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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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민필호는 여흥 민씨 가문 출신으로, 휘문의숙을 졸업하고 중국 상하이에서 유학한 독립운동가이다. 1912년 동제사에 가담하여 독립운동을 시작했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신규식의 비서, 이시영의 비서, 임시 의정원 의원, 한국독립당 선전부장 등을 역임했다. 광복 후에도 중국에 머물며 주화대표단 부단장, 단장서리를 지내 교포 교육과 보호에 힘썼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받았으며, 저서로 《한중외교사화》가 있고, 신규식의 《한국혼》을 중국어로 번역했다.

민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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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여흥 민씨 가문에서 태어났다. 휘문의숙을 졸업하고 1911년 상해로 유학한 뒤, 박달학원 (博達學院), 체신학교를 수학했다. 1912년 신규식의 동제사에 가담하여 일찌감치 독립 운동을 시작했다. 이어 대종교에 입교하였다.

1919년 상해 (上海)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임시정부 법무총장 겸 국무총리였던 신규식의 비서로 임시정부에 참여했다. 이후 신규식의 딸과 결혼하여 사위가 되었다. 1923년부터는 임시정부의 재무총장 이시영의 비서를 맡아 13년간 근무하였고, 1924년에는 한인 교민단(韓人僑民團) 이사회의 학무위원에 선출되었다.

이후 임시정부 임시 의정원 의원을 지내며 한국독립당 선전부장을 맡기도 했다. 이때 《독립신문》 발간에 참여하였고, 임시정부 외무차장 겸 판공실장(辦公室長)으로서 중국정부와 협의하여 무장경위대를 편성하도록 하였다. 임시정부 주석 김구의 판공실장도 역임하여 김구의 비서로도 불린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인사들의 귀국을 주도하면서 광복 후에도 바로 귀국하지 않고 중국에 머물렀다. 중국어에 능통했던 민필호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주화대표단 (駐華代表團)의 부단장, 주화대표단 단장서리를 지내며, 교포 교육과 보호에 힘썼다. 1948년 국공 내전 중 중국 국민당의 중화민국 정부와 함께 대만 (臺灣)으로 건너갔다가 1956년 귀국했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받았다. 독립기념관에는 망국의 통한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내용의 어록비가 세워져 있다. 저서로 《한중외교사화》가 있으며, 신규식의 《한국혼》을 중국어로 번역해 펴내기도 했다. 그와 신규식의 활동을 함께 다룬 연구서 《신규식·민필호와 한중관계》 (나남출판사, 2003)가 나와 있다. 1963년 4월 14일에 병으로 사망했다. 사망 당시 향년 65세였다.

아들인 민영수와 장녀 민영주, 맏사위 김준엽, 둘째 사위인 이윤철(임시정부 국무위원 이광의 아들)은 모두 광복군에서 활동한 독립 운동가들이다. 건축가로 유명한 민영백도 민필호의 아들이다.

2.1. 대한민국 임시정부 활동

여흥 민씨 가문에서 태어난 민필호는 1919년 상해 (上海)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임시정부 법무총장 겸 국무총리였던 신규식의 비서로 임시정부에 참여했다. 이후 신규식의 사위가 되었다. 1923년부터는 임시정부의 재무총장 이시영의 비서를 맡아 13년간 근무하였고, 1924년에는 한인 교민단(韓人僑民團) 이사회의 학무위원에 선출되었다.

이후 임시정부 임시 의정원 의원을 지내며 한국독립당 선전부장을 맡기도 했다. 이때 《독립신문》 발간에 참여하였고, 임시정부 외무차장 겸 판공실장(辦公室長)으로서 중국정부와 협의하여 무장경위대를 편성하도록 하였다. 임시정부 주석 김구의 판공실장도 역임하여 김구의 비서로도 불린다.

2.2. 광복 이후 활동

대한민국 임시정부 인사들의 귀국을 주도하면서 광복 후에도 바로 귀국하지 않고 중국에 머물렀다. 중국어에 능통했던 민필호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주화대표단 (駐華代表團)의 부단장, 주화대표단 단장서리를 지내며, 교포 교육과 보호에 힘썼다. 1948년 국공 내전 중 중국 국민당의 중화민국 정부와 함께 대만 (臺灣)으로 건너갔다가 1956년 귀국했다.

2.3.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1956년 귀국했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받았다. 독립기념관에는 망국의 통한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내용의 어록비가 세워져 있다. 저서로 《한중외교사화》가 있으며, 신규식의 《한국혼》을 중국어로 번역해 펴내기도 했다. 그와 신규식의 활동을 함께 다룬 연구서 《신규식·민필호와 한중관계》 (나남출판사, 2003)가 나와 있다. 1963년 4월 14일에 병으로 사망했다. 사망 당시 향년 65세였다.

3. 사상과 평가

3.1. 비판적 시각

민필호는 김원봉과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평소 김원봉이 사사건건 김구에게 대드는 것을 거슬리게 생각하였으며, 김원봉을 '교활한 공산주의자'라고 비난하였다. 민필호의 처사촌 신형호(申衡浩)는 이승만의 측근이었다.

4. 가족 관계

민필호는 여양 민씨 가문 출신으로, 독립운동에 헌신한 가족 구성원들이 많다.

* 8대조 : 민기
* 7대조 : 민영환
* 7대조모 : 전주 이씨
* 6대조 : 민유중(1630~1687) : 인현왕후의 친정아버지이자 숙종의 장인. 시호는 문정(文貞).
* 6대조모 : 덕수 이씨 - 이조판서 이경증(1595~1648)의 딸
* 5대조 : 민진오(閔鎭五) - 음죽현감(陰竹縣監), 적성현감(積城縣監) 역임
* 5대조모 : 평해 황씨 - 황재만(1659~1711)의 둘째딸.
* 고조부 : 민치수 - 비서원 승 추증
* 증조부 : 민백용 - 의정부 참찬 추증
* 조부 : 민태현 - 의정부 찬정 추증
* 아버지 : 민치헌(1844~1904) - 1885년 문과에 급제, 승정원 우승지, 의정부 찬정, 회계원 경 역임. 시호는 효헌(孝獻).
* 어머니 : 전주 이씨 이헌경
* 부인 : 신창희(1906~1990) - 독립운동가. 2018년 건국포장.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총리를 지낸 신규식(1880~1922)의 외동딸
* 장인 : 신규식(1880~1922)
* 장모 : 조정완
* 큰처남 : 신준호
* 처남댁 : 윤완희(1918) - 화가. 윤보선 前 대통령의 둘째딸

민필호의 큰형은 민준호(1877~?)로 1894년 진사에 합격하여 시종원 시종을 지냈으며, 둘째형 민제호(1890∼1932)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외무부 참사와 외사국장을 지낸 독립운동가로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다. 조카 민영구(1909~1976)는 독립운동가이자 광복군 출신으로 해군사관학교장을 지냈으며, 해군 소장으로 예편 후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다.

5. 저서 및 관련 연구

민필호는 신규식의 《한국혼》을 번역하고, 《한중외교사화》를 저술하였다. 석원화는 2003년 서울의 나남출판사에서 민필호와 신규식의 활동을 다룬 연구서 《신규식·민필호와 한중관계》를 출판했다.(ISBN 978-89-300-3949-9) 1995년에는 김준엽이 나남출판에서 석린 민필호전을 출판했다.

6. 기타

윤보선의 차녀 윤완희가 그의 처남 신준호와 결혼하여 사돈 관계를 맺었다. 김구의 측근이었던 민필호는 김원봉과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평소 김원봉이 김구에게 대드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으며, 김원봉을 '교활한 공산주의자'라고 비난했다. 그의 처사촌인 신형호(申衡浩)는 이승만의 측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