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놀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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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놀타는 1928년 다지마 가즈오가 설립한 일본의 카메라 제조 회사이다. '미노루타'는 '열매 맺는 밭'을 의미하는 일본어에서 유래되었으며, Machinery and INstruments OpticaL by TAshima의 머리글자를 따기도 했다. 니치도쿠 샤싱키 쇼텐으로 시작하여, 니프카 카메라를 출시하며 사업을 시작했다. 1937년 치요다 코가쿠 세이코로 사명을 변경하고, 군수 산업에 참여했다. 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민수 생산으로 전환하여, 미놀타 35, 미놀타 SR-2, 미놀타 하이매틱 등의 카메라를 출시했다. 1962년에는 회사명을 미놀타 카메라 주식회사로 변경하고, 이후 라이카와의 협력을 통해 카메라를 개발했다. 1985년에는 자동 초점 기술을 도입했으나, 허니웰과의 특허 소송에서 패소했다. 1994년 미놀타 주식회사로 사명을 변경하고, 디지털 카메라 시장에 진출했으나, 2003년 코니카와 합병하여 코니카 미놀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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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놀타 - [회사]에 관한 문서 | |
|---|---|
| 회사 정보 | |
| 회사명 | 미놀타 주식회사 |
| 원어 명칭 | 일본어: ミノルタ株式会社 로마자 표기: Minoruta Kabushiki-gaisha |
| 이전 명칭 | 니치-도쿠 샤싱키 쇼텐 (日独写真機商店, 일본-독일 카메라 상점) |
![]() | |
| 국적 | 일본 |
| 설립 | 1928년 (니치-도쿠 샤싱키 쇼텐) |
| 해체 | 2003년 8월 5일 |
| 후신 | 코니카 미놀타 |
| 창립자 | 다시마 가즈오 |
| 본사 위치 (1998년) | 일본 오사카부 오사카시 주오구 아즈치마치 2-chome 3-13, 541-8556 |
| 산업 분야 | 제조업 |
| 제품 | 카메라 필름 카메라 카메라 액세서리 복사기 팩스 레이저 프린터 |
| 추가 정보 | |
| 외부 링크 | 미놀타 주식회사 (보관된 웹페이지) |
2. 사명의 유래
미놀타의 창업주는 "숙련된 장인일수록 겸손하라, 벼는 익을수록 머리를 숙인다"라는 속담을 늘 입에 달고 다닐 정도로 장인정신이 풍부했다. 그래서 일본어로 익다(여물다)라는 뜻의 "미노루"에서 사명을 따왔다고 한다.[14]
1928년 다지마 가즈오(田嶋一雄)가 '''니치도쿠 샤싱키 쇼텐'''(日独写真機商店, "일본-독일 사진 회사")을 설립하면서 미놀타의 역사가 시작되었다.[10] 1929년 첫 번째 카메라인 "니프카레트"(ニフカレッテ)를 출시했다.[10]
3. 역사
1937년 미놀타플렉스는 일본에서 두 번째로 출시된 이안 반사식 카메라였다. 1947년에는 35mm 레인지 파인더 카메라인 미놀타-35를 출시했다.
1958년 미놀타 SR-2는 미놀타의 첫 번째 일안 반사식 카메라였다. 1962년 존 글렌이 프렌드십 7호에 싣고 우주로 간 미놀타 하이매틱 카메라는 특별히 개조된 앤스코 로고가 새겨져 있었다. 이후 회사는 "미놀타 카메라 주식회사"로 사명을 변경했다.
1966년 미놀타 SR-T 101 SLR 카메라는 TTL(렌즈를 통한) 완전 개방 노출계를 갖춘 최초의 카메라 중 하나였다. 1972년 미놀타는 SLR 개발을 위해 라이카와 협력하기로 합의했고, 1973년 미놀타 CL이 이 합의의 첫 번째 결과물로 출시되었다. 1976년에는 라이카 R3가 출시되었는데, 미놀타는 라이카 R 시리즈의 R3, R4, R5 모델을 생산했다.
1977년 미놀타 XD-11 (북미 지역 한정, 전 세계적으로 XD-7)은 M, A, S 모드를 제공하고 S 모드에서 컴퓨터 칩으로 '프로그램 오버라이드'가 가능한 세계 최초의 '멀티 모드' SLR이었다.
1981년 미놀타 CLE는 TTL 측광과 조리개 우선 자동 노출을 특징으로 하는 최초의 35mm 레인지 파인더 카메라였다. 같은 해 출시된 미놀타 X-700 수동 초점 SLR은 1999년까지 판매되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1985년 미놀타 맥섬 7000 알파 마운트 카메라는 세계 최초의 자동 초점 35mm SLR로, 카메라 내 자동 초점 모터를 탑재했다. 그러나 1987년 허니웰은 자동 초점 기술에 대한 특허 침해로 미놀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1991년 미놀타는 허니웰에 1.276억달러의 손해 배상, 벌금, 소송 비용 및 기타 비용을 지불하라는 명령을 받았다.[4] 1992년 미놀타는 허니웰과 법정 외 합의를 했다.
1994년 회사는 더 이상 카메라 회사가 아니기 때문에 사명을 "미놀타 주식회사"로 변경했다. 1995년 미놀타 RD-175, 1.75-메가픽셀 디지털 SLR 카메라를 출시했다. 1996년 미놀타 벡티스 카메라는 APS 필름 포맷을 기반으로 설계된 SLR 시스템이었다. 1998년 미놀타 맥섬 9 자동 초점 SLR이 출시되었다.
2003년 DiMAGE A1은 세계 최초의 센서 기반 흔들림 보정 기능을 도입했으며, 코니카 미놀타 합병 전 마지막 미놀타 제품이었다. 2004년 미놀타와 코니카가 공식적으로 합병하여 코니카 미놀타 홀딩스, Inc.가 되었다. 2005년 회사는 CCD 및 CMOS 기술에 대한 소니와의 합작 투자를 발표했다.
2006년 코니카 미놀타는 카메라 사업을 중단하고 모든 필름 및 디지털 카메라 생산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코니카 미놀타의 디지털 카메라 기술 관련 자산은 소니로 이전되어 지속적인 개발이 이루어졌다.[2]
3. 1. 설립 초기 (1928년 ~ 1937년)
1928년 11월, 다지마 가즈오(田嶋一雄)는 '''일독사진기상점'''(日独写真機商店)을 설립했다.[10] 이는 미놀타의 전신으로, 독일인 기술자 '''빌리 노이만'''과 '''윌리 하이레만'''과의 협력을 통해 카메라 국산화를 목표로 했다.[10] 회사 이름은 이러한 협력 관계를 반영하고, 당시 만연했던 외래품 숭배 사상에 따라 독일 기술력을 과시하려는 의도도 있었다.[10]
효고현 니시노미야시에 공장을 건설하고 약 30명의 종업원으로 사업을 시작했다.[10] 당시 긴키 지방에는 정밀 공업 기반이 부족하여 나사, 도금 등 모든 부품을 자체 제작해야 했다.[10]
1929년 3월, 첫 제품인 '''니프카레테'''를 출시했다.[10] 이는 독일 E. 클라우스의 '''로레테'''를 복제한 것으로, 렌즈와 셔터는 독일에서 수입했다.[10] 초기에는 월 50대 생산에 불과했지만, 바디는 꽤 잘 만들어졌다.[10] 이후 '''니프카''' 브랜드를 사용했다.[10] 1930년에는 '''니프카 크랩''', '''니프카 스포츠''', '''니프카 독스''' 등을 출시하며 생산이 궤도에 올랐다.[10]
1930년 10월, 무코가와 공장에서 파업이 발생했다.[10] 다지마 가즈오는 온건책을 제시했지만, 공장 책임자 '''윌리 하이레만'''은 강경책을 주장하여 갈등이 심화되었다.[10]
1931년 7월, 자본금 30만 엔의 '''모르타 합자회사'''(''Mechanismus, Optik und Linsen von TAshima'')로 조직을 변경했다.[10] 회사명에서 '독일'이 사라지고, 다지마 가즈오만 무한 책임 사원으로 남았다.[10] '''빌리 하이레만'''은 1931년 11월 퇴사 후 셔터 공장을 설립했고, 1932년 '''빌리 노이만'''도 퇴사하여 합류, '''노이만・하이레만 공장'''을 설립하여 다지마 가즈오에게 대항했다.[10] 니프카레테는 시리우스 베베, 니프카 클랩은 시리우스, 니프카 스포츠는 아르카디아로 개명하고 니후카 브랜드도 폐지되었다.[10]
1933년, '''미놀타''', '''세미 미놀타'''가 출시되면서 '''미놀타''' 브랜드가 처음 사용되었다.[11] 미놀타는 "Machinery and INstruments OpticaL by TAshima"의 약자로, 다지마 가즈오가 '열매 맺는 밭(稔る田, 미노루타)'이라는 의미를 담아 명명했다.[11]
1937년, '''주식회사 미놀타'''(千代田光学精工株式会社, 치요다 코가쿠 세이코)로 조직을 변경했다.[11] 당시 시대 상황에 따라 유럽식 표현을 피하고 국수적인 명칭을 선택한 것으로 추정된다.[11]
아사누마 상회(浅沼商会)는 모르타 합자회사 시절에는 여러 거래처 중 하나였으나, 1937년 12월 10일 아사누마 상회와의 제휴를 발표하고, 1938년 1월 19일 사진 재료점 120명을 초대하여 미놀타 제품을 선보였다. 이후 미놀타 제품은 아사누마 상회를 통해 판매되었으며, 당시 도매상의 영향력이 강했기 때문에 아사누마 상회가 미놀타 제품을 제조한다고 오해하는 사람도 많았다.[11]
3. 2. 군수 공장 시대와 전후 재건 (1937년 ~ 1962년)
1937년 중일 전쟁이 확대되면서 임시 자금 조정법, 수출입품 등 임시 조치법, 군수 공업 총동원법이 공포되어 군수 산업 이외의 산업은 극도로 어려워졌다. 1938년 4월 국가 총동원법이 공포되면서 이러한 경향은 더욱 심화되었다. 미놀타는 오사카 육군 조병창에서 포탄 신관을 수주하고 해군으로부터 쌍안경 주문을 받으면서, 기업 생존을 위해 군의 주문을 적극적으로 받았다. 이 때문에 육군 예비역이었던 타지마 카즈오에게 소집 영장이 나왔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일로 봉사하라"는 이유로 제대했다[11]. 카메라 생산은 순차적으로 축소되었지만 계속되었다[11].
제2차 세계 대전 패전으로 군수 공장 지정은 해제되었고, 이후 점령군에 의한 민수 생산 전환도 허가되었다. 하지만 무코가와 공장, 아마가사키 공장, 코마츠 공장은 공습과 화재로 전소되었고, 사카이 공장, 오사카시 히가시구로 역疎開한 본사 공장, 이타미 공장만 남았다[11]. 이에 더해 폐쇄되었던 도요카와 해군 공창 광학부를 매입하여 도요카와 공장으로 재출발했다[11]. 부품 잔여분이나 불에 타지 않고 남은 금형 등을 사용하여 1946년에는 전후 첫 번째 기종인 '''세미 미놀타 IIIA'''를 출시했다[11].
1947년에는 미놀타-35가 출시되었다. 39mm 나사산 렌즈 마운트가 적용된 라이카 레인지파인더 카메라의 개념을 기반으로 하며, 표준 35mm 필름을 카세트에 사용한다. 표준 렌즈는 슈퍼 로코르 1:2.8 50mm이다.
1950년, 미놀타는 일본 최초의 플라네타륨 프로젝터를 개발하여 천문 광학과의 연계를 시작했다. 존 글렌은 1962년에 미놀타 하이-매틱 레인지파인더 35mm 카메라를 우주선 ''프렌드십 7''에 탑재했으며, 1968년에는 아폴로 8호가 미놀타 스페이스 미터를 탑재하고 달 궤도를 돌았다.
1950년대 후반과 1960년대에 미놀타는 오토코드 시리즈의 TLR(쌍안 반사식) 카메라로 중형 롤 필름 카메라 시장에서 경쟁했다.
3. 3. 미놀타 카메라 시대 (1962년 ~ 1994년)
1962년, NASA의 혹독한 시험을 통과한 35mm 렌즈 셔터 카메라 "하이매틱"이 존 글렌 중령이 탑승한 프렌드십 7호(Friendship 7영어)의 우주 비행용 카메라로 채택되었다. 미놀타는 이 우주선에 맞춰 이후 제품명에 7을 많이 사용하게 되었다.[4] 같은 해, 회사는 카메라 브랜드명이었던 "미놀타"를 사명으로 하여 "미놀타 카메라 주식회사"로 상호를 변경했다.
1985년 출시된, 세계 최초의 시스템 일안 반사식 카메라 "α-7000"으로 시작하는 자동 초점(AF) α 시리즈는, 수동 초점과의 호환성을 없애고 조리개도 바디 측에서 전자 제어하는 등 전자화된 신규 마운트 미놀타 A 마운트를 채용하여, 제1회 유럽 카메라 오브 더 이어를 수상하는 등 일본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히트를 기록했다.[4] 하지만, 1987년에 미국 허니웰사가 동사가 보유한 자동 초점 기술의 특허 침해로 소송을 제기, 미놀타는 약 1억 달러의 화해금을 지불하게 되었다.[4] 이 특허 침해 소송에서는 잠수함 특허라는 개념이 일본 기업에 인식되었다.
허니웰과의 특허 분쟁 외에도, 1966년 출시된 미놀타 SR-T 101 SLR 카메라는 TTL(렌즈를 통한) 완전 개방 노출계를 갖춘 최초의 카메라 중 하나였지만, 경쟁사인 니콘 모델만큼 튼튼하지는 않았다. 미놀타 SR/SRT 디자인은 초점면 스핀들에 베어링 대신 슬리브 부싱을 사용했으며 작동 부품 간에 더 큰 공차를 가졌다. 이것은 매우 추운 날씨나 극도로 높은 사용량에서 때때로 문제를 일으켰다. 또한 미놀타 SLR은 모터 드라이브, 탈착식 펜타프리즘, 탈착식 백과 같은 중요한 전문적인 기능이 부족했다.
1972년, 미놀타는 라이츠와 공식적인 협력 계약을 체결했다. 라이츠는 카메라 바디 전자 장치에 대한 전문 지식이 필요했고, 미놀타는 라이츠의 광학 전문 지식으로부터 배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협력의 결과로 미놀타 CL과 라이카 R3가 출시되었다.
1977년에는 단일 바디에서 조리개 우선 및 셔터 우선 모드를 모두 포함하는 최초의 다중 모드 35mm 소형 SLR인 미놀타 XD-11을 출시했다.
1981년 미놀타가 발명하고 특허를 낸 TTL (렌즈를 통한) OTF (필름 밖) 노출 측광 구현: 미놀타 CLE는 TTL 측광과 조리개 우선 자동 노출을 특징으로 하는 최초의 35mm 레인지 파인더 카메라이다. 미놀타 X-700 수동 초점 SLR이 출시되었으며, 이 모델은 1999년까지 판매되었으며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1994년 회사는 더 이상 카메라 회사가 아니기 때문에 사명을 미놀타 주식회사로 변경한다.
3. 4. 미놀타 시대 (1994년 ~ 2003년)
1994년, 미놀타는 더 이상 카메라 회사가 아니라는 이유로 사명을 미놀타 주식회사로 변경하였다.[4] 1990년대 미놀타의 코퍼레이트 메시지는 "하트풀 테크놀로지 반짝 미놀타"였으나, 2001년에 "The essentials of imaging"이 새롭게 제정되었다.
1995년에는 1.75-메가픽셀 디지털 SLR 카메라인 미놀타 RD-175를 출시하였다. 1996년에는 APS 필름 포맷을 기반으로 설계된 SLR 시스템인 미놀타 벡티스 카메라를 출시하였다.
1998년에는 전문 사진가를 대상으로 한 미놀타 맥섬 9 자동 초점 SLR이 출시되었으며, 경쟁 제품에는 없는 여러 기능을 갖추고 있었다.
2003년에는 DiMAGE A1이 센서 기반 흔들림 보정 기능을 세계 최초로 도입했으며, 코니카 미놀타 합병 전 마지막으로 미놀타 브랜드가 표시된 제품이었다.
3. 5. 코니카와의 합병, 그리고 그 이후 (2003년 ~ 현재)
2003년 코니카와의 합병으로 코니카 미놀타가 탄생했다. 미놀타는 시장 점유율 강화와 필름, 카메라, 광학 장비 분야 자산 확보를 목표로 했다.[4] 합병 후에도 Maxxum/Dynax 카메라의 디자인을 개선하며 기본 개념을 유지했다. 그러나, 캐논과 니콘과의 경쟁에서 뒤처지고, 디지털 카메라 개발에서도 늦어 실적이 악화되었다.
2006년 1월 19일, 코니카 미놀타 홀딩스는 2006년 3월 말 사진 관련 사업 철수를 발표했다.[2] 디지털 일안 반사식 카메라 "α" 브랜드는 소니에 양도되었고, 미놀타의 카메라 사업은 막을 내렸다.[7] 2005년 코니카 미놀타는 CCD 및 CMOS 기술에 대한 소니와의 합작 투자를 발표했고[8], 디지털 카메라 기술 관련 자산은 소니로 이전되어 지속적인 개발이 이루어졌다.
4. 주요 제품
| 연도 | 주요 제품 |
|---|---|
| 1929년 | 회사의 첫 번째 카메라인 "니프카레트"(ニフカレッテ) [4] |
| 1937년 | 이안 반사식 카메라 미놀타 플렉스 |
| 1947년 | 35mm 레인지 파인더 카메라 미놀타-35 |
| 1958년 | 미놀타의 첫 번째 일안 반사식 카메라 미놀타 SR-2 |
| 1959년 | 미놀타 SR-1 |
| 1962년 | 존 글렌이 특수 개조된 미놀타 하이매틱 카메라를 프렌드십 7에 싣고 우주로 감 |
| 1966년 | 미놀타 SR-T 101 SLR 카메라 |
| 1977년 | 미놀타 XD-11 (북미 지역 한정, 전 세계적으로 XD-7) |
| 1981년 | 미놀타 CLE, 미놀타 X-700 수동 초점 SLR |
| 1985년 | 미놀타 맥섬 7000 알파 마운트 카메라 |
| 1995년 | 미놀타 RD-175 |
| 1996년 | Advanced Photo System (APS) 필름 형식 기반 미놀타 벡티스 SLR 카메라 |
| 1998년 | 미놀타 맥섬 9 자동 초점 SLR |
| 2003년 | DiMAGE A1 |
| 기타 | 디지털 카메라 DiMAGE(디마쥬) 시리즈, 업무용 복사기 |
5. 롯코르 렌즈
미놀타는 이른 시기부터 유리 용해, 연마, 코팅까지 모든 공정을 자사 공장에서 진행하며 "롯코르(ロッコール)" 브랜드를 사용했다. 1941년 입사한 사이토 토시이에가 이끈 설계진은 우수한 렌즈를 많이 설계했으며, 렌즈 제품 브랜드 롯코르는 미놀타제 카메라의 명성을 높이는 원동력이 되었다. 롯코르라는 명칭은 창업지인 니시노미야시에서 가까운 고베시 롯코산에서 유래되었다. 세계 최초로 멀티 코트(2층, 아크로매틱 코팅)가 적용된 것도 롯코르 렌즈이며, 이 코팅이 된 렌즈 특유의 녹색 반사광 때문에 "녹색 롯코르"라고 불리며 유명해졌다.[1] 그러나 1981년, 롯코르라는 명칭은 사라지고 단순히 "미놀타 렌즈"로 표기되었다. 이에 관해서는 "렌즈에 고유의 명칭을 붙이지 않는 당시의 풍조를 따랐다"는 설과 "뉴 MD 렌즈 개발 당시, 일부 광학 렌즈의 공급을 타사에 의존했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1]
롯코르 렌즈에는 "ROKKOR-QF"와 같이 마지막에 알파벳 두 글자 기호가 붙어 있는 것이 있다. 이는 렌즈의 군수·매수를 나타낸다. 기호와 숫자의 대응은 다음과 같다.[1]
| 군수 기호 | 매수 기호 |
|---|---|
| T=3 | C=3 |
| Q=4 | D=4 |
| P=5 | E=5 |
| H=6 | F=6 |
| S=7 | G=7 |
| O=8 | H=8 |
| N=9 | I=9 |
| J=10 | |
| K=11 | |
| L=12 |
따라서 "ROKKOR-QF"는 4군 6매 렌즈이다.[1]
또한 수출용 렌즈에 한하여 "ROKKOR-X", "CELTIC"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것도 존재한다.[1]
6. 미놀타-허니웰 특허 소송
미놀타는 1970년대에 라이카 카메라(Leica Camera)로부터 자동 초점 렌즈 기술에 대한 특허 권리를 구입했다.[5] 1985년, 미놀타는 Maxxum(북미), Dynax(유럽), Alpha(일본)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자동 초점(AF) SLR 카메라 라인을 출시했다. 이는 세계 최초로 상업적으로 성공한 자동 초점 SLR이었다.
하지만 미놀타의 자동 초점 디자인은 미국 기업인 허니웰의 특허를 침해한 것으로 밝혀졌다. 오랜 소송 끝에 1991년 미놀타는 허니웰에게 손해 배상금, 벌금, 소송 비용 및 기타 비용으로 총 1.276억달러를 지불하라는 명령을 받았다.[6]
7. 사업 재편
2003년 8월 코니카와 경영 통합하여 지주 회사 코니카 미놀타 홀딩스를 발족했다. 이때 미놀타는 코니카 미놀타 홀딩스의 자회사가 되었다.
2003년 10월 미놀타는 코니카 미놀타 홀딩스에 합병되었고, 미놀타의 각 사업은 다음과 같이 각 산하 회사에 각각 계승되었다.
| 사업 분야 | 계승 회사 |
|---|---|
| 카메라 사업 | 코니카 미놀타 포토 이미징[12] |
| 계측 기기 사업 | 코니카 미놀타 센싱 |
| 옵토(렌즈 유닛, 광학 촬상 소자, 디지털 디스크 플레이어용 렌즈) 사업 | 코니카 미놀타 옵토 |
| 복사기 사업 | 코니카 미놀타 비즈니스 테크놀로지스 |
| 플라네타륨 사업 | 코니카 미놀타 플라네타륨 |
| 쌍안경[13] | 켄코 광학 |
카메라 사업은 2003년 10월 코니카 미놀타 카메라(미놀타가 준비 자회사로 설립한 미놀타 카메라에서 개칭)에 계승되었지만, 2004년 4월 코니카 미놀타 포토 이미징과 합병되었다. 2006년 4월 1일 카메라 사업에서 철수하며, 카메라 및 관련 제품(렌즈 부착 필름 "토리킷치 MiNi" 제외)의 수리 및 제품 문의 등 애프터 서비스는 소니를 거쳐 켄코・토키나에 위탁되었다. 2011년 3월 코니카 미놀타 제품의 애프터 서비스는 켄코・토키나에 계승되었고, 코니카 미놀타 포토 이미징은 해산되었다.
이후 코니카 미놀타 센싱과 코니카 미놀타 옵토는 2012년 4월 사업 재편을 실시하여, 코니카 미놀타 옵틱스와 코니카 미놀타 어드밴스드 레이어로 개칭했다. 2013년 4월 그룹 내 재편에 따라, 코니카 미놀타 옵틱스, 코니카 미놀타 어드밴스드 레이어, 코니카 미놀타 비즈니스 테크놀로지스를 포함한 사업 자회사 7사가 코니카 미놀타 홀딩스에 흡수 합병되어, 코니카 미놀타 주식회사로 변경되었다.
참조
[1]
웹사이트
About Us — Minolta Digital
https://www.minoltad[...]
2020-03-11
[2]
웹사이트
News release details-News Releases - KONICA MINOLTA
http://konicaminolta[...]
2015-08-16
[3]
웹사이트
News release details-News Releases - KONICA MINOLTA
http://konicaminolta[...]
2015-08-16
[4]
뉴스
NY Times
[5]
간행물
Late to Digital, Leica Slow to Refocus
Wall street Journal
2008-09-16
[6]
뉴스
Minolta Credit Rating Downgraded by Moody's
https://www.nytimes.[...]
The New York Times
1992-07-11
[7]
웹사이트
Camera & Photo Support {{!}} KONICA MINOLTA
http://ca.konicamino[...]
2017-04-23
[8]
웹사이트
News release details-News Releases - KONICA MINOLTA
http://konicaminolta[...]
2015-08-16
[9]
문서
大手カメラメーカー5社('''ミノルタ'''・[[キヤノン]]・[[ニコン]]・[[PENTAX|ペンタックス]]・[[オリンパス]])の中では唯一、大阪に本社を構えており、工場も豊川工場(愛知県)を除き近畿地方に集中していた。
[10]
서적
『クラシックカメラ専科No.12、ミノルタカメラのすべて』p.6。
[11]
서적
『クラシックカメラ専科No.12、ミノルタカメラのすべて』p.7。
[12]
웹사이트
소니제품정보
https://www.sony.jp/
[13]
웹사이트
겐코광학제품
https://www.kenko-to[...]
[14]
블로그
유명 카메라회사들 이름의 유래를 아시나요?
http://ran-innori.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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