA는 한국 정보기관 설치를 권고하고 지원했으며, 쿠데타 정보 입수 등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하지만, 한국의 군사 독재 정권을 지원하고 인권 탄압을 묵인했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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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중앙정보국 한국지부 | |
---|---|
지도 | |
기본 정보 | |
기관명 | 미국 중앙정보국 한국지부 |
영문 기관명 | CIA Station in Seoul |
위치 | 대한민국 서울 |
소속 기관 | 미국 중앙정보국 (CIA) |
주요 활동 | 대한민국 관련 정보 수집, 공작 수행 |
역사 | |
설립 시기 | 한국전쟁 중 |
초기 활동 | 북한 및 중국 관련 정보 수집 |
냉전 시기 | 대한민국 내 반공 활동 지원 |
탈냉전 시대 | 북한 핵 문제 및 동북아시아 안보 관련 정보 수집 |
조직 및 운영 | |
인력 구성 | 정보 요원, 분석가, 기술 지원 인력 등 |
운영 방식 | 대한민국 내 협력 기관과 연계, 위장 사업체 운영 |
주요 활동 분야 | 정치, 경제, 군사, 과학기술 정보 수집 |
정보 수집 방법 | 휴민트, 시긴트, 오신트 등 다양한 방법 활용 |
논란 및 비판 | |
과거 활동 논란 | 대한민국 내 정치 개입, 인권 침해 의혹 |
국민감시 논란 | 통신 감청, 개인 정보 수집 의혹 |
미국의 대외 정책 도구 | 대한민국 내 미국의 국익 우선 정책 수행 의혹 |
투명성 부족 | 정보 공개 거부, 책임 회피 비판 |
기타 | |
관련 사건 | 김대중 납치 사건 연루 의혹 서울 미문화원 점거농성 사건 정보 조작 의혹 KAL기 폭파 사건 정보 은폐 의혹 |
관련 인물 | 김재규 박정희 전두환 |
협력 기관 | 국가정보원 국군기무사령부 경찰청 |
관련 자료 | 위키리크스 공개 외교 전문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 공개 자료 관련 저널 및 학술 연구 |
2. 활동
초기 CIA 한국지부는 허술하게 활동했다.[1] 1960년부터 한국과 본격적으로 정보를 주고받았으며, 피어 드 실바는 장면 총리에게 쿠데타 정보를 전달했다. 1970년 이후에는 김대중 납치 사건에 대해 한국 정부에 압력을 행사하기도 했다.[1] 당시 CIA는 한국 중앙정보부가 얻을 수 없는 정보와 보고하지 않은 공작들도 수시로 접했다. 도널드 그레그는 1970년대 초 CIA 한국지부장 재직 중 최종길 전 서울대 법대 교수 의문사 사건에 대해 상부 지시를 어기고 한국 정부에 강력히 항의했다.[2]
2. 1. 초기 활동의 문제점
그러나 초기의 CIA 한국지부의 활동은 허술하였다. 1959년 8월, CIC 소속 중대장(미국 육군 대위)이 한국인 소년 정대조(당시 만 20세)에게 노상에서 손목시계를 강탈당하는 사건이 보도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1] 1958년에 부임한 한국지부장 웨일 넬슨은 당시 국방부 장관 김정렬에게 정보기관의 창설을 권고하기도 했다.2. 2. 한국과의 정보 협력
1960년에 들어서면서 CIA 한국지부는 한국 측과 본격적으로 정보를 주고받았다. 피어 드 실바 CIA 한국지부장은 장면 총리에게 쿠데타 관련 정보를 계속 전달했다.[1] 1958년에 부임한 웨일 넬슨 한국지부장은 당시 국방부 장관 김정렬에게 정보기관 창설을 권고하기도 했다.1970년 이후에는 김대중 납치 사건에 대해 CIA 한국지부가 한국 정부에 압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당시 CIA는 한국 중앙정보부가 얻을 수 없는 정보들도 입수하여 확인했다. 한편 대한민국 중앙정보부 측이 보고하지 않은 공작들도 수시로 접하곤 했다.
도널드 그레그는 1970년대 초 CIA 한국지부장으로 재직 중, 한국 중앙정보부에서 일어난 최종길 전 서울대 법대 교수 의문사 사건에 대해 상부의 지시를 어기고 한국 정부에 강력히 항의했다.[2] 그는 1973년 당시 최종길 교수가 대학생 시위를 선동했다는 혐의로 중정에 끌려와 고문을 받다 숨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선택의 기로에 섰다고 한다.
2. 3. 주요 사건 개입
1970년대 이후, CIA 한국 지부는 김대중 납치 사건과 관련하여 한국 정부에 압력을 행사했다.[1] 당시 CIA는 한국 중앙정보부가 확보하지 못한 정보는 물론, 중앙정보부가 보고하지 않은 공작 내용까지도 수시로 파악하고 있었다.도널드 그레그는 1970년대 초 CIA 한국지부장 재직 시절, 최종길 서울대 법대 교수 의문사 사건에 대해 상부 지시를 어기고 한국 정부에 강력하게 항의했다.[2] 1973년, 최종길 교수가 대학생 시위 선동 혐의로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고문을 받다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되었다.
3. 역대 지부장
'''CIC 서울지부장 (1946-1948)'''
- 스위프트: 미국 육군 대위 및 소령으로 1946년 2월 13일부터 1948년 8월 15일까지 재임.[3]
'''OSO 첩보부대 서울지부장 (1949-1951)'''
- 조지 E. 오렐: 1949년 9월 9일부터 1951년까지 재임.
'''OPC 방첩부대 서울지부장 (1950-1952)'''
- 한스 V. 토프테(Hans V. Tofte): 1950년부터 1951년까지 CIC 극동분실장을 겸임. 6.25 전쟁 당시 매튜 리지웨이 장군을 도와 스톨 작전을 지원했으며, 자와할랄 네루가 중공군 지원을 위해 보낸 구호물자를 실은 스웨덴 선박을 체포하여 중공군 보급로를 차단.[4]
- 앨버트 R. 하니(Albert R. Haney): 1951년부터 1952년까지 재임.
'''CIA 서울지국장 (1952-1979)'''
이름 | 재임 기간 | 비고 |
---|---|---|
존 레이몬드 하트(John Limond hart) | 1952년 - 1955년 | |
앨런 웨일스 덜레스(Allen Welsh Dulles) | 1956년 - 1958년 | |
웨일 넬슨 (Wales Nelson) | 1958년 - 1959년 | 한국 정보기관 국방부 중앙정보실 창설 권유 |
피어 드 실바(Peer de Silva) | 1959년 - 1962년 | CIA 홍콩지부, 사이공지부, 호주지부장 역임, 박정희의 쿠데타 기도를 장면에게 여러번 경고 |
니콜라스 나쵸스(Nicholas Natsios) | 1962년 - 1965년 | CIA 극동담당국장 역임, 북한 간첩 황태성을 심문 |
에드워드 | 1965년 - 1966년 | |
장 라자스키 | 1967년 - 1969년 | |
존 H. 조코 리처드슨(John H (Jocko) Richardson) | 1969년 - 1972년 | CIA 그리스지부, 사이공지부장 역임, 7.4 남북공동성명 당시 대응 |
도널드 그레그 | 1973년 - 1975년 | 주한미국대사, 조지 H. 부시 부통령 국가안보보좌관 역임[5], 한국 정부에 김대중 납치사건 제지, 경고[6][7] |
대니얼 아널드(Daniel Arnold) | 1975년 - 1976년 | CIA 태국지부장 역임 |
로버트 F. 그레얼리(Robert F. Grealy) | 1976년 - 1978년 | CIA 필리핀지부장, 서울 지국장, 홍콩 지국장, 본부 동부아시아 국장 역임 |
로버트 브루스터(Robert Brewster) | 1978년 - 1979년 |
'''CIA 한국 지부장 (1979-현재)'''
이름 | 재임 기간 | 비고 |
---|---|---|
로버트 브루스터 (Robert Brewster) | 1979년 - 1981년 | |
로버트 케네디 (Robert Kennedy) | 1981년 - 1983년 | |
제임스 E. 델라니 (James E. Delaney) | 1983년 - 1986년 | 미국 국방연구원 고문[8], 아웅산 묘역 테러 사건 수사 지원 |
존 H. 스테인 (John H. Stein) | 1986년 - 1989년 | CIA 공작담당 부국장, CIA 본부 감찰차장 |
제임스 맥칼라 (James McCullough) | 1989년 - 1992년 | CIA 국장 특별보좌관, CIA 아태담당 국장, 북한 핵개발 브리핑 |
데니스 H. 오베르마이어 (Dennis H. Obermayer) | 1992년 6월 - 1995년 6월 | 1996년 6월 CIA 본부 동부아시아 국장으로 전출 |
존 F. 벤더 (John F. Bender) | 1995년 6월 - 1996년 6월 | |
아트 M. 브라운 (Arthur M. Brown[9]) | 1996년 6월 - 1999년 6월 7일 | CIA 랭구운 지국장, CIA 도쿄 지국장(1999-2002), 동부 아시아 담당 국가정보관(2002.06~2003.11), CIA 작전본부 동부아시아국장 (2003.11~2004.12) |
존 R. 사노 (John R. Sano[10]) | 1999년 6월 10일[11] - 2001년 | CIA본부 동부아시아국 부국장(1996~1999) |
조지 W. 비올루시 (George W. Biolsi) | 2002년 7월 - 2005년 | |
셀린 H. 워넬 (Selin H. Warnell) | 2005년 -2007년 | 본명 한성옥[12], 한국계 출신 |
데이비드 A. 마즈든 (David A.Marsden) | 2007년 4월 - |
3. 1. CIC 서울지부장 (1946-1948)
미국 육군 대위 및 소령이었던 스위프트[3]가 1946년 2월 13일부터 1948년 8월 15일까지 CIC 서울지부장을 역임했다.3. 2. OSO 첩보부대 서울지부장 (1949-1951)
조지 E. 오렐은 1949년 9월 9일부터 1951년까지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전신인 OSO 첩보부대 서울지부장을 역임하였다.3. 3. OPC 방첩부대 서울지부장 (1950-1952)
- 한스 V. 토프테(Hans V. Tofte): 1950년 - 1951년, CIC 극동분실장 겸임. 6.25 전쟁 당시 매튜 리지웨이 장군을 도와 스톨 작전을 지원했다.[4] 인도의 자와할랄 네루가 중공군 지원을 위해 보낸 구호물자인 스웨덴 선박을 체포하여 중공군 보급로를 차단했다.[4]
- 앨버트 R. 하니(Albert R. Haney): 1951년 - 1952년
3. 4. CIA 서울지국장 (1952-1979)
이름 | 재임 기간 | 비고 |
---|---|---|
존 레이몬드 하트(John Limond hart) | 1952년 - 1955년 | |
앨런 웨일스 덜레스(Allen Welsh Dulles) | 1956년 - 1958년 | |
웨일 넬슨 (Wales Nelson) | 1958년 - 1959년 | 한국 정보기관 국방부 중앙정보실 창설 권유 |
피어 드 실바(Peer de Silva) | 1959년 - 1962년 | CIA 홍콩지부, 사이공지부, 호주지부장 역임, 박정희의 쿠데타 기도를 장면에게 여러번 경고함 |
니콜라스 나쵸스(Nicholas Natsios) | 1962년 - 1965년 | CIA 극동담당국장 역임, 북한 간첩 황태성을 심문 |
에드워드 | 1965년 - 1966년 | |
장 라자스키 | 1967년 - 1969년 | |
존 H. 조코 리처드슨(John H (Jocko) Richardson) | 1969년 - 1972년 | CIA 그리스지부, 사이공지부장 역임, 7.4 남북공동성명 당시 대응 |
도널드 그레그 | 1973년 - 1975년 | 주한미국대사, 조지 H. 부시 부통령 국가안보보좌관 역임[5], 한국 정부에 김대중 납치사건 제지, 경고[6][7] |
대니얼 아널드(Daniel Arnold) | 1975년 - 1976년 | CIA 태국지부장 역임 |
로버트 F. 그레얼리(Robert F. Grealy) | 1976년 - 1978년 | CIA 필리핀지부장, 서울 지국장, 홍콩 지국장, 본부 동부아시아 국장 역임 |
로버트 브루스터(Robert Brewster) | 1978년 - 1979년 |
3. 5. CIA 한국 지부장 (1979-현재)
이름 | 재임 기간 | 비고 |
---|---|---|
로버트 브루스터 (Robert Brewster) | 1979년 - 1981년 | |
로버트 케네디 (Robert Kennedy) | 1981년 - 1983년 | |
제임스 E. 델라니 (James E. Delaney) | 1983년 - 1986년 | 미국 국방연구원 고문[8], 아웅산 묘역 테러 사건 수사 지원 |
존 H. 스테인 (John H. Stein) | 1986년 - 1989년 | CIA 공작담당 부국장, CIA 본부 감찰차장 |
제임스 맥칼라 (James McCullough) | 1989년 - 1992년 | CIA 국장 특별보좌관, CIA 아태담당 국장, 북한 핵개발 브리핑 |
데니스 H. 오베르마이어 (Dennis H. Obermayer) | 1992년 6월 - 1995년 6월 | 1996년 6월 CIA 본부 동부아시아 국장으로 전출 |
존 F. 벤더 (John F. Bender) | 1995년 6월 - 1996년 6월 | |
아트 M. 브라운 (Arthur M. Brown[9]) | 1996년 6월 - 1999년 6월 7일 | CIA 랭구운 지국장, CIA 도쿄 지국장(1999-2002), 동부 아시아 담당 국가정보관(2002.06~2003.11), CIA 작전본부 동부아시아국장 (2003.11~2004.12) |
존 R. 사노 (John R. Sano[10]) | 1999년 6월 10일[11] - 2001년 | CIA본부 동부아시아국 부국장(1996~1999) |
조지 W. 비올루시 (George W. Biolsi) | 2002년 7월 - 2005년 | |
셀린 H. 워넬 (Selin H. Warnell) | 2005년 -2007년 | 본명 한성옥[12], 한국계 출신 |
데이비드 A. 마즈든 (David A.Marsden) | 2007년 4월 - |
4. 영향력
CIA 한국 지부는 한국 사회와 정치에 여러 영향을 미쳤다. 1959년 CIA는 한국에 독자적인 정보기관 설치를 제안했지만,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을 불신하여 국방부 산하에 두도록 했다.[13][14] 1960년 11월 장면 총리는 CIA의 권유로 중앙정보연구위원회를 설치했고, 1961년 CIA 추천으로 이후락이 책임자가 되었다.[15]
CIA 서울지부와 주한미국대사관은 박정희 등의 쿠데타 기도 정보를 입수하여 장면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도널드 그레그 지부장은 1970년 최종길 교수가 대한민국 중앙정보부에서 고문으로 사망한 사건에 대해 항의하여 이후락 중앙정보부장 경질에 영향을 주기도 했다.[2] 그러나 CIA가 한국의 군사독재 정권을 지원하고 인권 탄압을 묵인했다는 비판도 있다.
4. 1. 한국 정보기관 설치 권고
1959년 어느 날, 미 CIA 주요 간부 한 사람이 당시 국방부 장관인 김정렬에게 미국 기관과는 별도의 조직을 구성해야 한다고 제의했다.[13] 그는 미국 기관과는 별도의 조직으로 운영될 CIA 지부를 한국에 설치하고 싶다고 제의했다. 그는 CIA 지부가 설치되면 그 요원들에게 외교관과 똑같은 치외법권이 보장되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14] 그러나 김정렬은 쉽게 응하지 않았다. 미국 중앙정보부, 즉 CIA 간부라고 자신을 소개한 넬슨은 CIA 서울지부를 창설하러 왔다고 말했다. 어리둥절해하는 김 장관에게 넬슨은 전임 장관인 김용우와 CIA 부장 앨런 덜레스가 함께 서명한 협약서를 제시했다.김정렬은 이 제안에 대해 CIA 한국 지부가 독자적인 기관으로써 설치되는 것은 곤란하나, 미국 대사관 안에 적당한 자리를 마련하여 활동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내놓았다.[14] 한미 두 나라의 정보협력에 대해서 규정한 문서였는데 김정렬은 이런 것이 있는 줄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넬슨은 이 협약에 따라 CIA 지부를 개설하고 이 기구와 상대할 한국 측 정보기관도 만들어줄 것을 요청했다.
김정렬은 이후락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였지만 미국 CIA에서 계속 부탁하자 이승만에게 보고했다. 이승만은 아예 CIA를 믿지 말라면서 쉽게 허락해 주지 않았다. 결국 정보기관은 국방부의 예하에 두는 것으로 낙착된다. 김 장관이 이 문제를 이승만 대통령과 상의했더니 대통령은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CIA 지부의 창설을 허가하면서도 주의를 주는 것이었다. 1958년부터 미국은 CIA를 본뜬 정보기관을 설치하도록 이승만 대통령에게 요청하였지만 미국을 불신하던 이승만은 그 제의를 받아주는 척하면서 국방부 산하에 설치함으로써 기능을 격하시켰다.
4. 2. 중앙정보위원회 설치와 쿠데타 정보 입수
1960년 11월 장면 총리는 미국 CIA 서울지부의 권유에 따라 총리실 직속 중앙정보조직인 중앙정보연구위원회를 조직했다.[15] 1961년 미국 CIA는 중앙정보연구위원회 책임자로 이후락을 추천했다.[15] 이후락은 미국 측의 지원으로 육군 소장으로 예편, 정보연구실장(차관급)에 취임했다.[15]한편 CIA 서울지부와 주한미국대사관은 박정희 등의 쿠데타 기도 정보를 여러 차례 입수하여 장면에게 전달하였다.
4. 3. 최종길 교수 의문사 사건과 인권 문제
도널드 그레그 지부장은 1970년 최종길 교수가 대한민국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고문으로 사망한 사건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는 워싱턴 CIA 본부에 이 사실을 알리고 한국 정부에 항의할 수 있도록 허용해 줄 것을 요청했으나, 본부는 "그건 당신이 할 일이 아니니 그저 사실만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렸다.[2]그러나 그레그는 이 지시를 어기고 박종규 청와대 경호실장을 만나 "한국 중정은 북한에 대응하는 일보다 국내 반대세력을 탄압하는 일에 더 관심이 많으니 함께 일할 수 없다"고 항의했다.[2] 당시 항의는 개인적 차원임을 분명히 했으나, 1주일 뒤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경질되었고, 법무부 출신의 신임 중앙정보부장은 요원들에게 고문 금지 지시를 내렸다.[2]
하지만, CIA가 한국의 군사독재 정권을 지원하고 인권 탄압을 묵인했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참조
[1]
뉴스
미군 CIC 대장 시계를 날치기 소년심리원생이
동아일보
1959-08-06
[2]
뉴스
그레그, “최종길 전교수 의문사 항의”
http://news.naver.co[...]
[3]
뉴스
정치적배경 있다 증인 스이프트 대위진술
동아일보
1946-09-20
[4]
뉴스
비화 한국전 (1) 이승만박사 제거계획
경향신문
1982-02-15
[5]
뉴스
<수요 초대석>“오바마, 대선탓 독도입장 애매… 재선되면 중재 나설것”
http://www.munhwa.co[...]
문화일보
2012-10-17
[6]
웹사이트
http://news.khan.co.[...]
[7]
뉴스
(김前대통령서거)미.중.일 중량급 조문단 파견
http://www.edaily.co[...]
이데일리
2009-08-22
[8]
뉴스
高大, 前 CIA한국지부장등 초청
http://economy.hanko[...]
서울경제
2009-03-05
[9]
뉴스
"北로켓 제재시 2차핵실험 가능"<전CIA간부>
http://news.naver.co[...]
[10]
뉴스
백성학 회장, 前 주한 중국 대사 리빈 관리의혹
http://www.nocutnews[...]
[11]
뉴스
CIA 한국지부장 존 사노 10일 부임
경향신문
1999-06-07
[12]
뉴스
CIA 한국지부장에 한국계 여성 부임
http://www.pressian.[...]
[13]
서적
다큐멘터리 박정희 3권
평민사
1990
[14]
서적
다큐멘터리 박정희 3권
평민사
1990
[15]
서적
남산의 부장들: 정치 공작 사령부 KCIA, 1권
동아일보사
1992
[16]
서적
박정희:한국을 강국으로 이끈 대통령
세경사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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