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천황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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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밀양 천황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은 통일신라 시대에 제작된 석불좌상이다. 우아하고 사실적인 형태와 얇은 층단식 주름의 세련된 표현이 특징이며,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사자좌 형태의 대좌를 갖추고 있다. 8세기 후반의 대표적인 석불상 중 하나로 평가받으며, 학술적으로도 신라 조각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2019년 소유권 분쟁이 있었으나, 문화재위원회는 역사성과 장소성을 고려하여 현재 명칭을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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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불상의 특징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뛰어난 석불좌상이다. 파손되어 새로 만든 머리 부분을 제외하면, 전체적인 체구는 실제 인체 비례와 비슷하게 만들어졌다. 우아하게 처리된 어깨선, 당당하게 표현된 가슴, 잘록한 허리 등 사실적인 표현이 돋보이며, 얇게 표현된 옷 주름 역시 사실성을 더한다.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채 입은 옷(우견편단)에는 얇고 규칙적인 계단식 주름이 표현되어 있다. 이러한 우아하고 사실적인 형태는 8세기 중엽 불상들과 공통점을 보이지만, 얇은 층단식 주름의 세련된 표현은 8세기 후반의 특징을 뚜렷하게 나타낸다.
이 불상은 8세기 후반의 가장 우수한 석불상 중 하나로 평가받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사자좌(獅子座) 대좌를 가진 석불좌상이라는 점에서 크게 주목받는다. 따라서 학술적으로도 신라 조각사 연구에서 반드시 다루어져야 할 중요한 작품으로 여겨진다.
2. 1. 대좌
불상의 받침 부분인 대좌는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보이는 독특한 사자좌(獅子座) 형태를 하고 있다. 이는 통일신라 시대 불상 중 유일한 예로, 학술적으로 큰 가치를 지닌다. 대좌는 크게 상대(上臺), 중대(中臺), 하대(下臺)의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상대(上臺): 둥근 원판 모양이며, 윗부분을 약간 높여 정교하게 구슬을 꿰맨 듯한 무늬인 연주문(連珠紋)을 새겼다. 그 아래에는 연꽃무늬를 두 겹으로 조각하였다.
- 중대(中臺): 두 줄의 띠가 새겨진 얕은 원형 받침 형태로 만들어졌다.
- 하대(下臺): 연꽃잎이 위로 향한 복판연화문(覆瓣蓮華文) 위에 열한 마리의 사자를 입체적으로 조각(환조, 丸彫)하여 둘렀다. 특히 정면에는 향로와 같은 공양구를 끼웠을 것으로 추정되는 구멍이 뚫린 받침이 있다.
3. 문화재적 가치
경상남도 밀양시 천황산 얼음골에 위치한 천황사에 모셔져 있던 석조비로자나불좌상으로, 통일신라 시대인 8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현재 머리 부분은 파손 후 새로 복원된 것이다.[1]
이 불상은 우아한 어깨선, 당당한 가슴, 잘록한 허리 등 인체 비례와 유사하게 표현되었으며, 얇은 옷의 표현을 통해 사실성을 높였다.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옷의 얇고 세련된 층단식 주름 표현은 8세기 후반의 양식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이러한 조형미는 8세기 중엽 불상의 특징과도 연결되지만, 더욱 발전된 형태를 나타낸다.[1]
특히 대좌는 한국에서 유일하게 여러 마리의 사자(獅子)를 환조(丸彫)로 새겨 넣은 사자좌(獅子座) 형태를 가지고 있어 크게 주목받는다. 상대, 중대, 하대로 구성된 대좌에는 연꽃무늬, 연주문(連珠紋) 등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으며, 하대에는 11마리의 사자가 새겨져 있다.[1]
이 불상은 8세기 후반의 가장 우수한 석불 중 하나일 뿐만 아니라, 독특한 사자좌 대좌를 가진 유일한 예로서 신라 조각사 연구에 있어 반드시 다루어져야 할 중요한 학술적 가치를 지닌다.[1]
4. 소유권 분쟁 및 명칭 유지
경상남도 사천에 있는 한 사찰의 주지가 밀양 천황사로부터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을 사들인 후 소유권을 주장하며 불상을 자신의 사찰로 옮겼다. 그러나 천황사 측에서 매매 계약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하여 소유권을 둘러싼 분쟁은 계속되고 있다.[2]
2019년 8월, 불상을 옮긴 사찰 주지는 소유자와 보관 장소가 변경되었다는 이유로 문화재위원회에 명칭 변경을 신청했으나, 문화재위원회는 현재 명칭을 유지하기로 결정(부결)했다.[2]
4. 1. 명칭 유지 배경
2019년 8월, 불상을 새로 소유하게 된 경남 사천의 한 사찰 주지가 소유자와 보관 장소가 달라졌다는 이유로 '밀양 천황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의 명칭 변경을 신청했다. 그러나 문화재위원회는 이 안건을 검토한 후, 현재 명칭을 유지하기로 결정(부결)했다.[2]문화재청은 문화재위원회에 의견을 전달하며 명칭 유지를 지지했다. 문화재청은 "역사성과 장소성을 고려할 때 제작 당시부터 현 천황사 근처에 있던 불상으로 추정된다"고 밝혔으며, "특별한 사유로 소유자나 관리자가 변동됐다 하더라도 지정 당시 명칭은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설명했다.[2] 또한, 보물 제1621호인 '서울 지장암 목조비로자나불좌상'의 경우 관리자가 지장암에서 국립중앙박물관으로 변경되었지만 지정 명칭은 그대로 유지된 선례가 있음을 강조했다.[2]
문화재위원회 역시 명칭 유지 결정의 배경으로 몇 가지 이유를 들었다. 위원회는 "밀양 천황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은 밀양 얼음골이라는 장소성과 옛 사찰 터에 천황사가 세워진 정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명칭을 부여한 것"이라며, "이름을 문화재 역사와 무관한 사찰로 바꾼다면 보물로서 지정 가치가 감소한다"고 지적했다.[2] 더불어 "이미 널리 알려져 고유명사처럼 된 문화재 명칭은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행정 혼선 최소화와 원활한 문화재 관리에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2]
참조
[1]
간행물
문화재청고시제2010-89호(국가지정문화재 보물지정)
http://gwanbo.mois.g[...]
관보(정호)
2010-08-25
[2]
뉴스
불상 소유자가 달라지면 문화재 명칭도 바꿔야 할까
https://www.yna.co.k[...]
2019-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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