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문원 (미술가)
1. 개요
박문원(1916년 ~ ?)은 대한민국의 미술가, 미술사학자, 미술 평론가이다. 경성수송보통학교, 경성제1고등보통학교, 연희전문학교 문과를 졸업하고, 도호쿠 제국대학교 미학과를 전퇴,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철학과에서 미학을 전공했다. 해방 후 조선미술동맹 서기서무분과위원장, 조선문화단체총연맹 조직부장을 역임하고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객원교수를 지냈다. 한국 전쟁 중 월북하여 조선미술박물관 연구사 겸 연구위원 등으로 활동하며 〈서울 해방〉, 〈백두산 천지〉 등의 작품을 창작했다. 유화 작품 외에 박태원의 소설 《천변풍경》 삽화 및 장정 작업에 참여했고, 미술사학 저술과 미술 평론을 통해 고구려 미술 연구에 기여했다. 또한 《러시아 소묘 교과서》를 번역했다.
| 이름 | 박문원 |
|---|---|
| 출생일 | 1920년 1월 8일 |
| 출생지 | 일제 강점기 조선 경성부 |
| 사망일 | 1973년 4월 28일 |
| 사망지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안남도 평양특별시 |
| 거주지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안남도 평양특별시 |
| 국적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
| 본관 | 밀양(密陽) |
| 묘소 | 북 평남 평양 대동강 강수 수중(유해 화장) |
| 직업 | 미술가, 대학 교수, 동양화가, 조선화가, 삽화가, 미술사학자, 저술가, 미술평론가, 정치인 |
| 웹사이트 | 두피디아 박문원 |
| 부모 | 박용환(부), 남양 홍씨 부인(모) |
|---|---|
| 배우자 | 리순길(사별) 최학신(재혼) |
| 자녀 | 박철호(장남) 박찬호(차남) |
| 친인척 | 숙부 박용남(의사) 조카딸 박영은(둘째형 박태원의 첫째딸) 조카딸 박설영(둘째형 박태원의 셋째딸) 조카 박재영(둘째형 박태원의 둘째아들) 외종손자 봉준호(영화감독.) |
| 형제 | 누나 1명 형 2명(첫째형 박진원, 둘째형 박태원) 여동생 1명 남동생 1명 |
| 학력 |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문학부 철학과 미학전공 학사(1946년 3월) |
|---|
| 경력 | 조선미술동맹 서기서무분과위원장 조선문화단체총연맹 조직부장 겸 서기국장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객원교수 북괴 김두봉 시대 문화선전성 제3대 2부상 조선미술박물관 연구사 겸 연구위원 당 당무위원 겸 문화예술정책연구위원 |
|---|
| 국가 | 북괴 인민 정부 |
|---|---|
| 직책 | 문화성 제3대 부상 |
| 정당 | 무소속 |
| 장관 | 박웅걸(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문화성 문화상) |
| 주석 | 최용건 |
| 수상 | 김일성 |
| 임기 | 1961년 12월 28일~1962년 9월 2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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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미술 평론가 -
김용준 (1904년)
김용준(1904년)은 일제강점기부터 한국 전쟁 이후까지 서양화가, 미술사학자, 미술 평론가로 활동했으며, 한국 미술의 정체성을 탐구하고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모색하다가 월북 후 평양미술대학 강좌장을 역임했다.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삽화가 -
현재덕
현재덕은 아동문학가 현덕의 동생으로, 일제강점기부터 아동문학과 미술 분야에서 활동했으며, 소년조선일보 동화 연재를 이어받고 김유정 등과 교류했으나, 친일 행적으로 인해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포함되었다.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저술가 -
홍명희
홍명희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이자 소설가, 정치인으로, 장편소설 《임꺽정》으로 유명하며, 독립운동 참여, 언론 및 교육계 활동 후 해방 후 남북협상 참여, 월북하여 북한에서 요직을 역임하며 정치적 역할에 대한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저술가 -
계응상
계응상은 일제강점기부터 북한에서 활동한 유전학자이자 잠학자로, 북한 잠업 발전에 기여했으며 김일성종합대학 교수 재직 당시 리센코의 유전 이론을 비판하며 고전 유전학 연구를 옹호한 인물이다.
2. 학력
3. 생애 및 활동
박문원은 일제 강점기부터 활동을 시작하여 해방 이후와 한국 전쟁 이후 북한에서까지 활동한 화가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형인 소설가 박태원의 작품 삽화를 그리기도 했다. 해방 이후에는 조선미술동맹, 조선문화단체총연맹 등에서 활동하며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서 객원교수를 지냈고, 현실 참여적인 작품을 발표했다. 한국 전쟁 중 월북하여 북한에서 조선미술박물관 연구사 등으로 활동하며 미술사 연구와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3.1. 일제 강점기 (1910-1945)
1936년, 둘째 형인 소설가 박태원의 소설 《천변풍경》 책 표지 디자인과 삽화 작업에 참여하였다.
3.2. 해방 직후 (1945-1950)
해방 이후 박문원은 미술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1946년 11월부터 1947년 10월까지 조선미술동맹 서기서무분과위원장을 맡았으며, 1948년 3월부터 6월까지는 조선문화단체총연맹 조직부장 겸 서기국장을 역임했다. 또한, 1948년 8월부터 1949년 2월까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객원교수로 재직하기도 했다. 이 시기 그는 〈쌀을 다오〉, 〈데모〉, 〈감방〉 등 현실 참여적인 작품을 발표했다.
3.3. 월북 이후 (1950-사망)
한국 전쟁 중 월북한 박문원은 북한에서 미술 활동을 이어갔다. 조선미술박물관 연구사 겸 연구위원 등으로 활동하며 미술사 연구와 작품 활동을 병행했으며, 북한 체제를 반영한 작품들을 창작했다.
4. 작품
박문원은 화가이자 미술사학자로서 회화, 삽화, 미술사학 저술, 미술 평론, 번역 등 다방면에 걸쳐 활동했다. 회화 분야에서는 유화를 주로 다루었으며, 시기별로 일제 강점기의 인물화, 해방 이후의 사회 참여적 작품, 월북 후의 북한 현실 및 체제 선전 관련 작품 등 다양한 경향을 보였다. 형인 소설가 박태원의 작품 《천변풍경》 삽화를 그리기도 했으며, 미술사학자로서 고구려 미술 연구에 집중하여 관련 저술과 평론을 남겼다. 또한 러시아의 미술 교재를 번역하여 소개하기도 했다.
4.1. 회화
박문원은 주로 유화를 통해 다양한 주제의 작품을 남겼다. 활동 시기에 따라 작품 경향의 변화를 보인다.
일제 강점기에는 인물화, 특히 소녀를 주제로 한 작품을 그렸다. 해방 이후 월북 이전까지는 당시의 사회 현실을 반영하는 참여적인 성격의 작품을 제작했다. 월북 이후에는 북한의 사회상과 풍경, 체제 선전적인 내용을 담은 작품들을 주로 그렸다. 주요 회화 작품은 다음과 같다.
4.2. 삽화
1936년, 둘째 형인 소설가 박태원의 소설 《천변풍경》의 책 표지 디자인과 삽화 작업에 참여했다.
4.3. 미술사학 저술
박문원은 미술가일 뿐만 아니라 미술사학자로서도 활동했으며, 특히 고구려 미술 연구 분야에서 중요한 업적을 남겼다. 주요 저술로는 다음이 있다.
* 《신라의 금관》
* 《삼국시기 미술사 연표》
* 《고구려의 명인, 담징》
* 《조선의 명인, 박한미》
4.4. 미술 평론
박문원은 미술 평론을 통해 고구려 미술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 한국 고대 미술사의 기초를 다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의 주요 평론 활동은 다음과 같다.
4.5. 번역
1957년 《러시아 소묘 교과서》를 번역하여 소개했다.
5. 이외 이력
* 조선미술동맹 서기서무분과위원장(1946년 11월~1947년 10월)
* 조선문화단체총연맹 조직부장 겸 서기국장(1948년 3월~1948년 6월)
*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객원교수(1948년 8월~1949년 2월)
* 조선미술박물관 연구사 겸 연구위원(1961년 3월~1961년 1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