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악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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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국민악파는 19세기 민족주의 운동의 영향으로 등장한 음악 사조로, 민요, 민속 무용, 민족적 주제를 음악에 담아 민족 정체성을 표현하는 특징을 지닌다. 유럽에서 시작되어 아시아, 라틴 아메리카 등 비서구권으로 확산되었으며, 각 민족의 전통 음악을 발굴하고 서구 음악 기법과 결합하여 새로운 음악을 창조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러시아의 미하일 글린카, 체코의 베드르지흐 스메타나, 폴란드의 프레데리크 쇼팽 등 각국을 대표하는 작곡가들이 민족주의 음악을 발전시켰다. 국민악파는 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결속을 강화하는 데 기여했지만, 배타적인 민족주의로 변질될 위험성도 내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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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악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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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적 민족주의 | |
음악적 민족주의 | 특정 국가와 관련된 음악적 아이디어를 사용하는 것 |
배경 | |
기원 | 19세기 초 |
정치적 맥락 | 국가주의의 부상과 관련됨 |
특징 | |
음악적 요소 | 민속 음악 민속 리듬 민속 악기 |
주제 | 국가의 역사 전설 문화 |
목표 | 국가 정체성 확립 국가적 자긍심 고취 다른 국가와 차별화 |
대표적인 작곡가 | |
러시아 | 미하일 글린카 모데스트 무소륵스키 니콜라이 림스키코르사코프 |
체코 | 베드르지흐 스메타나 안토닌 드보르자크 |
노르웨이 | 에드바르 그리그 |
핀란드 | 장 시벨리우스 |
헝가리 | 벨러 버르토크 졸탄 코다이 |
스페인 | 이사크 알베니스 엔리케 그라나도스 마누엘 데 파야 |
영국 | 랄프 본 윌리엄스 구스타프 홀스트 |
미국 | 에이미 비치 조지 화이트필드 채드윅 에드워드 맥도웰 찰스 아이브스 |
브라질 | 에이토르 빌라로부스 |
아르헨티나 | 알베르토 히나스테라 |
폴란드 | 스타니스와프 모니우슈코 |
국민악파 | |
정의 | 자국의 고유한 음악을 발전시키고자 했던 19세기 낭만주의 음악의 한 경향 |
특징 | 자국 민요의 선율, 리듬, 화성을 사용 자국의 역사적 사건이나 전설을 소재로 한 오페라, 교향시 등을 작곡 자국의 풍경이나 민족성을 묘사한 음악을 작곡 |
영향 | 유럽 각국의 민족 음악 발전에 기여 |
주요 작곡가 | |
러시아 5인조 | 밀리 발라키레프 알렉산드르 보로딘 세사르 퀴 모데스트 무소륵스키 니콜라이 림스키코르사코프 |
보헤미아 | 베드르지흐 스메타나 안토닌 드보르자크 |
노르웨이 | 에드바르 그리그 |
핀란드 | 장 시벨리우스 |
헝가리 | 벨러 버르토크 졸탄 코다이 |
영국 | 에드워드 엘가 |
2. 역사적 배경
19세기 초, 나폴레옹 전쟁 이후 유럽에서는 민족주의가 급부상하며, 각 민족은 정치적 독립과 함께 문화적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음악은 민족의 정신을 표현하고 결속을 다지는 중요한 수단으로 인식되었다. 국민악파는 각 민족이 전통적으로 지켜온 민요나 춤곡 등을 중시했으며, 민족성을 기저에 깐 음악 형식이나 여러 음악 어법을 쓰기도 하고, 민요의 가사, 문학, 전설, 고담, 역사, 자연풍토, 민중생활 등을 소재로 삼았다. 또한, 그 시대의 민족주의적인 새로운 문학을 제재로 자국어로 된 성악곡이나 오페라, 교향시, 모음곡 등의 표제 음악을 작곡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전까지는 중부 유럽이 고전 음악의 중심이었으나, 국민악파의 등장으로 주변의 다양한 민족 출신의 음악가가 많이 등장하였다.
2. 1. 유럽 민족주의 음악의 태동
19세기 초, 민족주의는 정치적 독립 운동과 관련하여 음악 운동으로 등장했으며, 민요, 민속 무용 또는 리듬을 사용하거나 오페라, 교향시 또는 기타 음악 형식에 민족주의적 주제를 채택하는 등 국가적 음악적 요소를 강조했다.[1] 유럽에서 새로운 국가가 형성되면서 음악에서의 민족주의는 주류 유럽 클래식 전통의 지배에 대한 반작용이었으며, 작곡가들은 이탈리아, 프랑스, 특히 독일 전통주의자들이 설정한 기준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2]기원에 대한 보다 정확한 고찰은 논쟁의 여지가 있다. 한 견해는 나폴레옹에 대항한 해방 전쟁으로 시작하여, 베버의 오페라 ''마탄의 사수''(1821)와 나중에 리하르트 바그너의 게르만 전설을 바탕으로 한 서사 드라마에 대한 독일의 수용적인 분위기를 조성했다고 주장한다. 거의 같은 시기에, 세 개의 분할 세력으로부터의 폴란드의 자유를 위한 투쟁은 쇼팽의 ''폴란드 민요 환상곡'' 또는 ''혁명 에튀드''와 같은 피아노 작품과 관현악 작품에서 민족주의적 정신을 낳았고, 이보다 약간 늦게 오스트리아로부터의 이탈리아 독립에 대한 열망은 주세페 베르디의 많은 오페라에서 울려 퍼졌다.[3] 음악적 민족주의와 가장 일반적으로 관련된 국가 또는 지역으로는 러시아, 체코, 폴란드, 루마니아, 헝가리, 스칸디나비아, 스페인, 영국, 라틴 아메리카, 미국이 있다.
2. 2. 비서구권으로의 확산
민족주의 음악은 유럽을 넘어 아시아, 라틴 아메리카, 북미 등 비서구권 국가로 확산되었다. 각국은 전통 음악을 발굴, 보존하고 이를 바탕으로 근대 서구 음악 기법과 결합한 새로운 민족 음악을 창조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3]1910년에서 1920년 사이 멕시코 혁명은 예술 분야에서 민족주의적 부흥을 가져왔다. 1921년 알바로 오브레곤 정권은 공교육부에 많은 예산을 지원했고, 호세 바스콘셀로스는 예술가들에게 공공 건물에 그림을 의뢰하고 민족주의적 주제의 음악 작품을 의뢰했다. 카를로스 차베스의 발레 ''엘 푸에고 누에보''(새로운 불)는 이러한 작품 중 하나였다.
20세기 초,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아프가니스탄 라디오에서 연주되는 음악이 힌두스탄, 페르시아, 파슈툰, 타지크의 전통을 하나의 국가적 스타일로 혼합하여 민족적 경계를 흐리게 했다.[4]
;마누엘 M. 폰세
:마누엘 M. 폰세(1882–1948)는 멕시코 음악의 작곡가, 교육자, 학자였다. 그의 작품으로는 ''라 란체리타''(1907), ''스케르지노 멕시카노''(1909), ''랩소디아 멕시카나, 1번''(1911), ''에스트레지타''(1912) 등이 있다.
;카를로스 차베스
:카를로스 차베스(1899–1978)는 멕시코의 작곡가, 지휘자, 교육자, 언론인이자 멕시코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국립미술원(INBA)의 창립자이자 감독이었다. 그의 음악 중 일부는 멕시코 원주민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 1921년 아즈텍을 주제로 한 발레 ''엘 푸에고 누에보''(새로운 불)를 시작으로 민족주의적 경향의 시기가 시작되었다.
;프랜시스 홉킨슨
:프랜시스 홉킨슨(1737–1791)은 작곡가이자 변호사, 작가, 법학자였으며, 미국의 건국의 아버지였다. 그는 최초의 미국 오페라, ''미네르바의 사원''(1781)을 작곡했다.
;에드워드 맥도웰
:에드워드 맥도웰(1860–1908)의 ''숲의 스케치''는 미국 풍경을 언급하는 제목을 가진 10개의 짧은 피아노 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헨리 카웰
:헨리 카웰(1897–1965)은 미국 전위 작곡가였으며, 미국의 민요에서 영감을 받은 음악을 작곡했다.
;호레이쇼 파커
:호레이쇼 파커(1863–1919)는 미국의 작곡가, 오르가니스트, 교사였다.
;찰스 아이브스
:찰스 아이브스(1874–1954)는 미국의 모더니스트 작곡가였으며, 국제적으로 명성을 얻은 최초의 미국 작곡가 중 한 명이다. 그는 미국의 인기 있는 노래를 인용했으며, ''뉴잉글랜드의 세 장소''와 ''교향곡: 뉴잉글랜드 휴일''과 같은 작품을 작곡했다.
;에런 코플런드
:에런 코플런드(1900–1990)는 미국 민족주의 작품 외에도 ''엘 살롱 멕시코''와 같은 "멕시코" 음악을 작곡했다.
3. 각국의 민족주의 음악
국민악파는 각 민족이 전통적으로 지켜온 민요나 춤곡 등을 중시하는 특징이 있다. 이러한 민족적 요소를 작품 속에 그대로 도입하기도 하고, 민족성을 바탕으로 한 음악 형식이나 여러 음악 어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또한 민요의 가사, 문학, 전설, 고담, 역사, 자연풍토, 민중생활 등을 소재로 하거나, 그 시대의 민족주의적인 새로운 문학을 바탕으로 자국어로 된 성악곡, 오페라, 교향시, 모음곡 등의 표제 음악을 작곡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전까지 중부 유럽이 고전 음악의 중심이었으나, 이제는 주변의 여러 민족 출신의 음악가가 많이 등장하였다.
3. 1. 러시아
미하일 글린카는 러시아 민족주의 음악의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그의 오페라 '이반 수사닌'은 러시아 민요 선율을 활용하여 러시아 국민 오페라의 기틀을 마련했다. 러시아 5인조(밀리 발라키레프, 알렉산드르 보로딘, 세자르 쿠이, 니콜라이 림스키코르사코프, 모데스트 무소르크스키)는 글린카의 정신을 이어받아 러시아 민족주의 음악을 발전시켰다. 이들은 민족적 색채가 강한 작품을 통해 러시아 음악의 독자성을 확립했다.인물 | 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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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일 글린카 | 러시아 국민악파의 창시자로, 오페라 이반 수사닌 등을 통해 러시아 민족주의 음악의 기틀을 다졌다. |
러시아 5인조 | |
밀리 발라키레프 | 5인조의 지도자로, 러시아 민요 채집 및 러시아 민요집 출판을 통해 민족 음악 발전에 기여했다. |
알렉산드르 보로딘 | 화학자이면서 작곡가로 활동, 동양적 색채가 강한 작품을 남겼다. |
세자르 쿠이 | 축성가(築城家)이면서 작곡가로 활동, 러시아적 소품들을 작곡했다. |
니콜라이 림스키코르사코프 | 민속적 전설을 바탕으로 한 환상적인 작품들을 작곡했으며, 그의 문하에서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등 뛰어난 작곡가들이 배출되었다. 대표적인 곡으로는 <왕벌의 비행>이 있다. |
모데스트 무소르크스키 | 러시아적 풍부함과 근대적 음빛깔이 조화된 작품을 작곡했다. |
차이콥스키는 서구 음악 어법과 러시아적 감성을 융합하여 독자적인 음악 세계를 구축했다. 그의 작품은 러시아 민족주의 음악의 폭을 넓히는 데 기여했다.
3. 2. 폴란드
프레데리크 쇼팽(1810-1849)은 자신의 피아노 작품에 폴란드 민속 무곡인 마주르카와 폴로네즈 리듬을 사용하여 민족적 정서를 표현했다. 그의 작품은 폴란드 민족주의 음악의 상징으로 여겨진다.[1] 특히 그의 마주르카와 폴로네즈는 민족주의적 리듬 사용으로 주목할 만하며,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나치가 바르샤바에서 쇼팽의 폴로네즈 연주를 금지했을 정도로 강력한 상징성을 지니고 있었다.[1]스타니스와프 모니우슈코(1819-1872)는 애국적인 오페라 '하르카'를 통해 폴란드 민족 오페라의 기반을 다졌다.[2] 그의 오페라와 음악은 19세기 낭만주의를 대표하며, 아리아, 레치타티보, 앙상블을 광범위하게 사용했다. 몬유슈코의 멜로디와 리듬 패턴은 폴란드 음악 민속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폴로네즈와 마주르카, 쿠야비악, 크라코비악과 같은 민속 선율과 춤을 사용하여 폴란드적인 특징을 두드러지게 표현했다.[2]
이 외에도 도브르첸스키(1807-1867)는 폴란드 국민악파를 발생시킨 인물이며, 헨리크 비에니아프스키(1835-1880)는 독일 낭만주의에 슬라브적 향기를 더한 바이올린 곡들을 남겼다.[3]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이그나치 얀 파데레프스키(1860-1941)는 작곡가이자 외교관으로 활동했으며, 1919년 독립한 폴란드의 총리를 역임하기도 했다.[3]
3. 3. 체코
베드르지흐 스메타나는 교향시 '나의 조국'과 오페라 '팔려간 신부' 등을 통해 체코 민족의 역사와 정서를 표현했다. 그의 작품은 체코 민족주의 음악의 정점으로 평가받는다. 안토닌 드보르자크는 스메타나의 뒤를 이어 체코 민족주의 음악을 발전시켰다. 그는 슬라브 민족의 민속 음악 요소를 활용하여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3. 4. 헝가리
프란츠 리스트(1811–1886)는 빈에서 성공적인 공연을 펼치며 연주자로서 경력을 시작했고, 1839년 헝가리로 초청받아 공연했다. 베르분코스 양식은 그의 음악에 영향을 미쳤으며, 그의 헝가리 랩소디에는 헝가리 민속 음악이 담겨 있다.[2]벨라 바르토크(1881–1945)는 동료 헝가리 작곡가 졸탄 코다이와 협력하여 헝가리 민속 음악을 기록했으며, 이들은 둘 다 그들의 음악 작품에 이를 통합했다.
졸탄 코다이(1882–1967)는 헝가리 음악 아카데미에서 공부했으며 헝가리 민요에 관심을 갖고 헝가리 시골로 장기간 여행을 가서 민요를 연구했으며, 이를 그의 음악 작품에 통합했다.
3. 5. 스칸디나비아
노르웨이의 본격적인 국민음악은 그리그(1843-1907)에 의하여 수립되었다. 그의 모음곡 <페르귄트>나 많은 피아노곡, 성악곡은 신비적이면서 구슬프며 그 반면에 열광적인 노르웨이 민요의 아름다운 선율과 리듬이 생생하게 살아 있다.핀란드의 예술음악은 19세기에 와서 독일인 파키우스(1809-1891)에 의하여 개발되기 시작하였으며, 핀란드인으로는 카야누스(1856-1918)가 <칼레발라>에 의한 교향시를 작곡하여 국민악파를 확립시켰다. 그러나 핀란드의 예술음악을 대성시킨 사람은 시벨리우스(1865-1957)이다. 그는 세계의 어떤 음악 유파와도 상관없는 가장 핀란드적인 작곡가다. 작품으로는 국민적 대서사시 <칼레발라>에 의한 독창, 합창, 관현악을 위한 교향곡 <쿨레르보>, 교향시 <엔 사가(전설)>, 모음곡 <카렐리아>, 교향시집 <카레발라에 의한 4개의 전설>, 교향시 <핀란디아> 등이 있다.
;장 시벨리우스
:장 시벨리우스(1865–1957)는 핀란드에 대한 강한 애국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핀란드의 거친 문화와 민속 음악을 모방한 《핀란디아》와 《카렐리아 모음곡》을 작곡했다. 두 작품 모두 민족주의적 프로그램 요소를 가지고 있는데, 예를 들어 핀란디아는 20세기 초 핀란드 국민의 투쟁을 묘사하고 있다.[1]
;에드바르 그리그
:에드바르 그리그(1843–1907)는 노르웨이의 민족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기여한 중요한 낭만주의 시대 작곡가였다.
;아게테 바케르 그뢴달
:아게테 바케르 그뢴달(1847–1907)은 낭만주의 시대의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였으며, 에드바르 그리그의 절친한 친구였다.
;요한 할보르센
:요한 할보르센(1864–1935)은 낭만주의 시대의 작곡가, 지휘자, 바이올리니스트였다.
;휴고 알벤
: 휴고 알벤 (1872–1960)은 스톡홀름의 음악원에서 공부했다. 바이올리니스트, 지휘자, 작곡가이기도 했던 그는 화가이기도 했다. 그는 5개의 교향곡과 3개의 ''스웨덴 랩소디''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3. 6. 스페인
페드렐에 의하여 스페인의 국민 오페라 운동의 기초가 수립되었다. 한편, 바이올리니스트인 파블로 데 사라사테는 <지고이네르바이젠>, <스페인 춤곡> 등 민족적인 바이올린곡을 남겼다. 20세기에 이르러 이사크 알베니스, 엔리케 그라나도스, 마누엘 데 파야, 호아킨 투리나 등이 인상주의적인 수법을 쓰면서 스페인 국민악파를 확립하였다. 특히 파야는 스페인 최초의 예술 오페라 <덧없는 생명> 등의 작곡으로 스페인 최대의 작곡가로 불린다.- '''이사크 알베니스'''(1860–1909): 스페인의 피아노 연주자, 작곡가, 지휘자였다.[1]
- '''엔리케 그라나도스'''(1867–1916): 스페인 화가 고야의 에칭을 바탕으로 작품 ''고예스카스''(1911)를 작곡했다. 그의 ''스페인 무곡''과 첫 오페라 ''마리아 델 카르멘'' 역시 국민악파 스타일이다.[2]
- '''마누엘 데 파야'''(1876–1946): 스페인 작곡가였다.[3]
- '''호아킨 투리나'''(1882–1949): 스페인 작곡가였다.[4]
- '''호아킨 로드리고'''(1901–1999): 스페인 작곡가이자 뛰어난 피아니스트였다.
3. 7. 영국
아서 설리번이 영국 음악을 부활시켜 '영국적인' 목소리를 가진 세대의 길을 열었다.[3] 그 후 엘가는 그의 음악에서 고결함과 향수를 잘 융합하여 빅토리아 왕조 말기의 영국 정신을 잘 나타내었다.[3] 프레더릭 딜리어스는 목가적 서정이 넘치는 작품을 썼으며, 본 윌리엄스는 영국 민속 음악의 풍성한 특성을 재발견하여 그의 작품에 되살려 놓았다.[3]에드워드 엘가 (1857–1934)는 위풍당당 행진곡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으며, 그중 가장 유명한 곡은 매년 "프롬스의 마지막 밤" 콘서트의 일부로 연주된다.
랠프 본 윌리엄스 (1872–1958)는 전국 각지에서 많은 민요를 수집, 출판, 편곡했으며, ''그린슬리브스 주제에 의한 환상곡''과 ''"디베스와 라자루스" 주제에 의한 다섯 개의 변주곡''과 같은 민요 선율을 기반으로 대규모 및 소규모의 많은 작품을 작곡했다. 본 윌리엄스는 "음악은 다른 모든 예술보다 한 국가의 영혼을 표현하는 예술이다"라고 쓰면서 음악적 민족주의를 정의하는 데 기여했다.[3]
3. 8. 독일
리하르트 바그너는 게르만 민족의 전설과 신화에 영감을 얻어 니벨룽의 반지, 트리스탄과 이졸데, 탄호이저 등 서사적 악극을 썼다.[4] 그는 아리아 민족의 것을 사랑했기 때문에 나치 독일에서도 인기를 얻었다.[4] 카를 마리아 폰 베버는 독일 최초의 낭만 오페라 마탄의 사수를 작곡했는데, 이 작품은 "오랜 전쟁과 외세 점령"과 "나폴레옹 사후 독일 연방의 억압적인 정권"에 대한 반발로 여겨졌으며, "공통의 언어, 민속, 역사, 지리에 기반한 국가로서의 독일인 의식"을 일깨웠다. 리하르트 바그너는 친독일적인 많은 서사 오페라를 작곡했고 평생 동안 독일 통일을 지지했다.3. 9. 기타 국가
- 벨기에
- 앙리 뷔외탕(1820–1881)은 작곡가이자 바이올린 연주자였다.
- 기욤 레퀴(1870–1894)는 세자르 프랑크와 뱅상 데디에게 사사한 작곡가였다.
- 브라질
- 카를루스 고메스(1836–1896)는 브라질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작곡가로, 그의 오페라 ''일 구아라니''(1870)에서 자국의 민속 음악과 전통적인 주제를 사용했다.
- 치키냐 곤자가(1847–1935)는 브라질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였으며, 브라질 최초의 여성 지휘자이자 쇼루의 최초 피아니스트였다.
- 에이토르 빌라로부스(1887–1959)는 젊은 시절 브라질 전역을 여행하며 민요와 곡조를 기록했고, 이를 이후 그의 연작 ''바히아나스 브라질레이라스''와 그의 모든 ''쇼루스''에 사용했다.
- 프란시스쿠 미뇨네(1897–1986)는 그의 모음곡 ''브라질 환상곡'' 1–4번(1929–1936) 등에 민속 리듬과 악기를 통합했을 뿐만 아니라, 브라질 문학 작품을 바탕으로 한 발레를 작곡했다.
- 캐나다
- 조제프 케넬(1746–1809)은 프랑스계 캐나다인 작곡가였다. 그는 북아메리카 최초의 오페라 ''콜라스 에 콜리네트''와 ''루카스 에 세실''을 썼다.
- 크로아티아
- 바트로슬라프 리신스키 (1819–1854)는 두 개의 크로아티아 오페라, ''사랑과 악의''와 ''포린''으로 유명한 작곡가였다.
- 이반 자이츠 (1832–1914)는 40년 이상 크로아티아의 음악계를 지배했으며, ''니콜라 슈비치 즈린스키''와 같은 애국적인 오페라를 작곡했다.
- 조지아
- 자카리아 팔리아슈빌리(1871–1933)는 조지아 고전 음악의 창시자 중 한 명으로, 조지아 민요와 19세기 낭만주의 테마를 절충적으로 융합한 것으로 유명하다. 트빌리시 국립 음악원의 원장이었으며, 그의 음악은 조지아 국가의 기초가 된다.
- 그리스
- 니콜라오스 만자로스 (1795–1872)는 작곡가이자 이오니아 악파의 창시자였다.
- 파블로스 카레르 (1829–1896)는 작곡가이자 이오니아 악파의 일원이었다.
- 일본
- 이푸쿠베 아키라(1914–2006)는 일본의 작곡가이다.
- 하야사카 후미오(1914–1955)는 클래식 음악 및 영화 음악 작곡가이다.
- 멕시코
- 1910년에서 1920년까지의 멕시코 혁명은 예술 분야에서 민족주의적 부흥을 가져왔다. 알바로 오브레곤 정권은 호세 바스콘셀로스의 지휘 아래 공교육부에 많은 예산을 지원했고, 그는 호세 클레멘테 오로스코, 디에고 리베라 등에게 공공 건물에 그림을 의뢰했다. 바스콘셀로스는 또한 민족주의적 주제의 음악 작품을 의뢰했는데, 그 중 하나가 카를로스 차베스의 발레 ''엘 푸에고 누에보''(새로운 불)였다.
- 마누엘 M. 폰세(1882–1948)는 멕시코 음악의 작곡가, 교육자, 학자였다. 그의 작품으로는 ''라 란체리타''(1907), ''스케르지노 멕시카노''(1909), ''랩소디아 멕시카나, 1번''(1911), ''에스트레지타''(1912) 등이 있다.
- 카를로스 차베스(1899–1978)는 멕시코의 작곡가, 지휘자, 교육자, 언론인이자 멕시코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국립미술원(INBA)의 창립자이자 감독이었다. 그의 음악 중 일부는 멕시코 원주민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 1921년 아즈텍을 주제로 한 발레 ''엘 푸에고 누에보''(새로운 불)를 시작으로 민족주의적 경향의 시기가 시작되었다.
- 네덜란드
- 베르나르트 츠베르스(1854–1924)는 네덜란드 작곡가로, 외국의 영향에서 벗어나 네덜란드 고유의 음악을 발전시키려고 노력했다. 그의 세 번째 교향곡(1887–1889)은 네덜란드 음악 발전에 있어 이정표로 여겨진다.
- 루마니아
- 이온 이바노비치 (1845–1902)는 세르비아 출신의 루마니아 군악대 지휘자이자 작곡가였다. 그는 왈츠 《다뉴브 강의 물결》로 가장 잘 기억된다.
- 게오르게 에네스쿠 (1881–1955)는 루마니아의 가장 중요한 작곡가로 여겨진다. 그의 가장 잘 알려진 작품으로는 두 개의 《루마니아 랩소디》와 바이올린 소나타 3번 (루마니아 민속 양식)이 있다.
- 대만
- 장원야(1910–1983)는 주로 일본과 중국에서 활동한 대만 작곡가이다.
- 우크라이나
- 우크라이나에서 "음악 민족주의"()라는 용어는 1905년 스타니슬라프 류드케비치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 기사는 우크라이나 고전 음악의 아버지로 여겨지는 미콜라 린센코에 헌정되었다.
- 우크라이나 민속의 영감은 마키심 베레조프스키 (1745–1777), 드미트리 보르트니안스키 (1751–1825), 아르테미 베델 (1767–1808)의 작곡에서 관찰될 수 있다.
- 세멘 훌라크-아르테모우스키 (1813–1873)는 최초의 우크라이나 오페라(자포로제차 자 두나엠, 1863년 초연)의 작가로 여겨진다.
- 린센코의 전통은 키릴로 스테첸코 (1882–1922), 미콜라 레온토비치 (1877–1921), 야키우 스테포비 (1883–1921), 알렉산더 코셰츠 (1877–1944) 등에 의해 이어졌다.
- 미국
- 프랜시스 홉킨슨(1737–1791)은 작곡가이자 미국의 건국의 아버지였으며, 최초의 미국 오페라, ''미네르바의 사원'' (1781)을 작곡했다.
- 에드워드 맥도웰(1860–1908)의 ''숲의 스케치''는 미국 풍경을 언급하는 제목을 가진 10개의 짧은 피아노 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 헨리 카웰(1897–1965)은 미국 전위 작곡가였으며, 미국의 민요에서 영감을 받은 음악을 작곡했다.
- 호레이쇼 파커(1863–1919)는 미국의 작곡가, 오르가니스트, 교사였다.
- 찰스 아이브스(1874–1954)는 미국의 모더니스트 작곡가였으며, ''뉴잉글랜드의 세 장소'', ''어둠 속의 센트럴 파크'', ''교향곡: 뉴잉글랜드 휴일''과 같이 뉴잉글랜드의 휴일과 풍경을 언급했다.
- 에런 코플런드(1900–1990)는 미국 민족주의 작품 외에도 ''엘 살롱 멕시코''와 같은 "멕시코" 음악을 작곡했다.
4. 한국의 민족주의 음악
18세기 전반 러시아에서는 음악이 단순한 오락 수단으로 여겨져 귀족이 다룰 것이 못 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순수 기악보다 오페라나 가곡, 무용을 위한 음악이 더 존중되었다. 18세기 후반에 이르러 점차 러시아인 작곡가가 나타나기 시작하였고, '로맨스'라는 피아노 반주가 붙은 감미로운 가곡 형태가 러시아적 예술가곡으로 탄생했다. 이는 귀족계급의 딜레탕티즘에서 비롯된 것이다. 프랑스 혁명 이후, 음악은 예술로 인식되기 시작했고, 상류계급에서도 작곡이나 연주에 힘을 기울이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나폴레옹의 모스크바 원정 실패 후, 러시아가 강국으로 부상하면서 민족주의와 낭만주의의 영향을 받아 민족의식이 고취되고 슬라브 중심 사조가 높아졌다. 그 결과, 음악은 단순한 오락이 아닌 민족적 사명을 지닌 예술로 승격하였고, 이러한 사회적, 문화적 조건이 글린카를 낳았고, 러시아 음악의 개화를 이끌었다.
4. 1. 개화기 ~ 일제강점기
개화기에는 서양 음악이 유입되면서 찬송가, 창가 등이 등장하였다. 이 시기에는 애국가, 학도가 등 민족의식과 애국심을 고취하는 노래들이 불렸다. 일제강점기에는 민족의 독립과 자유를 염원하는 내용의 창가와 가곡이 많이 창작되었다. 홍난파, 안익태, 현제명 등은 민족적 정서를 담은 가곡과 오페라를 작곡하여 민족의식 고취에 기여했다. 이상준, 김순남 등은 항일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노래를 작곡했다.[1]5. 민족주의 음악의 의의와 한계
국민악파는 서구의 아카데믹한 작곡 기술과 절대 음악을 경시하고 표제 음악을 중시하는 등 이전 시대의 러시아적 음악관을 그대로 계승했다는 한계가 있었다.[1] 그러나 안톤 루빈스타인은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에 러시아 최초의 음악학교를 설립하고, '러시아 음악협회'를 설립하여 정기연주회를 개최하는 등 러시아 음악 문화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2] 그의 제자 중 한 명이 바로 러시아를 대표하는 대작곡가 표트르 차이콥스키이다.[2]
음악적 민족주의는 민족주의 운동의 정치적 목표 달성을 위해 민족, 문화, 계급 위계에서 기원하는 음악을 전유하는 것을 포함한다는 분석이 있다. 음악은 국가 정체성에 대한 인식에 크게 기여하며, 때로는 서로 다른 정체성의 측면을 구성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카리브해 연안 콜롬비아의 민족주의적 음악 정체성은 세계화의 영향으로 다양한 음악이 소비되면서 변화를 겪었다.
참조
[1]
웹사이트
Finlandia by Jean Sibelius
https://finland.fi/a[...]
2014-06-24
[2]
논문
A Cosmopolitan Patriot: Franz Liszt and Hungary
2011
[3]
서적
2004
[4]
서적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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