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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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켈리는 핀란드 남부에 위치한 도시로, 1323년 노테보르그 조약 이후 기록이 시작되었으며, 16세기 초 대천사 미카엘에서 이름을 따왔다. 1918년 핀란드 내전 당시 백군의 본부가 있었고,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핀란드군의 본부가 위치하여 폭격을 받기도 했다. 1838년 도시 지위를 얻었으며, 1997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동부 핀란드의 주도가 되었다. 사이마 호 주변에 위치하며, 2023년 기준 약 52,000명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다. 핀란드어를 주로 사용하며, 남동핀란드응용과학대학교(Xamk)가 위치해 교육의 중심지 역할을 한다. 또한, 핀란드 국도 5호선과 4호선을 통해 헬싱키와 연결되며, 콘서트홀, 음악 축제, 관광, 스포츠 등 다양한 문화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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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리 - [지명]에 관한 문서 | |
---|---|
지도 | |
기본 정보 | |
공식 명칭 | (핀란드어) (스웨덴어) |
다른 이름 | S:t Michel, , |
도시 유형 | 도시 |
![]() | |
![]() | |
위치 | 에텔라-사보 지역, 핀란드 |
행정 구역 | |
국가 | 핀란드 |
지역 | 에텔라-사보 |
하위 지역 | 미켈리 하위 지역 |
정부 | |
정부 형태 | 시의회 관리 정부 |
의결 기관 | 시의회 |
의장 | 오스카리 발톨라 |
의장 소속 정당 | NCP |
시 위원회 의장 | 피르요 시스코넨 |
시장 | 얀네 킨누넨 |
설립 | |
헌장 | 1838년 |
면적 | |
총 면적 (km2) | 3,229.57 |
육지 면적 (km2) | 1,699.90 |
물 면적 (km2) | 424.7 |
인구 | |
인구 (명) | 52,121 |
기타 정보 | |
시간대 | EET |
UTC 오프셋 | +02:00 |
시간대 (DST) | EEST |
UTC 오프셋 (DST) | +03:00 |
공식 웹사이트 | 미켈리 공식 웹사이트 |
2. 역사
미켈리 지역의 역사는 오래되었다. 리스티이나에 있는 아스투반살미 암각화는 기원전 4100년에서 2000년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미켈리에서 사람이 살았던 가장 오래된 흔적이다.[6] 1323년 노테보르그 조약을 통해 이 지역은 노브고로드 공국에서 스웨덴으로 넘어가게 되었고, 16세기 초에는 대천사 미카엘의 이름을 따서 미켈리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8]
이후 미켈리는 여러 전쟁을 겪었다. 1597년 몽둥이 전쟁 중에는 200명이 넘는 농민들이 켄캐베로 목사관에서 학살당했고, 1789년 구스타프 3세의 러시아 전쟁 때는 포라살미 전투에서 스웨덴군(핀란드인)이 수적으로 우세한 러시아군에 맞서 승리했다. 1918년 핀란드 내전과 2차 세계 대전 중에는 핀란드 군대의 본부가 미켈리에 설치되었다.
1838년 미켈리는 도시 권한을 부여받았고,[9] 1843년에는 미켈리 주의 주 정부가 헤이놀라에서 미켈리로 이전했다. 1986년에는 인질극이 발생하여 인질범과 인질 1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1997년 주 개혁으로 미켈리는 동부 핀란드 주의 주도가 되었으며, 2001년, 2007년, 2013년에 걸쳐 미켈리 농촌 자치구, 안톨라, 하우키부오리, 리스티이나, 수오멘니에미가 미켈리에 통합되었다.
2. 1. 초기 역사
리스티이나에 있는 아스투반살미 암각화는 기원전 4100년~기원전 2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미켈리에서 인류 생활의 가장 초기 흔적이다.[6] 아스투반살미는 북유럽에서 가장 큰 암각화 유적지이다.[7]
1323년 노테보르그 조약으로 사빌라흐티 교구가 노브고로드 공국에서 스웨덴으로 이관되었는데, 이는 현재 미켈리 지역 정착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이 지역은 늦어도 16세기 초에 대천사 미카엘을 따라 현재의 이름인 미켈리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8]
1597년 1월 23일, 몽둥이 전쟁의 일부로 200명이 넘는 농민 반군이 켄캐베로 목사관에서 살해당했다. 구스타프 3세가 러시아에 대항하여 벌인 전쟁에서 포라살미 전투가 1789년 6월 13일 미켈리 남쪽 수 킬로미터 지점에서 벌어졌으며, 이 전투에서 스웨덴군(핀란드인)은 수적으로 우세한 러시아군에 맞서 승리했다.
2. 2. 몽둥이 전쟁과 구스타프 3세 전쟁
1597년 1월 23일, 몽둥이 전쟁의 일환으로 켄캐베로(Kenkävero) 목사관에서 200명 이상의 농민 반군이 살해당했다. 1789년 6월 13일, 구스타프 3세의 대 러시아 전쟁 중 포라살미 전투에서 스웨덴군(핀란드인)은 수적으로 우세한 러시아군에 맞서 승리했다.[8]2. 3. 핀란드 내전과 제2차 세계 대전
1918년 핀란드 내전 당시 백군의 본부가 미켈리에 설치되었다.[10] 미켈리는 보수적인 농업 지역에 위치해 백색군의 거점이었지만, 이 지역의 러시아군 주둔 부대 일부는 적군을 지지했다. 미켈리 남쪽 약 20km 지점의 맨튀하르주 기차역 주변에서 주요 교전이 벌어졌는데, 백군이 코울볼라에서 북쪽으로 진격하는 적군의 돌격을 저지했다. 동계 전쟁과 계속 전쟁 동안 핀란드군 본부는 미켈리에 위치했다.[11] 군 참모부는 지역 고등학교에 본부를 두었으며, 그 학교 자리에는 사진과 당시 유물을 담은 Päämajamuseo|본부 박물관fi이 있다.2. 4. 현대
1838년에 도시 권한을 부여받았다.[9] 1843년 미켈리 주의 주 정부가 헤이놀라에서 미켈리로 이전했다. 1986년 헬싱키에서 발생한 인질극은 미켈리에서 인질범과 인질 1명의 사망으로 종결되었다.1997년 주 개혁으로 미켈리는 새로운 동부 핀란드 주의 주도가 되었다. 2001년 미켈리 농촌 자치구와 안톨라 자치구가 미켈리에 통합되었다. 하우키부오리 자치구는 2007년 1월 1일에 미켈리와 통합되었고, 리스티이나와 수오멘니에미도 2013년에 통합되었다.
3. 지리
미켈리 중심부는 사이마 호 만의 해안 근처의 완만한 구릉 지대에 위치해 있다.[14] 도시 안팎에는 여러 개의 작은 호수가 있다. 도시 동부의 호수들은 부오크시 강 수계에 속한다. 서쪽으로는 푸울라 호까지 이어지는데, 이 호수는 큐미요키 강 수계에 속한다.
4. 인구 통계
2023년 기준 미켈리 시의 인구는 약 52,000명으로, 핀란드에서 16번째로 인구가 많은 지자체이다. 미켈리 지역의 인구는 약 70,000명이며, 시 인구의 5.5%가 외국 배경을 가지고 있어 전국 평균보다 낮다.[15]
1990년부터 2020년까지 미켈리(및 통합된 지자체)의 인구 변화는 아래 표와 같다.[18]
연도 | 인구 |
---|---|
1990 | 54,404 |
1995 | 55,563 |
2000 | 55,222 |
2005 | 54,728 |
2010 | 54,455 |
2015 | 54,665 |
2020 | 52,583 |
4. 1. 인구
2023년 기준 미켈리 시의 인구는 약 52,000명이며, 핀란드에서 16번째로 인구가 많은 지자체이다. 미켈리 지역의 인구는 약 70,000명이다. 미켈리 시 인구의 5.5%는 외국 배경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전국 평균보다 낮다.[15]1990년부터 2020년까지 미켈리(및 통합된 지자체)의 인구 규모는 다음과 같다.[18]
연도 | 인구 |
---|---|
1990 | 54,404 |
1995 | 55,563 |
2000 | 55,222 |
2005 | 54,728 |
2010 | 54,455 |
2015 | 54,665 |
2020 | 52,583 |
4. 2. 언어
미켈리는 핀란드어를 사용하는 단일 언어 사용 도시이다. 대다수의 인구는 모국어로 핀란드어를 사용한다. 미켈리에는 소수의 스웨덴어를 사용하는 인구가 존재한다.[15] 핀란드어 또는 스웨덴어 이외의 모국어를 사용하는 인구도 일부 존재한다.[15] 영어와 스웨덴어는 의무적인 학교 과목이므로, 언어 학습을 통해 습득한 기능적인 이중 언어 또는 삼중 언어 사용은 드물지 않다.미켈리에서는 최소 30개의 언어가 사용된다. 가장 흔한 외국어는 러시아어(1.4%), 우크라이나어(0.5%), 아랍어(0.4%), 에스토니아어(0.3%)이다.[15]
4. 3. 이민
2023년 기준, 미켈리에는 이민 배경을 가진 사람이 2,855명 거주하고 있으며, 이는 전체 인구의 5.5%에 해당한다.[17] 해외에서 태어난 거주자 수는 2,781명으로 전체 인구의 5.4%를 차지한다. 미켈리에 거주하는 외국 국적자 수는 1,925명이다.[15] 대부분의 외국 출생 시민들은 구 소련, 러시아, 에스토니아, 태국 출신이다.[18]미켈리 인구에서 이민자의 상대적 비율은 전국 평균보다 낮다. 그러나 도시의 신규 거주자는 점점 외국 출신이 되고 있어, 향후 몇 년 동안 외국인 거주자의 비율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적 | 인구 | % |
---|---|---|
{{lang|fi|핀란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