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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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범문정은 명나라 말기, 청나라 초기의 문신으로, 북송의 명신 범중엄의 후손이다. 1597년 명나라 심양에서 태어나, 1618년 후금에 투항하여 누르하치를 섬기며 요동 지역의 정치 및 군사 고문으로 활약했다. 청나라 건국 후에는 대학사, 의정대신 등을 역임하며 청나라의 중국 통치에 기여했다. 그는 한족 문화 존중 및 한족 관리 등용을 건의하여 청나라의 안정적인 통치 기반을 다지는 데 기여했고, 순치제의 재위 기간 거의 10년 동안 재상으로 지내며 청나라의 중국 통치에 기여했다. 1666년 강희제 치세에 사망했으며, 사후 태부와 태자태보에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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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문정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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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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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칭 | 정기니하판 (精奇尼哈番) 2등 |
다른 이름 | 자: 헌두 (憲斗) 시호: 문숙 (文肅) |
출생 | 1597년 |
출생지 | 요동도지휘사사 심양중위 문관둔 |
사망 | 1666년 |
사망지 | 베이징, 청나라 |
직업 | 정치가 |
소속 | 청나라 |
군사 복무 | 1644년–1666년 |
기 | 양황기 한군 |
친척 | 범승모 (아들) 범승훈 (아들) |
관직 | |
이사 시종 시기 | 1652년 – 1654년 |
학력 | 향시 합격 |
가문 | |
조상 | 범총 |
2. 생애
범문정은 1597년 명나라 만력제 연간에 태어나, 1666년 청나라 강희제 연간에 사망한 인물이다. 북송의 명신 범중엄의 후손으로 알려져 있으며, 증조부 범총은 명나라 병부시랑을 지냈다.[9]
어린 시절부터 학문을 좋아했던 범문정은 18세에 생원이 되었고, 19세에는 심양중위학 생원이 되었다.[9] 1618년 누르하치가 무순을 점령하자 형 범문채와 함께 누르하치에게 투항하였고, 이후 누르하치와 홍타이지를 섬기며 대학사, 의정대신 등의 요직을 역임했다.
범문정은 후금 건국과 청나라 초기 발전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명나라와 요동반도 지역의 정치, 군사 상황에 정통하여 전쟁 고문으로 활약했고, 청나라의 한족 문화 존중 정책을 건의하기도 했다.
강희제 5년(1666) 8월, 범문정은 70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시호는 문숙(文肅)이며, 현량사에 배향되었다.[10] 강희제는 1713년에 범문정을 기려 '원보고풍(元輔高風)'이라는 편액을 하사하였다.
2. 1. 초기 생애
범문정은 1597년 명나라 만력제 시기 요동도지휘사사 심양중위 문관둔에서 태어났다.[9] 북송의 명신 범중엄의 후손으로 알려져 있으며, 증조부 범총은 명나라 병부시랑을 지냈다.[9]어릴 때부터 학문을 좋아하여 18세에 생원이 되었고, 19세에는 심양중위학 생원이 되었다.[9] 1618년 누르하치가 무순을 공격하여 점령하자, 21세의 범문정은 형 범문채와 함께 누르하치에게 투항하였다.[9] 누르하치는 여러 버일러에게 '이 자는 명신의 손자이니 후히 대우하라'고 전하였다.[9]
2. 2. 후금 투항과 활약
범문정은 1618년, 21세의 나이에 형 범문채와 함께 후금의 누르하치에게 투항했다.[9] 누르하치는 범문정이 명신의 후손이라 하여 후대하였고, 여러 버일러(beile)에게 '이 자는 명신의 손자이니 후히 대우하라'고 명하였다.[9] 범문정은 누르하치를 따라 명나라 정벌에 참여하여 요양, 서평 등지에서 공을 세웠다.[9]홍타이지 즉위 후에도 범문정은 중용되어 대학사, 의정대신 등의 요직을 역임했다.[9] 1636년에는 내비서원대학사(內秘書院大學士)가 되었고, 세습직함 2등잘란장긴(二等甲喇章京)으로 승진했다.[9] 이후에도 여러 차례 승진하여 박시(巴克什) 칭호를 하사받고, 2등징치니하판(二等精奇尼哈番)에 올랐다.[9]
범문정은 명나라와 요동반도 지역의 정치 및 군사 상황에 정통하여 전쟁 고문으로 선택되었다. 누르하치 사후, 홍타이지는 범문성을 조정의 일을 돕게 하였다. 범문성의 용기와 지혜, 전술은 청나라가 여러 차례 명나라를 격파하는데 기여하였다.
- 준화 전투 - 1629년, 범문성은 홍타이지에 의해 준화에 배치되었다. 명나라 군대의 공격으로 청군이 고전하자, 범문성은 청군을 이끌고 돌파하여 "유격세직"(游击世职)이라는 관직을 받았다.
- 대안구 전투 (大安口之战) - 1629년, 명나라 군대가 요양시의 대안구에서 청나라 군대를 포위했다. 범문성의 군대는 화기를 사용하여 명나라 군대에 맞서 청군을 이끌고 돌파했다.
- 대릉하 전투 - 1631년, 홍타이지가 약 7만 명을 이끌고 대릉하성을 공격할때, 범문성은 명나라 군대를 항복시키도록 설득하는 임무를 맡았다. 명나라 군대는 항복 대신 죽음을 택했지만, 범문성은 끈질긴 설득으로 결국 명나라의 항복을 받아내고 많은 자원을 확보했다.
2. 3. 청나라 건국과 통치 기여
범문정은 명나라와 요동반도 지역의 정치 및 군사 상황에 정통하여, 누르하치에 의해 전쟁 고문으로 선택되었다. 누르하치가 사망한 후 그의 아들 홍타이지는 범문정을 불러 조정의 일을 돕게 했다. 범문정의 용기와 지혜, 전장에서의 전술과 지혜는 청나라가 여러 차례 명나라를 격파하는 데 기여했다.[5]- 준화 전투 - 1629년, 범문성은 홍타이지에 의해 청군을 막기 위해 준화에 배치되었다. 명나라 군대가 공격했고 청군은 고전했다. 범문성은 청나라 군을 이끌고 돌파했다. 그의 눈부신 군공으로 범문성은 "유격세직"(游击世职|유격세직중국어)이라는 관직을 받았다.
- 대안구 전투 (大安口之战|대안구 전투중국어) - 1629년, 명나라 군대는 요양시의 대안구에서 청나라 군대를 포위했다. 범문성의 군대는 화기를 사용하여 명나라 군대에 맞섰고 성공적으로 청군을 이끌고 돌파했다.
- 대릉하 전투 - 1631년, 황제 홍타이지는 약 7만 명을 이끌고 대릉하성을 공격했다. 범문성은 황제의 지시를 듣고 명나라 군대를 항복시키도록 설득하기 위해 파견되었다. 그러나 명나라 군대는 항복하기보다는 죽음을 택했다. 그래서 범문성은 군대를 성 밖에서 대기하게 하고, 자신이 성으로 들어가 명나라 군대를 설득했다. 결국 그는 명나라의 항복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고 많은 자원을 확보했다.
청나라가 막 건국되었을 때, 범문정은 새로운 만주족 황제들에게 전통적인 한족 문화를 존중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다.[5] 홍타이지가 사망한 후 그의 아들 순치가 청나라 황제가 되었다. 순치제는 범씨 가문을 가장자리 노란색 기치에 소속시켰다. 도르곤이 청군을 지휘하여 명나라를 토벌할 때, 범문정은 순치제에게 서면 성명을 제출하여, 현재 백성들이 빈곤에 시달리고 있으며, 이전에는 청나라가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대량 학살을 자행했기에 백성들은 청나라의 목적에 대해 의심을 품고 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이번 원정에서 군인들은 규율을 엄격히 준수해야 한다. 청군은 한족을 존중하고 한족의 재산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 그리하면 백성들은 청나라의 의도를 알게 될 것이다. ''청사고''(清史稿)에 따르면 범문정은 명나라의 관리들이 계속 관직에 머물면서 백성들의 빈곤을 해소하도록 돕고, 청나라는 유능하고 재능 있는 인재들을 널리 등용하여 청나라에 합류시켜야 한다고 제안했다.[6]
2. 4. 은퇴와 죽음
범문정은 은퇴 후 태부(太傅)와 태자태보(太子太保)에 추증되었다. 이 직위는 청나라 정부 관직의 최고 등급으로, 제국 전체의 최고 영예를 상징한다. 태부는 황제의 스승이며, 태자태보는 황태자의 안전을 보호하는 직책이다.[10]강희 5년(1666) 8월, 범문정은 향년 70세에 사망하였다. 시호는 문숙(文肅)이었으며, 현량사(賢良祠)에 입사되었다.[10] 강희제(康熙帝)는 범문정 사후 47년만인 강희 52년(1713)에 그를 위하여 친히 '원보고풍(元輔高風)'이라는 편액을 하사하였다.
3. 가족 관계
범문정은 뉴후루씨(鈕祜祿氏)와 혼인하였으며, 처조부는 어이두(額亦都)이다.[1] 슬하에 범승음(范承廕), 범승모(范承謨), 범승훈(范承勳), 범승빈(范承斌), 범승렬(范承烈), 범승조(范承祚) 등 여섯 아들을 두었다.[1]
범승모(范承謨)는 복건총독을, 범승훈(范承勳)은 광서순무, 운귀총독(雲貴總督), 강남강서총독을 역임하였다.[1]
범시숭(范時崇)은 좌도어사, 병부상서를, 범시역(范時繹)은 도통, 호부상서, 공부상서를, 범시첩(范時捷)은 제독, 양백기한군도통을, 범시수(范時綬)는 좌도어사, 도통, 공부상서, 형부상서를, 범시기(范時紀)는 부도통, 시랑을 역임하였다.[1]
범건중(范建中)은 호부상서, 정황기한군도통, 항주장군을 역임하였다.[1]
3. 1. 주요 가계도
(범승모(范承謨)의 아들)(범승조(范承祚)의 아들)
(범시기(范時紀)의 아들)