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갑완
1. 개요
민갑완은 명성황후의 일족인 민영돈의 딸로, 1907년 영친왕의 약혼녀로 간택되었으나, 영친왕이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 후 일본 황족인 이방자와 정략결혼하면서 파혼당했다. 이후 상하이로 망명하여 김규식의 후원을 받았지만, 독립운동에는 참여하지 않고 책과 뜨개질로 세월을 보냈다. 1963년 영친왕이 귀국했으나 만남은 이루어지지 못했고, 1968년 후두암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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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사람 -
서명원
서명원은 독립운동가 서재필의 종손으로, 교육학자이자 대학교수, 교육행정 관료로서 서울대학교 교수, 문교부 차관, 여러 대학교 총장을 역임하고 국가보위입법회의 입법의원, 문교부 장관, 학술회 회원, 교육개혁심의위원회 위원장 등을 지낸 인물이다. -
일제강점기 사람 -
임화수
임화수는 이정재와 함께 동대문파의 2인자이자 이승만 정권의 비호 아래 영화계 대부로 활동하며 반공예술인단을 조직하여 자유당 정권의 선전 도구로 활용하고 정치 테러에 개입했으나 4.19 혁명 이후 몰락하여 5.16 군사정변 이후 사형당한 정치 깡패이자 영화 제작자이다. -
김규식 -
6.25 전쟁
6.25 전쟁은 1950년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되어 1953년 휴전 협정으로 종결되었으며, 한반도의 분단과 막대한 인명 피해를 초래한 한국 전쟁을 의미한다. -
김규식 -
좌우합작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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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년 출생 -
정인승
정인승은 일제강점기 국어학자로서 국어사전 편찬에 기여하고, 해방 후에는 여러 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을 양성했으며,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후 건국훈장과 국민훈장을 수훈받았다. -
1897년 출생 -
윤보선
윤보선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이자 독립운동가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참여, 한국민주당 창당, 서울특별시장 및 상공부 장관 역임, 제2공화국 대통령 역임, 그리고 민주화 운동 참여 등의 활동을 했다.
2. 생애
민갑완은 명성황후의 일족인 민영돈의 딸로 태어나 1907년 영친왕의 약혼녀로 간택되었으나, 일본의 방해와 영친왕의 정략결혼으로 파혼당했다. 이후 상하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김규식의 도움을 받았으나, 일본의 지속적인 감시와 압박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광복 후 귀국하였으나 불우한 만년을 보내다 1968년 후두암으로 사망했다.
2.1. 출생과 약혼
명성황후의 일족인 민영돈의 딸로 명성황후의 2주기가 되는 날에 태어났으며, 1907년에 황태자 영친왕의 약혼녀로 간택되었다. 민갑완의 할아버지 민석호는 이완용의 외사촌 형이었고, 민갑완의 언니는 순정효황후의 백부인 윤덕영의 맏며느리였다. 이러한 집안 배경이 그녀가 태자비로 간택되는데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본은 '유학'이라는 구실로 영친왕을 일본으로 데려갔고, 1910년 한일합병이 되면서 영친왕은 일본에 발이 묶이게 되었다. 1917년 민갑완은 10년간 영친왕의 귀국과 혼례만을 기다리며 책을 벗삼아 지냈으나, 영친왕이 일본 황족인 나시모토노미야 마사코 여왕과 정략결혼하게 되면서 파혼당하고 말았다.
2.2. 상하이 망명
영친왕과 마사코의 결혼식이 일본에서 치러지고 3개월 후, 민갑완은 중국 상하이로 망명했다. 부친 민영돈은 화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더 이상 조선에 남아 있기 어려웠고 의지할 곳이 없기에 망명을 결심하였으나 일본의 핍박은 집요했다. 상하이에 도착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요인이었던 김규식의 후원으로 상하이 현지에 미국인이 운영하는 학교에 입학하여 신학문을 배울 기회가 주어졌다. 그러나 신학문 공부에 한창 재미를 붙일 무렵, 일본 영사가 학교에 찾아와 민갑완에 대해 이것저것 캐묻고 압력을 행사하였다. 학교장은 결국 민갑완을 학교에 나오지 못하게 했고, 그는 또한번 좌절했다.
김규식은 그녀에게 한학과 영문을 가르쳤다.
그녀가 성인이 되자 김규식은 민갑완에게 독립운동에 투신할 것을 권고하였으나, 민갑완은 '나 하나의 희생으로 만사가 평온하기를 바랄 뿐'이라면서 거절했다. 민갑완은 책과 뜨개질로 세월을 보냈고, 파혼으로 여러 번 혼담이 들어왔지만 모두 거절하였다.
2.3. 생애 후반
1963년 영친왕이 박정희 정부의 주선으로 귀국하였으나 뇌연화증으로 식물인간이 되었고, 민갑완은 그를 만날 수 없었다. 1968년 2월 19일 오전, 민갑완은 부산 초량동 자택에서 후두암으로 71세의 생을 마감하였다. 이후 부산직할시 천주교 용호동 공동묘지에 묻혔다가 묘지가 개발되면서 2007년 9월 개장하여 실로암 공원 묘원 납골당에 동생 민천식 내외와 함께 안치되었다.
3. 가족 관계
| 관계 | 이름 | 출생-사망 |
|---|---|---|
| 고조부 | 민용현(閔龍顯) | |
| 증조부 | 민치서(閔致序) | |
| 조부 | 민석호(閔奭鎬) | |
| 아버지 | 민영돈 | 1863년 음력 2월 ~ 1919년 1월 5일 |
| 어머니 | 전주 이씨(이기돈) | 1869년 ~ 1928년 10월 22일(음력 9월 9일) |
| 동생 | 민천식(천행) | 1906년 3월 3일(음력 2월 9일) ~ 1968년 2월 5일 |
| 올케 | 윤정순 | 1917년 ~ 1996년 7월 15일 |
| 조카 | 민병순 | 1936년 9월 25일 ~ 1984년 |
| 조카 | 민병휘 | 1941년 5월 18일 ~ |
| 질부 | 박무선 | 1947년 ~ |
| 조카 | 민병욱 | 1947년 4월 25일 ~ 1998년 3월 13일 |
| 질부 | 동래정씨 | 1955년 ~ |
| 동생 | 민만식 | 1909년 ~ 1935년 6월 10일 |
| 동생 | 민만순 | 1911년 5월 22일 ~ 2000년 1월 23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