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방산성
1. 개요
배방산성은 충청남도 천안과 온양 간 국도 남쪽 성재산 정상부에 위치한 석축 산성이다. 성의 둘레는 약 1500m이며, 백제 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성 안에 우물과 군창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성 안에서 백제 토기 조각이 발견되었다. 전설에 따르면, 백제 개로왕 때 성배와 성방 남매의 이름을 따서 배방산 복부성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 이름 | 배방산성 (排芳山城) |
|---|---|
| 유형 | 충청남도 기념물 |
| 지정 번호 | 67 |
| 지정일 | 1988년 8월 30일 |
| 주소 |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공수리 산49 |
| 면적 | 95,108m2 |
| 참고 | 아산 배방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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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시의 문화유산 -
난중일기
《난중일기》는 이순신이 임진왜란 중 군중에서 직접 쓴 친필 일기로, 전쟁 상황과 개인적인 소회, 사회상 등이 기록된 7권의 일기이며 국보 제76호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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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민루
여민루는 조선 시대 아산군 관아 입구에 세워진 문루 건물로, 백성의 뜻을 취한다는 의미를 담은 현판이 걸려 있으며,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에 익공 양식의 공포를 갖춘 다락 형식의 건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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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카에다
알카에다는 압둘라 아잠에 의해 1988년 설립되어 오사마 빈 라덴이 이끌었던 국제적인 지하디스트 테러 조직으로, 샤리아 법에 기반한 세계적인 이슬람 국가 건설을 목표로 하며 9·11 테러를 비롯한 수많은 테러에 연루되어 국제사회의 비판과 제재를 받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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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명
세례명은 기독교에서 세례를 받을 때 받는 새로운 이름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태어남을 의미하며, 성경 속 인물들의 이름 변화에서 유래하여 중세 이후 유럽에서 일반적인 이름 형태로 정착되었고, 수호성인의 이름에서 따와 이름 축일로 기념되기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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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나성
부여 나성은 백제 사비 도성을 방어하기 위해 538년경에 축조된, 둘레 8km의 흙으로 쌓은 성으로, 금강과 자연 지형을 활용한 이중 구조를 갖추고 있으며, 현재는 일부 흔적만 남아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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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 남포읍성
보령 남포읍성은 충청남도 보령시에 위치한 조선시대 읍성으로, 왜구 침입 방어를 위해 축조되었으며, 돌과 흙으로 쌓은 성벽과 방어 시설, 그리고 관아 건물이 남아 있어 당시 읍성의 형태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2. 위치
충청남도 천안과 온양 사이의 국도 남쪽에 있는 해발 250m의 성재산 정상 부분을 테뫼식으로 돌을 둘러쌓아 만든 산성이다. 산성(山城)은 산의 능선을 따라 흙이나 돌로 쌓은 성을 말한다.
3. 구조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성의 둘레가 3,313척, 높이가 13척이며, 성 안에 우물 2개와 군수물자를 비축했던 군창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현재 성 내부에는 여러 곳에 건물터가 남아있다. 성 안에서 백제 토기 조각들이 발견되어, 백제 시대에 쌓은 성으로 추정된다.
성 관련 전설에 따르면, 백제 개로왕 원년(445)에 공수라는 칠순 노인이 성배와 성방이라는 쌍둥이 남매를 데리고 있었는데, 성배가 성방에게 무릎을 꿇었다 하여 두 남매의 이름을 따서 배방산 복부성(伏俯城)이라 했다고 한다. 솥을 엎어놓은 모양이어서 복부성(伏釜城)이라고도 불린다.
3.1. 성벽
성의 길이는 약 1500m이며, 성벽은 대부분 무너져 돌무지로 보이나 성의 남쪽에 15m 정도의 성벽이 남아 있다. 두께 12m, 길이 0.5m 정도의 자연할석을 이용하여 성벽을 쌓았고, 안쪽에 석재·잡석을 이용하여 너비 3∼4m를 길이모쌓기(돌의 길이가 표면에 나타나게 가로 쌓는 일)로 하였다. 하단에서 상단으로 갈수록 약간 안쪽으로 경사지게 쌓았는데, 복원한다면 높이는 5∼6m 정도로 추정된다. 성벽은 두께 10~20cm, 너비 40~50cm 정도 되는 납작한 돌을 이용하여 바른층 쌓기로 쌓았으며, 한쪽 벽면은 자연 지형을 그대로 이용하고 한쪽 벽면만 돌을 이용해 쌓은 편축식으로 축성하였다.
3.2. 시설물
배방산성은 충청남도 천안과 온양간의 국도 남쪽에 있는 해발 250m의 성재산 정상부를 테를 맨 모양으로 돌을 둘러쌓아 만든 산성이다.
성의 길이는 약 1500m이며, 성벽은 대부분 무너져 돌무지로 보이나 성의 남쪽에 15m 정도의 성벽이 남아 있다. 두께 12m, 길이 0.5m 정도의 자연할석을 이용하여 성벽을 쌓았고, 안쪽에 석재·잡석을 이용하여 너비 3m∼4m를 길이모쌓기(돌의 길이가 표면에 나타나게 가로 쌓는 일)로 하였다. 하단에서 상단으로 갈수록 약간 안쪽으로 경사지게 쌓았는데, 복원한다면 높이는 5m∼6m 정도로 추정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성의 둘레 3,313척, 높이 13척이며, 성 안에 2개의 우물과 군수물자를 비축해 두었던 군창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지금도 여러 곳에 건물터가 남아있다.
4. 역사
배방산성은 충청남도 천안과 온양 사이 국도 남쪽에 있는 해발 250m의 성재산 정상부에 테를 두른 듯 돌로 쌓아 만든 산성이다. 성의 길이는 약 1500m이며, 성벽은 대부분 무너져 돌무더기처럼 보이나 남쪽에 15m 정도의 성벽이 남아 있다. 두께 12m, 길이 0.5m 정도의 자연 할석(깬돌)을 이용하여 성벽을 쌓았고, 안쪽에는 석재와 잡석을 이용하여 너비 3∼4m를 길이모쌓기(돌의 길이가 표면에 나타나게 가로 쌓는 방식)로 하였다. 하단에서 상단으로 갈수록 약간 안쪽으로 경사지게 쌓았는데, 복원한다면 높이는 5∼6m 정도로 추정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성의 둘레는 3,313척, 높이는 13척이며 성 안에는 우물 2개와 군수물자를 비축해 두었던 군창이 있었다고 한다.
나말여초(고려 말 조선 초)에 온수군 방운 공이 고려 유금필 장군 막하에서 큰 공을 세워 탕정군 일대를 식읍(나라에서 공신에게 내리던 토지)으로 하사받고 산성 내에 후손들이 세거(대대로 삶)하게 되어 그 일족을 온양 방씨라 하였으며, 산성을 배방산성이라 불렀다고도 한다.
4.1. 백제 시대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성의 둘레가 3,313척, 높이가 13척이며, 성 안에 우물 2개와 군수물자를 비축해 두었던 군창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지금도 여러 곳에 건물터가 남아있다. 성 안에서 백제의 토기 조각들이 발견되고 있어 백제 시대에 쌓은 성으로 추정된다.
전설에 따르면 백제 개로왕 원년(445)에 공수라는 칠순 노인이 성배와 성방이라는 쌍둥이 남매를 데리고 있었는데, 성배가 성방에게 무릎을 꿇었다고 해서 두 남매의 이름을 따서 배방산 복부성(伏俯城)이라 했다고 한다. 또 형태가 솥을 엎어놓은 모양이어서 복부성(伏釜城)이라고도 한다.
5. 전설
전설에 의하면 백제 개로왕 원년(445)에 공수라는 칠순 노인이 성배와 성방이라는 쌍둥이 남매를 데리고 있었는데, 성배가 성방에게 무릎을 꿇었다 해서 두 남매의 이름을 따서 배방산 복부성(伏俯城)이라 했다고 한다. 또 형태가 솥을 엎어놓은 모양이어서 복부성(伏釜城)이라고도 한다.
公須중국어란 칠순 노파가 성배와 성방이라는 쌍둥이 남매를 거느리고 있었다. 노파는 이 둘이 호적수라 매일 다투자 이들 중 한 명이 사라져야 다툼이 사라질 것이라 생각하고 경쟁을 시켰는데, 성배에게는 성을 쌓게 하고 성방에게는 한성에서 검정 황소를 찾아오게 하였다. 성배의 성은 완성이 눈앞에 있었으나 성방을 아꼈던 노파의 방해로 성방에게 경쟁에서 지게 되어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되었다. 성배가 성방에게 무릎을 꿇었다 하여 이 성을 배방산성 혹은 복부성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또한 나말여초에 온수군 방운 공이 고려의 유금필 장군 막하에서 큰 공을 세워 탕정군 일대에 식읍으로 하사받고 산성 내 후손들이 세거하게 되어 그 일족을 온양 방씨라 하였으며, 산성을 배방산성이라 불렀다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