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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실리 칼리니코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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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바실리 칼리니코프는 1866년 러시아에서 태어난 작곡가로, 러시아 민요의 특징을 살린 작품들을 남겼다. 그는 14세에 합창단을 지휘했으며,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수학했으나 결핵으로 인해 극장 지휘자 경력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고 요양 생활을 했다. 칼리니코프는 두 개의 교향곡을 포함하여 다양한 관현악곡, 피아노곡, 성악곡, 합창곡 등을 작곡했으며, 그의 작품은 차이콥스키의 영향과 민족 음악적 요소를 결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35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했지만, 교향곡 1번은 러시아에서 꾸준히 연주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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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실리 칼리니코프
기본 정보
바실리 칼린니코프
본명바실리 세르게예비치 칼린니코프
출생1866년 1월 13일
출생지러시아 제국 오룔 현 오룔
사망1901년 1월 11일 (34세)
사망지러시아 제국 얄타
국적러시아
학력
교육모스크바 악우 협회 부속 학교
직업
직업작곡가, 지휘자
음악 스타일
장르클래식 음악

2. 생애

1866년 오룔 현의 보인이라는 마을에서 하급관리의 아들로 태어난 칼리니코프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 성장했다.[1] 그 지방 신학교 합창단에 참가하여 14세에 합창단을 지도하기도 했다.[1] 1884년 신학교 4년 과정을 마치고 모스크바 음악원에 입학했으나, 학비를 감당하기 어려워 1년 만에 모스크바 필하모니 학교로 옮겼다.[1] 그곳에서 그리고리고리에프 등 우수한 스승에게 배우며, 장학금을 받기 위해 작곡과 바순 공부를 병행하고 관현악단에서 학비를 벌었다.[1]

무리한 공부와 노동으로 결핵에 걸렸지만, 1892년 학교를 졸업하고 마루이 극장 지휘자 채용 시험에 응시했다. 심사위원이었던 차이콥스키는 젊은 칼리니코프의 총보(스코어)를 보고 그를 격려하였다.[1] 이후 차이콥스키의 추천으로 말리 극장과 모스크바 이탈리아 극장의 지휘자로 추천되기도 했다. 그러나 결핵이 악화되어 극장 직을 사임하고 크림 반도 얄타로 이주하여 여생을 보냈다.

얄타에서 그는 두 개의 교향곡과 알렉세이 콘스탄티노비치 톨스토이의 ''차르 보리스'' 부수 음악 등 주요 작품을 작곡했다. 막심 고리키, 안톤 체호프 등 유명 인사들과 교류하기도 했다.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는 칼리니코프의 작품 출판을 주선해주기도 했다. 1901년 1월 11일, 35세 생일을 이틀 앞두고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2. 1. 어린 시절과 초기 음악 교육

1866년 오룔 현의 보인이라는 마을에서 하급관리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자랐지만, 그 지방 신학교 합창단에 참가하여 14세에 합창단을 지도하였다. 1884년 신학교 4년 과정을 마치고 모스크바 음악원에 입학했으나 1년 만에 필하모니 학교로 옮겨 그리고리고리에프 등 우수한 스승에게서 배울 수 있었다. 장학금을 받기 위해 작곡과 바순 공부를 병행하며 관현악단에서 학비를 벌었다. 무리한 공부와 노동으로 결핵에 걸렸지만, 1892년 학교를 졸업하고 마루이 극장 지휘자 채용 시험을 보았다. 심사위원이었던 차이콥스키는 젊은 작곡가의 총보(스코어)를 보고 그를 격려하였다.[1]

칼리니코프는 오룔 현오룔 출신으로, 이반 투르게네프와 같은 고향이다. 가난한 경찰관의 가정에서 태어나 동생 빅토르와 함께 소년 시절부터 음악적 재능을 보였고, 14세에 지역 성가대의 지휘자를 맡았다.

모스크바 음악원에 진학했지만 학비를 내지 못해 퇴학당했다. 이후 장학금을 받아 모스크바 음악 협회 부속 학교에서 바순을 배우고, 크루글리코프에게 화성학, 알렉산드르 일린스키에게 대위법과 푸가를, 블라람베르크에게 관현악법을 배웠다. 크루글리코프는 훗날 그의 절친한 친구가 되었다. 극장 악단에서 바순, 팀파니,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필사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2. 2. 모스크바 음악원과 모스크바 필하모닉 협회 학교

1884년 신학교의 4년 과정을 마치고 모은 돈으로 모스크바 음악원에 입학하였으나, 학비를 낼 형편이 되지 않아 1년 만에 그만두고 모스크바 필하모닉 협회 학교로 옮겨갔다.[1] 그곳에서 그리고리고리에프와 같은 우수한 스승의 지도를 받을 수 있었다.[1] 장학금을 받기 위해 작곡반 공부와 함께 바순 공부를 병행했는데, 이는 관현악단에 들어가 학비를 버는 수단이 되기도 하였다.[1]

모스크바 필하모닉 협회 학교에서는 알렉산드르 일린스키에게 바순과 작곡을 배웠고, Кругликов, Семён Николаевич|세묜 크루글리코프ru에게 화성학을, 알렉산드르 일린스키에게 대위법과 푸가를, Бларамберг, Павел Иванович|파벨 블라람베르크ru에게 관현악법을 배웠다. 극장 오케스트라에서 바순, 팀파니,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악보 필사 일을 하여 수입을 보충하기도 했다.

2. 3. 지휘자 경력과 결핵 투병

1892년,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의 추천으로 칼리니코프는 말리 극장의 수석 지휘자가 되었고, 같은 해 늦게 모스크바 이탈리아 극장의 지휘자로도 추천되었다.[1] 그러나 결핵이 악화되어 극장 직에서 물러나 따뜻한 남부 기후인 크림 반도로 이주해야 했다.[1] 그는 남은 생을 얄타에서 보냈으며, 그곳에서 두 개의 교향곡과 알렉세이 콘스탄티노비치 톨스토이의 ''차르 보리스'' 부수 음악을 포함한 주요 작품들을 작곡했다.[1] 얄타에서 그는 막심 고리키안톤 체호프 등 다른 두 명의 유명한 결핵 환자를 만났다. 그는 1901년 1월 11일, 35번째 생일 이틀 전에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1]

2. 4. 얄타에서의 창작 활동과 사망

1892년,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는 칼리니코프를 말리 극장의 수석 지휘자로 추천했고, 같은 해 늦게 모스크바 이탈리아 극장에도 추천했다. 그러나 악화된 결핵으로 인해 칼리니코프는 극장 직에서 물러나 따뜻한 남부 기후인 크림 반도로 이주해야 했다. 그는 남은 생을 얄타에서 보냈으며, 그곳에서 두 개의 교향곡과 알렉세이 콘스탄티노비치 톨스토이의 ''차르 보리스'' 부수 음악을 포함한 그의 주요 작품을 작곡했다. 얄타에서 그는 막심 고리키, 안톤 체호프와 같은 결핵 환자들을 만났다. 기력이 쇠진한 그는 1901년 1월 11일, 35번째 생일 이틀 전에 결핵으로 사망했다. 그는 미망인과 합창 음악을 작곡하고 모스크바 필하모닉 협회 학교에서 가르쳤던 그의 형제 빅토르 칼리니코프를 남겼다.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가 칼리니코프의 병문안을 간 후 그의 제안에 따라, 차이콥스키의 출판업자 P. Jurgenson은 120 루블에 칼리니코프의 노래 3곡을 구입했다. 칼리니코프가 사망한 후, Jurgenson은 그의 미망인으로부터 교향곡 2번 A장조와 다른 작품들을 높은 가격에 구입하면서, 그의 죽음이 "그의 작품의 가치를 열 배로 증가시켰다"고 말했다.

3. 주요 작품

칼리니코프는 러시아 민요의 특징을 띠는 두 개의 교향곡, 여러 부수 음악, 그리고 다수의 가곡을 남겼다. 그의 작풍은 차이콥스키를 따라 서구적인 악곡 구성법을 채택하면서도, 선율과 화성법에 민요와 민족 음악의 영향이 뚜렷하여 국민악파 (「러시아 5인조」)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칼리니코프는 모스크바 악파와 상트페테르부르크 악파 중 어느 한쪽에 속하지 않고, 양쪽 전통의 장점을 절충한 작곡가였다.

주요 작품 목록
장르작품명작곡 연도비고
오페라1812년1899–1900미완성[1]
합창《케루빔의 노래》1885, 1886무반주 합창 성가
《산봉우리》1887
A. K. 톨스토이의 칸타타 《다마스쿠스의 성 요한》1890오케스트라, 합창, 독창자를 위한 칸타타
미하일 레르몬토프의 발라드 《바닷가에 앉은 아름다운 소녀》1894여성 합창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발라드
성악곡Приди ко мне|프리디 코 므네ru소프라노, 알토, 바리톤, 피아노; 알렉세이 콜초프 작사
Я ли тебя, моя радость|야 리 테뱌, 모야 라도스트ru성악과 피아노; 하인리히 하이네 작사
Я желал бы своей песней|야 젤랄 비 스보예이 페스네이ru성악과 피아노; 하인리히 하이네 작사
На старом кургане|나 스타롬 쿠르가네ru1887성악과 피아노; 이반 사비치 니키틴 작사
На чудное плечико милой|나 추드노예 플레치코 밀로이ru (An Liebchens schneeweisse Schulter|안 립헨스 슈네바이세 슐터de)1887성악과 피아노; 하인리히 하이네 작사, 바실리 파블로비치 표도로프(1883–1942) 번역
Когда жизнь гнетут страданья и муки|코그다 지즌 그네투트 스트라다니야 이 무키ru1887성악과 피아노; 폴리바노프 작사
16 Музыкальных писем|십섹스 무지칼니흐 피셈ru1892–1899성악과 피아노
Звёзды ясные|즈뵤즈디 야스니예ru1894성악과 피아노; 콘스탄틴 포파노프 작사
Нам звёзды кроткие мерцали|남 즈뵤즈디 크로트키예 메르찰리ru1894성악과 피아노; 알렉세이 플레셰예프 작사
Был старый король|빌 스타리 코롤ru1894성악과 피아노; 하인리히 하이네 작사, 알렉세이 플레셰예프 번역
1900년 1월 1일의 선물|1900년 야느바랴 1일의 선물ru1899성악과 피아노
Колокола|콜로콜라ru1900성악과 피아노; K. R. 작사
Молитва: "О Боже мой"|몰리트바: "오 보제 모이"ru1900성악과 피아노; 알렉세이 플레셰예프 작사
Не спрашивай, зачем...|네 스프라시바이, 자쳄...ru1901성악과 피아노; 알렉산드르 푸시킨 작사


3. 1. 관현악곡


  • 푸가 라장조 (1889년)
  • 현악 세레나데 사단조 (1891년)
  • 관현악을 위한 모음곡 (1891~92년)
  • 서곡 《빌리나(서사시)》 (1892년)
  • 모음곡 라단조 (1892년)
  • 서곡 라단조 (1894년)
  • 교향곡 1번 사단조 (1894~95년)
  • 교향곡 2번 가장조 (1895~97년)
  • 간주곡 제1번 올림 바단조 (1896년)
  • 간주곡 제2번 사장조 (1897년)
  • 교향적 그림 《삼나무와 야자나무》 (1897~98년)
  • 극 부수 음악 《황제 보리스》 (1898년)
  • 서곡과 4개의 막간 간주곡으로 구성.
  • 교향적 그림 《요정》 (1899년)


2000년에, 다소 무명이었던 서곡 《빌리나》(1892년경 작곡)가 갑자기 잊혀진 곳에서 다시 나타났다. 이 서곡의 서정적인 주제(후반부에 여러 번 반복되는) 중 하나가, 알렉산드르 알렉산드로프 작곡의 소련 국가 (1936년~43년)의 시작 부분과 놀랍도록 흡사하다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 유사점은 두마에서 소련 국가를 부활시켜야 하는가에 대한 논쟁에도 언급되었다. 《빌리나》와 소련 국가의 인과 관계는 확정되지 않았으며, 그 유사성도 단순한 우연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두 개의 완성된 교향곡은 아름다운 민족적 선율과 다채로운 관현악법으로 인해 칼리니코프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교향곡 1번 사단조는 구 소련 시대부터 녹음 및 연주의 기회가 많다. 두 곡 모두 거의 병상에서 작곡되었지만, 삶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 찬 밝음이 느껴진다. 아마 작곡가는 이 곡들을 실제로 들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교향곡 1번 사단조 (1894~95년)

  • 절친이었던 크루글리코프에게 헌정되었다. 금전적인 지원을 받기 위해 연주 전에 림스키-코르사코프에게 악보를 보냈지만, 그의 답변은 비판적이었다. 제1악장의 인상적인 선율이 종악장에서 재현된다. 제2악장의 도입부에서는 드뷔시 풍의 화성도 들린다.

교향곡 2번 가장조 (1895~97년)

  • 선율은 다소 인상이 옅고, 교향곡 1번 사단조만큼 유명하지는 않지만, 순환 형식을 사용하고 구성과 내용 모두 충실하다. 특히 제2악장은 표현력이 풍부하다.

3. 2. 피아노곡


  • 바장조 스케르초 (1888–1889)
  • Грустная песенка|슬픈 노래ru 사단조 (1892–1893)
  • : 5박자 (3+2)의 러시아풍 선율이 불리는, 간소한 아름다움을 가진 소품.
  • 올림 바단조 녹턴 (1892–1893)
  • Элегия|엘레지ru 내림 나단조 (1894)
  • 마장조 미뉴에트 (1894)
  • Русское интермеццо|러시아 간주곡ru 바단조 (1894)
  • 가장조 왈츠 (1894)
  • 내림 마단조 모데라토
  • Полонез на темы Симфонии No. 1|교향곡 1번 주제에 의한 폴로네즈ru 내림 나장조 (피아노 4 hands)

3. 3. 성악곡

Приди ко мнеru (소프라노, 알토, 바리톤, 피아노) - 알렉세이 콜초프 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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Не спрашивай, зачем...ru (성악과 피아노, 1901) - 알렉산드르 푸시킨 작사

3. 4. 합창


  • 《케루빔의 노래》 (1885)
  • 《케루빔의 노래》 (1886)
  • 《산봉우리》 (1887)
  • A. K. 톨스토이의 칸타타 《다마스쿠스의 성 요한》 (1890)
  • 미하일 레르몬토프의 발라드 《바닷가에 앉은 아름다운 소녀》 (1894)

3. 5. 오페라


  • 《1812년》(1899–1900); 미완성[1]

4. 작품의 특징과 영향

칼리니코프는 두 개의 교향곡과 몇몇 부수 음악, 그리고 다수의 가곡을 남겼다. 어느 작품이나 모두 러시아 민요의 특징을 띠고 있다. 두 개의 교향곡, 특히 『교향곡 1번 사단조』는 20세기 초에 빈번하게 연주되었다. 근년 칼리니코프의 명성은 희미해졌지만, 교향곡은 음원으로 접할 수 있다.

칼리니코프의 작풍은 차이콥스키를 따라 서구적인 악곡 구성법을 채택하면서도, 선율과 화성법에 민요와 민족 음악의 영향이 뚜렷하게 나타나 국민악파 (「러시아 5인조」)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이처럼 칼리니코프는 모스크바 악파와 상트페테르부르크 악파 중 어느 한쪽에 속하지 않고, 그 양쪽 전통의 장점을 절충한 작곡가였다. 절충적이라는 점에서 글라주노프와 비슷하기도 하지만, 보다 아카데믹하고 세련된 작곡 기법과 치밀한 구성을 추구해 나간 점에서 글라주노프는 칼리니코프와 다르다. 1899년부터 오페라 『1812년』의 작곡에도 착수했지만, 미완으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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