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미국 대사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주한 미국 대사는 1882년 조미 수호 통상 조약 체결 이후 미국이 한국에 파견한 외교 사절로, 대한제국 시기에는 공사, 대한민국 수립 이후에는 대사로 임명되었다. 1949년 존 무초가 초대 대사로 임명되었으며, 역대 대사들은 한미 관계 발전과 한국 현대사의 주요 사건에 관여했다. 주한 미국 대사는 한미 동맹의 상징이자 양국 간 협력을 조율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 왔으며, 김대중 납치 사건 개입, 마크 리퍼트 대사 피습 사건 등 논란이 있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미국-한국 관계 - 한반도 분단
한반도 분단은 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38도선을 기준으로 미국과 소련에 의해 분할 점령되면서 시작되어 남북한 정부 수립과 한국 전쟁을 거쳐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으며, 냉전의 산물이자 이념 대립과 강대국 이해관계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다. - 미국-한국 관계 - 한미 관계
한미 관계는 1882년 수교 이후 정치, 경제, 안보 등 다방면에서 협력과 경쟁을 거듭하며 발전해왔으나, 불평등 조약, 무력 충돌, 주한미군 문제, 경제적 이권 다툼, 북핵 문제 등으로 갈등과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 대한민국 주재 미국 대사 - 리처드 스나이더
리처드 스나이더는 미국의 외교관이자 관료로, 국무부 외교관, NSC 수석보좌관, 주일 미국 대사관 수석 공사,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국무차관보 대리 등을 역임했으며 오키나와 반환 협상에 기여하고 주한 미국 대사로서 한미 관계에 관여했다. - 대한민국 주재 미국 대사 - 윌리엄 글라이스틴 주니어
윌리엄 글라이스틴 주니어는 미국의 외교관으로 국무부 동아태 부차관보와 주한 미국 대사를 지내며 한국 현대사의 격변기와 한미 관계의 주요 현안들을 다루었고 동아시아 문제 전문가로서 외교관계협의회 연구소장으로 활동했다.
2. 역사
1882년 조미 수호 통상 조약 체결 후, 미국은 한성부에 공사관을 설치하고 외교 사절을 파견했다.[22] 1905년 11월 17일 일본 제국이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자 에드윈 모건 공사는 공사관을 폐쇄하고 대한제국에서 철수했다.[22]
1949년 초대 주한 미국 대사로 John J. Muccio영어 특사가 임명되면서 양국 관계는 대사급으로 격상되었다.[23][24] 존 무초 특사는 4월 20일 이승만에게 신임장과 해리 S. 트루먼 대통령의 사진을 전달했다.[24] 이후 엘리스 O. 브릭스, 윌리엄 레이시, 월터 다울링, 월터 P. 매카너기 등 여러 대사들이 한미 관계 발전에 기여했다.
1973년 이후락의 주도로 김대중 납치 사건이 일어났을 때, 당시 제10대 필립 하비브 대사 등이 개입하여 암살을 막았다.[27] 2011년 부임한 제22대 대사인 성 김의 부친은 김대중 납치 사건의 일본 내 총책임자로 알려진 전 주일본 대한민국 공사 김재권이다.
2008년 부임한 제21대 대사인 캐슬린 스티븐스는 심은경이라는 한국 이름을 가지고 있으며, 미국 평화 봉사단원으로 대한민국을 방문해 1975년부터 2년간 예산중학교에서 원어민 영어 교사로 일했다.
2. 1. 조선 및 대한제국 시기 (1882년 ~ 1905년)
1882년 조미 수호 통상 조약이 체결된 후, 미국은 한성부에 공사관을 설치하고 외교 사절을 파견했다.[22] 1905년 11월 17일 일본 제국이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자 에드윈 모건 공사는 공사관을 폐쇄하고 대한제국에서 철수했다.[22]
2. 2. 대한민국 시기 (1948년 ~ 현재)
John J. Muccio영어 특사가 1949년 초대 주한 미국 대사로 임명되면서, 양국 관계는 대사급으로 격상되었다.[23][24] 존 무초 특사는 대사 임명을 받고 4월 20일 이승만에게 신임장과 해리 S. 트루먼 대통령의 사진을 전달했다.[24]이후, 엘리스 O. 브릭스, 윌리엄 레이시, 월터 다울링, 월터 P. 매카너기 등 여러 대사들이 한미 관계 발전에 기여했다.
미국 국무부에서 공식적으로 대한민국에 파견한 역대 대사는 다음과 같다. 순서는 공식적으로 대사(Ambassador)라는 직함을 가지면서, 대한민국에 주한 미국 대사를 파견한 1949년을 1대로 계산한다.[23]
특히, 윈스럽 브라운 대사는 브라운 각서의 장본인이고, 마셜 그린 대사는 박정희의 5·16 군사 정변을 경험했으며, 윌리엄 글라이스틴 주니어 대사는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의 저격 사건인 10.26 사건과 전두환의 1980년 12·12 군사 반란을 제1선에서 목격했다.
1973년 이후락의 주도로 김대중 납치 사건이 일어났을 때, 당시 제10대 필립 하비브 대사 등이 개입하여 암살을 막았던 적이 있다.[27] 2011년 부임한 제22대 대사인 성 김의 부친은 김대중 납치 사건의 일본 내 총책임자로 알려진 전 주일본 대한민국 공사 김재권이다.
2008년 부임한 제21대 대사인 캐슬린 스티븐스는 심은경이라는 한국 이름을 가지고 있으며, 미국 평화 봉사단원으로 대한민국을 방문해 1975년부터 2년간 예산중학교에서 원어민 영어 교사로 일을 한 경험이 있다.
3. 역대 대사
1949년 미국 정부는 이미 대한민국에 파견되어 있던 존 무초 특사를 초대 주한 미국 대사로 임명했다.[24] 무초 특사는 대사 임명을 받고 4월 20일 이승만에게 신임장과 해리 S. 트루먼 대통령의 사진을 전달했다. 영국과 프랑스 등 우방의 강대국 대사들로부터도 약식으로 신임장을 받아온 이승만은 미국 대사의 봉정식은 장엄하게 집행하도록 국무회의에서 당부하였다. 이에 따라 국무회의는 이날 무초가 쓰고 있던 반도호텔을 미국 대사관 사무실로 쓸 수 있도록 반도호텔 사무실 증정식도 갖기로 했다. 4월 20일 오전 10시 50분 외무부 의전관의 안내로 나온 무초 대사 및 직원 17명이 분승한 6대의 승용차는 반도호텔 정문 앞에서부터 식장인 중앙청 앞까지 도열한 육해군 의장대의 사열을 받으며 입장했다. 또 경찰 및 군악대의 장엄한 연주로 시작된 이날 신임장 제정식장은 이시영 부통령, 이범석 국무총리, 신익희 국회의장, 김병로 대법원장 및 전 각료들이 참석하여 대대적인 행사로 진행, 다른 외교 사절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이날 신임장과 트루먼 대통령의 사진을 무초 대사로부터 전달받은 이승만은 '우리 정부의 수립과 육성에 힘써온 무초 특사가 대사로 승격된 것은 한국이 미국의 명실상부한 맹방으로 진일보한 것'이라고 치하하기도 했다.[24]
주한 미국 대사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균형을 맞추기 위해 미국이 파견한 주한미군의 수장으로서, 한국 현대사와 밀접한 관계를 맺어 왔다. 제8대 대사인 윈스럽 브라운은 브라운 각서의 장본인이고, 제6대 대사인 마셜 그린 대사는 박정희의 5·16 군사 정변을 경험했으며, 윌리엄 글라이스틴 주니어도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의 저격 사건인 10.26 사건과 전두환의 1980년 12·12 군사 반란을 제1선에서 목격한 장본인이었다.
1973년 이후락의 주도로 김대중 납치 사건이 일어났을 때도 당시 제10대 필립 하비브 대사 등이 개입을 하여 암살을 막았던 적이 있다.[27] 2011년 부임한 제22대 대사인 성 김의 부친은 김대중 납치 사건의 일본 내 총책임자로 알려진 전 주일본 대한민국 공사 김재권이다. 이에 관해 이희호는 성 김의 부임을 앞두고 "(성 김 내정자가 납치 사건) 당시 열세 살 정도였는데 뭘 알았겠나. 연좌제 식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라고 밝혔고,[28] 첫 한국계 미국인 대사가 되는 만큼 한미 관계와 남북 관계가 더 좋아지는 데에 많은 일들을 해주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29]
2008년 부임한 제21대 대사인 캐슬린 스티븐스는 심은경이라는 한국 이름을 가지고 있으며, 미국 평화 봉사단원으로 대한민국을 방문해 1975년부터 2년간 예산중학교에서 원어민 영어 교사로 일을 한 경험이 있다.
3. 1. 조선 및 대한제국 (1883년 ~ 1905년)
미국 정부는 1882년 조선과 조미 수호 통상 조약을 맺은 뒤 한성부에 외교 사절을 파견했다. 미국 공사관은 한성부에 세워진 최초의 외국 공사관 건물이었다.[22]
1905년 11월 17일 일본 제국이 을사조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자 에드윈 모건 공사는 공사관을 폐쇄하고 대한제국에서 철수했다.[22]
3. 2. 대한민국 (1949년 ~ 현재)
미국 국무부에서 공식적으로 대한민국에 파견한 역대 대사는 다음과 같다. 순서는 공식적으로 대사(Ambassador)라는 직함을 가지면서, 대한민국에 주한 미국 대사를 파견한 1949년을 1대로 계산한다.[23]1949년 미국 정부는 이미 대한민국에 파견되어 있던 존 무초 특사를 초대 주한 미국 대사로 임명했다.[24] 무초 특사는 대사 임명을 받고 4월 20일 이승만에게 신임장과 해리 S. 트루먼 대통령의 사진을 전달했다. 영국과 프랑스 등 우방의 강대국 대사들로부터도 약식으로 신임장을 받아온 이승만은 미국 대사의 봉정식은 장엄하게 집행하도록 국무회의에서 당부하였다. 이에 따라 국무회의는 이날 무초가 쓰고 있던 반도호텔을 미국 대사관 사무실로 쓸 수 있도록 반도호텔 사무실 증정식도 갖기로 했다. 4월 20일 오전 10시 50분 외무부 의전관의 안내로 나온 무초 대사 및 직원 17명이 분승한 6대의 승용차는 반도호텔 정문 앞에서부터 식장인 중앙청 앞까지 도열한 육해군 의장대의 사열을 받으며 입장했다. 또 경찰 및 군악대의 장엄한 연주로 시작된 이날 신임장 제정식장은 이시영 부통령, 이범석 국무총리, 신익희 국회의장, 김병로 대법원장 및 전 각료들이 참석하여 대대적인 행사로 진행, 다른 외교 사절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이날 신임장과 트루먼 대통령의 사진을 무초 대사로부터 전달받은 이승만은 '우리 정부의 수립과 육성에 힘써온 무초 특사가 대사로 승격된 것은 한국이 미국의 명실상부한 맹방으로 진일보한 것'이라고 치하하기도 했다.[24]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균형을 맞추기 위해 미국이 파견한 주한미군의 수장으로서, 주한 미국 대사는 한국 현대사와 밀접한 관계를 맺어 왔다. 제8대 대사인 윈스럽 브라운은 브라운 각서의 장본인이고, 제6대 대사인 마셜 그린 대사는 박정희의 5·16 군사 정변을 경험했으며, 윌리엄 글라이스틴 주니어도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의 저격 사건인 10.26 사건과 전두환의 1980년 12·12 군사 반란을 제1선에서 목격한 장본인이었다.
1973년 이후락의 주도로 김대중 납치 사건이 일어났을 때도 당시 제10대 필립 하비브 대사 등이 개입을 하여 암살을 막았던 적이 있다.[27] 2011년 부임한 제22대 대사인 성 김의 부친은 김대중 납치 사건의 일본 내 총책임자로 알려진 전 주일본 대한민국 공사 김재권이다. 이에 관해 이희호는 성 김의 부임을 앞두고 "(성 김 내정자가 납치 사건) 당시 열세 살 정도였는데 뭘 알았겠나. 연좌제 식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라고 밝혔고,[28] 첫 한국계 미국인 대사가 되는 만큼 한미 관계와 남북 관계가 더 좋아지는 데에 많은 일들을 해주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29]
2008년 부임한 제21대 대사인 캐슬린 스티븐스는 심은경이라는 한국 이름을 가지고 있으며, 미국 평화 봉사단원으로 대한민국을 방문해 1975년부터 2년간 예산중학교에서 원어민 영어 교사로 일을 한 경험이 있다.
4. 주요 사건 및 논란
주한 미국 대사는 여러 주요 사건 및 논란에 연루되거나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1973년 이후락의 주도로 일어난 김대중 납치 사건 당시, 제10대 주한 미국 대사 필립 하비브가 개입하여 김대중의 암살을 막았다.[27]
2015년 3월 5일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주최 조찬 강연회에서 마크 리퍼트 당시 주한 미국 대사가 김기종에게 피습당했다.[19] 이 사건으로 리퍼트 대사는 오른쪽 얼굴에 80여 바늘을 꿰매는 큰 상처를 입었으나, 곧바로 치료를 받아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4. 1. 김대중 납치 사건 개입
1973년 이후락의 주도로 일어난 김대중 납치 사건 당시, 제10대 주한 미국 대사 필립 하비브가 개입하여 김대중의 암살을 막았다.[27]4. 2. 리퍼트 대사 피습 사건
2015년 3월 5일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주최 조찬 강연회에서 마크 리퍼트 당시 주한 미국 대사가 김기종에게 피습당했다.[19] 이 사건으로 리퍼트 대사는 오른쪽 얼굴에 80여 바늘을 꿰매는 큰 상처를 입었으나, 곧바로 치료를 받아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이 사건은 한미 관계에 긴장감을 조성하고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5. 평가 및 의의
주한 미국 대사는 한미 관계의 최전선에서 양국 간의 협력과 갈등을 조율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 왔다. 특히, 한국 현대사의 주요 고비마다 주한 미국 대사의 역할은 한국 정치와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 윈스럽 브라운 대사는 브라운 각서의 장본인이다.
- 마셜 그린 대사는 박정희의 5·16 군사 정변을 경험했다.
- 윌리엄 글라이스틴 주니어 대사는 10.26 사건과 전두환의 12·12 군사 반란을 제1선에서 목격했다.
- 1973년 김대중 납치 사건 당시 필립 하비브 대사가 개입하여 암살을 막았다.[27]
- 2011년 부임한 성 김 대사의 부친은 김대중 납치 사건의 일본 내 총책임자로 알려진 전 주일본 대한민국 공사 김재권이다. 이희호는 성 김의 부임을 앞두고 "(성 김 내정자가 납치 사건) 당시 열세 살 정도였는데 뭘 알았겠나. 연좌제 식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라고 밝혔다.[28]
- 2008년 부임한 캐슬린 스티븐스 대사는 미국 평화 봉사단원으로 대한민국을 방문, 1975년부터 2년간 예산중학교에서 원어민 영어 교사로 일한 경험이 있다.
중도진보적 관점에서는 주한 미국 대사가 한미 동맹의 상징이자, 양국 간 협력과 갈등을 조율하는 핵심 인물로 평가할 수 있다. 다만, 미국의 국익을 우선시하는 외교 정책으로 인해 때로는 한국의 주권과 국익을 침해할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참조
[1]
웹사이트
Ambassador
http://seoul.usembas[...]
[2]
서적
Korea's Appeal to the Conference on Limitation of Armament
Korean Mission to the Conference on the Limitation of Armament, Washington, D.C.
1922
[3]
서적
Korean Mission
[4]
웹사이트
Dismore bio
http://bioguide.cong[...]
[5]
서적
Korean Mission
[6]
서적
Policy and Direction: the First Year
1972
[7]
서적
Nation Building in South Korea
2007
[8]
서적
[9]
서적
[10]
서적
[11]
서적
[12]
서적
[13]
서적
[14]
서적
The Peninsula Question: a Chronicle of the Second Korean Nuclear Crisis
2007
[15]
서적
[16]
서적
[17]
서적
[18]
뉴스
U.S. Ambassador to South Korea finally confirmed
http://thecable.fore[...]
Foreign Policy
2011-10-13
[19]
뉴스
Obama makes surprise appearance at swearing-in ceremony for new U.S. ambassador to Seoul
http://english.yonha[...]
Yonhap News
2014-10-25
[20]
뉴스
Harry Harris sworn in as new envoy to S Korea
https://www.business[...]
Business-standard.com
2018-07-01
[21]
웹사이트
Ambassador Philip S. Goldberg
https://kr.usembassy[...]
2022-07-10
[22]
웹인용
미국공사관 (美國公使館)
http://www.heritage.[...]
2020-04-06
[23]
웹인용
Chiefs of Missions for Korea
https://kr.usembassy[...]
2019-12-26
[24]
뉴스
秘錄 韓國外交<26> : 政府樹立 직후 ⑧ 美中國에 特使館
http://newslibrary.n[...]
경향신문
1975-03-12
[25]
뉴스
Resignation of Envoy To Korea Is Accepted
https://www.nytimes.[...]
The New York Times
1955-10-16
[26]
뉴스
Trump taps Adm. Harry Harris as ambassador to South Korea
https://edition.cnn.[...]
CNN
2018-05-18
[27]
뉴스
김대중 납치에 美 “한미관계 악영향 있을 것” 하자…
http://news.khan.co.[...]
경향신문
2014-01-21
[28]
뉴스
이희호 "주한 美대사 내정자 아버지, 이미 죗값 치렀다"
https://www.pressian[...]
프레시안
2011-06-15
[29]
뉴스
[이희호 여사 인터뷰]“北 유아 위해 털모자 뜨개질… 1만개 꼭 전달하고 싶어”
https://www.donga.co[...]
동아일보
2011-08-11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